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1. 09:28

문산-파주 지역에 불교게 요양원이 두 곳 있다. 임진강변의 진인선원은 지지난 겨울, 상태가 좋으실 때 옮기실 만한 곳으로 검토했던 곳이다. 대덕행 보살님이 짚어준 곳을 가 보니 좋게 생각되어 제자, 친구분들과도 함께 살펴보고 옮겨드리고자 했으나 당시의 제도적 조건에 막혀 뜻대로 되지 못했다.

또 한 곳은 거북마을. 인터넷 정보로 보아 여건이 못한 것 같고, 먼저 가본 진인선원이 만족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 있었는데, 우일문 선생 고모님이 거기 만족스럽게 계셨던 사실을 근자에 알고 살펴볼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우 선생이 기사 노릇을 해주어 두 곳을 돌아봤다. 먼저 거북마을에 갔는데, 시설도 미흡해 보이고 운영 기준도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 바로 진인선원으로 건너갔더니 누구보다 우 선생 눈이 둥그레졌다. 시설이나 분위기가 거북마을과 크게 대조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도 1년여 전에 와볼 때와 다름없이 좋다. 아내도 이만하면, 하고 만족스러워 한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위치다. 외삼촌과 이모님 오시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제일 큰 문제가 작은형이다. 몇 주일째 일산에 찾아오는데, 고작 한 시간 모시고 앉았기 위해 몇 시간 운전해야 하는 게 참 미안하다. 진인선원이라면 운전시간이 한시간 반 더 늘어나야 한다.

그래도 어머니 계시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조건으로 보인다. 다음 주초까지 남쪽의 요양원 몇 군데만 알아보고, 특별히 좋은 곳이 없으면 진인선원으로 결정하리라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와 있는데 이인환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던 용인백암너싱홈에 다녀오는 길인데, 시설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특히 원장님 성품이 아주 좋아 보이더라고 침을 튀긴다.

남지심 선생님께 의논 전화 드렸더니 연꽃마을 계통 요양원이 살펴볼 만하겠다는 말씀. 마침 그 계통 요양원 하나가 용인백암과 가까운 곳에 있다. 내일 그 두 곳을 살펴보러 갈 생각을 하고 이 선생께 전화하니 마침 동행할 형편이 된다고 한다.

진인선원은 지지난 겨울 전후해서 아마 총 열 번은 가 봤던 것 같다. 그곳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 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좋은 시설이고 좋은 분위기다. 남쪽의 두 곳을 내일 살펴보고 나면 아마 진인선원으로 바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가 대충 생각한다.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옮겨 모실 생각을 하면서 남쪽의 요양원으로 정하게 되면 우리도 그쪽으로 이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진인선원을 다시 가 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다. 안내해 준 복지사의 말이 매주 한 차례를 넘어 자주 와 뵙는 것을 선원에서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방침이다. 요양원에서 지내시려면 요양원 식구가 되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진인선원의 시설이나 분위기는 충분히 그럴 만한 조건을 제공할 것 같다. 만에 하나 남쪽의 요양원을 택하게 되더라도 그런 면에서 그만한 조건은 주어져야 할 것이다.

지난 21개월간 병원에 모셔놓고 참 스스로 생각해도 알뜰하게 뒷바라지를 해 왔다. 내 건강을 비롯해 형편이 그만했던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앞으로 21개월간 지금까지와 똑같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생각된다. 요양원에 모시면 우선 우리 일상생활부터 일단 독립시켜 놔야겠다. 그리고는 우리 거취를 독립시킬 가능성도 검토해 봐야겠다. 어찌 생각하면 한국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중국에서 일하려던 계획을 이제 아주 포기해야 할지도 생각해야 할 지경까지 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저녁식사가 끝나신 시간에 병원으로 가 뵈니 무척 오랫만에 뵙는 느낌이었다. 어제도 걸렀고, 그그저께도 걸렀고, 그저께는 형에게 맡겨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왔으니 사실 오랫만이기도 한 데다가, 가까이 모시던 위치를 벗어날 생각에 골몰하다가 와서 그런 느낌이 더했을 것이다. 어머니께도 그런 느낌이 전해진 걸까? 장난기를 조금 부리시다가 얼마 안 있어 가라앉히신다.

강 여사에게 물어보니 식사 후에 간식을 안 드렸다 하기에 과자를 권해 드리니 과장되게 "아이고~ 굶어죽을 뻔했다." 하시고, 더 달라고 하실 때마다 짐짓 소리높여 호통을 치신다. 그런데 그럴싸하게 봐서 그런지, 무대뽀로 노시는 게 아니라 내 눈치를 보며 내 흥을 돋구기 위해 일부러 요란을 떠시는 것 같다. 이런 교류가 일상에서 빠져나갈 때 당신 충격이 더 크실지 내 충격이 더 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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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1. 09:24

며칠 전부터 몸 컨디션 때문에 효자 흉내에 한계를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저께 아내가 눈치를 보고 대신 가줬다. 어제는 작은형이 오는 날이라 시간 맞춰 내가 갔는데, 앉아 있기도 너무 힘들어서 진지 떠먹여드리는 일을 처음으로 형에게 부탁했다. 낯익은 간호사에게 상태를 얘기하고 간단한 체크업을 부탁했더니 얼른 혈당검사를 해보고는 의사를 빨리 찾아가라고 일러준다.

