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시대의 과학자


시화지역 주민들이 고압선의 지중화(地中化)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전 측은 공사비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화지역만이 아니다. 경관(景觀)과 안전 문제 때문에 공중의 고압선은 어디서나 기피대상이다.

그런데 고압선의 존재가 발암원인까지 된다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인구밀집지역에는 땅속이건 공중이건 고압선이 지나다니지 못하게 해야 할 일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큰일이다.

고압선이 일으키는 것과 같은 전자기장이 인체세포의 칼슘대사(代謝)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암을 유발하는 성향이 있다는 충격적 연구가 나온 것은 7년 전의 일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렌스-버클리 연구소 소속의 로버트 리버디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두 편 논문에 따르면 고압선뿐 아니라 일반 전선의 전자기장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전자파도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후 많은 연구자가 이 문제를 연구했지만 아무도 리버디와 같은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 의혹이 쌓이던 중 리버디가 실험데이터에서 편리한 것만을 골라 썼다고 동료 한 사람이 제보했다. 연구소에서는 보건부의 연구윤리감사실에 조사를 의뢰했고 지난 달 조사결과가 나왔다. 리버디가 데이터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발표논문을 철회한다는 것이다.

연구비 따기가 어려울 때 미국 과학자들은 “이거 암하고 무슨 관계없을까?” 농담한다. 연구주제가 암과 관계만 있으면 연구비가 주체 못할 정도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리버디도 화제의 논문들을 발표한 뒤 3백여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아 왔다. 평범한 연구자들이 만져보기 힘든 이 거액의 연구비 중 아직 집행되지 않은 부분은 환수될 것이라 한다.

리버디는 데이터의 ‘부분적’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고의적 조작은 아니었으며 전자파가 세포의 대사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변함없이 믿는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인정해 주는 과학자들도 많다. 연구자가 자기 가설에 도취되면 실험이나 관찰에서 얻은 데이터 중 가설과 맞지 않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라 생각해서 묵살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버디의 고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연구결과를 센세이셔널하게 만듦으로써 엄청난 실익(實益)을 얻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원리가 과학계까지 지배하게 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당황하고 있다. 미래를 내다봐야 할 과학연구가 오늘의 시장조건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제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우울한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1910년대 중국의 신문화운동은 서양 근대문명의 위세 앞에서 전통에 대한 동양인의 자아비판이 가장 집약적으로 일어난 움직임이었다. 이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기수 루쉰은 작품 속에 새(賽)선생과 덕(德)선생을 등장시켰다. 덕선생은 민주주의(democracy)를, 새선생은 과학(science)을 의인화한 인물이었다. 두 인물을 루쉰은 구세주처럼 부각시켰다.


과학은 근대세계에서 신앙의 대상이었다. 근대과학이 마치 종교를 극복하는 길처럼 떠올랐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종교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었다. 세계관과 인간관을 신앙의 형태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근대과학은 종교와 “싸우면서 배운” 것이었다. 이 신앙은 자연과학에서 시작되었지만 자연과학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았다. 자연법사상과 계급투쟁론, 사회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적 사고’가 근대세계의 조직방법에도 빈틈없이 적용되었다.


근대 이전의 세상에서 비인간적 행위가 종교를 빙자하여 자행된 것처럼 근대세계에서는 과학의 이름으로 온갖 자연스럽지 못한 행태가 선을 보였다. 양쪽 다 문명이 자연을 침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종교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대규모로 해치는 일을 정당화해 준 것이 두드러진 현상이었는데, 근대의 과학 신앙은 인간이 자연을 해치는 일을 정당화해 주었다. 같은 종의 동물이 서로 아끼고 나아가 환경을 침해하지 않던 자연 상태를 깨뜨리는 일이 신앙의 역할이었다.


신앙이란 것이 나쁜 것이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혼연(渾然)한 자연 상태를 벗어나 문명을 가지게 되면 나와 남을 분별(分別)하지 않을 수 없고, 분별의 가장 강력한 형태가 신앙이다. 민족주의 얘기를 하며 이렇게 쓴 일이 있다.


“민족주의에는 도그마의 속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 도그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그마를 순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바로 문명의 발달과정이며 순화된 도그마의 조화로운 균형이 바람직한 문명 상태라고 생각한다. 일체의 도그마를 배제한다는 것은 무리한 욕심이다.”(<밖에서 본 한국사> 15쪽)


종교적 도그마도 순화의 과정을 겪어왔다. 문명 초기의 종교 신앙은 종족을 기준으로 나와 남을 분별했다. 거대문명이 발달하면서 울타리가 넓어져 신자와 비신자를 분별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명 간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전 인류를 포용하는 보편종교를 지향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정체성 문제가 일어났다. 각 종교의 뿌리가 규정하는 개별성이 근대세계가 요구하는 보편성과 충돌하게 된 것이다.


근대과학은 종교의 개별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의 도그마에 대한 신앙으로 출발했다. 어떤 뿌리에도 얽매이지 않는 보편적 세계관과 인간관을 제공하는 신앙이었다. 그러나 이 도그마 역시 순화의 과정을 겪어 왔다. 애초에는 신(神)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정도로 출발하면서 종교 못지않은 명확한 세계관을 내세웠지만 차츰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근대과학의 분별은 인간과 자연을 가르는 것이었는데, 20세기 후반 자원과 환경 문제를 겪으면서 새로운 분별의 틀을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천안함 조사 발표의 ‘과학성’ 논란을 보며 근대 초기의 소박한 과학 신앙을 떠올려 본다. 19세기 중엽의 서양인들에게 과학은 신성한 깃발이었다. 과학 자체를 반성하는 과학철학이 미개한 상태에서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아닌지 목소리 크기로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문화적 자산이 파괴되었고,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비인간적 행위가 자행되었다.


요즘 과학은 그렇지 않다. 국가권력이 과학의 권위를 만들어주지도 못하고, 과학자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모두 과학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과학적’ 작업의 요건이 과학철학의 기준으로 상당히 엄밀하게 규정되어 있다.


얼른 떠오르는 요건 하나가 ‘반증가능성(refutability)’이다. 과학은 도그마에서 출발하더라도 거기에 머물지 않으려 노력하는 활동이다. 반증할 길 없이 한 마디로 조져버리는 행위는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사안을 이렇게 본다는 명제를 내세우면서 다른 관점과 다른 판단이 경쟁하고 나설 길을 열어놓지 않는다면 과학이 못 된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의 ‘반증가능성’ 문제는 너무 낮은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견을 제기한다 해서 국가권력으로 억압하고 이상한 단체들이 날뛰는 것은 20세기 과학철학의 성과를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중세 말기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차원이다.


이런 상황을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소위 ‘과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참 궁금하다. 그 사람들이 과학자가 맞다면 자기네 명제의 반증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서 나서야 할 입장인데. 명색이 ‘과학적’ 조사를 했다면서 저런 중세적 현상을 방관하고 있다면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을 팔아먹는 장사꾼일 뿐이다. 몇 달 전에 쓴 글 한 대목이 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일부 헌법재판관들에게 ‘이완용이 그대들보다 더 잘못한 일이 있었는가?’ 하고 물었을 때 너무 지나친 표현 아니냐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이완용은 팔아먹을 것으로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고 그들이 팔아먹을 것으로는 헌법이 있었기 때문에 헌법을 팔아먹은 것이니, 맡겨놓은 것을 뭐든지 팔아먹으려는 배짱은 똑같은 것이라고.”(“업적보다 가르침을 남긴 이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