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7. 15:54

지난 월요일에 가 뵈려다가 그 날 마침 차 선생님이 찾아가신다기에 늦췄다가 어제(17일)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에 뵈었다. 자주 가 뵙지도 못하는데, 방문자가 같은 날 겹치면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같은 노력을 쏟고도 효용이 줄어들 테니까.

그래서 전번 방문 후의 간격이 좀 길었는데, 그 사이에 전번과 노시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제일 드러나는 현상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 노래가락에 실어서 흥얼거리시는 것이다. 글자 수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그걸 맞추기 위해 변조를 더하는 방식도 아주 익숙하신 게, 하루이틀 닦은 솜씨가 아니시다. 하실 말씀 빠트리지도 않고 다 챙기시는 것 같다.

인사 드리고 자리 잡아 앉자 마자 원장님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나와 보여주신다. 어머니 팬을 자처하는 버지니아의 에스터 엄마가 보내준 것이 바로 전날 도착했다고. 다른 것보다 캐시미어 목도리, 정말 좋은 걸 보내주셨다. 과자도 아주 맛있게 드신다. "어머니, 맛있어요?" 여쭈니까, "맛은 무우슨~ 맛이 있겠어요~ 맛이 없어도~ 잘 먹어야죠~" 능청스런 가락을 뽑으시며 잘도 드신다. 양초 세 개도 향이 좋은데, 그것은 원장님께 떠넘겼다. 적당한 행사에 쓰시라고. 한참 사양하시다가 생일파티에 쓰면 좋겠다고 간수해 두신다. 물건 하나라도 어머니가 공동체에 기여할 기회를 가지시는 것이 좋은 일이다.

조금 후에 엉뚱한 가락이 불쑥 튀어나오신다. "똥구멍이 아파요~ 똥구멍이 아파~ 드러눕고 싶어요~" 눕혀드리러 방에 들어가는데, 간병인 6~7명이 다 몰려들어간다. 나중에 내가 어머니 모시고 앉아있는 동안 아내가 여사님들에게 들은 얘기로 여사님들 사이에 어머니 인기가 짱이란다. 기력이 떨어진 노인분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활기 있고 재미 있는 태도를 보이시니까 틈만 나면 어머니 곁에 몰려들게 된다고. 그런 인기가 또 어머니 딴따라 기질을 북돋워 드려서 독특한 화법까지 개발하시게 된 게 아닌지.

눕혀드린 뒤 한참 지나 여사님들이 대부분 물러간 뒤(그때까지도 두 분이 어머니 '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방에 남아있었다.) "어머니, 금강경 읽어드릴까요?" 했더니, "좋아요~ 금강경~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그래서 금강경 경문을 어머니 흥얼거리시는 가락에 맞춰서 읽어드리니까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내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그런데 적혀 있는 경문을 읽으면서도 가락에 딱딱 맞추기가 힘들어 자꾸 버벅거리게 된다.(내 '쇼'는 재미없으니까 여사님들도 다 나갔다.) 하고 싶은 말씀을 그렇게 가락에 얹으시는 게 보통 재주가 아니시다.

몇 꼭지를 흥얼거리는 식으로 읽은 뒤에 원래 읽던 식으로 바꿨다. 그러니까 경문에 더 집중을 하시고 이제 질문까지 하신다. 그런 질문 받는 데는 나도 숙달이 되어 있다. "어머니, 쉬운 데는 놔두고 왜 제일 어려운 데만 물어보세요? 여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수보리야' 하고 이런 말씀이 나온 뒤에 이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식으로 대답해 드리면 흐뭇한 미소가 더욱 짙어지신다. 강독 시간 중에는 노랫가락이 아닌 평상 화법을 쓰신다. 옆자리의 할머니도 열심히 들으신다. 처음에 방해가 될까봐 목소리를 한껏 낮췄더니 뒤에서 내 등을 툭 치고는 "나도 듣게 목소리 좀 높여줘요." 하셨다.

창문 닫은 방에 30분쯤 앉아 있다 보니 노인들께는 쾌적한 듯한데, 나는 좀 덥다. 아내가 들어오기에 교대하고 마당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왔다. 오늘은 이사장님이 안 계신 모양이다.

