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 나라를 잃는다 함은 왕조국가 조선의 멸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100년 후의 우리에게 그 왕조국가 자체를 아까워하는 마음은 별로 없다. 망국 10년도 안 되어 독립운동의 주류는 대한제국의 복벽에서 대한민국의 건설로 옮겨왔었다.


조선 왕조의 멸망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왕조국가가 당시 한민족의 가장 큰 상징이었고, 한민족 사회의 전통 질서를 집약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상징으로서 왕조의 멸망은 이민족 지배의 계기였고, 제도로서 왕조의 멸망은 전통 질서의 단절이었다.


망국 단계 이전 왕조의 퇴화 현상을 먼저 살펴본다. 왕조 전기의 정치사회 제도는 중국에서 도입된 유교 정치이념을 한국 사회에 적용한 것이었다. 농업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극히 유용한 유교 정치이념은 11세기에서 18세기까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문명권이 세계 최고 최대의 문명으로 발전하는 데 공헌했다. 한국 사회는 14세기 말 조선 건국을 즈음해 이 문명권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수백 년간 높은 수준의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15~16세기 한국 사회의 상황에는 유교 정치 질서가 적합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조선의 망국은 그 사이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적응 실패의 문제를 살핌에는 새로운 상황의 요구 내용을 파악하고 기존 체제가 이 요구에 제대로 부응했는지 따지는 쪽으로 시선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 시대적 요구인 ‘근대화’의 과제에 어떻게 임했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매우 유효한 관점이다. 그러나 근대화 과제의 내용을 후세 사람의 기준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당시의 상황을 음미하는 데는 시야의 한계가 있다. 변화 주체의 주체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관점이다. 망국 과정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이 관점에 지나치게 쏠려 온 데 아쉬움을 느낀다.


조선 왕조 아래 한국 사회가 누린 안정과 번영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많지 않은 높은 수준이었다. 상당한 성공을 거둔 체제였다. 성공적인 체제라면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날 것을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변화를 위한 동력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변화에 대한 합의도 쉽게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론에서 후진국이 선진국을 추월하는 현상을 근래 많이 살피게 되었다. 아브라모비츠의 캐치업(catch-up) 이론에서 말하는 사회 역량(social capabilities) 같은 무형적 자산이 갈수록 각광받고 있는 것도 그런 현상의 일부다. ‘근대적’ 질서와 다른 종류의 질서라도 나름대로 수준 높은 질서는 사회 발전을 뒷받침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무형적 자산이 각광받게 되는 상황 자체가 지금의 탈근대(post-modern) 추세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근대적 발전의 의미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을 때는 활용될 길이 없던 문명 역량이 새로운 발전의 의미를 추구하는 단계에서는 요긴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전통의 가치를 다시 되돌아보는 노력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전통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시각은 극단적 부정에서 극단적 긍정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쪽으로 많이 편향되어 있다. 일본의 식민주의 관점과 함께 근대유럽의 독선적 문명관으로부터 20세기의 대부분 기간을 통해 압력과 충격을 받은 결과다. 그리고 이 관점이 대한민국의 특권구조 유지에도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편향성의 보정이 지체되고 있다. 뉴라이트가 전통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지금 단계에서는 극단으로 치우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긍정의 관점을 시도하는 것이 편향성 보정을 위해 필요한 일 같다. 이 시대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기반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이 시대의 윤곽에 대한 어렴풋한 파악을 근거로 해서라도 새로운 시각의 제시에 나설 필요를 느끼는 것이 그 때문이다.


내가 파악하는 윤곽이란 이런 것이다. 조선 왕조의 성립 과정에서 상당히 수준 높은 문명 질서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 수준 높은 질서인 만큼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질서가 왕조 중기 이후 꾸준히 퇴화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19세기 중엽까지 적응력이 매우 약한 상태에 이르렀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침략에 직면해서는 진로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역량을 거의 발휘하지 못한 채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항기의 상황만을 놓고 볼 때 한국 사회의 대응은 매우 무기력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국 학계에서 그나마 평가받아 온 대응이란 전통의 가치를 부정하고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는 ‘개화’였다.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노력은 ‘수구’로 폄하되었다. 어느 사회의 어느 변화에서도 전통을 등지는 개화는 ‘자기 부정’이라는 정체성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개화의 성공은 바로 식민지화를 향하는 길이다. 어떤 형태의 식민지화든.


