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1. 09:32

오늘은 남지심 선생님이 뵈러 왔다. 아마 어머니께서 '친구'로 대하시는 분으로는 제일 연하이실 것 같다. 그리고 늦게 얻으신 친구다. 어머니가 50대 후반이실 때? 불교 생활을 늦게 시작하신 어머니로선 그 면에서 남 선생님이 선배이시기 때문에 10여 세 연하라도 도반(道伴)으로 깍듯이 대하셨을 것이다.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남 선생님 말씀에 당연하다는 듯 "모르지." 얼마 전까지는 알아보지 못하시는 게 스스로 안타까우신 듯 어렴풋한 짐작으로 넘겨짚기도 하셨는데 이젠 아주 뻔뻔하시다.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이제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그렇게 딱 잡아떼시니까 찾아온 분도 안타까운 마음이 덜하실 것 같다.

어머니의 불교계 인연을 대표하는 분으로 나는 남 선생님을 받아들이고, 여러 면에서 그분의 조언을 청한다. 요즘 요양원으로 옮겨 모실 일에 관해서도 남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다. 파라밀 요양원을 말씀해 주셨는데, 지난 토요일 가본 후 유력한 대안이라 생각되어 작은형에게도 답사해 볼 것을 부탁해 놓았다. 이번 주에는 형에게 어머니 뵈러 오는 대신 용인백암과 파라밀, 두 요양원을 찾아보고 의견을 달라고 했다.

병원에서 물러나온 후 남 선생님 모시고 점심을 하는데, 내가 지갑을 안 갖고 나와서 아내에게 밥값 있냐고 물어보는 것을 선생님이 눈치채고 당신께서 내겠다고 우기시는 바람에 염치없이 얻어먹었다. 킨텍스 앞 굴밥집에 가 앉으니 전번에도 그 집에서 남 선생님께 얻어먹은 생각이 나 민망스러웠다. 점심 하면서 요양원에 관한 조언을 많이 듣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한 시 좀 넘어 세 사람이 함께 물러나올 때 "어머니, 남 선생님 모시고 점심 하러 가겠습니다." 했더니 선선히 "그래, 그러려무나." 하셨다. 혼자라도 물러나올 때는 혹 서운해 하실까봐 조심스럽고, 찾아온 손님 있을 때는 꼭 손님을 먼저 보내고 남아서 쉬실 태세를 확인한 다음 물러나오는데, 오늘은 아주 선선히 풀어주셨다. 오늘만이 아니라 요새 계속 그러시다. 지난 주 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사흘 내가 많이 모시지 못한 뒤로 음식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욕심을 보이지 않으신다. 주어지면 누리지만, 더 내놓으라는 표현을 거의 안 하신다.

그저께는 완전 천사표였다. 점심 때 좀 안돼 내가 도착할 때 이미 우아한 미소를 띠고 계셨는데, 내 얼굴을 보자 저절로 흐뭇한 웃음이 피어나고, 한 시간 남짓 모시고 있는 동안 내내 싱글벙글, 생글생글이셨다. 웃음이 헤픈 느낌이 아니고 그냥 가득찬 느낌이었다. 목소리도 높이시는 일 없이 조곤조곤하시고, 노래 부를 때도 편안하게 웅얼거리셨다. 내가 내 병원 가기 위해 일어서려니 나직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그래 가 보렴, 고맙다." 그러시고는 "내일은 몇 시에 올래?" 덧붙이셨다. 다음날 올 시간 물으신 것은 내 기억으로 쓰러지신 후 처음이다.

그 날은 모르는 사람 누가 봐도 '정말 행복한 할머니'라고 감탄할 너무나 빼놓은 모습이셨지만 요즘 다른 날도 그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신다. 아마 이 달 중에 요양원에 모시게 되겠지만 요양원 생활에도 적응이 어렵지 않으실 것이다. 다만 저 예쁜 모습을 내가 자주 뵙지 못할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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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