네 시 15분쯤 된 것을 보고 식사 전에 바깥바람 좀 쐬어드릴 것을 원장님께 허락받고 테라스로 모시고 나갔다. 다른 사람 없는 테라스에서 모처럼 노래를 마음껏 불러보시게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부터 집중적으로 부르던 몇 곡 중에서 <푸른 하늘 은하수>는 더욱 발전하셨는데, <아리랑>도 좀 낯설어지신 것 같고, <섬아기>와 <꿈길>은 기억이 흐려지신 것 같다. 동요가 더 좋으신 것 같다. <찌르릉>은 전보다 흥이 더 나시는 것 같고, <송아지>는 언제나처럼 좋아하신다. "얼룩송아지 / 엄마소" 버전의 뒤를 이어 "신통강아지 / 엄마개", "예쁜병아리 / 엄마닭", "얼룩망아지 / 엄마말"을 행진시키면 하나 나올 때마다 이번엔 뭐가 나오나 하는 기색으로 눈이 초롱초롱하시다.

노래 밑천도 다할 때쯤 되니 마침 원장님이 나와서 지내시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해주신다. 어머니 입에서 쌍욕을 들은 지가 오래됐다는 얘기부터. 이곳 환경에 잘 적응하시는 것이 자기부터 놀랄 만큼 순조로우시다고. 그 동안 복숭아 몇 상자 들여보낸 공도 있고, 또 어머니 경력을 존중하는 면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지금의 모습, 바로 그것을 가지고 함께 지내는 분들, 일하시는 분들의 사랑을 모으고 계신 것이다. 그야말로 어머니의 황금시대다.

식탁에 앉혀드리니 "너희도 먹어라." 하신다. "집에 가서 먹겠어요.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하니까 선선히 "그래 잘 가거라." 하신다. 우리가 나타나면 기쁘고 즐거우시지만, 없어진다고 하늘이 두 쪽 나는 게 아니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노래가락으로만 입을 떼시는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계단 어귀까지 배웅해 준 원장님께 "여기 모시고는 돌아설 때 발길이 가볍습니다."하고 치사를 드리니까 "이이고~ 저희가 고맙지요~" 하고 기뻐하신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병원에 계시는 2년 동안은 어머니 의식 내용을 거의 빠짐없이 우리가 파악하고 있으면서 필요한 조건을 마련해 드렸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가 필요한 생활조건을 스스로 빚어나가기 시작했고, 무엇을 어떻게 누리고 지내실 수 있을지, 우리가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서셨다. 건강상태도 너무나 좋아 보이신다. 이제 지난 2년간보다는 거리를 두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위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이가 커서 학교 다니며 자기 식으로 친구 사귀고 놀이를 찾아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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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7. 15:48

목요일(27), 이천에 12시 도착, 둘이 점심부터 먹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11시나 11시반쯤 도착해서 요양원으로 바로 가면 점심을 먹지 못해 오후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2시 45분 요양원에 도착해 현관에서 벨을 누르고 올라가니 원장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2층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얼굴이 보이자마자 곁에서 묻기도 전에 "아~ 내가 아는 사람들이구먼!" 하시고, 복도 가의 탁자에 앉은 뒤 옆에 앉은 며느리 손을 쥐신다. 곁에서 "이 분 누구신데요?" 하니까, 서슴없이 "내 며느리예요." 이렇게 거침없이 며느리 알아 보시는 건 우리 결혼 후 처음이다.

자나깨나 최대 관심사는 먹는 것인 듯, 다른 얘기 별로 나오기도 전에 "나는 아까 뭘 먹은 거 같은데, 너희는 뭐 먹었냐?" 병원 계실 때 금강경 읽어드리다가 식사가 나오면 "어머니, 금강경도 식후경이죠." 하던 생각이 나서 "네 어머니, 저희 밥 먹고 왔어요. 어머님도 식후경이란 옛말이 있잖아요?" 하니까 "뭣도 식후경? 그게 무슨 뜻이냐?" "어머님도 식후경이요. 아무리 어머님 뵙고 싶어도 식사는 먼저 해야 한단 뜻이죠." 했더니 "예끼, 그런 말이 어딨어?" 하시고는 한 숨 쉬고 표정을 가다듬은 뒤 "이 썅놈아!" 통렬하게 한 마디 내뱉으신다.

지난 주 뵐 때도 이제 쌍욕 안 하기로 약속하셨다고 김 여사가 자랑한 일이 있고, 며칠 전 원장님도 통화하는 길에 어머니 입에서 "썅년" 소리가 거의 없어졌다고 좋아하며 얘기한 일도 있다. 그렇지만 욕을 잊어버리신 게 아니란 사실을 확인하니 더더욱 안심이 된다. 욕을 먹을 만한 놈에게 정확하게 쓰시는 걸 보면 요즘 욕을 안 하시는 게 건전한 판단력에 입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욕을 벌으셨네, 벌으셨어!" "할머니, 그런 덴 욕을 하셔야 해요!" 옆에서 웃고 좋아하며 한 마디씩들 하신다.

