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원희룡 의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지난 5월 20일 천안함 합조단 발표 직후 그 발표를 전폭 지지한 원 의원의 글을 보고 기가 막혔었다. 나는 합조단 발표에 거짓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일 뿐이지 확실히 아는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그 발표 내용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점은 그 후 합조단이 당시 발표 내용에 여러 가지 수정을 가한 사실만으로도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아무리 믿어주고 싶어도 믿어주기 힘든 이런 발표를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정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이 선뜻 받아들여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태도도, 합리적인 태도도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말에, 그나마 문법조차 못 맞춘 거짓말에 부화뇌동할 수 있는 사람은 올바른 정치인도 아니고 올바른 인간도 아니다. 앞서의 글에서 천안함 사태를 한국 보수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본다는 말을 했거니와, 그에 앞서 가짜 지성인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경필 의원이 ‘가짜 보수’를 버리고 ‘진짜 보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소리가 들린다. 어? 남경필-원희룡은 한 세트로 보통 통하는데, 남경필은 다른가?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에 얼른 “남경필 천안함”을 검색해 봤다.


남경필 의원, 이 시험은 합격이다. 4월 21일엔가? 천안함 조사에 6자회담 참여국인 일본,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기 바란다는 의견을 발표했다고. 한나라당 의원이 합조단 운영의 문제점을 앞장서서 까발리고 나서기까지 바랄 수 있는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설득력이 모자라리라는 의견을 이렇게 에둘러서라도 표현하면 좀 좋아? 대통령의 대응이 훌륭했다고 한 5월 하순의 발언은 좀 거시기하지만, 정치인이 그 정도 말도 못하겠나.


‘진짜 보수’를 논할 치명적 결격 사유가 없다고 보고 그가 내세운 ‘진짜 보수’의 요건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남경필 진짜 보수”를 검색했는데 목록 꼭대기에 이런 글 하나가 보였다. <동아누리>의 글이다.


“운동권 같은 남경필은 항상 중도 타령했습니다. 4대강 보다 비정규직 대책 세워야 한다고 야당처럼 이명박을 공격. 남경필은 이재오 김문순 박형준처럼 김대중 노무현 민주당 김정일 비판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습니다.

이런 인간이 당대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 내 ‘가짜 보수들’ 지칭하면서 보수를 씹으면서 남경필 자신이 진짜 보수인 척. 아주 더러운 야비한 짓입니다”


이게 정말?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다고? 그러면 ‘진짜 보수’ 맞잖아? 그의 ‘진짜 보수’ 주장을 서둘러 찾아본다. 척결해야 할 ‘가짜 보수’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1. 병역과 납세의 의무 제대로 안 지키면서 튼튼한 국가 안보 말하는 가짜보수

2. 봉사 제대로 안 하면서 서민정당 말하는 가짜보수

3. 친이 친박 계파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면서 화합과 국민통합 말하는 가짜보수

4.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보수의 가치를 논하는 가짜보수

5. 자기는 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서 국민에게는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가짜보수

6. 국민들에겐 막말하면서 대통령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가짜보수


조금 실망스럽다. 전당대회 경쟁자들을 의식한 워딩의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제대로 된 보수’보다 ‘제대로 된 인간’의 일반적 조건에 치중된 감이 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얘기다. ‘제대로 된 보수’가 되려면 우선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 하니까. 보수주의자 선발의 예비시험 정도로 봐줄 수 있겠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1번. 남경필 자기는 군대 갔다 왔던가? 안 간 것 같은데? 하지만 군대 안 다녀온 것이 보수주의자의 결격 사유는 아니다. 안 갔다 온 놈이 꼭 자기만 갔다 온 것처럼 설치는 게 문제지, 분수를 알고 엉뚱한 짓만 삼갈 줄 알면 된다. 아무튼 중요한 포인트다. 본인 복무 여부와 관계없이 10점 얹어준다.


2번. “봉사?” 이건 내가 잘 모르는 거니까 따질 자격이 없다. 패스.