나이 예순이 되도록 혈압이나 혈당에 신경 쓸 일 없이 살아온 것은 과분한 복이었다. 이제 다른 단계로 접어들 때가 되었나보다. 오늘 점심때 가까이 되어 아내는 어머니 병원으로 가고 나는 내 병원을 찾아갔다. 식후 세 시간인데 무슨 지수인지가 4백 가까이 나오는 것을 본 의사, 바짝 긴장해야 할 상황이라고 일러준다. 다음 주초까지 소변과 혈액 검사 결과를 보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세우자며 우선은 며칠간의 약 한 가지만 처방해 준다.

다음 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일과 생활의 방식과 틀을 상당히 바꿔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하고 싶은 일 최소한이라도 해나가고, 또 인생 말년에 너무 지나친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당장 생활의 큰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 시병에 대해서도 생각을 다시 굴려볼 필요가 있다. 당장의 생활패턴 변화에 크게 저촉되는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건강 문제로 생활패턴에 제약을 가하기 시작한다면 그 제약은 앞으로 줄어들 리는 없고 늘어날 수는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 시병을 덜 필요로 하시는 길을 지금부터 찾아봐야겠다.

요양병원 아닌 요양원 중에 좋은 곳이 있는지부터 찾아볼 일이다. 몇 달째 어머니는 의료 서비스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고 계시고, 앞으로도 큰 필요가 곧 생길 것 같지 않다. 필요로 하시는 것은 인간관계다. 회복 후 지금까지 어머니의 인간관계는 두 개 축으로 이뤄져 왔다. 간병인 여사님들을 중심으로 한 병원 사람들, 그리고 우리 내외를 중심으로 한 방문객들. 병원이기 때문에 환자들 사이의 관계는 큰 비중을 가지지 못하는 것인데, 요양원 중에는 노인들 사이의 커뮤니티가 어머니의 인간관계 수요를 많이 충족시켜 드릴 수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답사해 본 곳 중에는 문산 부근의 진인선원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법원리 방면에 있다는 거북마을도 큰어머님을 그곳에 모셔 놓고 있는 우일문 선생 얘기가 괜찮게 들린다. 두 곳 다 불교시설이라서 어머니께서 적응하시기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너무 외진 것이다. 작은형을 비롯해 외삼촌, 이모 등 어머니 가까운 분들이 찾아뵙기가 꽤 힘들 것 같다. 서울 이곳 저곳에 사는 친구분들과 제자분들이 찾아뵙기에도 북쪽은 대체로 불편한 방향일 것 같다.

위치로 본다면 수원-용인-이천-안성 등 경기도 동남부가 좋을 것 같다. 방문객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급히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괜찮은 병원으로 모셔가기도 좋은 위치일 것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그 방면에 요양원이 오글오글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는 (내 검색능력으로는) 그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다. 한 군데 위치와 사진이 그럴싸해 보여서 전화를 걸어보니 노인 열두어 분 모신 곳이라 한다. 그런 규모라면 서비스의 안정성이나 커뮤니티의 규모나 만족스러운 조건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일죽에 사는 허방 선생에게 이천-안성 방면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해 놓기도 했지만, 수고를 끼치는 만큼 보람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미리 미안하기부터 하다.

어머니 제2의 인생은 내 손으로 열어드린 셈인지라, 발칙한 말씀이지만 내가 되려 어버이인 것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아이가 자라면 어버이의 둥지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가는 그런 단계에 어머니가 처해 계신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일까? 내 건강의 한계를 모처럼 느끼며 지금까지와 같은 내 시병 없이도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 누리실 만한 곳을 찾아드리는 데 당분간 몰두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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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1. 09:20

어머니와 함께 하는 활동의 비중이 금강경에서 창가로 많이 옮겨 왔다. 금강경보다 반응도 빠르시고 효과도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심기가 불편해지실 기미가 보일 때 익숙한 노래가락을 흘려드리면 바로 몰입하신다.

전에 있던 여사님들이 <아리랑>과 <푸른하늘 은하수>로 길을 열어놓은 뒤에 내가 <송아지>와 <찌르릉>을 추가했다. <푸른하늘>은 언제나 효과가 좋은 데 비해 <아리랑>은 끌어들이는 힘이 좀 약해졌다. <찌르릉>은 흡인력이 좋은 반면 <송아지>는 응용을 많이 즐기실 수 있다. "얼룩송아지" 외에 "얼룩망아지", "얼룩강아지", "얼룩병아리" 등을 등장시켰더니 재미있어 하신다. 한 차례 끝나면 "또 뭐 있지? 망아지던가?" 하셔서 4절까지 부르면 꽤 뿌듯하다.