영천에서 부친 복숭아가 어제 도착해서 한 차례 돌렸다고 한다. 우리도 먹으라고 한 접시 내 오면서 어머니 앞에도 얇게 썬 것을 작은 접시로 놓아드렸다. 이빨 없이도 우물우물 잘 잡수신다. 이 정도면 틀니 없어도 식생활 즐기실 수 있는 폭이 충분하겠다.

식사시간 직후라서 우리만 먹을것 놓고 있는 것이 그리 민망스럽지는 않은데, 영감님 한 분, 온화한 인상에 풍채도 좋으신 분이 서슴없이 다가와 내 옆에 앉더니 복숭아를 집어 드신다. 잠시 후 원장님이 지나치다가 보고 잠깐 멈칫, 망설이다가 우리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싱긋 웃고 지나갔다. 나중에 이사장님 얘기를 들으니 교장으로 계시다가 퇴직한 후 풍을 맞고 판단력을 잃으신 분이라고. 그분 보살피는 데 제일 어려운 문제가 남존여비 관념이라고 한다. 여성 간병인이나 간호사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아 한 분 있는 남성 간병인이 없을 때는 이사장님이나 원장님의 권위라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까지도 팽배해 있는 남성 권위주의가 보이지 않는 중에도 사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사장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남 같지 않아 그런지, 운영의 어려운 문제들까지 기탄없이 털어놓고 말씀하신다. 역시 사람 쓰는 일이 이런 벽지에선 문제다. 사람이 한 번만 바뀌어도 공백이 크게 될 위험이 있으니까. 그래서 간병인 인력은 가급적 여유있게 늘 확보해 놓는 방침이라 한다. 부인과 원장님 외에 그래도 나이 있는(그리고 정신 멀쩡한) 사람과 얘기 나누는 게 좋으신 모양이다. 아내가 어머니 살펴드리는 동안 이사장님 말씀 많이 들어 드리는 것도 어머니 위해드리는 일로 여기고 열심히 듣는다.

네 시경이 되어 요양원을 떠났다. 지난 주에 비해 우리가 응대해 드리는 걸 요긴해 하시는 눈치다. 금강경 읽어드려도 졸지도 않으시고, 노래도 싫증을 안 내신다. 그런데 이제 떠나야겠다 싶어 "저희 그만 가겠습니다." 했더니 "그래? 그럼 내일 또 올래?" 하시는데 "내일은 못 오고요, 머지 않아 또 올께요." 하니까 "그래, 잘들 가거라. 또 오렴." 선선하시다.

지난 주 뵐 때 황홀한 행복에 빠져 계신 것처럼까지 보이시던 데 비해서는 현실의 양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 달 후 큰형이 찾아뵐 때 기쁨을 느끼실 발판은 이쪽이 더 탄탄할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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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7. 15:44

11시 반쯤 도착했다. 7월 19일 와서 하룻밤 묵어간 후 근 한 달만이다. 그 사이에 원장님이 여러 번 메일과 전화로 잘 지내신다고 확인해 줘서 마음에 불안한 것은 없다. 다만, 2년 동안 매일 보다시피 하던 녀석을 모처럼 오랫만에 보시면서 반응이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우리 부부가 나타나니 직원과 간병인들이 모두 반가워하며, 아내에겐 고향 잘 다녀왔냐는 인사, 내게는 몸이 괜찮냐는 인사를 건넨다. 간호사 서 선생은 "교수님 이번 몸살이 심하셨나봐요. 이천까지 소문이 났어요." 하고 웃는다.

열렬한 환영이 더욱 마음을 놓게 해준다. 영규 형님이 친구인 이사장님도 만날 겸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다녀간 것도 VIP 대접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 사람들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이처럼 밝고 따뜻한 것은 어머니가 이분들께 사랑받고 계시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테라스에서 바람 쐬고 계시다기에 나가 보니 저쪽 끝에서 이쪽을 향해 앉아 계시다가 우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는 아주 짧은 순간 놀라움의 표정이 스쳐 지나가고는 빙긋이 웃음을 띠고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쳐다보신다. 옆의 노인분들이 "아드님 오셨네요." 하니까 그게 뭐 별일이냔 듯이 "그런 것 같군요." "몇째 아드님이세요?" 하니까 상투적인 "몰라요. 야! 너 몇째냐?"