3번. “계파싸움”이라. 보수주의자라 해서 계파싸움 하지 말라는 법 있나? 이건 아무래도 전당대회를 의식한 전술용 같다. 감점 5점. 계파싸움이 지나친 건 사실이니까 많이 깎지 않는 거다.


4번. “표현의 자유”라. 이건 예비시험이 아니라 본고사 문제 같다. 미디어법 때 남경필도 찬성표 던지지 않았나? 절차상의 문제에 관해서는 옳은 얘기 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결국 찬성표 던지니까 “기회주의자” 소리를 듣는 거다.


실제로 통과된 미디어법이 모든 보수주의자가 꼭 반대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찬성하는 소신을 가진다고 보수당에서 제명할 생각 없다. 보수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받드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미디어법 강행 의도가 표현의 자유 훼손에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명백했고 절차상의 문제가 그 정도 심각했다면 아무리 소신과 부합하는 내용의 법안이더라도 기권은 할지언정 찬성은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의 도리였다. 다만 천안함 조사발표 지지처럼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마음 너그럽게 먹고 30점만 깎겠다.


5번. “법치주의.” 이것도 본고사 수준 문제인데, 매우 요긴하고 훌륭한 지적이다. 20점 얹어준다.


6번. 국민과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라. 대통령에겐 막말하면서 국민 앞에만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한나라당 사람을 보면 좋기는 참 좋겠다. 그러나 이것도 보수의 기준으로 요긴한 것이 아니라 안상수를 표적으로 하는 전술용 냄새가 심해서 5점 깎는다.


30점 득점에 40점 감점. ‘진짜 보수’를 논할 자격이 좀 의심스러운 성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기고사 성적이고, 실제 행동을 어떻게 해 왔느냐 하는 실기고사가 있다. 위에 옮겨놓은 <동아누리>의 글에서 한나라당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이 남 의원에게 “한나라당만 씹고 정부를 비난하는 짓만” 했다고 불평한 것을 근거로 실기 30점을 준다. 남경필에게 ‘진짜 보수’를 논할 자격을 인정한다.


그런데... 엄정하게 채점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하나 눈감고 넘어간 일이 있다. 4대강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 재정과 민심의 측면에서 속도와 방법의 문제를 제기한다. 현실정치에서 괜찮은 접근 방법이라고 인정은 한다. 원론 차원에서의 반대보다 현실 차원에서의 반대가 나쁜 정책을 막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재정과 민심을 근거로 곤란하다고 하는 것이면 충분한 반대 아닌가.


그렇게 인정은 하면서도 찜찜하다. 정부의 천안함 대응책이 한반도 평화에 회복 불가능한 훼손 위협을 일으키는 것처럼 4대강 사업은 한반도 자연에 회복 불가능한 훼손 위협을 일으키는 정책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놓고는 현실적 효과보다 원론적 타당성을 중시할 필요가 보수주의자에게 있을 것 같다.


안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상식과 합리성의 측면에 너무 경쟁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 개혁성과 상대적 합리성만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다면 기회주의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진짜 보수’를 진짜로 살리겠다는 의지는 없고, 빈사상태에 놓아둔 채 그 간판만 써먹겠다는 속셈이니까.


‘진짜 보수’가 얼마나 위독한 상태인지 투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짜 보수’가 날뛰는 동안 잠깐 가려져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뉴라이트 비판>에서 뉴라이트의 책동이 진보에 대한 도전이기에 앞서 보수에 대한 참월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보수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특권구조 옹호 세력이 다른 어떤 정치 이념보다 먼저 보수주의를 질식시키는 현상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을 지지한 일이 없지만 내 주변, 특히 어머니 친구 분들 중에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많다. ‘젊은 보수’가 아니라 ‘나이든 보수’들이다. 대안이 없어서 한나라당을 그대로 지지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맥이 빠지고 있다. 저러다간 정동영이가 말리지 않아도 투표소에 잘 안 가실 것 같다.