개항기의 무기력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다. 20세기를 통해 한국 사회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고, 그 발전은 국가체제가 이끌어준 것이 아니라 ‘사회 역량’의 자발적 발현에 의한 것으로 나는 본다. 그 역량이 개항기에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데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작용했음을 확인한다면 그 역량의 존재를 확인하기 쉬울 것이다.


이 사회 역량의 실체를 표현하는 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일단 생각한다. 이 정신이 정치체제에 나타난 모습이 근대 정치사상의 관점에서는 사회주의라 할 것이다. 자유주의-개인주의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어느 사회에나 재력과 무력과 정보력을 집중적으로 보유한 유력 계층(‘엘리트 계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는 도덕성이 전제가 되는 것이 통념이므로 보다 중립적인 표현을 쓴다.)과 그렇지 못한 무력 계층이 존재한다. 개인의 자유를 표방하는 사회에서는 자유의 범위를 명시적으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유력 계층이 자유를 집중적으로 누린다. 무력 계층을 억압할 자유를 포함해서.


중국에서 발원한 유교적 신분 질서는 유력 계층이 실력을 키우고 휘두르는 길을 제한하는 특성을 가진 것이었다. 생산에 직접 공헌하지 않는 유력 계층의 역할을 억제함으로써 무력 계층에 대한 억압을 최소화하는 이 특성이 중국과 한국 농업사회의 특출한 안정과 번영을 가져온 것이다.


이 질서의 제도적 핵심은 권력의 공공성에 있었다. 19세기 말 유럽 사회과학자들이 ‘전제주의(despotism)’란 말을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전매특허품처럼 쓴 이래 근대인의 통념이 되었지만, 유교 정치 질서의 원리가 결코 ‘전제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근래의 연구로 충분히 밝혀져 왔다.


조선 후기 유교 질서 퇴화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권력의 사유화’에 있었다고 나는 본다. 권력의 공공성은 사회 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지키기 위한 필수적 기반 요소다. 권력의 사유화는 광해군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현상이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정조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성격을 가진 권도(權道) 정치를 시도했다. 이 시도가 좌절된 후 19세기의 조선은 권력의 공공성이 완전히 증발되어 버린 상황을 보여주었다.


균형과 조화의 매체인 권력의 공공성과 유력 계층의 역할을 제한하는 도덕 정치의 원리가 조선시대 대다수 한국인에게 사람다운 삶을 보장해준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소의 퇴화가 19세기의 변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문천

얼마 전 원희룡 의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지난 5월 20일 천안함 합조단 발표 직후 그 발표를 전폭 지지한 원 의원의 글을 보고 기가 막혔었다. 나는 합조단 발표에 거짓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일 뿐이지 확실히 아는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그 발표 내용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점은 그 후 합조단이 당시 발표 내용에 여러 가지 수정을 가한 사실만으로도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아무리 믿어주고 싶어도 믿어주기 힘든 이런 발표를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정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이 선뜻 받아들여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태도도, 합리적인 태도도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말에, 그나마 문법조차 못 맞춘 거짓말에 부화뇌동할 수 있는 사람은 올바른 정치인도 아니고 올바른 인간도 아니다. 앞서의 글에서 천안함 사태를 한국 보수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본다는 말을 했거니와, 그에 앞서 가짜 지성인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경필 의원이 ‘가짜 보수’를 버리고 ‘진짜 보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소리가 들린다. 어? 남경필-원희룡은 한 세트로 보통 통하는데, 남경필은 다른가?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에 얼른 “남경필 천안함”을 검색해 봤다.


