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3. 22:33

 

뭐든 꼬투리를 찾아 너싱홈에 전화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원장님이 먼저 전화를 줬다. 밤새 잘 주무셨다는 소식부터 전하고, 몇 가지 디테일을 제공한다. 어제저녁에는 7시까지 건물 밖에서 노인분들과 어울려 담소를 즐기시고, 아침식사 후에도 어울려 앉아 계시는데, 계속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고. (전화받은 시간이 8시반이었다.) 식사를 홀에 나와서 하신다는 소식도 반갑다. 어제 점심은 방에서 하셨고, 떠먹여 드리려면 방에서 하셔야만 하는가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실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보호자를 안심시켜 주려고 전화 한 통 하는 내용을 봐도 우리 원장님, 참 센스가 훌륭한 분이다. 어떤 측면을 내가 요긴하게 여기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신 게 분명하다. 내가 마음을 놓는 데 필요한 얘기는 효과적으로 다 담겨 있고, 군더더기는 별로 없다. 그렇게 파악이 되어 있다면 어머니와 관계된 어떤 판단과 결정도 나보다 더 잘해 줄 것을 믿을 수 있다.

7월 22일 중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매주 한 차례씩 찾아갈 수 있겠지만 그 뒤는 기약하기 힘들다. 7월 9일 작은형이 미국에서 돌아오면 역할이 되겠지. 친구나 제자분들 중에 아직 기동력 있는 분들이 찾아뵙기는 병원 계실 때보다 나을 것 같다. 2년 전까지 대자암 계실 때보다 생활도 편안하시고 손님 맞이하기도 편리하게 되셨으니 이제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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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3. 22:31

8시 45분 병원 도착하자 여사님들이 휠체어에 바로 앉혀드렸다. 그런데 원무과에서 정산이 빨리 되지 않아 10시가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기다리다가 하도 늦어져 내려가 재촉하니, 간병비 한 항목의 책임자가 연락 닿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넉넉히 놓아두고 갔다가 나중에 정산하자고 했더니, 그러실 것 없이 그냥 가시고 나머지는 나중에 연락드릴 때 납부해 달라고 한다. 병원에서 돈 덜 받은 채 퇴원시켜 주는 건 첨 봤다. 세상이 좋아진 건지, 내가 신용을 잘 쌓은 건지.

꼬박 한 시간 동안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걸 괴로워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노상 누워 계시던 것보다 기분이 좋은 기색이시다. 정말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 드렸지만, 병원이란 곳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회복이 되셨으면 몸에 자극이 늘어날 길을 찾아야 할 텐데, 3월에 재활치료 며칠 시도해 보다가 포기한 이후로는 너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지내셨다. 병원은 생존하는 곳이지, 생활하는 곳이 아니다.

오락가락하다가 틈틈이 아내가 모시고 있는 어머니께 가 보면 휠체어에 앉아 싱글벙글하고 계시다가 "기협아, 난 여기가 좋은데, 여기 그냥 있으면 안 되니?" 하신다. 긴장을 풀어드리는 편이 좋다. "여기 좋으시면 여기 계세요, 어머니. 그런데 저쪽에도 좋은 면이 좀 있어요. 한 번 가 보세요. 갔다가 시원찮으면 바람 쐬고 돌아오시는 셈이죠, 뭐." "그래그래, 네가 알아서 해라." 하면서도 미심쩍은 기색이 잘 걷히지 않으시고, 한참 있다간 또 한 차례.

그래도 막상 떠날 때는 오랫만에 차에 앉으시는 게 싫지 않으신 기색. 굳이 앰뷸런스를 부를 필요까지 없겠다는 닥터 한 의견에 따라 내 차 뒷자리에 아내가 모시고 앉았다. 조심조심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아무 불평 없다가 거의 다 가서 "아이고, 궁둥이가 아프구나." 하셔서 아내 무릎을 베고 누우셨다.  출발 직후 구일산을 지날 때는 밖을 열심히 내다보며 "야! 뭐, 구경할 게 많다!" 하셨는데, 외곽고속도로에 오른 후로는 눈길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꼿꼿이 앉아 계셨다. 그러나 눈을 내내 활짝 뜨고 계신 걸 보면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계셨던 것 같다.