몇 달 전 친구 두 분을 모시고 요양원 다녀올 때 생각이 난다. 4대강 얘기를 꺼내시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자’들 성토하시는 것이 만일 나도 반대자라면 교육을 시켜주실 태세였다. 나는 4대강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잘 모른다고 납작 엎드린 다음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환경평가까지 회피하며 추진하는 데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그럴 리가 있냐고 펄쩍 뛰시다가, 절차 문제는 내가 확실히 파악한 것이라고 보증을 서며 요점을 설명해 드리니까 침울해지신다.


내가 원래 정의감이 약한 사람이라서 노인들 응대를 잘해 드린다. 알 것 알 만큼 아는 사람이 그분들 입장에 서서 생각하려 애쓰니까 내게 정치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은 노인들끼리도 정치 얘기에 흥이 안 나시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주의가 근년 위기에 빠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문천

“같-이-가-자”?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은 많은 국민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몇 주일 전만 해도 일본과 아랍에미리트를 어떻게 제치고 본선티켓을 따낼까 마음 졸이던 축구팬들이 지금은 두 나라의 2위 다툼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 팀의 훌륭한 경기내용과 통쾌한 골 장면은 국민들에게 계속 기쁨을 줬다.

지난 주 일본과 2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첫 패점을 기록했지만 팬들은 그리 분노하지 않는다. 이미 티켓을 확보해 놨으니 절박한 마음도 들지 않고, 여러 게임 잘 싸운 우리 팀이 한 게임 놓쳤다고 각박한 생각도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앞으로 더 잘하기만을 당부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 아랍에미리트가 한 게임씩 남겨놓은 상황에서 일본은 승점에서도 앞서 있고 마지막 상대팀도 만만한 편이다. 일본이 조 2위를 차지해 본선진출의 희망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한국 팀이 ‘져준’ 데 일본 팬들이 고마워하며 한국 팀의 마지막 게임 통쾌한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은 비록 이기심에서 출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진정 곡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팬들의 마음은 어떤가. 아랍에미리트보다는 일본이 잘되기를 대개 바라는 것 같다. “일본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해묵은 적대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기야 우리 진출은 확정돼 있으니 우리 축구가 일본축구보다 나음을 본선무대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왕이면 영판 먼 남보다 가까운 이웃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 않겠는가.

가까운 이웃일수록 관계는 복잡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피해의식과 적대감은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맞붙어 있는 만큼 이런 경험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개연성이 있다. 독도의 선착장이 완공되어 내일 준공식이 있겠지만 일부 일본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아직도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울트라니폰 응원석에서 본 한글 피켓 “같-이-가-자”는 앞으로 두 나라 관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 준다. 세계화의 시대가 가져올 경쟁의 다원화는 이웃 간의 대립보다 협력을 더 중요하게 만들 것이다. 근교원공(近交遠攻)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이웃을 대하는 자세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이번 ‘축구대결’의 가르침이 아주 요긴하게 느껴진다. (1997년 10월)


