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 가 뵈려다가 그 날 마침 차 선생님이 찾아가신다기에 늦췄다가 어제(17일)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에 뵈었다. 자주 가 뵙지도 못하는데, 방문자가 같은 날 겹치면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같은 노력을 쏟고도 효용이 줄어들 테니까.
그래서 전번 방문 후의 간격이 좀 길었는데, 그 사이에 전번과 노시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제일 드러나는 현상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 노래가락에 실어서 흥얼거리시는 것이다. 글자 수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그걸 맞추기 위해 변조를 더하는 방식도 아주 익숙하신 게, 하루이틀 닦은 솜씨가 아니시다. 하실 말씀 빠트리지도 않고 다 챙기시는 것 같다.
인사 드리고 자리 잡아 앉자 마자 원장님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나와 보여주신다. 어머니 팬을 자처하는 버지니아의 에스터 엄마가 보내준 것이 바로 전날 도착했다고. 다른 것보다 캐시미어 목도리, 정말 좋은 걸 보내주셨다. 과자도 아주 맛있게 드신다. "어머니, 맛있어요?" 여쭈니까, "맛은 무우슨~ 맛이 있겠어요~ 맛이 없어도~ 잘 먹어야죠~" 능청스런 가락을 뽑으시며 잘도 드신다. 양초 세 개도 향이 좋은데, 그것은 원장님께 떠넘겼다. 적당한 행사에 쓰시라고. 한참 사양하시다가 생일파티에 쓰면 좋겠다고 간수해 두신다. 물건 하나라도 어머니가 공동체에 기여할 기회를 가지시는 것이 좋은 일이다.
조금 후에 엉뚱한 가락이 불쑥 튀어나오신다. "똥구멍이 아파요~ 똥구멍이 아파~ 드러눕고 싶어요~" 눕혀드리러 방에 들어가는데, 간병인 6~7명이 다 몰려들어간다. 나중에 내가 어머니 모시고 앉아있는 동안 아내가 여사님들에게 들은 얘기로 여사님들 사이에 어머니 인기가 짱이란다. 기력이 떨어진 노인분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활기 있고 재미 있는 태도를 보이시니까 틈만 나면 어머니 곁에 몰려들게 된다고. 그런 인기가 또 어머니 딴따라 기질을 북돋워 드려서 독특한 화법까지 개발하시게 된 게 아닌지.
눕혀드린 뒤 한참 지나 여사님들이 대부분 물러간 뒤(그때까지도 두 분이 어머니 '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방에 남아있었다.) "어머니, 금강경 읽어드릴까요?" 했더니, "좋아요~ 금강경~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그래서 금강경 경문을 어머니 흥얼거리시는 가락에 맞춰서 읽어드리니까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내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그런데 적혀 있는 경문을 읽으면서도 가락에 딱딱 맞추기가 힘들어 자꾸 버벅거리게 된다.(내 '쇼'는 재미없으니까 여사님들도 다 나갔다.) 하고 싶은 말씀을 그렇게 가락에 얹으시는 게 보통 재주가 아니시다.
몇 꼭지를 흥얼거리는 식으로 읽은 뒤에 원래 읽던 식으로 바꿨다. 그러니까 경문에 더 집중을 하시고 이제 질문까지 하신다. 그런 질문 받는 데는 나도 숙달이 되어 있다. "어머니, 쉬운 데는 놔두고 왜 제일 어려운 데만 물어보세요? 여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수보리야' 하고 이런 말씀이 나온 뒤에 이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식으로 대답해 드리면 흐뭇한 미소가 더욱 짙어지신다. 강독 시간 중에는 노랫가락이 아닌 평상 화법을 쓰신다. 옆자리의 할머니도 열심히 들으신다. 처음에 방해가 될까봐 목소리를 한껏 낮췄더니 뒤에서 내 등을 툭 치고는 "나도 듣게 목소리 좀 높여줘요." 하셨다.
창문 닫은 방에 30분쯤 앉아 있다 보니 노인들께는 쾌적한 듯한데, 나는 좀 덥다. 아내가 들어오기에 교대하고 마당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왔다. 오늘은 이사장님이 안 계신 모양이다.
네 시 15분쯤 된 것을 보고 식사 전에 바깥바람 좀 쐬어드릴 것을 원장님께 허락받고 테라스로 모시고 나갔다. 다른 사람 없는 테라스에서 모처럼 노래를 마음껏 불러보시게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부터 집중적으로 부르던 몇 곡 중에서 <푸른 하늘 은하수>는 더욱 발전하셨는데, <아리랑>도 좀 낯설어지신 것 같고, <섬아기>와 <꿈길>은 기억이 흐려지신 것 같다. 동요가 더 좋으신 것 같다. <찌르릉>은 전보다 흥이 더 나시는 것 같고, <송아지>는 언제나처럼 좋아하신다. "얼룩송아지 / 엄마소" 버전의 뒤를 이어 "신통강아지 / 엄마개", "예쁜병아리 / 엄마닭", "얼룩망아지 / 엄마말"을 행진시키면 하나 나올 때마다 이번엔 뭐가 나오나 하는 기색으로 눈이 초롱초롱하시다.
노래 밑천도 다할 때쯤 되니 마침 원장님이 나와서 지내시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해주신다. 어머니 입에서 쌍욕을 들은 지가 오래됐다는 얘기부터. 이곳 환경에 잘 적응하시는 것이 자기부터 놀랄 만큼 순조로우시다고. 그 동안 복숭아 몇 상자 들여보낸 공도 있고, 또 어머니 경력을 존중하는 면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지금의 모습, 바로 그것을 가지고 함께 지내는 분들, 일하시는 분들의 사랑을 모으고 계신 것이다. 그야말로 어머니의 황금시대다.
식탁에 앉혀드리니 "너희도 먹어라." 하신다. "집에 가서 먹겠어요.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하니까 선선히 "그래 잘 가거라." 하신다. 우리가 나타나면 기쁘고 즐거우시지만, 없어진다고 하늘이 두 쪽 나는 게 아니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노래가락으로만 입을 떼시는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계단 어귀까지 배웅해 준 원장님께 "여기 모시고는 돌아설 때 발길이 가볍습니다."하고 치사를 드리니까 "이이고~ 저희가 고맙지요~" 하고 기뻐하신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병원에 계시는 2년 동안은 어머니 의식 내용을 거의 빠짐없이 우리가 파악하고 있으면서 필요한 조건을 마련해 드렸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가 필요한 생활조건을 스스로 빚어나가기 시작했고, 무엇을 어떻게 누리고 지내실 수 있을지, 우리가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서셨다. 건강상태도 너무나 좋아 보이신다. 이제 지난 2년간보다는 거리를 두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위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이가 커서 학교 다니며 자기 식으로 친구 사귀고 놀이를 찾아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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