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4. 13:17
9월 2일 프레시안 강연을 위해 준비한 "21세기 민족주의"가 지난 20년간 공부해 온 문명사론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근대'의 성격에 대한 생각이 그 중심이죠. <밖에서 본 한국사>에도 그 생각이 비쳐져 있었고, <뉴라이트 비판>과 <망국의 역사>에서는 이론적 뼈대로 삼은 것입니다.
이 생각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한 작업을 그 동안 여러 모로 구상해 왔죠. "동아시아의 20세기"와 "대한민국 실록", "노무현의 대한민국" 구상이 모두 이 생각을 발판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저런 구상을 해 오면서, 그 생각을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가급적 작은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너무 큰 그릇에 담으려면 일도 많아지고, 담아 놔도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해방일기>에서 절실하게 느꼈죠.
지난 강연에서 '민족주의'를 들고 나온 것이 그런 그릇을 하나 찾은 겁니다. '민족주의'라는, 누구나 아는 주제를 통해 이 생각을 표현하는 길을 찾은 거죠. 이 그릇을 계속 다듬어가려 하는데, 재료로 남북관계사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북관계는 민족주의의 현재와 미래가 펼쳐지는 마당이니까요.
종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기준은 민주주의, 인권, 생산력, 소득수준 등 '근대적' 지표에 의지해 왔습니다. 민족주의는 구호로만 존재할 뿐, 실질적 지표 노릇을 못했죠. 일체의 전통적 가치가 외면받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전통적 가치를 새로 평가하는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지표로 끌어들일 경우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많이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남북관계의 배경이 되는 세계정세의 변화를 새로 그리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20세기사 서술 가운데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를 나는 제일 높이 평가하는데, 배경 서술을 그 수준으로만 끌어올려도 그림이 크게 달라지죠.(실제로 그런 수준의 배경 인식을 가진 한국현대사 서술이 아직 없죠.) 홉스봄의 서술은 1991년으로 끝나는데, 그 뒤의 그림도 내가 이어서 그리고자 합니다. 물론 홉스봄이 이미 그려 놓은 범위도 조금 고쳐 그릴 게 있고요.
개성공단(남북경협), 이산가족, 북핵, 평화체제 등등 남북관계에 관련된 많은 과제들이 현존하고, 앞으로 더욱더 부각될 것입니다. 이런 과제들에 대한 역사적 시각을 제공하는 작업에 내 문명사론을 활용한다면 독자들이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듬고 키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책이 잘 팔리리라는 희망도.
이 정도로 오늘은...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스스럼없이 물어보세요. 와서 추리소설 읽고 있습니다. 6년 전 저술작업 시작하기 전의 게으른 상태로 마음을 되돌려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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