우리가 ‘운동’이라 부르는 신체활동이 서양에서는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의 두 영역으로 구분해서 인식된다. 스포츠에는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있고, 등산, 낚시 같은 레크리에이션은 본인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다. 레크리에이션에도 경쟁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지만 부수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신체활동을 통한 경쟁이라는 점에서 스포츠는 전쟁과 통하는 것이다. 스포츠의 뿌리가 전쟁 및 그를 위한 훈련에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스포츠가 전쟁과 다른 점은 예술성을 중시하는 데 있다. 전쟁에서도 예술성을 찾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라는 절대적 목적 뒤에 있는 것이다. 반면 스포츠는 승패보다 예술성을 앞세우려는 경향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스포츠에서도 승패에 대한 집착을 많이 본다. 축구가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인 가장 큰 까닭의 하나가 전쟁과 제일 비슷한 스포츠이고 따라서 승패에 대한 집착을 가장 강렬하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9년 7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의 전쟁을 ‘축구 전쟁’이라 부르는 것은 월드컵 예선전을 둘러싼 충돌이 개전의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의 이유는 따로 충분히 있었다.) 다른 스포츠 종목은 ‘탁구 전쟁’이니 ‘체조 전쟁’이니 하는 영예(또는 불명예)를 누린 일이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 온 그리스의 뛰어난 민주주의가 지나친 유럽중심주의 선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오랫동안 품어 왔지만, 올림픽 경기라는 스포츠의 제도화에 대해서는 경탄해 마지않는다. 오랫동안 고정된 상대들 사이에 전쟁을 거듭해 오다 보니 힘들고 위험한 측면을 가급적 줄이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측면을 가능한 한 늘리는 방법에 합의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신체활동의 폭력성보다 예술성을 부각시킨 그런 노력이 참으로 가치 있는 문명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전투기술로부터 예술성을 가진 스포츠를 도출하는 일은 여러 문명에서 여러 형태로 이뤄졌지만,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여러 종목 스포츠를 종합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차원에 이른 것이었다. 각 종목의 예술성이 서로 비교됨으로써 예술성이 행사의 중심 가치로 부각되는 시너지 효과를 이룬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여러 종목 스포츠의 규칙이 정해져 보편적 형태가 갖춰진 것은 스포츠가 국제 활동으로 비중을 키우는 데 따른 일이었다. 유럽국들 사이에 자주 전쟁을 벌이고 서로에 대해 상당히 잘 알게 되면서 전쟁 아닌 대결 방법을 찾게 되었으니, 그리스에서 올림픽 경기가 만들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근대올림픽과 월드컵 등 세계적 스포츠 행사가 만들어진 것은 초보적 수준에서나마 ‘지구촌’이 성립된 상황을 보여준다. 전쟁과 투쟁의 주된 양상은 예전처럼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교도’나 ‘야만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쟁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 되었다. 스포츠를 통한 경쟁이 보다 폭력적 형태의 경쟁을 얼마만큼이라도 대신해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떠올랐다.


스포츠의 폭력성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지만, 폭력성이 스포츠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사회에는 대립과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스포츠는 원래 대립을 처리하는 역할의 활동이므로 폭력성을 근본적으로 피할 수 없다. 사람은 더러운 볼일을 보면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볼일을 아무 데서나 보느냐,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느냐 하는 차이가 전쟁과 스포츠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969년의 ‘축구 전쟁’을 돌아봐도 그렇다. 인구가 조밀한 엘살바도르와 영토가 넓은 온두라스 사이에는 이주민 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의 조건이 충분히 쌓여 있었다. 축구장의 폭력 사태는 도화선 노릇을 했을 뿐이다. 이 전쟁을 ‘이민 전쟁’이 아니라 ‘축구 전쟁’이라고 부르는 데는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도 대립을 완화하고 갈등을 순화시키는 스포츠의 기능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3년 전 위 칼럼을 쓸 때까지 나는 한국 대표팀의 축구 경기 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승부에만 집착하느라고 예술성을 지향하는 노력이 너무 빈약해 보였다. 국민의 엄청난 성원에 그저 ‘승리’로밖에 보답할 생각을 못하는(또는 안하는) 축구인들이 너무나 게을러 보였다. 축구를 즐길 생각을 전혀 못하고 승리만을 위해 억압받는 선수들이 불쌍해 보였다. 하는 사람들이 즐겁지 않은 짓이 보는 사람들에게 어찌 즐거울 수 있는가?


그런데 지금은 K-리그에서도 대표팀 경기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뛰는 선수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대다수 팬들은 승리에 대한 집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축구인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떠날 생각을 하는 것도 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허 감독이 그런 소리 하는 것만 해도 10여 년 전보다 크게 좋아진 사정을 비춰 보여준다. 그만큼 성적 올린 감독이 제멋대로 그만둬? 이번에 16강 갔으면 4년 후에 4강 올라가는 데 신명을 바쳐야지! 애국심이 어디 갔기에 멋대로 그만두겠다는 거야!


