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orm without Changing the System 체제를 바꾸지 않는 개혁
1978년에 덩샤오핑의 천재성은 중국이 다시 혁명의 길에 뛰어들 수 없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데서 나타납니다. 그는 “개혁”이란 말을 썼습니다. 1949년 혁명을 성공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이제 과거의 성취와 과오에서 얻은 가르침으로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다질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개혁개방”이란 말을 꺼내자 전 인민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혁명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후 경제적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분명치 않은 것은 과연 새 세대 지도자들이 중국문화의 전일성에 대한 믿음에서 풀려났는지 여부입니다.
저는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의 추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중국 인민이 과연 문화의 전일적 통일성 관념에서 벗어났는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 안에 스스로 설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건설한다는 새로운 과제 때문입니다. 세계화로 인해 세계가 좁아졌습니다. 새로운 생각들이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그중에는 모든 중국인이 찬탄해 마지않으며 서슴없이 배우고자 하는 과학기술 사상도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정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는 사실을 여기서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 지구적 변화는 계속 진행 중이고, 어느 날 전 인류가 소속감과 믿음을 가질 어떤 지구문화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인들이 모두 그런 전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국인들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그리고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던 종류의 문명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많이 보입니다. 예전의 문화적 정체성은 아주 사라져버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중 가치있는 부분이 다른 곳에서 온 사상과 결합되어 새 생명을 얻게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배합을 통해 중국만의 것은 아니더라도 중국적 특색이 분명한 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난 백년 동안 집중해 온 것은 진보를 향한 두 개 노선 사이의 차이입니다. 한 노선은 과거를 철저히 부정하고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서양에서 온 사상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쓸모없게 된 전통을 갈아치우자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새로운 무언가를 통째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전일주의 태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오쩌둥 자신은 그런 태도가 아니었다고 강변할지 모르나 극단적 목표를 내건 문화혁명에는 분명히 전일주의 태도가 보입니다.
야심이 마오보다 덜해서 그런 원대한 목표를 외면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한편으로 과거의 전통 중 좋은 것, 보편적인 것, 유효한 것을 살려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 특히 서양에서 과학과 기술, 근대사회의 제 가치, 근대적 정치와 경제를 배워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모두 들여오자는 것이었지요. 가지고 있는 과거 중에서 아낄 만한 것을 지키기 위해 변형과 조정과 재활용을 마다하지 않는 타협의 자세로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였습니다.
두 노선 중간에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었으나 국민당과 공산당 지도자들이 인민 앞에 내놓은 대표적 선택지가 이 두 가지였습니다. 인민해방군이 승리를 거두자 사람들은 공산당의 선택을 따를 자세를 갖췄습니다. 30년 후 마오쩌둥이 나라를 극심한 재앙으로 몰고 간 뒤에야 생각을 바꾸고 새 출발에 나섭니다. 물론 아주 새 출발은 아닙니다. 덩샤오핑이 판을 뒤집어버리지는 않았으니까요. 덩은 현대중국의 발판으로서 공산당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당을 더 강력하고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덩은 마오와 나란히 투쟁해 온 혁명가로서 이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동료들을 보아 왔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1949년 혁명이 거둔 성과를 보존하고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덩의 개혁이 공산당의 권력구조에 의지해 시행된 것은 그런 맥락 속에서였습니다. 안정을 지키는 가운데 절실하게 필요한 급속 경제성장을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유가와 법가가 세운 전통을 사회주의 이념으로 대치할 수 있다고 덩은 믿었지만, 그 진보적 사상이 중국적 특색을 지킬 것을 바랐습니다. 덩의 비판자들에게는 신나는 공격 포인트였으나 덩은 장래의 국가문화에 중국 전통문화의 일부가 필수적 요소가 될 것을 진지하게 믿었습니다. 외래문화의 어설픈 복사본이 아니라 확실한 중국적 특색을 가진 문화적 정체성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 점으로 본다면 덩샤오핑은 중국문명이 독보적 위상을 누리던 시절을 그리워하던 앞 세대 지식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Implications for the Future 미래에의 함의
