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세 대륙은 신대륙(New World)’.으로 불린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구대륙(Old World)’과 대비되는 것이다.

 

아메리카가 15세기 말에, 오세아니아가 17세기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사람이 살던 곳이고 더러는 고도의 문명을 꽃피우기도 하던 곳인데, 꼭 유럽인의 눈에 들어와야만 그 존재가 시작된 것처럼 볼 수 있는가.

 

그러나 역사의 큰 흐름에 비추어서는 이들을 신대륙으로 보는 데 의미가 없지 않다. 고유의 문명과 문화가 철저하게 파괴되거나 무시되고 구대륙에서 퍼져나온 역사의 흐름에 휘말려 들어가면서 피동적인 역할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신대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16세기 이후 신대륙은 유럽인에게 막대한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서방의 흥기를 뒷받침해 주었다. 자원 착취의 기지로 만들어진 식민지가 자라나 20세기에는 서방 패권을 연장시키며 그 주역을 맡기도 했다. ‘발견이후 신대륙의 역사는 세계사의 전개에서 중요한 축이 되었다.

 

서방 패권을 당연시하던 유럽중심주의가 근년 퇴조하면서 신대륙의 역사적 역할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신대륙으로 눈길을 돌리기 전에 먼저 살펴보고 싶은 곳이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15세기 유럽인의 진출을 계기로 세계사 전개에 피동적 역할을 강요당했다는 점에서 신대륙과 같은 입장에 놓였던 곳이다.

 

사하라 이남이란 이름 자체가 외부의 인식이 빈약했던 사정을 보여준다. 이집트에서 모로코까지 지중해 연안 지역은 일찍부터 지중해문명권의 일부로 유럽인에게 잘 알려진 곳이었다. 그 남쪽은 알려진 것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사하라 이남으로 퉁쳐서 부른 것이다.

 

사하라사막 남쪽에도 기후와 생태가 확연히 서로 다르고, 따라서 역사와 문화도 서로 크게 다른 여러 지역이 있었다. 그중에 제일 먼저 살펴볼 곳이 서아프리카다. 15세기 중엽 이후 유럽인의 활동이 가장 많았고, 아메리카로의 노예 반출도 가장 많았던 곳이다.

 

유럽인 진출 이전에도 서아프리카의 중심적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 반투 팽창(Bantu Expansion)’ 가설이다. 서아프리카 지역에는 니제르-콩고어파(語派)의 여러 언어들이 뒤얽혀 있는데, 그 동쪽 끝에서 출발한 반투어군(語群)이 기원전 10-5세기부터 동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가 대륙의 중-남부를 뒤덮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업 발생, 철기 사용 등 기술 발전을 발판으로 서아프리카 문화가 확장되어 나갔다는 관점을 함축하는 가설이다.

 

 

노예의 대거 반출이 불러온 역사의 단절

 

서아프리카의 역사는 일찍부터 지중해권과의 교섭을 축으로 진행됐다. 장거리 교역이 사하라사막을 가로질렀고, 4세기부터 낙타의 도입으로 더욱 확대됐다. 지중해권의 일환으로 선진문명이 보급된 북아프리카에 대해 서아프리카는 자원을 공급하는 배후지 역할을 했다.

 

서아프리카 몇 개 지역에 상아해안’, ‘노예해안’, ‘황금해안의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전통적 수출품을 표시한 것이다. 상아건 노예건 황금이건 서아프리카의 자원 착취는 15세기에 유럽인이 시작한 것이 아니다. 육로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나가던 것이 해로를 통해 유럽과 아메리카로 향하게 된 것이다. 유럽인이 직접 원주민을 노예로 사냥한 일은 거의 없었다. 지역에 존재하던 노예시장에서 구매했다. 이따금 유럽인의 노예 포획 시도에 현지 권력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한 것은 자기네 밥그릇이었기 때문이다.

 

16-18세기 아메리카로의 노예 반출이 1200만 명 전후로 추정되는 한편 10-17세기 중 이슬람세계로의 노예 반출을 1100-1700만 명 범위 안에서 많은 학자들이 추정한다. 서아프리카의 노예 수출(?)이 유럽인의 활동으로 종래보다 줄잡아 3~5배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느 문명권에 대해서도 배후지는 노예를 비롯한 자원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배후지의 문명수준 상승으로 노예의 반출이 줄어든다. 15세기 이전 수백 년 동안 서아프리카의 문명수준 상승은 이슬람화의 틀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인의 출현으로 노예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슬람화 과정이 교란되고 심지어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회까지 노예사냥의 대상이 된 일이 많았다. “역사의 단절이라 할 수 있는 현상이다.