북한팀을 바라보는 우리 축구팬들의 시각에도 음미할 점이 많거니와, 일본팀을 보는 시선에서 금석지감을 많이 느낀다. 1920년대에 축구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이래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난 통로가 한-일 축구 대결이었다. “일본에게만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과 같은 독이 빠져 있다. 수비를 중시하는 일본 축구와 공격력이 뛰어난 한국 축구의 특징을 차분히 비교하며 양국 축구 발전의 길을 토론하는 축구팬들은 분명히 폭력성보다 예술성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심판의 오심에 대한 증오심도 크게 줄어들었다. 오심 심판의 처단 주장보다 기술 발전에 관한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승부에 대한 집착이 완화되는 것은 승부 외의 다른 가치를 경기 내용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잘 싸우고 멋있게 졌다”는 칭찬을 해줄 만큼 많은 축구팬들이 성숙해지게 되었다.


어느 스포츠나 경쟁을 요건으로 하는 만큼 폭력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축구의 높은 인기는 스포츠 중에서도 폭력성이 강하다는 특징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선진국도 축구팬의 훌리거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의 축구 응원에서 폭력적 태도가 아주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이만하면 어디 가서도 부끄럽지 않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축구 자체의 발전보다 축구팬들의 진화가 더 자랑스럽다.


Posted by 문천

2008년 가을 <뉴라이트 비판> 작업 중 <망국 100년>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식민지 경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을 확충할 필요를 느껴서였다. 뉴라이트에서 황당한 역사관을 들고 나오는데, 그것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소극적 대응일 뿐이며, 21세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보다 의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적극적 대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금년 상반기 중에 집필해서 국치 100주년 전에 책을 내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다. 그런데 작업이 궤도에 오를 무렵부터 깨닫게 되었다. 원래 계획한 작업 규모로는 이 주제에 관한 내 생각을 충분히 담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시즌2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망국에 이르는 과정의 서술에 그치고 망국의 상황 자체를 시즌2에서 다루겠다고.

시즌2는 1910년에서 2010년 사이에 한국 사회가 겪은 일을 다루는 것이다. 역사보다는 시사 쪽 의미가 더 클 것으로 생각하는데, 시사의 의미를 차분하게 제시하기 위해 역사를 앞세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10년에서 1945년 사이를 연대기적으로 훑어내리면서 1945년 이후의 일을 그 위에 비쳐보이는 방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술 구조에 아쉬운 점도 있을 듯하지만, 어차피 엄청나게 큰 주제인 만큼 어떤 구조로 가든 상당한 제약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 송건호, <역사에 민족의 길을 묻다>를 읽다가 새로운 구상이 떠올랐다. 김구, 여운형, 안재홍 등 아까운 지도자들의 흔적을 송건호님의 감동적 서술 속에서 더듬다 보니 인물에 더 바짝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그 아까운 지도력을 지금의 사회에 보다 절실한 모습으로 전달해주는 역할에서 내 몫을 찾을 수 있지 않을지.

8-15에서 6-25에 이르는 소위 '해방공간'. 식민지시대보다 이 시기에 초점을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해방에서 전쟁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다가 필요에 따라 그 이전의 일, 이후의 일, 그리고 바깥 사정을 곁들여 설명하는 식으로. 제대로 된 국가를 가지지 못한 20세기 역사를 개관하는 데는 역시 그 중심부에 초점을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방향을 떠올리다가 기발난 생각이 이어졌다. 일기를 쓰면 어떨까! 2010년 8월 15일에 첫 회를 쓰자. 그리고 2015년 6월 24일까지 계속해서 '65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65년 전의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써 나가면... 아버지의 전쟁일기와 내 시병일기로 (어머니 육아일기는 실종 상태지만) 우리 집안 일기 전통만큼은 확고하지 않은가.

이 방향으로 나선다면 진짜 큰일이다. 지난 반년간의 긴장된 작업을 5년간 계속할 각오를 해야 한다. 못난 놈 보인다고 흉볼 틈도 없고, 나쁜 놈 보인다고 욕할 틈도 없이 이 일 하나에 매달려야 한다. 5년 동안... 다른 글은 쓸 생각 접어놓아야 한다. 엄두가 잘 안 난다.

