1994년은 카를로스 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의 재임 마지막 해. 그해 1월1일은 그의 최대 치적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하는 날이었다. 관저에서 흥겨운 마음으로 송구영신 파티를 주재하던 그에게 새벽2시쯤 키아파스 주의 무장봉기 소식이 날아들었다. 여기서부터 꼬리를 문 재앙은 그 순간까지 장밋빛 꿈에 빠져있던 살리나스와 멕시코를 그해 내내 괴롭혔다.

 

당혹스러운 반군사태를 유화책으로 겨우 진정시켜 놓고 있던 3월, 여당 대통령후보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가 암살됐다. 제도개혁당(PRI)은 1928년 창당 이래 60여 년간 멕시코 정치를 독점해 왔고, 6년 단임제의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전통을 지켜왔다. 선거를 5개월 앞둔 PRI후보의 암살은 지방의 반란보다 체제에 대한 더 큰 위협이었다.

 

콜로시오 암살의 의혹도 풀리지 않고 있는 판에 9월에는 PRI 사무총장 호세 프란치스코 루이스 마시에우가 저격당했다.

 

그리고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이 12월1일 취임한지 불과 3주 만에 최악의 사태가 터졌다. 해외투자가들의 이탈로 외환보유고가 바닥에 이름에 따라 페소화의 전격적 평가절하가 불가피하게 된 것이었다. 공신력 훼손이 해외자본의 이탈을 가속시켜 경제는 공황에 빠지고 페소화의 가치는 몇 달 사이에 절반까지 떨어졌다.

 

정치면의 혼란도 경제면보다 못하지 않았다. 세디요가 파격적으로 검찰총장에 임명한 야당지도자 안토니오 로사노는 전임대통령의 형 라울 살리나스가 루이스 마시에우 저격의 배후조종자임을 밝혀냈다. 뒤이어 라울 살리나스의 엄청난 독직과 축재 사실이 파헤쳐지는 동안 카를로스 살리나스는 항의단식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해 버렸다. 범죄 은폐 내지 개입 의혹을 뒤로 한 채.

 

마이애미 헤럴드지 기자 안드레스 오펜하이머는 키아파스 봉기 다음날부터 2년간 멕시코를 취재한 결과를 <벼랑에 선 멕시코>로 묶어냈다. 전-현직 대통령과 암살된 후보, 반란군 사령관 마르코스를 비롯해 중요한 인물 거의 모두를 인터뷰한 저자는 멕시코가 처한 상황의 문제점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미래의 전망을 세워본다.

 

저자의 관점에 큰 영향을 끼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루이스 마시에우 피격 직후 살리나스 대통령은 피살자의 동생 마리오 루이스 마시에우 검사에게 특별히 수사지휘를 맡겼다. 정치적 사건이 통상 미궁에 빠지고 마는 멕시코의 전통이 이번에는 혹시 깨지나 하고 저자는 수사결과를 예의주시했다.

 

몇 주일 후 마리오 검사는 사표를 내며 분노에 찬 성명을 발표했다. 범인들이 보수적 정치인들을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보아 개혁파 지도자인 형이 수구파의 테러에 희생됐음을 확신하지만 PRI 지도층의 방해로 수사를 진척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리오는 순식간에 국민적 영웅이 되고 그를 인터뷰한 저자도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다시 몇 주일 후 신임 로사노 검찰총장은 놀라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대통령의 형이 개인적 원한으로 자기 형의 살해를 조종한 사실을 알면서 마리오 검사가 은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발표가 나올 때 마리오는 미국으로 도망가 있었고 텍사스 어느 은행 그의 계좌에는 최근 몇 달간 7백만 달러가 입금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마약조직에서 오랫동안 거액을 상납받아 온 사실도 뒤이어 드러났다.

 

이런 황당무계한 사태를 바라보며 저자는 멕시코 권력체제의 성격에 생각을 모아 본다. PRI는 이념을 가진 정책정당이 아니라 권력층의 체제유지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수십 년간 책략만으로 체제를 유지해 온 권력층은 극도의 도덕불감증에 빠지는 한편 내부의 이권조정도 한계에 도달한 것이 멕시코가 빠진 파탄의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멕시코의 장래를 어렵게 보지만 세디요 대통령을 통해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우연한 상황으로 대통령이 된 세디요는 종래 정치지도자들처럼 특권층 출신도 아니고 자기가 되려 해서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다.