레퍼토리가 짧아 조금 즐기다가 지루해지실 때는 "어머니, 어머니 모르시는 노래 하나 할까요?" 해서 감상 시간을 드리기도 한다. 여러 곡을 시도한 중에 제일 반응이 좋으셔서 애창하게 된 곡이 셋이다. 반응을 좌우하는 요소 중에 노랫말의 비중이 크신 것 같아 '역시 직업은 못 속이셔.' 하는 생각이 든다.

맨처음 캐치 언 한 것이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요즘은 후발곡들에게 조금 밀리는 감이 있지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더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오. 온갖 새들의 노래 듣고싶소.

웃고 울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가사 조합이 어긋난 건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런 대로 좋아하시고, 듣다가 중단시키고 가사 확인까지 하신다.

두어 주일 전부터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제목도 자신 없지만 <그리워>로 기억하는 곡.

"그리워 그리워서, 너무나 그리워서, 꿈속에나 만날까, 잠들어 봅니다.

고운 눈매 웃음진, 그님은 찾아와서, 외로움에 지친 나를, 어루만져 줍니다.

반가워, 반가워, 너무나 반가워, 맺힌 사연 말 못하고 몸부림치다,

꿈에서 깨일까봐, 그님이 가실까봐, 옷소매 부여잡고 눈물만 흘립니다."

이 노래는 최루탄 급을 넘어선다. 노래 시작해 한 소절도 지나지 않는 동안에 어머니 표정과 눈길이 애절 모드로 전환된다. 게슴츠레한 눈길을 노래가 나오는 내 입술에서 한 순간도 떼지 못하신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으시는 것 같다. 처음 십여 차례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꼼짝도 않고 듣기만 하시다가, 좀 익숙해지신 뒤에 가사 확인으로 끼어들기 시작하셨는데, "고운 눈매 웃음진" 대목에서 여러 차례 걸렸다. 어머니가 기대하시는 내용과 좀 다른 걸까?

한 번 이 노래가 끝난 뒤에 눈을 꿈벅꿈벅하며 "야, 이 노래는 참..." 말을 못 이으시기에 "청승맞죠?" 했더니 "그래, 청승맞고, 또..." 다시 말을 못 이으시기에 "궁상맞아요?" 하니까 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궁상맞다기보다..." 하다가 생각나셨다는 듯 "참 슬프다." 어머니께 이 노래를 불러드리려면 아버지 생각이 마음에 떠오른다. 어머니도 그분 생각이 나시는 걸까? 따져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후로 어머니 모르시는 노래 부를까 여쭐 때는 청승맞은 노래를 할까요, 하고 덧붙여 묻는다. 그러면 "아니, 그거는..." 하실 때도 있고 "그래 그거 해라." 하실 때도 있다.

또 한 곡은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레퍼토리에 추가하려고 작업 중인 노래다. 제목은 모른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스르르 팔을 베고 잠이 듭니다."

만만하게 들리시는지, 가사 확인이 제일 잦은 곡이다.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이 되셨는지 입속으로 따라 부르시는 듯, 눈길을 멀리 던지고 입을 오물거리며 들으신다. <푸른하늘>과 비슷한 수준이니까 며칠 안 있어 자신 있게 부르기 시작하실 것 같다. 요런 수준의 노래 중에서 더 골라봐야겠다.

지난 수요일에도 작은형이 왔다. 신선 같은 분이라고 흉도 보지만, 역시 동기간이라서 그럴까, 아무래도 좋은 점에 마음이 더 머무른다. 두어 살 차이지만 노화는 아무래도 나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 같은데, 점심 후 강의 끝내고 한 시간을 달려왔다가 집까지 세 시간을 다시 달려가는 짓을 이제 4주째 거듭하는 걸 보니 역시 신선이 덜 됐군, 하고 대견한 마음이 든다.

어머니가 작은형 보고 좋아하시는 것, 형 일어설 때 서운해하시는 것, 정말 어쩌지 못하시는 일이다. 오는 7월 전세 만료되는 대로 수원이나 용인 쪽으로 옮기는 게 어떨까, 아내와 며칠 전부터 의논하고 있는데, 아내도 대충 동의해 준다. 병원의 닥터 한에게 의논하니, 지난 연말 이후의 용태라면 꼭 요양병원이 아니라 요양원이라도 괜찮으실 것이라는 의견을 준다. 불교계 요양원이라면 문산 부근의 진인선원이 좋아 보이던데, 위치가 너무 외져서 내키지 않는다. 이 달과 다음달 중에 적당한 곳을 알아봐야겠다.

형이 왔던 수요일날, 형이 떠난 직후에 솔향 보살님이 뵈러 들렀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것을 바리바리 챙겨 와서, 한 열흘은 과자 공급이 필요 없게 되었고, 바나나는 여사님들에게까지 인심을 쓸 수 있었다. 모자 간에 노는 걸 처음 보는 보살님이 내내 웃음을 참지 못하시는 걸 보니 어머니랑 노는 데 내가 정말 이골이 났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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