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3. 22:31

8시 45분 병원 도착하자 여사님들이 휠체어에 바로 앉혀드렸다. 그런데 원무과에서 정산이 빨리 되지 않아 10시가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기다리다가 하도 늦어져 내려가 재촉하니, 간병비 한 항목의 책임자가 연락 닿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넉넉히 놓아두고 갔다가 나중에 정산하자고 했더니, 그러실 것 없이 그냥 가시고 나머지는 나중에 연락드릴 때 납부해 달라고 한다. 병원에서 돈 덜 받은 채 퇴원시켜 주는 건 첨 봤다. 세상이 좋아진 건지, 내가 신용을 잘 쌓은 건지.

꼬박 한 시간 동안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걸 괴로워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노상 누워 계시던 것보다 기분이 좋은 기색이시다. 정말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 드렸지만, 병원이란 곳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회복이 되셨으면 몸에 자극이 늘어날 길을 찾아야 할 텐데, 3월에 재활치료 며칠 시도해 보다가 포기한 이후로는 너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지내셨다. 병원은 생존하는 곳이지, 생활하는 곳이 아니다.

오락가락하다가 틈틈이 아내가 모시고 있는 어머니께 가 보면 휠체어에 앉아 싱글벙글하고 계시다가 "기협아, 난 여기가 좋은데, 여기 그냥 있으면 안 되니?" 하신다. 긴장을 풀어드리는 편이 좋다. "여기 좋으시면 여기 계세요, 어머니. 그런데 저쪽에도 좋은 면이 좀 있어요. 한 번 가 보세요. 갔다가 시원찮으면 바람 쐬고 돌아오시는 셈이죠, 뭐." "그래그래, 네가 알아서 해라." 하면서도 미심쩍은 기색이 잘 걷히지 않으시고, 한참 있다간 또 한 차례.

그래도 막상 떠날 때는 오랫만에 차에 앉으시는 게 싫지 않으신 기색. 굳이 앰뷸런스를 부를 필요까지 없겠다는 닥터 한 의견에 따라 내 차 뒷자리에 아내가 모시고 앉았다. 조심조심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아무 불평 없다가 거의 다 가서 "아이고, 궁둥이가 아프구나." 하셔서 아내 무릎을 베고 누우셨다.  출발 직후 구일산을 지날 때는 밖을 열심히 내다보며 "야! 뭐, 구경할 게 많다!" 하셨는데, 외곽고속도로에 오른 후로는 눈길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꼿꼿이 앉아 계셨다. 그러나 눈을 내내 활짝 뜨고 계신 걸 보면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계셨던 것 같다.

아내가 방에 모시고 가 짐을 정리해 드리고 첫 식사를 간병인과 함께 보살펴드리는 동안 나는 사무실에서 계약서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올라가 보니 도착한 지 40분 밖에 안 된 어머니께서 "야 기협아, 여기 참 좋다. 나 다른 데 안 갈란다." 다른 환자들과 아직 제대로 어울려 보지 않으셨지만, 어울릴 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하다는 걸 눈치채신 것 같다. 그리고 건물 안의 분위기만 해도 병원의 살풍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부터.

아내와 너싱홈에서 나와 해장국으로 점심을 하고 남한강변까지 한 바퀴 돌아본 뒤 2시반쯤 돌아와 보았다. 침대에 누워계셨다. 우리가 모시고 정원을 산책하고 싶다고 양해를 얻어 휠체어를 가져오는 참에 간식이 나왔다. "먹을거다!" 외치고 손을 막 뻗치신다. 초코파이 하나와 크림샌드('크라운 산도' 같은 것) 두 쪽인데, 간병인이 어릿어릿하는 사이에 초코파이를 움켜쥐셨다. 누운 채로 입에 우겨넣으시는 바람에 침대 등을 올릴 경황도 없이 등을 받쳐 일으켜 앉혀드리고, 아내가 작동 레버를 찾아 침대 등을 올려드렸을 때는 초코파이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잘 잡수시던 과자(웨하스와 홈런볼)와 과일통조림을 상당량 가져가기는 했지만, 너싱홈의 간식으로 바로 적응이 되실 것 같다. 더 달라는 타령이 없으신 것이 막 옮겨서 얼떨떨하신 탓도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분들도 다 함께 간식을 받아 드시니까 혼자서 더 내놓으라고 난동을 피우기도 좀 뭣하실 게다.