 

 

알렉스 헤일리 <뿌리>의 표절 시비

 

사하라 이남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 하나가 쿤타 킨테다. 알렉스 헤일리(1921-1992)의 소설 <뿌리>(1976)는 쿤타 킨테가 1767년에 감비아 지역에서 노예사냥꾼들에게 포획된 후 그 7대손인 작가 자신에게 이어지는 한 집안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소설의 하나가 되었다.

 

<뿌리>의 가치는 그 예술성보다 문제의식에 있다. 미국의 노예해방 후 백여 년이 지나도록 차별이 극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노예들도 뿌리를 가진 사회적 존재였다는 사실을 보여준 이 작품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이 작품의 표절 문제가 흥미롭다. 인류학자이며 소설가 해럴드 쿨랜더(1908-1996)가 자기 소설 <아프리카인>(1967)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냈다. 헤일리는 그런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우겼지만 쿨랜더의 주장을 지지하는 전문가 의견서가 나온 후 쿨랜더와 합의를 봤다. 65만 달러 보상금과 함께 알렉스 헤일리는 해럴드 쿨랜더의 <아프리카인>의 여러 내용이 자기 작품 <뿌리>에 들어간 사실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조건이었다. 그 후 스키드모어대학의 한 교수는 1970년에 헤일리가 학교로 찾아왔을 때 <아프리카인> 읽기를 권하고, 흥미를 보이기에 집에 가서 그 책을 가져와 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성에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헤일리 자신 사실과 창작이 겹쳐진 팩션(faction)’의 성격을 표방했고, 독자들도 <뿌리>를 소설보다 넌픽션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쿤타 킨테의 출발점에 대한 증인으로 헤일리가 내세운 감비아 그리오(griot: 서아프리카에서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일을 전파하는 사람)가 진짜 그리오가 아니라고 그 지역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나섰다. 헤일리가 조사하러 다니면서 조사 대상자들에게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한 내용이 그 사람들의 진술을 유도해낸 순환제보(circular reporting)’의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암흑대륙의 미래도 암흑일까?

 

쿨랜더의 소설을 읽기는커녕 그런 책이 있는 줄 알지도 못했다는 헤일리의 주장은 그의 인격을 의심케 한다. 그러나 쿤타 킨테의 출발점에 관한 고증 문제는 18세기 중엽의 서아프리카 상황을 밝히기 어려운 사정에 비추어 이해할 만한 것이다. ‘팩션이라 하더라도 팩트보다 픽션에 더 많이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오랫동안 통용돼 온 아프리카의 별명이 암흑대륙이다. 주민의 피부색보다도 과거를 밝히기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15세기 이전의 문자 기록이 극히 적다는 점에서 구대륙보다 신대륙으로 보이는 지역이다. (물론 사하라 이남에 한정된 이야기다.)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책을 찾다 보니 아프리카에 관한 책보다 아프리카 출신 노예에 관한 책이 훨씬 더 많다. 일반 독자를 위한 출판물 중에는 아프리카 자체보다 노예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인데, 전문적 역사 연구의 분량 자체도 노예 쪽으로 더 많이 쏠려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뤄져 온 세계화의 진도에 비해 세계사의 인식이 크게 뒤져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3세기에 걸쳐 아메리카로 반출된 노예 1200만 명은 6000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1700년경 아프리카 인구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노예들은 지금까지 인식돼온 세계사의 전개에서 맡은 독특한 역할 때문에 집중적 관심을 받아온 것이다.

 

2018년도 아프리카 인구는 132100만 명, 세계 인구의 18.2%를 점하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2100년에는 392442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37.9%에 이를 전망이다. (<위키피디아> “Demographics of Africa”) 이 전망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모르나 인류의 미래에 아프리카의 역할이 어떤 의미로든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도 인류의 위기를 가리키는 지표들이 아프리카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 대처를 위해 여러 면에서 인류의 협력이 필요하거니와,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밝히는 것도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North_Africa#/media/File:Population_density_of_Africa.jpg 아프리카 인구밀도 지도(2000). 북위 20-30도의 광대한 건조지대가 인구희박 지역으로 나타나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Bantu_languages#/media/File:Niger-Congo_map.png 니제르-콩고어계의 분포 지도.

https://en.wikipedia.org/wiki/Africa#/media/File:Political_Map_of_Africa.svg 서아프리카는 조그만 나라들로 쪼개져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Harold_Courlander#/media/File:Courlander1.jpg 해럴드 쿨랜더의 1955년 모습.