"어머니 한 번 맞춰보세요. 잘 맞추시면 상 드릴께요." 했더니 "상도 있냐? 그거 좋구나." 하시고는 잠깐 생각하시는 척하다가. "셋째. 너 셋째 맞지?" 어머니 곁으로 가서 "네 잘 맞추셨습니다. 상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이마에 뽀뽀를 해 드리니까 실눈을 하고 "아~ 상 타니까 좋다~"

옆에서들 이제 아내를 가리키며 "이 분은 누구세요?" 하니까 흐뭇한 웃음을 입가에 걸치신 채 아내를 올려보고 내려보시고는 "그거야 누구 꼬랑탱이 따라왔는지 보면 알지. 너 셋째 며느리지?" 아내는 알아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기쁘다. "네, 어머니. 잘 맞추셨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어머니는 "넌 뽀뽀 안해 주냐?" 하셔서 모두들 큰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계시던 노인분들이 모두 어머니의 언행을 재미있어 하는 것을 잠깐 사이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가족 간에 회포 푸시라는 뜻인지 하나 둘 자리를 비켜 주셔서 세 식구와 간병인 김 여사가 남아 잠깐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김 여사는 '박사 할머님' 덕분에 자기네 같은 일꾼들도 그곳 생활이 더욱 즐거워졌다고 거듭거듭 확인해 주었다.

"여기 일하는 사람들, 간호사고 간병인이고, 모두 할머니께 '쌍년' 소리 많이 들었죠. 그래도 화내고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요. 미워서 하시는 욕이 아닌 줄 다 아니까. 저한테는 며칠 전부터 쌍욕 안하겠다고 약속도 해주셨어요." 우리에게 이야기하다가 어머니를 돌아보고 묻는다. "할머니, 저한테 욕 안하겠다는 약속 하셨죠?"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약속? 무슨 약속? 난 모르겠는데?"

김 여사가 열심히 확인한다. "할머니, 엊그제 그러셨잖아요? 우리 여사님들이 다 좋은 사람들인데, 좋은 사람들한테 나쁜 욕 하면 안 되겠다고 그러셨잖아요?" 그러니까 석연한 표정으로 고개까지 끄덕거리며 말씀하신다. "그래, 내가 '쌍년' 소리 안하겠다고 그랬지." 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눈을 부릅뜨시고는 한 마디 내뱉으신다. "썅!" 김 여사는 완전히 뒤집어진다. 우리도.

웃고 즐기는 사이에 식사시간이 되었다. 한 달 전 생각을 하고 내가 김 여사에게 물었다. 앉아 계신 지 오래 되었느냐고. "네, 아침에 머리 깎아 드렸는데, 그때부터 쭉 앉아 계셨어요." 대답하다가 묻는 뜻을 깨닫고 덧붙인다. "요새는 몇 시간 앉아 계셔도 힘들어하지 않으세요. 앉아서 식사 하실 수 있어요." 곁에서 듣던 어머니, 같잖다는 듯이 끼어드신다. "앉아서 먹지 않으면, 누워서 먹으란 말이냐?" 참 용 되셨다.

지난 달 왔을 때는 방에서 침대에 기대 누우신 자세로 내가 떠먹여 드렸었다. 오늘은 식당에서 드시게 하고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식당에는 노인분들이 다 모여서 함께 식사하시기 때문에 방문자들이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때 외출에서 돌아온 원장님이 우리에게 위 테라스보다 선선한 아래층 바깥 테라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식사가 끝나신 후 모시고 나오겠다고 한다.

아래 테라스에서 아내가 쉬는 동안 정원을 둘러보러 내려갔다가 이사장님과 마주쳐 그늘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영규 형님과 정이 꽤 두터운 사이였던 모양이다. 형님 다녀간 얘기부터 이런저런 지난 얘기들 늘어놓으시는 데서 역력히 느껴진다.

이사장님 식사 시간도 된 것 같아 테라스로 올라와 아내랑 합류하니 두 달 전 생각이 난다. "우리 내외가 여기 처음 와서 이 자리에서 이사장님 만났던 생각이 납니다. 그 사이에 어머니를 이렇게 편안히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 이사장님과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사장님도 "나도 생각납니다. 교수님 내외분 처음 볼 때부터 참 인상이 좋았어요. 어머님을 모시게 되어 우리도 기쁩니다." 화답해 주신다.

잠시 후 원장님이 어머니를 모셔온 뒤 이사장님과 식사하러 가시고 세 식구가 얼마동안 앉아 있었다. 뾰족이 할 얘기도 없고 재미나는 일도 없는 자리인데, 이런 자리에서 어머니 마음이 편안해지신 것을 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지루해 하거나 불편해 하는 감각을 잃어버리신 것 같기까지 하다.

