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2. 21:21

매일 잠깐씩이라도 어머니랑 놀아드리는 생활패턴을 지키기는 하고 있으면서도 지난 1주일간 제 마음은 다른 데 쏠려 있었습니다. 세상에 큰 변화가 있었고, 제 마음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앞으로 제 생활과 활동에도 꽤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지금 상태에서는 상관하실 일이 아니라 여겨져서 말씀은 드리지 않았죠. 그러나 언제라도 말씀드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라며 지금의 심경을 적어둡니다. 혹시 이 일을 함께 토론할 만한 기회가 없다 하더라도 이 아들의 마음이 무엇에 그리 쏠려 있는지, 어머니 마음에 전해지기 바라며 생각을 모아봅니다.

저는 노무현 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꽤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재임기간 내내 그 사람에 관해 더 깊이 알려고 애쓰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대통령이란 큰 자리를 얻었으면 아무리 큰 인물이라 하더라도 뜻을 펼칠 기회를 아쉬움 없이 누리게 되었으리라 생각했죠. 더러 석연치 않은 정책방향 얘기가 들릴 때는 제아무리 큰 인물이라도 그 자리엔 역시 모자라는 게 아닌가 갸우뚱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머니 병원에 누우실 무렵부터의 일입니다만, 퇴임에 임하는 태도, 그리고 퇴임 후의 생활 자세를 보면서 그 사람이 점점 더 크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도 작게 보일 만큼 그 사람이 큰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크기가 우선 그렇고, 게다가 알게 될수록 그 인간미가 참 좋은 분이더군요.

그 사람이 악당들의 음해에 몰려 소인배들의 비방을 받는 것을 보며 그를 변호하러 나설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변호'가 아니라 '반격'을 저는 바랐습니다. 마침 저는 얼마 전부터 <프레시안>에서 필자 대접을 잘 받고 있던 터라, 그 지면을 통해 작은 목소리라도 낼 길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최근 두어 달은 원래 추진하던 일들도 한옆으로 치워놓고 이 마음을 어떤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 씨의 역경은 더욱 깊어지고, 그에 따라 반격의 뜻은 제 마음 속에서 더욱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그 사람 곁에 가서 일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 유시민 씨를 찾아가 길을 찾아봐 달라는 부탁도 했지요.

그런데 이 양반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린 거예요! 세상을 "떠났다"고 했어요. 죽은 게 아니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하고 떠나버린 거예요!

어머니, 제 성격 아시죠? 웬만한 일에 잘 놀라지도 않고 감동도 잘 안 하는 냉소주의자. 그런데 그분의 별세 소식에는 곧장 실신에 가까운 아노미 상태에 빠져버렸어요. 며칠 동안은 어머니를 미옥씨한테 맡겨놓고 세상을 떠나서 지내고 싶은 게 제 첫 반응이었죠. 그분에 대한 제 애착을 웬만큼 알기 때문에 천하의 현실주의자 미옥씨까지도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풀어주데요.

결국은 마음을 가다듬고 책상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께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매일 가서 뵙고요. 일산 시내의 분향소에 한 번 다녀온 것 외에는 아무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글 쓸 수 있는 능력은 그분의 뜻을 기리는 데만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적던 일기도 치워놓고 있었습니다. 어제 영결식을 치렀으니 이제 저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야죠. 앞으로 제 글쓰기에는 그분의 뜻을 받드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이제 천천히 해나갈 일입니다.

어머니보다 다른 분께 마음을 더 많이 쏟았다 해서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어머니. 정우 기억하시죠? 대학 때 명륜동 집에 종종 놀러 오던 얌전한 친구. 아까 그 친구한테 위문 전화를 걸었어요. 그 친구는 돌아가신 분을 가까이서 여러 해 모셨으니, 제가 위로를 해줘야죠. 그런데 그 친구가 뭐라는가 하면, 자기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보다 눈물이 더 나더라는 거예요. 그 친구에게 아버님은 단순한 아버님이 아니라 스승 노릇이 더 크셨던 분인데. 자식이란 게 키워놓으면 다 소용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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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