그러나 제대로 해내기만 한다면... 일생의 보람을 느낄 일이다. 지금까지 공부해 온 밑천을 이 작업으로 풀어낸다면 5년 동안 상당수 독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성격과 문제점을 보다 더 진지하게 살펴볼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5년 후면 학교에 있었을 경우 정년퇴직할 나이다. 지금까지 사회의 요구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공부를 해 왔으니 5년 정도는 봉사활동에 바쳐도 괜찮지 않을까? 글쎄... 5년? 아무래도 너무 긴 거 같은데...

그래도 해야 할 것 같다. 편안하게 살아온 결과 나는 국민연금 월 40만원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몸이 되지 않았는가. 5년 동안 짭짤한 글을 꾸준히 쓰면 10여 권 책이 될 거고, 한 질 정가 20만원으로 보면 한 달에 50질만 팔려도 100만원 인세 수입이 된다. 품위있는 노후까지는 못돼도 처참하지 않은 노후를 위해 분발할 필요가 있다.

그래, 알아봐야겠다. 내가 의지를 세우더라도 5년의 작업을 밀고 나가려면 최소한의 여건이 필요하니까. <프레시안>이건 돌베개건 수익성 하나만 생각해서는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주기 힘들 것이고... 이 작업이 언론과 출판 사업에 대단히 귀중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꼬셔야 할 텐데... 뭐라고 꼬시나?


(7월 3일 돌베개에 보낸 메일)

저 자신 막 떠오른 구상을 충분히 정리하지 않은 채 급히 검토를 부탁해서 여러분께서 다소 어리둥절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 구상이 매우 강력한 함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모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저지르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서둘러 검토 부탁드린 겁니다.

며칠 동안 이 일의 의미 생각한 것을 만나기 전에 설명드리죠.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고, 자기도취로 보여도 상관없다는 배짱으로 제 생각 그대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는 교수직을 떠난 후 최대의 베팅 찬스로 보고 올인 비슷한 베팅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평생 무엇을 위해 학문을 한답시고 했느냐는 물음에 늠름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입장을 바라보는 것이죠.

하나의 강좌를 5년(또는 그 이상이라도) 동안 끌고 나가려는 겁니다. 독자들을 학생처럼 여기며 정기적으로 (주 2회 내지 매일) 읽을거리를 통해 한국 사회와 역사에 관한 생각을 촉구하는 강좌입니다.

지금까지 제 글쓰기는 단행본 출판을 주 목적으로 하고 <프레시안> 연재는 보조수단으로 여겨 왔는데, 이번 작업은 강좌 의미를 가진 연재에 치중합니다. 출판은 강좌의 의미를 정리하는 마무리 작업으로 생각하고요.

따라서 작업 진행 중 생계도 출판사보다 연재 매체에 의지할 생각입니다. 책은 4개월 또는 6개월에 하나씩 내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적어도 2천 부 이상은 유지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기간의 작업인 만큼 작업의 밀도는 지금까지의 <망국 100년>보다 낮춰 잡고, 스토리텔링 서술방식을 많이 활용하려 합니다. 컨텐츠 확보의 노동량을 줄이는 대신 발표방법의 효과성에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고요. 연재 외에 강의실 강의도 병행할 길을 알아볼 겁니다.

강좌에서 다룰 이야기 범위는 1910~2010년간의 한국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실패의 역사로 보면서 실패의 이유를 반성하되 실패의 과정 속에서라도 가치있는 노력을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그 시점의 여건 때문에 현실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노력이라도 그 기본 정신이 가치있는 것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그 가치를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지요. 나쁜 놈들 욕하기보다는 좋은 노력을 부각시키고, 그 좋은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분노보다 슬픔을 이끌어내는 멜로드라마 수법을 생각합니다.

비슷한 범위를 다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와 이런 차이점이 있기 바랍니다.
(1) 일기 형태의 연속성을 통해 다루는 주제와 소재들 사이의 연관성을 강하게 제시한다.
(2) 자유와 평등 등 근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접어놓음으로써 주제를 향한 접근로를 넓힌다.
(3) 화자의 도덕적 권위의 바탕을 '정의'의 하드웨어가 아닌 '온정'의 소프트웨어에 둔다.
 

