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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는 서세동점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한 유럽의 물질문명은 엄청난 부국강병의 효과를 가져왔고, 온 세계가 그 경제력과 군사력의 무기력한 침략 대상이 되었다.
유럽에 앞서 높은 문명수준을 성취했던 중국 등 동아시아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인은 19세기 후반 내내 서양세력과의 대결에서 굴욕을 거듭하는 가운데 서양문명을 배워야겠다는 의식이 갈수록 깊어졌다. 양무운동에서 변법운동으로, 그리고 다시 신문화운동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서양문명을 받드는 마음은 전통 유교문명을 부정하는 마음까지 일으켰다.
일본이 서양문명 학습에 앞선 결과 열강 대열에 합류하여 침략자의 입장에 서면서 ‘선진’과 ‘후진’의 기준이 더욱 분명해졌다. ‘개화’는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절대적 과제로 누구에게나 인식되었고, 그 과제의 첫 번째 내용은 전통을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거듭된 물질적 패배가 결국 정신적 패배를 초래한 것이다.
서양 물질문명을 바탕으로 한 세계체제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갈수록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약 50년 전부터 환경 문제, 자원 한계 등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계속 커져 왔고, 10여 년 전부터는 경제체제 등 인간사회의 조직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어지고 있다.
21세기 들어와 10여 년간 세계의 변화 중 중요한 것 하나가 중국의 성장이다. 1999년 시점까지도 중국의 경제발전은 미국(과 그 영향을 받는 세계기구들)의 정책에 좌우되는 바가 컸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형세가 역전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정책 결정에 중국 정책이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말이다.
진행 중인 중국의 성장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19세기 이래 열등생으로 떨어졌던 중국이 그 동안 공부 열심히 해서 우등생으로 올라서는 장면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교실에서 작동하던 경쟁의 원리를 벗어나 중국이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다른 길을 찾게 된 것일까?
바로 그 교실 안에서 오랫동안 지내 온 우리에게는 당연히 전자의 관점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관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 세계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과 연결해 본다면, 중국의 성장이 세계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150년 전 현 세계체제가 중국 중심의 천하체제를 뒤집었던 것과 비슷한 규모의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주축으로 한 현 세계체제를 유일한 문명의 길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이다. 서양 물질문명 도입을 유일한 생존과 발전의 길로 여기고 그에 방해되는 전통문명을 파기 대상으로 여기던 19세기의 패배의식에 후진사회가 머물러 있기를 그들이 바라는 것은 현 세계체제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안을 얻기 위해서는 세계체제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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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변하고 있다. 우선 대학의 간판 노릇을 하던 총장직이 유능한 행정가 위주로 바뀌고 있다. 명망높은 거물보다 '경영마인드'를 가진 활동가들이 갈수록 선호되고 있다.
대학평가제가 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시설투자비율, 도서관 장서 수, 교수 대 학생 비율, 졸업생 취업률 등 각종 계량적 지표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에서부터 신입생의 지원 경향까지 좌우하게 돼 가고 있다. 그 압력으로 인해 대학 내에 교수평가제의 움직임까지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 관한 얘기에서 '경쟁력'이 빠질 수 없는 기준으로 제기되고 대학교육을 일종의 서비스로 보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초연한 '상아탑' 대신 대학을 하나의 기업체로 보는 관점이 강화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까. 이 현상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일까. 빌 리딩스의 유저 <무너지는 대학>을 보면 이것이 세계적 현상임을 알 수 있으며 우리 대학이 겪고 있는 문제의 좌표를 찾아볼 수도 있다.
리딩스는 대학의 붕괴를 탈근대현상(post-modernism)의 일환으로 본다. 그는 근대적 대학의 발전을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단계, 형성기의 대학은 이성(理性)의 대학이었다. 종교를 바탕으로 하던 중세 대학이 칸트적 이성을 담론의 매체로 하는 새로운 대학사회로 재편된 것이다.
둘째 단계, 전성기의 대학은 문화의 대학이었다. 19세기에 들어오며 민족국가의 발달에 따라 대학은 민족문화의 본산으로 1차적 기능을 발휘하게 됐다.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체계화해 재생산하는원천이 된 것이다.
지금의 단계인 대학의 몰락기를 저자는 수월성(秀越性.excellence)으로 상징시킨다. 우리 사회에서도 대학의 이념으로 제기되고 있는 수월성이 아무 가치기준을 담지 않은 공허한 개념임을 저자는 지적한다. 수월성은 계량적 수치로만 나타난다. 그 수치가 어떤 이념적 의미를 갖는지는 전혀 설명이 없다. 수월성이란 대학이 지켜온 문화적 개별성을 분쇄하는 부정적 개념일 뿐 대학의 진로를 가리키는 지표가 되지 못한다는 풀이다.
국가간 대립을 거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을 끝으로 문화대립의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대학은 문화의 본산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됐다. 자본주의 가치관의 일률적 지배로 재편되는 세계 속에서 개별적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대학의 기능은 더 이상 설 땅이 없는 것이다.
수월성의 대학을 지배하는 것은 생산성이다. 일정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전달하느냐, 유용한 인재를 배출해 내느냐, 실용적인 연구업적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 대학의 지상과제가 된다. 시장경제의 부속품이 된 대학은 상품을 생산해낼 뿐 이념을 창출하지 않는다. 대학이 고유한 의미를 잃어간다는 뜻에서 저자는 오늘날을 대학의 몰락기로 보는 것이다.
영국 출생으로 캐나다 몬트리올대학에 있던 저자는 세계화의 문제를 여기에 이어서 본다. 세계적으로 고유문화가 시장경제에 휩쓸려나가는 와중에도 민족문화를 최대한 지키려 버틸 것인지, 아니면 민족문화를 앞장서서 팽개쳐버릴 것인지 하는 선택의 문제임을 대학의 운명에서 읽는 것이다.
민족문화 보루로서의 역할을 대학이 포기한다면 그 고유문화는 생식기능을 거세당하는 셈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우리의 세계화 구호도 한낱 위로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재생산 기능을 상실한 문화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러져가기만 할 그림자와 같은 것일 뿐이니.
세계화가 곧 '미국화'로 보이는 것도 저자가 제시하는 대학의 역사에 비춰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은 애초에 민족국가의 성격을 가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적 이념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체현하는 데 있었으며, 그 초강대국으로의 발돋움 자체가 세계적인 민족주의 퇴조에 따른 상대적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대학의 고유기능 상실을 노골적으로 아쉬워하는 저자도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념창출집단으로서 전통을 가진 대학사회가 새로운 상황속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역할을 맡을 것을 내다본다. 비록 기존의 문화대립이 사라진 탈역사(post-historical)시대라 하더라도 어떤 형태의 것이든 이념대립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력의 상품화라는 면에서 우리의 대학은 이미 시장원리에 깊이 물들어 있다. 대학평가제를 비롯한 작금의 변화는 크게 보아 효율성의 향상작업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와중에 민족문화의 재생산기능이 휩쓸려 사라질 위험을 조심스레 살펴야 할 것이다. 1996.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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