남경필 의원, 이 시험은 합격이다. 4월 21일엔가? 천안함 조사에 6자회담 참여국인 일본,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기 바란다는 의견을 발표했다고. 한나라당 의원이 합조단 운영의 문제점을 앞장서서 까발리고 나서기까지 바랄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설득력이 모자라리라는 의견을 이렇게 에둘러서라도 표현하면 좀 좋아? 대통령의 대응이 훌륭했다고 한 5월 하순의 발언은 좀 거시기하지만, 정치인이 그 정도 말도 못하겠나.


‘진짜 보수’를 논할 치명적 결격 사유가 없다고 보고 그가 내세운 ‘진짜 보수’의 요건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남경필 진짜 보수”를 검색했는데 목록 꼭대기에 이런 글 하나가 보였다. <동아누리>의 글이다.


“운동권 같은 남경필은 항상 중도 타령했습니다. 4대강 보다 비정규직 대책 세워야 한다고 야당처럼 이명박을 공격. 남경필은 이재오 김문순 박형준처럼 김대중 노무현 민주당 김정일 비판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습니다.

이런 인간이 당대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 내 ‘가짜 보수들’ 지칭하면서 보수를 씹으면서 남경필 자신이 진짜 보수인 척. 아주 더러운 야비한 짓입니다”


이게 정말?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다고? 그러면 ‘진짜 보수’ 맞잖아? 그의 ‘진짜 보수’ 주장을 서둘러 찾아본다. 척결해야 할 ‘가짜 보수’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1. 병역과 납세의 의무 제대로 안 지키면서 튼튼한 국가 안보 말하는 가짜보수

2. 봉사 제대로 안 하면서 서민정당 말하는 가짜보수

3. 친이 친박 계파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면서 화합과 국민통합 말하는 가짜보수

4.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보수의 가치를 논하는 가짜보수

5. 자기는 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서 국민에게는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가짜보수

6. 국민들에겐 막말하면서 대통령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가짜보수


조금 실망스럽다. 전당대회 경쟁자들을 의식한 워딩의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제대로 된 보수’보다 ‘제대로 된 인간’의 일반적 조건에 치중된 감이 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얘기다. ‘제대로 된 보수’가 되려면 우선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 하니까. 보수주의자 선발의 예비시험 정도로 봐줄 수 있겠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1번. 남경필 자기는 군대 갔다 왔던가? 안 간 것 같은데? 하지만 군대 안 다녀온 것이 보수주의자의 결격 사유는 아니다. 안 갔다 온 놈이 꼭 자기만 갔다 온 것처럼 설치는 게 문제지, 분수를 알고 엉뚱한 짓만 삼갈 줄 알면 된다. 아무튼 중요한 포인트다. 본인 복무 여부와 관계없이 10점 얹어준다.


2번. “봉사?” 이건 내가 잘 모르는 거니까 따질 자격이 없다. 패스.


3번. “계파싸움”이라. 보수주의자라 해서 계파싸움 하지 말라는 법 있나? 이건 아무래도 전당대회를 의식한 전술용 같다. 감점 5점. 계파싸움이 지나친 건 사실이니까 많이 깎지 않는 거다.


4번. “표현의 자유”라. 이건 예비시험이 아니라 본고사 문제 같다. 미디어법 때 남경필도 찬성표 던지지 않았나? 절차상의 문제에 관해서는 옳은 얘기 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결국 찬성표 던지니까 “기회주의자” 소리를 듣는 거다.


실제로 통과된 미디어법이 모든 보수주의자가 꼭 반대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찬성하는 소신을 가진다고 보수당에서 제명할 생각 없다. 보수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받드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미디어법 강행 의도가 표현의 자유 훼손에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명백했고 절차상의 문제가 그 정도 심각했다면 아무리 소신과 부합하는 내용의 법안이더라도 기권은 할지언정 찬성은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의 도리였다. 다만 천안함 조사발표 지지처럼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마음 너그럽게 먹고 30점만 깎겠다.