이제 정리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문화의 추구는 아직 한참 계속될 일입니다. 중국의 지식엘리트만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도 이와 관련된 글을 계속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중국의 장래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국이 하나라는 느낌 속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통일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통일성과 안정성 없이는 현대중국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들여오는 어떤 사상과 방법론도 뿌리내릴 토양을 가지지 못하고, 그 결과물은 타인의 가치관과 제도를 베낀 모조품에 그칠 것입니다. 그런 결과에 만족할 중국인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별로 없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뿌리내려 자라기를 바랍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중국의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능한 일일까요? 이 급속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뚜렷한 중국 특색을 가진 새로운 문화를 빚어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중국 지도부가 보여주는 해보겠다는 의지는 과소평가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덩샤오핑이 “중국 특색”이라고 한 말에 실체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옛 전통 중 어떤 것을 얼마나 많이 건져내어 새 생명을 불어넣고 전 세계에서 들여오는 새로운 사상들과 버무려낼지는 그들도 확실치 않습니다. 이 과제를 위한 시간표도 갖고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중국인들은 궁극적 목표를 가진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 예견되는 것은 중국인들이 지금의 중국에서 뭔가 중국적인 것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리라는 것입니다. 옛 중국의 전통에 꼭 종속되려는 것은 아니라도, 과거의 중국문화에 자랑스러워할 만한 위대함과 풍성함이 있었고, 그 재현을 보고 싶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에 열려있고, 중국의 새로운 문화의 창출에 필요한 모든 방법론과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일 태세입니다. 그만큼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의 발전 단계에서 너무나 빠른 변화의 속도 앞에 정부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중국 밖의 사람들이 중국의 급속한 발전 속도를 느끼고 있을 때 중국 안의 사람들의 느낌은 어떻겠습니까? 없던 재부(財富)가 생겨나고, 평등이 있던 곳에 불평등이 커지고, 수백 년 동안 불평등이 있던 곳에는 평등이 생겨나고, 이 모든 변화가 동시에 모든 층위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그들의 삶이 바뀌고 삶의 조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대다수 중국인이 어리둥절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이 변화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30년 동안 중국을 바꿔놓은 이 어지러운 변화는 결국 어떤 결과를 낳을까?
중국 안에나 밖에나 확실한 대답을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 결과를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궁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과라 해서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뭔가 중국의 좋은 것과 외래의 좋은 것을 합쳐 중국적인 것으로 알아볼 만한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국 인민에게 확실한 혜택을 주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미래를 위한 내 생각에 유용한 한 가지 비유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중국인 친구들도 재미있어하는 비유입니다. 1700여 년 전 불교가 중국에서 한 일 이야기입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얼마 안 되어 중국이 혼란에 빠져 있고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의 여러 부족이 쳐들어왔을 때의 일입니다. 그 부족들 중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몽골족, 투르크족, 티베트족의 조상들도 있었지요. 300년 이상 지속될 남북조시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북중국 대부분을 점거한 침략 부족들이 딱 하나 중국인과 공유한 것이 불교였습니다. 불교국가 인도에서 승려들이 가져온 이념과 관행이 중국인뿐 아니라 침략 부족들에게도 대단한 환영을 받은 것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한두 세기 동안에 우리가 지금 중국이라 부르는 곳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불교가 퍼져 나갔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특별히 유의할 점은 불교가 중국인의 삶에 큰 역할을 맡으면서 그 자체가 모습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불교사상으로 사람들의 삶이 풍성해지면서 새로운 제도들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꿈들이 더해졌습니다. 더더욱 놀라운 현상은 유가, 도가 등 원래의 중국 사상들이 더 힘을 얻고 그 수행자들이 불교사상을 융합해서 하나의 새로운 철학체계를 빚어낸 것입니다.
6백 년간의 진화를 거쳐 당말-송초 시기까지 하나의 새로운 영적-윤리적 체계가 이학(理學)이란 이름으로 나타나 단일한 중국문명의 토대가 됩니다. 유가, 불교, 도가의 가장 상상력이 뛰어나고도 일관성 있는 가치가 합쳐져 우리가 중국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신유학에 담긴 사상과 가치들은 불교와 도가 요소들이 특이한 방식으로 가미된 것입니다.
이 신유학이 중국 역사의 이후 1천 년간을 지배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 체계가 힘을 잃었지만, 실패한 것은 그 정치체제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윤리적 가치와 예법의 관행은 사회와 문화 속에 남아있습니다. 상하이 등 연해 지역의 대도시에서 떨어진 내륙지방의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 남아있는 뿌리 깊은 전통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전통이 세 갈래 사상체계의 융합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많은 사람에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기 바라는 중국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밖에서 들어온 것 중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활용하는 것을 흡수하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래 세대들은 중국의 유산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중국을 진보적이면서도 자기 특색을 지키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의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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