 

살리나스의 깨어진 꿈은 우리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NAFTA를 향한 화려한 경제적 성공은 경제부조리를 심화시킨 무원칙한 국영기업 민영화에 바탕을 둔 사상누각이었다.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은 정국운영도 권력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피해만 가다가 파탄을 맞았다. 우리 문민정부의 성취도 부단한 비판적 검토를 필요로 한다. 그래도 비판할 만한 대상이라도 가지게 된 것이 다행이다. 1996. 11. 5

 

Posted by 문천

 

뉴욕타임스의 주간 북리뷰에는 신랄한 내용의 서평도 심심찮게 실린다. 하지만 찰스 라이히의 <이 체제를 고발한다>에 대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서평(11월26일자)처럼 철저하게 적대적인 비판은 흔치 않다. 그 책이 애초에 서평의 대상이 된 까닭조차 의아할 만큼 여지없는 혹평으로 일관했다.

 

문제의 책에서 라이히는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60년대 저항정신을 집약한 <녹색의 미국을 위하여>(The Greening of America,1971)로 한 시대를 그었던 예일대 법대 교수가 20여 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대중을 향해 입을 연 데는 후쿠야마 같은 논객들의 근래 활약이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후쿠야마는 공산권의 몰락을 자본주의의 승리로 규정하고 이데올로기 투쟁이 사라진 후의 '탈역사시대'(Post-Historic Age)를 선언했다. 그 후 몇 년간 진보진영은 잠잠했다. 라이히의 책이 그동안 기다려 온 진보진영의 응답일까. 뉴욕타임스에 이어 워싱턴포스트도 주간 북월드(12월17일자)에 존 주디스(뉴리퍼블릭지 편집자)의 서평을 실었다. 라이히의 발언은 어떤 의미에서든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것이다.

 

라이히가 고발하는 체제란 미국 경제체제다. 대기업의 실질적 시장통제력은 계속 강화돼 연방정부, 주정부 등 공조직을 능가하는 지배력을 사회에 미치게 되었음에도 '사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공적 책임을 면제받는 체제. 소수의 관리자들이 이기적인 기준으로 경제를 운용하면서 '시장원리'의 이름 뒤에 숨어 사회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체제. 권력만 있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소재가 없는 이 체제의 책임을 추궁하려고 라이히는 나선 것이다.

 

라이히의 고발은 미국 민주주의정신을 지키자는 것이다. 모든 경제활동이 조직화돼 가는 현대세계에서 조직에서의 소외란 곧 생존권의 박탈을 뜻한다. 기업의 비민주적 지배로부터 피고용자의 권익을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다면 허울좋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시민들에게 보장해 주는 것은 '굶어죽을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목적에는 민주주의정신과 꼭 맞지 않는 면이 있다. 상명하복의 권위체제가 능률의 극대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정부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기업의 권위주의 성향을 절충시킬 필요가 있음을 라이히는 강조하며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방임주의에 반대한다.

 

그의 고발은 또한 시민의 생활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마약, 폭력, 결손가정, 환경파괴 등 미국사회가 시달려온 문제의 원인을 당사자들의 개별적, 도덕적 문제에서 찾기보다 체제가 빚어낸 전반적 조건에서 찾아야 한다고 라이히는 주장한다. 인간적인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는, 시장원리와 경제논리만을 내세우는 체제의 운용이 그 구성원과 소외된 자들 모두에게 불안감과 분노를 심어주는 데 문제의 근본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란 무엇인가?" 라이히는 묻는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오고 미국 헌법이 작성된 18세기 말까지 경제는 인간의 모든 활동 속에 분화되지 않은 채 녹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 자유, 성취감 등 인간의 본질적인 제 가치와 유리된, 고삐 풀린 경제논리가 끝 모를 파국으로 사회를 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우리의 위치를 밝히는 지도(地圖)를 새로 만들자고 그는 청한다. 경제의 힘을 장악한 자들이 그동안 학계, 언론계, 관계, 정치계에 대한 영향력을 총동원해 국민들에게 만들어 보여준 지도는 미국사회를 함정으로 이끌어 왔다. 이제 미국의 건국정신,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이해에 입각해 현실을 다시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위치를 되찾자. 그리고 새로운 지도가 보여준 방향에 따라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자. 이것이 라이히의 주장이다.

