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역사를 길게 살펴보면 명심해야 할 또 하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해상력을 통한 세계화의 과정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의 사례에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대륙 위에 있고 영국은 섬나라입니다.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인 데다 독일, 프랑스 같은 거대한 대륙국가에 짓눌려서 해군력이 강해도 육상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반면 바다에 둘러싸인 영국은 역사상 최강의 해상력을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더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은 해상력을 뒷받침할 대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럽대륙과 거리가 가까워서 대륙세력이 강한 해군력을 키워낼 때는 큰 위협을 받게 됩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영국에게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해양국가이지만 넉넉한 자원과 안전한 기지를 보장하는 자기 대륙을 가진 미국이 영국을 구원해 주어야 했습니다.
지구 반대쪽에서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도서 세력에게는 장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대륙의 근거를 못 가진 해상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미국처럼 대륙을 가져야 초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체제 규범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일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대륙에 튼튼한 근거를 가지고 바다에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세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자기 대륙에 적대세력이 없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입니다. 남북 어느 쪽으로도 큰 위협이 없습니다. 미국은 확고한 대륙세력이면서 세 개 대양에서 해군력의 우위를 확보한 나라입니다.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해상력의 전통을 대륙의 안정성이 지켜주고 키워주는 것입니다. 섬나라 영국이 바라볼 수 없었던 조건입니다.
한편 독일이나 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에게도 나름의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다로 나오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육상의 세력은 있으나 전 지구적 세력이 되는 데 필요한 해상력을 키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쪽 다 패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처럼 육상 세력을 가지지 못한 일본은 대륙 진출을 꾀했습니다. 한국으로, 만주로, 그리고 마침내 중국을 넘봤습니다. 일본이 결국 패퇴한 이유는 결국 무리하게 뻗쳐나간 데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이 나타나고 있고 그것이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게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은 언제나 육상의 힘을 가진 나라였고, 이제 해상력을 키울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5백 년 전 정화 함대로 그런 역량을 보였으나 그사이에 잃어버렸고, 이제 해군력을 키울 자세를 새로 가다듬고 있습니다. 여기에 성공한다면 굳건한 육상의 근거와 해군력을 겸비하는 또 하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해군력과 견줄 수준은 바라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마침내 해상활동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시작된 새로운 상황입니다. 중국의 권력 중심부에는 해상력의 경험이 없습니다. 대적할 세력이 없던 정화의 시대 이후 중국은 해전의 승리를 맛본 일이 없습니다. 해군의 경험이 없는 중국의 해상력이 이웃나라들을 위협한다고 하는 요란한 경보음은 다른 속셈에서 울려대는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 연해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약화시킬 위험 같은 것을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두 가지 걱정거리가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해상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국경의 3분의 2가 육상에 있고 3분의 1이 바다에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과 달리 중국의 국경 밖에는 잠재적 적국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이 아닙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중국 밖에는 적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국경을 접하는 십여 개 나라들과 불화를 겪은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 앞으로 중국과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나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비교할 만한 해상세력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일입니다.
Different Types of Deep Structures / 여러 종류의 심층구조
심층구조 이야기로 돌아가서, 대륙으로서 유라시아는 중국과 인도 문명권의 정치적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19세기 이후 중국이 바다 쪽에 더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그 방향에서 온 적들에게 문명 파괴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 해군력이 중국 해안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해군에 계속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국경의 3분의 2 이상이 육상에 있다는 사실도 잊을 수 없고, 대륙의 인접국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수천 년간 대륙의 적들을 상대해 온 역사의 심층구조는 세계사에 대한 특이한 관점을 빚어냈습니다. 정화 함대가 바다에는 큰 적이 없다고 보고하자 함대가 폐기된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진짜 적은 여전히 육상으로 이어지는 대륙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종류의 심층구조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중해문명은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역사 초기부터 대륙 중심부와 전혀 다른 심층구조가 그곳에 형성되었고, 그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지중해 제국들의 세계화 사업을 준비해준 해양식민지와 수-륙 제국들에 관한 이야기를 앞에서 했습니다. 그밖에도 교회-국가 분리와 같은 다른 요인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 없던 특이한 현상이었습니다. 그 분리 때문에 국가를 하나의 법적 제도로 보는 관점이 나타났습니다. 그 근거는 로마제국과 로마법의 경험에 있었지만, 기독교의 보편법 내지 자연법 관념도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뒷받침해주었습니다.
이에서 비롯된 일련의 특이한 상황 속에서 또 하나 특이점이 발생했습니다. 지중해 북쪽 연안 사람들은 작은 규모의 정치조직을 발전시켰고, 이 도시국가들이 로마제국이 끝날 때 봉건국가와 도시국가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 국가들이 결국 민족국가로 진화해 나가는데, 가리발디-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프레데릭-히틀러의 독일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룩셈부르크나 스위스에 들어갈 도시국가들은 새로운 민족국가의 핵심부로 자라나기도 했습니다. 봉건국가와 도시국가의 새로운 정치적 형태를 빚어낸 사상과 제도들 덕분에 민족국가의 통합성을 뒷받침하는 시민 이념이 나타났습니다. 유럽-지중해문명 심층구조의 또 하나 핵심 요소입니다.
이 심층구조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이후 역사 흐름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천 년에 걸쳐 대륙의 도전 속에 빚어진 구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업경제에 뿌리를 둔 중국의 심층구조는 대개 가족 위주입니다. 인도의 경우 이와 달리 계급(카스트) 층위가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양쪽 다 어떤 다른 제도보다 사회의 안정성을 강하게 해주는 혈통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정치 차원에서 볼 때, 중국의 대륙적 구조는 유럽-지중해 지역의 산업화-도시화 경험을 통해 빚어진 법률적 정치체제를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정치조직은 그와 달리 잉여농산물의 경제체제 위에 세워졌습니다. 제왕적 군주권에 중점을 두고 천명을 받은 한 사람에게 권력을 맡기는 경향이었습니다. 이 권력자는 일련의 통치 원리를 따르며 잘 훈련된 관료집단의 보좌를 받았지만, 권력은 그 한 사람에게 속했습니다. 애초에 안정성이 컸고 그 안정성이 보통 1-2백 년 동안은 유지되었습니다. 기동성이 뛰어난 유목민 침략자의 위협을 주기적으로 받던 거대한 농업국가에게 특별히 적합한 특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황제로 인해 체제가 약화되면 그 자리를 넘겨받을 다른 도전자가 나타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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