5번. “법치주의.” 이것도 본고사 수준 문제인데, 매우 요긴하고 훌륭한 지적이다. 20점 얹어준다.


6번. 국민과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라. 대통령에겐 막말하면서 국민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한나라당 사람을 보면 좋기는 참 좋겠다. 그러나 이것도 보수의 기준으로 요긴한 것이 아니라 안상수를 표적으로 하는 전술용 냄새가 심해서 5점 깎는다.


30점 득점에 40점 감점. ‘진짜 보수’를 논할 자격이 좀 의심스러운 성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기고사 성적이고, 실제 행동을 어떻게 해 왔느냐 하는 실기고사가 있다. 위에 옮겨놓은 <동아누리>의 글에서 한나라당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이 남 의원에게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다고 불평한 것을 근거로 실기 30점을 준다. 남경필에게 ‘진짜 보수’를 논할 자격을 인정한다.


그런데... 엄정하게 채점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하나 눈감고 넘어간 일이 있다. 4대강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 재정과 민심의 측면에서 속도와 방법의 문제를 제기한다. 현실정치에서 괜찮은 접근 방법이라고 인정은 한다. 원론 차원에서의 반대보다 현실 차원에서의 반대가 나쁜 정책을 막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재정과 민심을 근거로 곤란하다고 하는 것이면 충분한 반대 아닌가.


그렇게 인정은 하면서도 찜찜하다. 정부의 천안함 대응책이 한반도 평화에 회복 불가능한 훼손 위협을 일으키는 것처럼 4대강 사업은 한반도 자연에 회복 불가능한 훼손 위협을 일으키는 정책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놓고는 현실적 효과보다 원론적 타당성을 중시할 필요가 보수주의자에게 있을 것 같다.


안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상식과 합리성의 측면에 너무 경쟁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 개혁성과 상대적 합리성만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다면 기회주의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진짜 보수’를 진짜로 살리겠다는 의지는 없고, 빈사상태에 놓아둔 채 그 간판만 써먹겠다는 속셈이니까.


‘진짜 보수’가 얼마나 위독한 상태인지 투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짜 보수’가 날뛰는 동안 잠깐 가려져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뉴라이트 비판>에서 뉴라이트의 책동이 진보에 대한 도전이기에 앞서 보수에 대한 참월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보수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특권구조 옹호 세력이 다른 어떤 정치 이념보다 먼저 보수주의를 질식시키는 현상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을 지지한 일이 없지만 내 주변, 특히 어머니 친구 분들 중에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많다. ‘젊은 보수’가 아니라 ‘나이든 보수’들이다. 대안이 없어서 한나라당을 그대로 지지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맥이 빠지고 있다. 저러다간 정동영이가 말리지 않아도 투표소에 잘 안 가실 것 같다.


몇 달 전 친구 두 분을 모시고 요양원 다녀올 때 생각이 난다. 4대강 얘기를 꺼내시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자’들 성토하시는 것이 만일 나도 반대자라면 교육을 시켜주실 태세였다. 나는 4대강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잘 모른다고 납작 엎드린 다음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환경평가까지 회피하며 추진하는 데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그럴 리가 있냐고 펄쩍 뛰시다가, 절차 문제는 내가 확실히 파악한 것이라고 보증을 서며 요점을 설명해 드리니까 침울해지신다.


내가 원래 정의감이 약한 사람이라서 노인들 응대를 잘해 드린다. 알 것 알 만큼 아는 사람이 그분들 입장에 서서 생각하려 애쓰니까 내게 정치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은 노인들끼리도 정치 얘기에 흥이 안 나시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주의가 근년 위기에 빠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문천

“같-이-가-자”?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은 많은 국민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몇 주일 전만 해도 일본과 아랍에미리트를 어떻게 제치고 본선티켓을 따낼까 마음 졸이던 축구팬들이 지금은 두 나라의 2위 다툼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 팀의 훌륭한 경기내용과 통쾌한 골 장면은 국민들에게 계속 기쁨을 줬다.