 

미국사회의 전통적 이념인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는 이제 환상과 그림자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라이히는 새 지도에 적어 넣는다. 소수의 탈락자를 제외한 사회 전체의 승리를 구가하는 후쿠야마와 달리 그는 소수의 권력자를 제외한 사회 전체의 패배를 탄식한다. 소수의 탈락자도 소수의 권력자도 아닌 중간층이 지금의 상태를 승리의 상태로 보느냐, 패배의 상태로 보느냐에 따라 후쿠야마와 라이히, 어느 쪽에 귀 기울일지 정해질 것이다.

 

라이히는 후쿠야마의 '탈역사'와 달리 '탈경제'(Post-Economy)시대의 청사진을 그린다. 허구적인 시장원리와 경제논리를 배격하고 민주주의와 박애정신으로 움직여지는 새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대기업의 힘을 직시해 사기업이 아닌 공기업으로서의 성격을 밝히고, 인간생활을 지배하는 경제의 힘을 직시해, 경제논리의 폭을 넓힐(환경파괴, 범죄증가, 근로자의 불만감 등 사회와 시민의 모든 손해를 원가에 포함시킬) 것을 그는 제안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고 시민들을 '번영 속의 비극'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 지성계의 진보주의가 어떤 무력감에 빠져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그러나 5년 전에 비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776~1990. 그 앞도 없고 그 뒤도 없는 역사. 미국인들이 후쿠야마의 꿈에서 깨어나며 던지는 비판의 목소리는 그 꿈의 변두리에 서있던 우리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1995. 12. 31

Posted by 문천

 

<뉴라이트 비판>을 책으로 낸 것이 2008년 12월. 꼭 5년이 되었다.

 

학문이 정치를 키워줘야 할 텐데, 거꾸로 정치가 학문을 갖고 노는 현상이 '비판' 때문에 움츠러들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현상의 본질을 까밝힘으로써 학문 아닌 게 학문인 척하는 사기에 사람들이 맹랑하게 넘어가는 일은 줄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5년 전 비판에서 주된 표적으로 삼았던 안 아무개와 이 아무개가 별로 힘을 쓰지 못하게 된 데는 내 노력도 한 몫 했다고 자부한다. 그들을 이용하려는 세력에게도 바닥이 들통난 그들의 이용가치가 크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보다도 더 낯 두꺼운 사람이 나섰다. '국사편찬위원장'이란 감투를 둘러쓰고.

 

나는 국사편찬위원회란 관청의 존재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 왔다. 식민지시대를 막 벗어난 단계에서 한시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몰라도 권력기구인 국가가 특정 학문분야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권력과 권위를 혼동시키는 기본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동안 국사편찬위원회 운용에 심각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괜찮은 이들이 맡았고(역대 위원장이 대체로 무난한 분들이었고, 그중에는 매우 존경스러운 분들도 있었다.) 운영을 잘했기 때문이다. 역사학계의 인프라라 할 수 있는 작업을 많이 수행한 반면 정치에 이용당한 측면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유영익이 국편위원장을 맡다니! 지금까지 인선 기준을 통째로 무시한 이 조치는 국편의 기본 성격이 가진 문제점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국편 폐지의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르는 조치다.

 

나는 이승만에 관한 유영익의 글은 읽은 적이 없다. 다른 주제의 글을 읽은 것이 좀 있는데, 시원찮았기 때문에 더 읽어볼 생각이 없었고, 그 후 이승만에 관해 어떤 글을 썼다는 소문을 들으며 기막혀 하기만 했을 뿐이다.

 

수구세력이 자기네 정책을 뒷받침해 주는 역사관을 활용하려 노력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아니,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역사 보는 눈 없이 정책을 논해 온 대한민국 정치판에 역사관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유영익 같은 인물을 국편위원장으로 앉히는 식은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까발리는 데 한 차례 노력을 쏟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에 나 같은 사람이 적임이란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원래 한국현대사 연구자가 아니면서 저널리즘 차원에서 현대사를 다뤄 왔다는 게 유영익과 나의 공통점이다. 정통 연구자들보다 나 같은 입장에서 한 차례 걸러줄 필요가 있다.

 

해방공간 이후의 한국현대사에 어떻게 접근할지 1년 동안 고심해 왔다. 마침 이승만을 간판으로 내거는 유영익이 뉴라이트 기수로 나섰으니 이승만 시대를 한 차례 다루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