아내가 방에 모시고 가 짐을 정리해 드리고 첫 식사를 간병인과 함께 보살펴드리는 동안 나는 사무실에서 계약서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올라가 보니 도착한 지 40분 밖에 안 된 어머니께서 "야 기협아, 여기 참 좋다. 나 다른 데 안 갈란다." 다른 환자들과 아직 제대로 어울려 보지 않으셨지만, 어울릴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하다는 걸 눈치채신 것 같다. 그리고 건물 안의 분위기만 해도 병원의 살풍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부터.

아내와 너싱홈에서 나와 해장국으로 점심을 하고 남한강변까지 한 바퀴 돌아본 뒤 2시반쯤 돌아와 보았다. 침대에 누워계셨다. 우리가 모시고 정원을 산책하고 싶다고 양해를 얻어 휠체어를 가져오는 참에 간식이 나왔다. "먹을거다!" 외치고 손을 막 뻗치신다. 초코파이 하나와 크림샌드('크라운 산도' 같은 것) 두 쪽인데, 간병인이 어릿어릿하는 사이에 초코파이를 움켜쥐셨다. 누운 채로 입에 우겨넣으시는 바람에 침대 등을 올릴 경황도 없이 등을 받쳐 일으켜 앉혀드리고, 아내가 작동 레버를 찾아 침대 등을 올려드렸을 때는 초코파이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잘 잡수시던 과자(웨하스와 홈런볼)와 과일통조림을 상당량 가져가기는 했지만, 너싱홈의 간식으로 바로 적응이 되실 것 같다. 더 달라는 타령이 없으신 것이 막 옮겨서 얼떨떨하신 탓도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분들도 다 함께 간식을 받아 드시니까 혼자서 더 내놓으라고 난동을 피우기도 좀 뭣하실 게다.

휠체어로 모시고 나오다가 외출에서 조금 전 돌아온 원장님과 만났다. 강남성모병원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원장님, 다시 봐도 사람이 참 끌끌하다. 잠깐 몇 마디 나눠보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분들 중엔 자기가 좋은 사람이란 인상을 주려고 자기 표현에 열중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 원장님은 상대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는 태도가 분명하다. 어머니에 대해선 '참 재미있는 어른 오셨구나.' 하는 인상이 금세 잡히는 것 같다.

아내는 현관 앞 비치파라솔에서 쉬게 하고 휠체어를 밀어 정문까지 한 바퀴 다녀왔다. 150미터 가량, 수준급의 정원, 참 기분좋은 곳이다. 더운 날씨지만 길 한 쪽으론 나무그늘이 짙다. 다람쥐도 꽤 많은지, 다닐 때마다 눈에 띈다. 길가의 꽃나무 가지가 길 안쪽으로 드리워진 곳에서 어머니는 손을 뻗어 잎새도 만져보시고 꽃도 만져보신다. 작년 4월 자유로병원에서 산책시켜 드린 후로 처음이란 생각에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현관 앞에 돌아와 보니 원장님과 원무실장님이 나와 있었다. 공무원에서 퇴직했다는 원무실장님은 나보다 몇 살 위가 분명한데, 마음은 훨씬 더 젊은 것 같다. '교수님', '박사님'을 대단하게 여기는 티를 너무 많이 내서 나도 듣기가 좀 거북스러운데, 어머니는 "하! 교수? 그게 뭐 별거라고!" 하며 태연하시다. 원장님은 살아오면서 응대해 온 범위가 넓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태도가 자연스럽다.

기억력 테스트도 겸한 듯, 원장님이 묻는다. "어르신, 제가 누군지 아세요? 아까 말씀드렸죠." 나는 당연히 "아, 당신이야 내 제자지." 하실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뜻밖에 잠깐 머뭇 하시더니 "당신? 누구지? 나 잊어버렸어." 하시는 것이었다. 아마 원장님이 '제자'로 얼렁뚱땅 묶어내는 범위를 벗어나는, 특별한 역할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이 그 사이에 자리 잡히신 것 같다. 원장님이 "네, 다시 가르쳐 드릴께요. 제가 여기 원장이예요." 하자 대뜸 "원장? 당신 어마어마한 사람이구만!" 하시는 바람에 다들 크게 웃었다. 내가 "어마어마한 분은 아니라도, 여기서 저희들 대신 어머니 살펴드릴 분이세요. 어머니께선 어마어마하게 보셔도 돼요." 했더니 정색을 하고 원장님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거 참 고마운 분이군요." 하고 멀쩡하게 인사를 차리신다. 원장님도 살짝 눈짓으로 내 한 마디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표현을 아끼는 사람이지만 전혀 모자라지 않다. 참 믿을 만한 사람이다.