지난 주 일본과 2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첫 패점을 기록했지만 팬들은 그리 분노하지 않는다. 이미 티켓을 확보해 놨으니 절박한 마음도 들지 않고, 여러 게임 잘 싸운 우리 팀이 한 게임 놓쳤다고 각박한 생각도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앞으로 더 잘하기만을 당부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 아랍에미리트가 한 게임씩 남겨놓은 상황에서 일본은 승점에서도 앞서 있고 마지막 상대팀도 만만한 편이다. 일본이 조 2위를 차지해 본선진출의 희망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한국 팀이 ‘져준’ 데 일본 팬들이 고마워하며 한국 팀의 마지막 게임 통쾌한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은 비록 이기심에서 출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진정 곡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팬들의 마음은 어떤가. 아랍에미리트보다는 일본이 잘되기를 대개 바라는 것 같다. “일본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해묵은 적대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기야 우리 진출은 확정돼 있으니 우리 축구가 일본축구보다 나음을 본선무대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왕이면 영판 먼 남보다 가까운 이웃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 않겠는가.

가까운 이웃일수록 관계는 복잡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피해의식과 적대감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맞붙어 있는 만큼 이런 경험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개연성이 있다. 독도의 선착장이 완공되어 내일 준공식이 있겠지만 일부 일본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아직도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울트라니폰 응원석에서 본 한글 피켓 “같-이-가-자”는 앞으로 두 나라 관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 준다. 세계화의 시대가 가져올 경쟁의 다원화는 이웃 간의 대립보다 협력을 더 중요하게 만들 것이다.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이웃을 대하는 자세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이번 ‘축구대결’의 가르침이 아주 요긴하게 느껴진다. (1997년 10월)


우리가 ‘운동’이라 부르는 신체활동이 서양에서는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의 두 영역으로 구분해서 인식된다. 스포츠에는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있고, 등산, 낚시 같은 레크리에이션은 본인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다. 레크리에이션에도 경쟁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지만 부수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신체활동을 통한 경쟁이라는 점에서 스포츠는 전쟁과 통하는 것이다. 스포츠의 뿌리가 전쟁 및 그를 위한 훈련에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스포츠가 전쟁과 다른 점은 예술성을 중시하는 데 있다. 전쟁에서도 예술성을 찾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라는 절대적 목적 뒤에 있는 것이다. 반면 스포츠는 승패보다 예술성을 앞세우려는 경향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스포츠에서도 승패에 대한 집착을 많이 본다. 축구가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인 가장 큰 까닭의 하나가 전쟁과 제일 비슷한 스포츠이고 따라서 승패에 대한 집착을 가장 강렬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9년 7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의 전쟁을 ‘축구 전쟁’이라 부르는 것은 월드컵 예선전을 둘러싼 충돌이 개전의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의 이유는 따로 충분히 있었다.) 다른 스포츠 종목은 ‘탁구 전쟁’이니 ‘체조 전쟁’이니 하는 영예(또는 불명예)를 누린 일이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 온 그리스의 뛰어난 민주주의가 지나친 유럽중심주의 선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오랫동안 품어 왔지만, 올림픽 경기라는 스포츠의 제도화에 대해서는 경탄해 마지않는다. 오랫동안 고정된 상대들 사이에 전쟁을 거듭해 오다 보니 힘들고 위험한 측면을 가급적 줄이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측면을 가능한 한 늘리는 방법에 합의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신체활동의 폭력성보다 예술성을 부각시킨 그런 노력이 참으로 가치 있는 문명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전투기술로부터 예술성을 가진 스포츠를 도출하는 일은 여러 문명에서 여러 형태로 이뤄졌지만,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여러 종목 스포츠를 종합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차원에 이른 것이었다. 각 종목의 예술성이 서로 비교됨으로써 예술성이 행사의 중심 가치로 부각되는 시너지 효과를 이룬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여러 종목 스포츠의 규칙이 정해져 보편적 형태가 갖춰진 것은 스포츠가 국제 활동으로 비중을 키우는 데 따른 일이었다. 유럽국들 사이에 자주 전쟁을 벌이고 서로에 대해 상당히 잘 알게 되면서 전쟁 아닌 대결 방법을 찾게 되었으니, 그리스에서 올림픽 경기가 만들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근대올림픽과 월드컵 등 세계적 스포츠 행사가 만들어진 것은 초보적 수준에서나마 ‘지구촌’이 성립된 상황을 보여준다. 전쟁과 투쟁의 주된 양상은 예전처럼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교도’나 ‘야만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쟁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 되었다. 스포츠를 통한 경쟁이 보다 폭력적 형태의 경쟁을 얼마만큼이라도 대신해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떠올랐다.


