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9. 09:40

작은형이 3주째 출근했다. 수요일 오후 일찍 강의를 끝내고 수안보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머니 찾아뵙는 것이 이제 습관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 건강도 괜찮은 듯하므로 이번 학기가 지나도 그 습관을 대략 유지할 것 같다. 어둡기 전에 길을 줄여놓아야 하기 때문에 오래 앉았지는 못해도 어머니께는 여간 큰 즐거움이 아니다. 어제 형이 일어서자 어머니가 "가지 마, 기목아. 너 가면 나 적적하단 말이야." 하고 호소하셨지만 형은 미적거리지 않는 성격이다.

두 주일 전 형이 혼자 왔다가 갈 때는 어머니가 "가지 마, 가지 마!" 목청껏 절규하셨다는 얘기를 여사님들께 들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난 주도 어제도 그렇게까지 절박하지는 않으셨다. 형 방문이 거듭됨에 따라 익숙해지시는 면도 있을 것이고, 대체재가 갖춰져 있어서 덜 아쉽기도 하셨을 것이다.

어제는 정말 끝내주는 대체재가 있었다. 지기훈. 어머니 사촌여동생의 아들이니 나랑은 이종 6촌. 그런데 어머니께 이종 5촌조카로서보다 더 가까운 것은 어머니의 수양딸 순옥이 남편으로서 수양사위의 관계다. 제주 선흘리에서 근 30년째 젖소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훈이가 어제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께서 진심으로 좋아하시는 조카요, 사위다. 그런데 나타나자 바로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러나 기훈이가 곁에 앉아 손을 붙잡아드리고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하니까 꼭 집어 누구라고 파악은 되지 않으셔도 뭔가 익숙하고 호감이 가는 존재로 느낌이 돌아오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엔 경어체로 대하시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대가 늘어난다.

어머니 정년퇴직을 앞둔 시기, 나는 대구에서 지내고 작은형은 마명리에 터를 잡고 있을 때 부처님 인연으로 어머니 곁을 여러 해 지켜준 것이 순옥이였다. 우리 형제도 순옥이를 또 하나의 누이동생으로 여기게 되었고, 얼마 후 기훈이와 결혼해 '수양'을 뗀 집안사람이 된 것을 반겼지만, 정작 기훈이는 많이 어울릴 기회가 없었었다. 그런데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제주에 가 몇 해 지낼 때 가까이 지내며 그 사람됨에 홀딱 빠져 원래 친숙하던 순옥이보다도 기훈이를 더 긴히 여기게끔 되었다. 순옥이가 이 글 보고 서운해 하더라도 할 수 없다. 자기도 이미 훤히 알고 있는 일이니까.

이성과 야성의 교묘한 결합이랄까, 어색한 결합이랄까? 기훈이의 인간관과 세계관은 그리 세련된 것이 아니면서도 자기 나름의 깊이와 맛을 가진 것이다. 예술가로 나섰으면 낙농업자보다 괜찮은 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몇 해 전 딸 소영이가 이대 미대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고급 레슨도 받지 못하고 남들 부러워하는 학교에 붙은 것이 애비의 재주와 기질을 물려받은 덕분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어제 어머니는 기훈이 시중에 새로 매료되셨다. 제2의 인생에 따르는 보너스다. 원래 좋아하시던 사람인 것을 잊어버리신 채로 새로 좋아하시게 되었으니 한 사람 놓고 두 번 즐기시는 것 아닌가? 하기야 내게 대해서도 마찬가지시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과정이 기억에 얼마간 남아있기는 하시지만, 그 인과관계가 명백하지는 않으신 것 같다. 이번 회복 뒤의 경험을 통해 새로 맺어지는 관계라는 측면이 크다. 때에 따라서는 과거의 의식과 연결이 비교적 두터워지실 때도 있지만, 지금 기억하시는 옛날이란 '전생'처럼 하나의 두터운 창문 건너편으로 느껴지시는 것이 아닐지. 그렇지 않다면 영이 일을 비롯해 과거의 온갖 집착을 이렇게 편안히 벗어나실 수가 없을 것이다.

기훈이를 너무 좋아하시는 통에 3시 반에 간 우리가 8시까지 붙잡혀 있었다. 모처럼 육지에 온 기훈이, 인천 계신 부모님을 이제부터 가 뵈어야 하는데, 나는 조바심이 나지만 정작 본인은 늘 소랑 살다가 너무 닮아 버렸는지, 편안한 얼굴로 하염없이 모시고 앉아 있다. 7시 반에 내가 먼저 일어나 나오는데 어머니는 아무 아쉬운 기색 없이 작별을 하신다. 기훈이만 있으면 되니까.

복도에 앉아 책을 보며 30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문으로 들여다보니 편안하게 한 분은 누워계시고 한 사람은 앉아 있다. 방에는 장 여사만 있는데, 장 여사는 성품이 성실한 분으로 주변머리는 좀 없는 편이다.(연변 말로는 사람이 '고정하다'고 한다.) 옆방에 앉아 연속극을 보고 있던 채 여사를 찾아(중환자실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통사정을 하니 웃으며 방으로 쫓아들어가 금세 기훈이를 내보내준다.

기훈이도 어머니 편안하신 모습에 무척 기뻐한다. 인천에는 내일(오늘) 가 뵙겠다 하여 함께 집으로 들어와 오랫만에 한 잔 같이 하고 푹 잔 다음 아침 먹고 어머니께 갔다가 10시에 전철을 태워 보냈다. 자기 진찰을 서울대병원에 예약해 놓은 것이 있다 하여. 아내도 밤늦게 퇴근했다가 손님 치르고 오늘은 점심 저녁 모두 일하러 나가야 하니 고단한 일정인데도 오랫만에 보는 기훈이를 반가워하며 힘든 내색을 내지 않아 주는 것이 고맙다.

기훈이에게 주물러드리는 요령을 약간 배웠다. 언제 배워두었는지 지압사로 나서도 썩 잘 나갈 만한 재주 같다. 배워놓은 요령만 가지고도 물리치료사에게 다시 맡기기 전까지 입문 단계는 때울 수 있을듯. 지금 당장은 치료사의 손길에 거부 반응이 강하신데, 얼마 동안 내가 주물러드리면서 어느 정도 적응력을 키워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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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