방에는 원장님이 모셔드리겠다고 해서 현관 앞에서 바로 작별하고 떠났다.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않으신다. 어머니 마음에 아마 원장님도 믿음직하고, 장소도 편안하게 느껴지시는 것 같다. 가기 전에 아내와 그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편안히 자리 잡으신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자고 의논했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겠다 판단하고 바로 돌아왔다. 다음 주 화요일 아내가 중국으로 떠난 뒤, 봉하 가는 길에 들러서 뵈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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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3. 22:26
 

요양원으로 옮겨 모실 궁리는 지난 3월부터 해온 것이다. 연초부터 식사를 시작하시고 회복이 좋으셔서 3월 되어서는 닥터 한이 이제 병원 아닌 요양원에 가서 지내셔도 아무 문제 없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의료계의 과도한 영리성이 갈수록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의료인들이 모두 닥터 한처럼 환자 위주로 생각하고 얘기해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병원에서는 어머니가 관리 대상인 환자다. 간병인과 간호사들이 아무리 친절을 다한다 해도 생활의 주체가 되시는 데 한계가 있다. 매일 가서 응대해 드려야 하는 필요도 여기에 있다. 어머니다운 생활을 최소한으로라도 확보해 드리기 위해 우리랑 노는 시간을 마련해 드려야 한다. 용태가 좋으실수록 그 필요가 더 크다.

요양원에서는 간병인의 도움을 아무리 많이 받더라도 '생활인' 대접을 받으실 수 있다. 텔레비전도 보고, 날씨 좋을 때는 정원에서 햇볕도 바람도 쐬고, 무엇보다, 다른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다. 대등한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 이것이 생활다운 생활을 위해 제일 요긴한 것이라 생각한다.

기본 비용도 매달 40만원 정도 절약되고, 우리가 살펴드려야 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의료서비스 수준만이 병원보다 못하다. 방침을 정하고, 괜찮은 시설들도 답사해 놓은 상태에서 석 달 동안 늦춘 것이 그 때문이다. 마침 감기에 한 차례 걸리셨는데, 가벼운 감기 하나로 두어 주일 동안 기력이 푹 떨어지시는 것을 보니 옮기시는 것을 가급적 늦추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더 늦출 수 없게 되었다. 여름부터 일이 바빠질 것을 예견하고는 있었는데, 생각보다도 빡빡한 상황이 코앞에 닥쳤다. 일산 살림을 지키더라도 당분간 집을 많이 지키지 못하고 지내야 할 상황이다. 그리고 계절도 더 늦추기가 아깝다. 정원 좋은 요양원에 가서 햇볕과 바람이라도 즐기는 생활을 내년에 또 누리실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지난 금요일, 세 군데 시설을 둘러보려고 길에 나섰다. 안성 죽산의 파라밀요양원은 불교계 시설이고 병원이 같은 구내에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권위주의적 분위기랄까, 노인들을 관리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마음에 걸렸던 곳. 용인 백암의 백암너싱홈은 좀 작은 규모지만 분위기가 좋아보였다. 두 달 시차를 두고 다시 둘러보아 분위기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또 한 군데는 인터넷 상으로 그럴싸해 보였지만 아직 가본 적이 없던 이천의 세종너싱홈.

세종으로 제일 먼저 갔다. 그리고 다른 두 군데 가보려던 계획은 취소했다. 시설이 훨씬 낫고 운영도 잘하는 것 같아서 바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적성의 진인선원에 못하지 않은 생활여건으로 보였고, 위치가 훨씬 더 좋으니까.