스포츠의 폭력성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지만, 폭력성이 스포츠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사회에는 대립과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스포츠는 원래 대립을 처리하는 역할의 활동이므로 폭력성을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다. 사람은 더러운 볼일을 보면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볼일을 아무 데서나 보느냐,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느냐 하는 차이가 전쟁과 스포츠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969년의 ‘축구 전쟁’을 돌아봐도 그렇다. 인구가 조밀한 엘살바도르와 영토가 넓은 온두라스 사이에는 이주민 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의 조건이 충분히 쌓여 있었다. 축구장의 폭력 사태는 도화선 노릇을 했을 뿐이다. 이 전쟁을 ‘이민 전쟁’이 아니라 ‘축구 전쟁’이라고 부르는 데는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도 대립을 완화하고 갈등을 순화시키는 스포츠의 기능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3년 전 위 칼럼을 쓸 때까지 나는 한국 대표팀의 축구 경기 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승부에만 집착하느라고 예술성을 지향하는 노력이 너무 빈약해 보였다. 국민의 엄청난 성원에 그저 ‘승리’로밖에 보답할 생각을 못하는(또는 안하는) 축구인들이 너무나 게을러 보였다. 축구를 즐길 생각을 전혀 못하고 승리만을 위해 억압받는 선수들이 불쌍해 보였다. 하는 사람들이 즐겁지 않은 짓이 보는 사람들에게 어찌 즐거울 수 있는가?


그런데 지금은 K-리그에서도 대표팀 경기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뛰는 선수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대다수 팬들은 승리에 대한 집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축구인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떠날 생각을 하는 것도 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허 감독이 그런 소리 하는 것만 해도 10여 년 전보다 크게 좋아진 사정을 비춰 보여준다. 그만큼 성적 올린 감독이 제멋대로 그만둬? 이번에 16강 갔으면 4년 후에 4강 올라가는 데 신명을 바쳐야지! 애국심이 어디 갔기에 멋대로 그만두겠다는 거야!


북한팀을 바라보는 우리 축구팬들의 시각에도 음미할 점이 많거니와, 일본팀을 보는 시선에서 금석지감을 많이 느낀다. 1920년대에 축구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이래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난 통로가 한-일 축구 대결이었다. “일본에게만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과 같은 독이 빠져 있다. 수비를 중시하는 일본 축구와 공격력이 뛰어난 한국 축구의 특징을 차분히 비교하며 양국 축구 발전의 길을 토론하는 축구팬들은 분명히 폭력성보다 예술성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심판의 오심에 대한 증오심도 크게 줄어들었다. 오심 심판의 처단 주장보다 기술 발전에 관한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승부에 대한 집착이 완화되는 것은 승부 외의 다른 가치를 경기 내용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잘 싸우고 멋있게 졌다”는 칭찬을 해줄 만큼 많은 축구팬들이 성숙해지게 되었다.


어느 스포츠나 경쟁을 요건으로 하는 만큼 폭력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축구의 높은 인기는 스포츠 중에서도 폭력성이 강하다는 특징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선진국도 축구팬의 훌리거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의 축구 응원에서 폭력적 태도가 아주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이만하면 어디 가서도 부끄럽지 않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축구 자체의 발전보다 축구팬들의 진화가 더 자랑스럽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