휠체어로 모시고 나오다가 외출에서 조금 전 돌아온 원장님과 만났다. 강남성모병원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원장님, 다시 봐도 사람이 참 끌끌하다. 잠깐 몇 마디 나눠보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분들 중엔 자기가 좋은 사람이란 인상을 주려고 자기 표현에 열중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 원장님은 상대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는 태도가 분명하다. 어머니에 대해선 '참 재미있는 어른 오셨구나.' 하는 인상이 금세 잡히는 것 같다.

아내는 현관 앞 비치파라솔에서 쉬게 하고 휠체어를 밀어 정문까지 한 바퀴 다녀왔다. 150미터 가량, 수준급의 정원, 참 기분좋은 곳이다. 더운 날씨지만 길 한 쪽으론 나무그늘이 짙다. 다람쥐도 꽤 많은지, 다닐 때마다 눈에 띈다. 길가의 꽃나무 가지가 길 안쪽으로 드리워진 곳에서 어머니는 손을 뻗어 잎새도 만져보시고 꽃도 만져보신다. 작년 4월 자유로병원에서 산책시켜 드린 후로 처음이란 생각에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현관 앞에 돌아와 보니 원장님과 원무실장님이 나와 있었다. 공무원에서 퇴직했다는 원무실장님은 나보다 몇 살 위가 분명한데, 마음은 훨씬 더 젊은 것 같다. '교수님', '박사님'을 대단하게 여기는 티를 너무 많이 내서 나도 듣기가 좀 거북스러운데, 어머니는 "하! 교수? 그게 뭐 별거라고!" 하며 태연하시다. 원장님은 살아오면서 응대해 온 범위가 넓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태도가 자연스럽다.

기억력 테스트도 겸한 듯, 원장님이 묻는다. "어르신, 제가 누군지 아세요? 아까 말씀드렸죠." 나는 당연히 "아, 당신이야 내 제자지." 하실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뜻밖에 잠깐 머뭇 하시더니 "당신? 누구지? 나 잊어버렸어." 하시는 것이었다. 아마 원장님이 '제자'로 얼렁뚱땅 묶어내는 범위를 벗어나는, 특별한 역할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이 그 사이에 자리 잡히신 것 같다. 원장님이 "네, 다시 가르쳐 드릴께요. 제가 여기 원장이예요." 하자 대뜸 "원장? 당신 어마어마한 사람이구만!" 하시는 바람에 다들 크게 웃었다. 내가 "어마어마한 분은 아니라도, 여기서 저희들 대신 어머니 살펴드릴 분이세요. 어머니께선 어마어마하게 보셔도 돼요." 했더니 정색을 하고 원장님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거 참 고마운 분이군요." 하고 멀쩡하게 인사를 차리신다. 원장님도 살짝 눈짓으로 내 한 마디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표현을 아끼는 사람이지만 전혀 모자라지 않다. 참 믿을 만한 사람이다.

방에는 원장님이 모셔드리겠다고 해서 현관 앞에서 바로 작별하고 떠났다.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않으신다. 어머니 마음에 아마 원장님도 믿음직하고, 장소도 편안하게 느껴지시는 것 같다. 가기 전에 아내와 그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편안히 자리 잡으신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자고 의논했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겠다 판단하고 바로 돌아왔다. 다음 주 화요일 아내가 중국으로 떠난 뒤, 봉하 가는 길에 들러서 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 7. 1  (0) 2009.12.25
09. 6. 27  (0) 2009.12.23
09. 6. 23  (0) 2009.12.23
09. 6. 15  (0) 2009.12.23
09. 6. 10  (0) 2009.12.23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