이천 읍내에서 5킬로 가량 떨어진 세종너싱홈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잘 가꿔진 정원 사이로 백여 미터 올라가니 건물 앞 비치파라솔에 앉아 있던 작업복 차림의 영감님이 맞이해 준다. 인상 좋은 영감님과 몇 마디 기분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원장님이 식사를 마치고 내려와 인사를 하는데, 알고 보니 영감님이 이사장이었다. 요양원 세우기 전에는 장애인 시설을 이곳에서 꾸렸다 하고, 이사장님은 내내 정원을 가꿔 왔다는 것. 지금도 정원 일을 계속하고 계시단다.

간호사인 원장님도 꽤 연만해 보이시고(내 연배쯤?) 언행이 침착한 분인데, 가족이 없으신지 원내에서 생활하신다고 하여 더욱 마음 든든하다. 이사장님도 정원 속의 아담한 집에서 사시고.

다른 요양원보다 한 달에 15만원 정도 비싸지만 시설만으로도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지금 상태의 어머니로서 자연을 즐기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보인다. 수안보의 작은형이 쉽게 찾아올 수 있고, 내가 부산 쪽에 가서 지내는 동안에는 한 달에 한 번 차 몰고 다니러 올 때 오는 길 가는 길에 들르기도 쉬운 편이다. 일산에서 지낼 때는 차로 두 시간 가량이니 주 1회 다니기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어머니께는 옮길 계획을 말씀드리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일요일에 간병인 여사님들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월요일엔 닥터 한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알려야 할 텐데, 어머니를 가장 가까이서 살펴드리던 분들이 나중에 알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오는 길에 강 여사에게 얘기하니 어머니께 쪼르르 쫓아가서 "할~머~니~ 할머니 가시면 우리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요?" 재롱을 떤다. 조금 어리둥절한 채로 몇 마디 대꾸하시다가 기본 개념이 파악되신 듯, 나를 처다보고 말씀하신다. "난 여기가 좋다. 다른 데 안 갈란다." 그러자 여사님들이 번갈아 나서서 아드님이 매우 좋은 곳을 찾아서 모시려는 것이니, 우리는 서운하더라도 할머니는 가셔야 한다, 우리도 시간 나면 찾아 뵙겠다, 하고 달래 드리니까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월요일 오후에 다시 가 뵈니, 그 사이에 여사님들과 몇 차례 이야기가 있었던 듯하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정색을 하고 말씀하신다. "기협아, 나 여기 그냥 있으면 안 되니? 난 여기가 좋은데." 서두를 일이 아니다. "어머니, 여기가 편안하시다니까 제 마음도 기쁩니다. 여기 그냥 계시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그쪽은 제가 보기에 여기보다도 더 좋던데요? 조금 있다가 기목이 올 테니까 기목이 생각도 한 번 들어보세요."

세 시에 온다던 형은 다섯시 반이 되어서야 나타났지만, 어머니 얼러드리는 솜씨는 확실히 나보다 윗길이다. 형이 다녀가고서는 옮기는 것이 어머니 마음에도 당연한 일이 된 것 같다.

오늘도 두시 반쯤 가 뵈니 기분이 괜찮으시다. 엑스선 사진 찍으러 휠체어로 다녀오시는데, 힘든 기색이 전혀 없으시다. 병원에선 휠체어 타시는 것도 목욕하실 때 외엔 없었는데, 요양원에선 가급적 침대에 누워서보다 휠체어에 앉아서 많이 지내시게 해드린다니 그것만 해도 무척 좋아하실 것 같다. 병원에 정원만 있더라도 휠체어에 앉혀 바람 쏘이시게 해드릴텐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 못하는 옥상정원 외에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뿐이니 여사님들께 휠체어 앉혀 드려 달라고 수고를 청할 멋도 없었다.

결단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한 것을 넘어 오는 금요일 이후 어머니 생활을 생각만 해도 기쁘다. 병원급 의료서비스가 현장에 없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주저주저 해왔는데, 지난 번 감기 정도 대응에는 아무 문제 없겠고, 이천의료원이 10분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으니 더 큰 필요가 있더라도 큰 걱정은 없겠다.

 

 

세종너싱홈 원장 성기순

467-832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우곡리 374-11

전화 031-6343-119   팩스 634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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