이 작업의 가장 큰 모험성은 저 자신이 도덕적-사상적 지도자의 위치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좁은 범위라도 수강생들에게 지도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건네려는 거니까요. 기능적인 교사가 아니라 포괄적 의미의 스승이 되려는 겁니다. 지도자의 길에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상식적인 사실이지요. 그런데 저는 그런 모험이 꽤 필요한 입장이기도 하고, 또 위험을 견뎌낼 만한 조건도 꽤 갖춘 편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우선 제 아버님의 배경이 있습니다. 저는 가급적 사명감 없이 인생을 살아오려 애쓴 사람이지만 아버님의 유업을 이어받으려는 의지는 분명히 있고, 이런 사명감은 꽤 넓은 범위의 독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작업의 정신과 기준을 <역사 앞에서>의 연장선 위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생활 자세에 대해 저 스스로 마음을 놓고 있습니다. 무척 빈한한 생활을 이어 오면서 재물 때문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정도입니다. 이만하면 세상을 편하게 대해도 될 만큼 욕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어머니와 아내를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밝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세를 꾸준히 지켜온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합니다. 분노와 슬픔을 느끼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의미를 조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을 갖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좌의 전체 내용을 단편적 지식과 관점의 집합체가 아닌 총체적 인간관으로 묶어낼 엄두를 낼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이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끝으로 지난 2년간의 글쓰기가 이 작업에 임하는 내 자격에 대한 신뢰를 상당 범위의 독자들에게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헛발질만 하지 않는다면 상당수 독자가 좋은 기대감을 가지고 강좌에 임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이 작업을 통해 독자층이 크게 늘어날 희망도 가지고 있지만, 일단 집토끼 지키는 것을 당면한 지상 과제로 생각하면서 묶어서 내는 책도 2천 부 이상은 지켜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힘의 원천이 '유머리스트'의 면모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쓴 일이 있지요. 제 아버님 글의 가장 좋은 점도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근년의 글쓰기에서 유머리즘에 치중해 온 셈인데, 이번 작업에서는 그 방향으로 더 집중하려 합니다.
 

(7월 6일 <프레시안>에 보낸 메일)

목적:
 
<망국 100년>을 바탕으로 망국 후의 한국을 개관하는 작업이다. 한국의 국가 기능이 망국 이후 지금까지 회복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시대 변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둔다.
 
"국가 실패"의 원인을 개인들의 악의보다 최대한 구조적 문제로 해명하면서, 여러 시점 여러 위치에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이 이뤄진 사실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노력들이 당시의 제반 조건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을 밝힘으로써 조건이 바뀐 상황에서 그 기본 가치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방법:
 
<프레시안>에 매일(주 5회 또는 6회) 10~15매 분량을 연재함으로써 지속적인 독자를 끌어들인다.
 
망국 후 한국 사회 진로의 가장 큰 기로였던 해방공간(1945. 8. 15 ~ 1950. 6. 25)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2010년 8월 초순부터 2015년 6월까지 65년 전 같은 날자에 있었던 일을 적시하면서 그 일의 배경, 상황, 여파 등을 덧붙여 기록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서술 내용의 여러 영역은 대략 이런 비율을 점할 것으로 전망한다.
해방공간의 사건 30%
식민지시대 역사 25%
전쟁 이후 역사 20%
국제적 상황 15%
한국사회의 현재 상황 10%
 
관점을 세움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근대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더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도록 한다. 예컨대 산업화나 경제성장보다 "기아의 억제"를, 자유나 평등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민족의 존엄성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앞세우는 것이다.
 
서술방법에 있어서는 높은 담론 수준이나 기발한 관점으로 독자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기보다 독자의 '신뢰'를 장기간에 걸쳐 키우고 지키는 데 역점을 두고 가급적 재미있고 부담 없는 '읽을거리' 가 되도록 노력한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