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1. 09:24

며칠 전부터 몸 컨디션 때문에 효자 흉내에 한계를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저께 아내가 눈치를 보고 대신 가줬다. 어제는 작은형이 오는 날이라 시간 맞춰 내가 갔는데, 앉아 있기도 너무 힘들어서 진지 떠먹여드리는 일을 처음으로 형에게 부탁했다. 낯익은 간호사에게 상태를 얘기하고 간단한 체크업을 부탁했더니 얼른 혈당검사를 해보고는 의사를 빨리 찾아가라고 일러준다.

나이 예순이 되도록 혈압이나 혈당에 신경 쓸 일 없이 살아온 것은 과분한 복이었다. 이제 다른 단계로 접어들 때가 되었나보다. 오늘 점심때 가까이 되어 아내는 어머니 병원으로 가고 나는 내 병원을 찾아갔다. 식후 세 시간인데 무슨 지수인지가 4백 가까이 나오는 것을 본 의사, 바짝 긴장해야 할 상황이라고 일러준다. 다음 주초까지 소변과 혈액 검사 결과를 보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세우자며 우선은 며칠간의 약 한 가지만 처방해 준다.

다음 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일과 생활의 방식과 틀을 상당히 바꿔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하고 싶은 일 최소한이라도 해나가고, 또 인생 말년에 너무 지나친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당장 생활의 큰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 시병에 대해서도 생각을 다시 굴려볼 필요가 있다. 당장의 생활패턴 변화에 크게 저촉되는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건강 문제로 생활패턴에 제약을 가하기 시작한다면 그 제약은 앞으로 줄어들 리는 없고 늘어날 수는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 시병을 덜 필요로 하시는 길을 지금부터 찾아봐야겠다.

요양병원 아닌 요양원 중에 좋은 곳이 있는지부터 찾아볼 일이다. 몇 달째 어머니는 의료 서비스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고 계시고, 앞으로도 큰 필요가 곧 생길 것 같지 않다. 필요로 하시는 것은 인간관계다. 회복 후 지금까지 어머니의 인간관계는 두 개 축으로 이뤄져 왔다. 간병인 여사님들을 중심으로 한 병원 사람들, 그리고 우리 내외를 중심으로 한 방문객들. 병원이기 때문에 환자들 사이의 관계는 큰 비중을 가지지 못하는 것인데, 요양원 중에는 노인들 사이의 커뮤니티가 어머니의 인간관계 수요를 많이 충족시켜 드릴 수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답사해 본 곳 중에는 문산 부근의 진인선원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법원리 방면에 있다는 거북마을도 큰어머님을 그곳에 모셔 놓고 있는 우일문 선생 얘기가 괜찮게 들린다. 두 곳 다 불교시설이라서 어머니께서 적응하시기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너무 외진 것이다. 작은형을 비롯해 외삼촌, 이모 등 어머니 가까운 분들이 찾아뵙기가 꽤 힘들 것 같다. 서울 이곳 저곳에 사는 친구분들과 제자분들이 찾아뵙기에도 북쪽은 대체로 불편한 방향일 것 같다.

위치로 본다면 수원-용인-이천-안성 등 경기도 동남부가 좋을 것 같다. 방문객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급히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괜찮은 병원으로 모셔가기도 좋은 위치일 것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그 방면에 요양원이 오글오글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는 (내 검색능력으로는) 그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다. 한 군데 위치와 사진이 그럴싸해 보여서 전화를 걸어보니 노인 열두어 분 모신 곳이라 한다. 그런 규모라면 서비스의 안정성이나 커뮤니티의 규모나 만족스러운 조건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일죽에 사는 허방 선생에게 이천-안성 방면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해 놓기도 했지만, 수고를 끼치는 만큼 보람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미리 미안하기부터 하다.

어머니 제2의 인생은 내 손으로 열어드린 셈인지라, 발칙한 말씀이지만 내가 되려 어버이인 것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아이가 자라면 어버이의 둥지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가는 그런 단계에 어머니가 처해 계신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일까? 내 건강의 한계를 모처럼 느끼며 지금까지와 같은 내 시병 없이도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 누리실 만한 곳을 찾아드리는 데 당분간 몰두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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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