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유라시아대륙 교역 네트워크에 관한 파리 학술대회에서 나는 3개 대양에 둘러싸인 이 광대한 대륙의 변두리에서 일어난 경제적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내 출발점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근대 이전의 모든 역사가 이 대륙과 그를 둘러싼 바다에서 진행된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모든 관심과 주의가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육상에서 일어난 일에 비해 바다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기록은 허술하고 빈틈이 많습니다. 기록이 허술하다는 것은 문명 발전의 과정에서 바다 쪽의 역할이 작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유라시아대륙의 변두리에서 연속성과 특이성을 가진 세 개 문명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서쪽의 지중해문명에는 아시아 일부와 북아프리카와 유럽이 들어 있었습니다. 남쪽의 인도문명은 인도양에 면한 드라비다 지역까지 포함하며, 동남쪽으로 태평양 방면까지 뻗어갔습니다. 동쪽의 중국문명은 동남아시아 방면에 끼친 영향은 그만큼 크지 않았으나 태평양에 면한 일본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유라시아 중심부의 광대한 영역은 라인강 계곡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를 지나 인도 북쪽의 고원지대까지 펼쳐져 있고, 이 고원지대에서 발원하는 황하, 장강과 메콩강이 동쪽과 남쪽으로 서태평양을 향해 흘러갑니다. 세 개 문명 중 지중해문명은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의 꽤 큰 바다 하나를 끼고 있다는 점이 다른 두 문명과 다릅니다. 인도문명은 인도양에 접해 있고, 중국문명은 수많은 섬을 사이에 두고 태평양과 접해 있습니다.
근대세계의 세계화는 지중해에서 번져 나온 해상활동 확장의 결과입니다. 이 변화는 18세기 중엽까지 전 세계 모든 경제권을 통합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고,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통합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 팽창은 해상을 통해 진행되었고, 그 기원은 지중해에서 수천 년간 진행된 정치적-군사적 경쟁에 있었습니다. 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육상에서나 해상에서나 지배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는 호전적 문화가 자라났습니다. 이 경쟁이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오자 아무도 가로막지 못했고, 오래지 않아 인도양과 태평양까지 그 활동을 넓혔습니다. 그에 따라 세 개 문명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유라시아 밖의 새 대륙이 나타났습니다. (남북아메리카를 하나의 대륙으로 봅니다.) 이 대륙은 지중해문명의 유럽 쪽 절반에게 정복되어 인도양과 태평양의 해상활동 확장을 위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포르투갈인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에 들어갔고, 스페인인은 (영국인과 네덜란드인도) 반대편으로 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에 들어갔습니다. 양측은 동남아시아에서 서로 마주쳤고, 수십 년 사이에 바다 위의 세계화가 이뤄졌습니다. 이 세계화를 통해 18세기까지 세상이 돌아가는 새로운 원리가 자리 잡게 됩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재부와 권력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가운데 나타난 민족제국이 빚어낸 원리였습니다.
Shaped by the Mediterranean / 지중해의 역할
이 전환의 출발점을 파악하기 위해 지중해의 역사적 역할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5천 년 전 문명의 발생 이후 매우 특이한 경험이 쌓인 곳입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식민도시들이 거대한 수-륙(水-陸) 제국의 기초를 닦은 후 여러 방향으로 확장해 나갈 역량을 가진 특이한 권력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7세기에 지중해세계가 유일신교의 서로 다른 두 개 갈래로 나눠져 오랫동안 대결 상태를 유지한 것입니다. 그 앞의 1천 년 동안 하나의 거대한 호수를 둘러싸고 수많은 국가와 제국들이 번영과 영광을 위해 자유롭게 경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이 특이한 역사 속에서 해상전쟁의 긴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지중해에서처럼 기나긴 해상전쟁의 경험을 가진 곳은 다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1500년 이후 국부적 분쟁은 계속되었으나 지중해의 분단 상태는 그대로 계속되었습니다. 유럽 측이 바다의 남쪽 절반을 7세기에 이슬람 아랍 세력에게 빼앗긴 상태는 지금까지 그대로입니다. 1500년에 걸친 이 분단 상태로 인해 서유럽은 유라시아대륙 반대편에 있는 풍요로운 문명들과 접촉이 없어졌습니다. 서유럽 상인들은 인도 경제권으로 직접 찾아갈 수 없었고, 더 멀리 있는 중국의 도시들에 관해서는 알기도 어려웠습니다. 머나먼 그곳의 풍요로움을 어렴풋이 알고 교역에 나서고 싶었으나 지중해의 분단으로 육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럽인 중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인도에, 그리고 뒤이어 중국에 항해했습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와 영국 사람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월한 해상 전투력으로 아랍인, 인도인, 중국인 등 현지 상인들에게 독점적 교역 방식을 강요했습니다. 유럽인이 3개 대양에 진입하면서 역사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수천 년간 지중해의 해상 전투 전통으로 빚어진 특이한 해군력이 그런 지속적 해상 대결의 경험이 없던 다른 지역에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남중국해와 자바해 해역에서 말레이인과 참인의 교역 경쟁에 관한 기록이 있고 스리비자야해상력이 믈라카해협을 지배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인도 남부의 촐라 지배자들이 벵골만을 건너 함대를 보내 스리비자야의 교역권에 도전한 일도 있습니다. 마자파힛과 타이 해군이 잠깐 부딪힌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이전의 동남아시아 해역에서는 지중해에서처럼 지속적이고 치열한 해상 대결이 없었습니다. 지중해와 유럽세력 방식의 치열한 해전 양상은 16세기에야 인도양에 나타났습니다. 그후로는 아메리카대륙의 개척으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산업혁명을 위한 자원이 확보되면서 새로운 해상제국들이 세계의 모습을 바꾸게 됩니다.
이것이 세계화였습니다. 봉건제국의 자리를 상업제국들이 넘겨받고 근대유럽의 열강으로 자라났습니다. 베스트팔렌조약(1648)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이어 영국 등 중상주의 민족국가들이 19-20세기를 호령하는 민족제국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이 제국들이 지난 2백 년 동안 앞으로 모든 국가가 따를 체제 규범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1945년 민족국가를 회원의 자격으로 하는 유엔의 결성은 이 규범의 완성이었습니다. 민족국가를 벽돌로 삼는 새로운 세계 질서체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유럽에서 만들어진 민족국가라는 제도는 널리 확산되어 세계 모든 곳에서 채용되고 있습니다. 식민지체제의 터 위에 민족을 세우고자 애쓰는 아시아의 새 국가들이 이 과업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다른 구조물이 2차대전 후에 나타났습니다. 두 개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쪼개지는 냉전에 따라 일어난 현상입니다. 두 초강대국의 행태는 민족국가는 물론 18-19세기의 민족제국과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1990년대에 냉전이 끝나고 단 하나의 초강대국이 남게 된 것도 과거에 없던 일입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민족제국들이 일으킨 세계적 권력구조가 빚어낸 체제 규범이 두 개 초강대국 체제로 변형했다가 하나의 초강대국 체제로 바뀐 것이 지금까지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련의 변화는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경제권력의 성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공산품을 전 세계 시장으로 내보내고 공장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들여오는 해운산업을 해군력이 뒷받침해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