허리 아픈 감각은 안 잃어버리셨다. 아마 네 시간째 앉아 계셨을 것이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기에 방에 가서 누우시겠냐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신다. 침대에 눕혀 드리고 있는 동안 같은 방의 세 분이 다 들어와 누우셨다. 모두 휠체어로 다니시는데,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 인상들이 다들 좋으시다. 병 때문에 어둡고 괴로운 인상을 가진 분들도 더러 계시는데, 이 방은 속 편한 분들 모아놓은 것 같다.

아내에게 곁을 지켜드리라 부탁하고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먼저 얘기했다. "이제 마음 푹 놓았습니다. 어머니 모시는 일은 이제 여러분께 맡겼으니 제가 곁에서 도울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센스가 원장님에겐 있다. 센스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힘까지 가진 분이니, 정말 믿음이 간다. 요양원장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자식 노릇 대신 해드릴 역량을 가진 분이다.

필요한 얘기를 나눈 뒤 원장님이 자진해서 나서 준다. 마침 시간이 있으니 사모님을 같은 고향 분들에게 인사시켜 드리겠다고. 방에 가니 어머니는 내가 적어드린 <푸른 하늘 은하수>와 <섬아기> 가사를 놓고 며느리, 김 여사와 함께 열창 중이셨다. 그 두 곡은 여사님들도 다 아는 곡이라서 자주 꺼내 함께 불러드리는 모양이다.

원장님이 아내를 끌고 나간 뒤 반야심경을 권하니 낭랑하게 외우시는데, 하나도 거침이 없으시다. 금강경을 꺼내니 "그건 네가 좀 읽어 다고." 하시고도 눈앞에 펼쳐달라 하시고는 내가 읽는 데 따라 입을 오물오물 하신다. 제 7분을 읽는 동안 눈이 감기시고 제 9분에 가서는 코를 골기 시작하신다.

나와 보니 방 바로 앞 탁자에 이사장님이 앉아 계시다. 시간은 한 시 반. 여태 식사를 안해서 어쩌냐고, 간식이라도 좀 드시라고, 옆의 너스 스테이션에 준비를 부탁해 주신다.

다니는 동안 눈길을 끈 정신장애인 남자 한 분이 있었다. 나이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아래가 분명해 보이는데, 정말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이로 보여서 볼 때마다 안됐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이었다. 이사장님과 앉아 있는 동안 남자 간병인 한 분이 그를 이쪽으로 데려와 휠체어에서 이사장님 등 뒤의 소파에 옮겨앉혀 주었다. 이사장님이 잠깐 몸을 돌려 앉히는 것을 도와주고는 다시 내게 몸을 돌리며 말씀하신다. "내 아들입니다."

전에 들은 적은 있다. 아드님 한 분이 장애인이어서 장애인학교를 만들 생각으로 이 터를 원래 장만하셨던 것인데, 학교 설립은 여의치 않았고, 곡절 끝에 이 요양원을 차리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 아드님을 여기 수용하고 계신 사실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 한 마디가 계속 내 머릿속에 울렸다. 그리고 생각이 퍼져나갔다. 장애인인 아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이 분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 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으로 인해 요양원이 유망한 사업분야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이 요양원의 엄청난 시설 수준으로는 이득을 바라보기 힘든 사업방식이라는 것이 내 눈에도 분명했다. 이제 납득이 된다. 이사장님은 시설비의 이자 부담이란 간접비용은 생각지 않고 직접비용만 감당할 수 있으면 아들을 위해 이 사업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나눔의 철학' 아닐까? 생활능력 없는 아들을 격리시키고 보호하려 들기보다 이 요양원을 아들과 함께 집으로 여기고 그 안의 생활을 함께 누릴 '식구'들을 모아주는 것. 나부터 어머니를 편안하고 즐겁게 모실 이 장소를 마련하는 데 그의 역할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 고마운 뜻을 장애인인 아들이 직접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고마운 마음이 그의 인생에 의미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케익과 과일로 요기를 하고 나서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또 초롱초롱하시다. 그러나 몇 마디 나누고 바로 일어나 떠났다. 우리가 아직 점심식사도 못한 불쌍한 신세임을 원장님이 그 사이에 입력시켜 드린 듯, "너희들 점심은 먹었냐?" 물으시는 데 냉큼 "네, 이제 먹으러 갈께요." 했더니 "그래, 가서 잘들 먹으렴." 선선히 말씀하시고는 "와줘서 고맙다." 덧붙이신다.

오랫만에 왔다가 일어설 때 이렇게 선선히 보내주시는 것은 무엇보다 이곳의 생활이 아쉬움 없이 즐겁고 편안하신 덕분 아니겠는가? "효도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지만, 이렇게 마음 편하신 어버이를 상대로는 세상에 효자 못할 놈 누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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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