https://en.wikipedia.org/wiki/Alex_Haley#/media/File:Kunta_Kinte-Alex_Haley_Memorial.jpg 쿤타 킨테가 미국에 도착한 메릴랜드주 애너폴리스에 있는 알렉스 헤일리 기념물.

https://en.wikipedia.org/wiki/Atlantic_slave_trade#/media/File:Thomas-Clarkson-De-kreet-der-Afrikanen_MG_1315.tif 노예선의 표준 구조. 1781년에는 442명의 노예를 꽉꽉 눌러 실은 영국 배가 항로 착오로 식수 부족이 닥쳤을 때 142명 노예를 바다에 던져버려서 큰 파장을 일으킨 결과 노예무역의 금지를 앞당긴 일이 있었다. (Zong Massacre)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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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9.24 20:37 신고

    글 솜씨가 뛰어나시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도 놀러올게요 :)

    • 2022.09.24 23:14 신고

      이런! 이 적막한 동네에 격려 말씀 거듭 남겨주시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말씀 남겨주지 않는 분들도 살펴봐 주는 데 감사합니다.

 

나보다 한 살 위인 혼 교수는 흑인 문제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낸 분이라 (이제 보니 2000년 이후에만 30권이 넘는다.) 들춰볼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학문적 엄밀성보다 'political correctness'를 앞세우는 것 아닌가 지레짐작을 한 것도 그 출판 분량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 권은 아무리 얄팍한 내용이라도 노예 문제에 대한 내 새로운 관심을 넓히기 위해 훑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구해 봤는데, 깜짝 놀랐다. 전혀 얄팍한 내용이 아니다. 인종 문제에 대한 분노는 분명히 깔려있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제 설정의 유기성이나 고증의 철저함이 1급 연구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남는다. 그 많은 책을 모두 이런 기준으로 써 왔다면 우리 세대 역사가 중 최고의 업적이라 할 것이다.

 

미국 독립혁명을 "반동혁명"으로 규정한 데 얼마간의 센세이셔널리즘을 짐작한 내 선입견도 틀렸다.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롹실히 가진 규정이다. 1776년은 유럽에서 노예제 철폐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노예제에 의존도가 높던 아메리카식민지가 본국에서 이탈하려는 동기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을 어디서 따로 찾을 수 있겠는가. 다음 달의 "근대화 뒤집기"에서 노예제를 다룰 참인데, 이 책 내용을 많이 활용할 수 있겠다.

 

https://en.wikipedia.org/wiki/Gerald_Horne

 

Gerald Horne - Wikipedia

American historian (born 1949) Gerald Horne (born January 3, 1949) is an American historian who currently holds the John J. and Rebecca Moores Chair of History and African American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Houston. Background[edit] Gerald Horne was rai

en.wikipedia.org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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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9.11 20:27 신고

    좋은 글 잘봤습니다 ㅎㅎ 다음에도 놀러올게요 :)

 

일전에 도착한 책 중 틸리(1929-2008)의 책은 두 가지 이유로 특히 반가웠다.

 

하나는 넓은 지역과 긴 기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점에서 <오랑캐의 역사>를 정리할 때의 내 어려움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틸리는 역사학 교수의 타이틀을 가진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회학자로 주로 활동했고, '역사사회학'의 중요한 공헌자로 꼽힌다. 제1장 뒤쪽에서 넓은 범위를 다루는 데 따른 문제들을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런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내 서술에 상당한 결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넓게 보고 싶은 걸 어쩝니까!" "tongue-in-cheek"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또 하나는 중국사에서 '무력'과 함께 '재력'을 질서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보는 내 관점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중국사에서는 이런 관점을 깊이 파고들어간 선례가 별로 없어서, 나도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정도에 그쳐 왔는데, 틸리가 유럽사에 적용시킨 사례를 잘 검토해 보면 중국사에도 적용시킬 길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제5장 앞부분에서 중국 이야기를 꺼낸 곳이 있어서 먼저 살펴보니, 명-청 시대 은의 역할에 비추어 민간의 재력이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현상을 추측한 내 관점과 많이 겹치는 것이었다.

 

지난 주일에 10여 권 책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책들을 살펴보기 위해 제1장만 읽고 치워놓았지만 연변 가는 길에 꼭 가져가 읽을 책의 하나로 찍어놓았다. (9월 27일부터 약 4개월간 중국 가서 지낼 예정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Tilly

 

Charles Tilly - Wikipedia

American sociologist (1929–2008) Charles Tilly (May 27, 1929 – April 29, 2008[1]) was an American sociologist, political scientist, and historian who wrot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society. He was a professor of history, sociology, and

en.wikipedia.org

 

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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