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9. 09:31

어제 저녁 8시, 형과 형수를 택시 태워 서울의 호텔로 보낸 다음 병실로 다시 올라갔다. 사흘 전 그 시간 큰아들이 도착해서부터 조금 전 3년 만에 맏며느리 얼굴을 보시기까지, 흥겨운 시간을 보내셨다. 이제 다시 적막한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 안쓰러워 주린 배를 끌어안고 얼마 동안이라도 곁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시고(입구가 비스듬히 건너다 보이시는 위치다.) 눈을 상큼하게 뜨시고는 "너 또 왔구나." 하신다. "네 어머니, 이제부터 심심하게 되셨어요." 하니까 달관하신 말투로 "그래,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하신다. "어머니, 이제 못생긴 저밖에 안 남았네요." 하니까 (그럴싸하게 봐서 그런지) 애절한 표정으로 바뀌시면서 "그래, 나한텐 너밖에 없다." 하신다. 며칠만에 창가 시간을 가졌다. 레퍼토리는 아직 네 곡뿐이지만, 즐길 만큼 즐기실 수 있다.

아내가 이제 막 병원에서 돌아왔다. 들어오자 마자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흥분된 기색으로 말한다.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 어머니가 갑자기 "난 며느리가 있어서 참 좋다!" 소리높여 외치시는 바람에 이웃 할머니들과 여사님들이 모두 웃더라고.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존재와 역할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사람에겐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잔치 후유증을 느끼실까봐 오늘은 저녁때만 일 나가는 아내에게 점심때 가 봐 달라고 아침에 부탁할 때 아내는 "전 싫어요. 훌륭하신 아드님들 며느님 다 두고 알아보시지도 못하는 나만 열심히 다닐 일이 뭐 있어요?" 앙탈했다. 작은형이 소홀한 것에 대해선 내가 더러 불편한 심기를 보여도 "그분 사정이 그럴 만한 게 있겠죠." 하면서 너그러운 체하는 사람이 어제저녁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동서의 행실에 대해선 무척 못마땅한 모양이다. 내가 짐짓 "맞아요, 안 볼 땐 그냥 내 할 일 한다고 생각하며 지냈지만, 막상 형들이랑 형수 다녀가는 걸 보니까 나도 뭔 할 일 없어 혼자 충성인가 싶은 마음이 들어." 하니까 짐짓 하는 소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맘이 좀 풀리는 기색이다. 아내가 과일즙을 갈고 있을 때 어젯밤 대충 대놓았던 차를 옮겨놓으려고 현관을 나서려니까 깜짝 놀라 쫓아나오며 어디 가냐고 묻는다. "병원에 좀 다녀올께요." 시치미를 떼니까 다급하게 "여보, 과일즙 갈아갖고 제가 갈 거예요." 하기에 "그래요? 그럼 차만 좀 옮겨놓고 올라올께요." 했더니 "으휴~ 저 능청! 또 속았네."

아내의 시각으로 사물이나 관계를 새로 바라보게 되는 일이 많다. 아내의 개인적 성격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한국 사회와 조선족 사회의 분위기 차이가 작용하는 면도 있다. 형수의 행동양식에 대한 관점에는 미국화가 많이 된 한국 사회와 그렇지 않은 조선족 사회의 차이가 많이 작용할 것 같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저녁때 도착할 형수가 어머니를 바로 뵈러 갈 예정이 아니었다. 형 내외는 인도에 단체관광을 가는 길인데, 형은 며칠 앞서 와서 어머니 뵐 시간을 가지고, 형수는 어제 서울 와서 오늘 형과 함께 인도로 갔다가 관광 끝나고 미국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하룻밤 들를 때 어머니께 가 뵐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식탁에서 일정을 의논하다가 내가 형과 함께 공항으로 형수 마중나가겠다는 제안을 했다. 형은 오후 일찍 플라자 호텔에 자기 짐을 갖다둔 다음 공항으로 나가겠다고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오락가락할 거 있냐, 내가 공항에 함께 나갔다가 호텔에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주면 좋기는 하지만 미안해서 어쩌냐고 형이 말하는데, 내 대답이 형의 아픈 데를 찔렀다. "형수가 인사성이 없다고 나까지 인사성이 없어서야 되겠어요?" 병석에 계신 시어머님 3년만에 뵙는 일을 관광 뒤로 늦추는 행동양식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인사성 없는 행동양식이란 사실은 감출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상당히 미국화된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인사성 없다는 것을 치명적인 문제로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는 나서서 비판하지는 않지만 그 문제를 나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여길 것이고, 농담 같은 한 마디에도 그런 마음이 비쳐지는 것 같다. 3년 전 동서간에 딱 한 번 마주쳤을 때도 아내가 형수의 행동양식을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앙금처럼 남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쓰다 보니 형수의 행동양식 문제를 많이 들먹였는데, 이 글은 형에게도 보낼 것이고 따라서 형수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걸 감안하고 나는 분명히 말한다. 나는 형수의 행동을 보고 비평을 할 뿐이지, 비판은 하지 않는다. 마주치는 상대방의 사고방식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알면 인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따름이다.

내가 형한테 '인사성'을 들먹이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 형은 초년시절부터 내내 인사성 밝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정성스러운 태도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나도 꽤 인사성 밝은 기질을 타고난 편인데, 중년에 많이 흐트러졌었다. 근년에 다시 가다듬어서, 어머니께 얼마간이라도 힘이 되어 드릴 수 있게 된 것도 인사성을 회복한 덕분이다. 아내의 도움을 얻게 된 것도 무엇보다 그 덕분이다. 마지막에 웃는 웃음이 진짜 웃음이라 우기면 형이 너무 약올라 할까?

아내가 병실에서 나오며 "어머니, 저는 지금 가지만 기협씨가 있다가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리세요." 했더니 "안 와도 좋으니 일 열심히 하라고 해라." 그러셨단다. 가지 말고 일이나 할까? 서의규가 전화해 오랫만에 몇이 한 잔 하자고 부르는데, 거기나 갈까?

나를 '효자'로 몰아붙이는 분들에게 일일이 반박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어머니를 미워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 저녁에도 일이고 친구고 미뤄놓고 어머니께 가는 것은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그걸 아시기 때문에 안 와도 좋다고 배짱 튕기시는 걸 게다.

아내의 우스개 하나가 생각난다. 한국 와서 텔레비전 보다 보니까 한국에선 바람직하지 못한 신랑깜의 조건 하나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결혼할 당시엔 효자 아닌 척하다가 지금 본색이 드러나고 있으니 자기가 사기당한 것 아니냐고. "여보, 내가 어머니께 충성하고 있는 건 당신한테 충성하기 위한 연습이예요." 하면 "정말 말씀은 참 잘하신다." 하면서 또 사기에 넘어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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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