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5>

기사입력 2002-11-15 오후 3:25:18 

 지난 달 모스크바의 돔 쿨투리(문화의 집) 극장에서 벌어진 체첸 독립군의 대량 인질사태는 러시아 당국의 대량 살상사태로 마무리되었다.
  
  8백여 명의 인질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1백여 명의 인질과 50여 명의 인질범을 전격적으로 살해한 러시아 당국의 ‘작전’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이 작전에 쓰인 화학무기가 국제협약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주된 공격무기가 가스였다면 인질의 일부만 목숨을 잃은 데 반해 인질범이 전원 섬멸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많은 의혹을 남겼다.
  
  이런 문제에 앞장서서 따지기 좋아하는 미국이 모른 체하리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만 붙이면 이스라엘의 몰상식한 팔레스타인 탄압도 역성들러 나서는 것이 지금의 부시 정권이니까.
  
  그래도 유럽 쪽에서는 뭔가 따질 것을 따지러 나서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월요일의 EU-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었고, “테러행위는 동기가 어떤 것이든 모두 범죄이며 정당화될 수 없다”는 하나마나한 말만 있었다고 한다. 칼리닌그라드 통행문제 등 EU 현안에 대한 러시아의 협조에 대한 대가로 유럽국들이 묵인하고 넘어간다는 분석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테러는 동기가 어떤 것이든 모두 범죄다. 그리고 누가 저지르는 것이든 모두 범죄다. 1백여 명의 인질은 독가스 공격이 아니었다면 살아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러시아 당국의 극단적 대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인질범의 대부분은 저항력을 잃은 상태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명분이 ‘테러와의 전쟁’이라 하더라도 이 공격은 국가테러리즘의 극단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다.
  
  이 작전이 아니었다면 8백여 명의 인질이 모두 살해될 수도 있었다고 러시아 정부는 강변한다. 그런데 생존자들의 증언은 인질범들이 그런 끔찍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리라는 쪽으로 모아진다. 굳이 증언이 아니더라도 인질범들의 목적이 그런 참혹한 결과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맹목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자살폭탄범 세 명만으로도 극장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50여 명이 떼지어 몰려들 필요가 없었다.
  
  돔 쿨투리의 체첸인들은 살상이 아니라 대화를 원했다. 그들은 푸틴 집권 이래 완고해진 러시아의 체첸 밀어붙이기 정책에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푸틴은 대화가 아니라 살상을 원했다. 그는 체첸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저항은 더 모진 탄압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범죄의 처벌에는 복수의 의미와 예방의 의미가 있다고 법철학에서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돔 쿨투리에서는 두 가지 범죄가 저질러졌다. 무고한 시민들의 신변을 위협한 체첸인들의 범죄, 그리고 2백 명 가까운 인명을 일거에 살해한 러시아 당국의 범죄. 이런 종류 범죄들을 예방할 만한 바람직한 처벌이 이루어졌는가?
  
  인질범 다수가 체포되어 재판과정에서 관련사안들이 논의되고 그 결과 적절한 양형이 이뤄졌다면 일거에 섬멸되는 것보다 좋은 예방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행위의 범죄성이 그 지지자들과 본인들에게까지 분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땅 죽고 말았으니 영웅이 되고 순교자가 될 뿐이다. 죽은 자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겠지만, 그들을 숭앙하는 사람들이 다음에 무기를 들고나올 때는 대화보다 살상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편 러시아의 범죄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 체첸 민족주의자들은 이 범죄의 처단에 자기네라도 나서야겠다는 사명감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역사를 통해 최악의 테러리즘은 중세 마녀재판에서 나치의 인종학살, 스탈린의 숙청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의 테러리즘이었다. 규모가 크고 견제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테러리즘에는 그럴싸한 명분이 없을 때가 없다. 다수를 현혹시켜 소수를 박해하는 데 공권력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가 행여 테러리즘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그만 원칙이라도 철저히 지키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검찰의 고문치사 사건 파장 속에 조폭 수사에 열성을 보인 검사라 하여 문제된 검사를 동정하거나 심지어 칭찬하는 글, 관행은 서서히 고쳐나가야 할 것이니 검찰의 사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글이 신문 지면에 울쑥불쑥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조폭의 잔인성과 무법성을 강조하며 그 검사의 “폐기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까지 보인다.
  
  일반 국민은 다수고 조폭은 소수다. 다수가 보기에 “짐승보다 못한” 조폭에게는 원칙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면 국민이 다른 방법으로 다수와 소수로 갈라졌을 때 그 소수를 위해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질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는 사회가 바로 파시스트 사회이며 여기서 국가테러리즘이 일어난다. 테러리스트 한 명을 쏘아죽이기 위해 무고한 시민 세 명을 함께 죽여도 좋다고 하는 푸틴의 러시아 같은 나라가 되지 않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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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4>

기사입력 2002-10-29 오전 9:08:20 

 지난 주 인도 신문 힌두스탄타임스 지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논한 칼럼 한 편이 ‘인도-중국, 바이-바이! (Hindi-Chini, bye-bye!)’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었다. 1962년 10월 20일 중국군이 히말라야를 넘어 중-인 전쟁을 일으킨 40주년을 맞아 중국과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글이었다.
  
  이 제목은 중-인 전쟁 전까지 중국에 대해 극도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네루 당시 수상이 ‘인도와 중국은 형제국 (Hindi-Chini, bhai-bhai)’이라 하던 구호를 패러디한 것이다. 고매한 인격자로 국민에게 존경받던 네루는 믿었던 중국에게 발등을 찍히는 바람에 현실정치에 어두운 몽상가로 비판받으며 심한 곤경에 처했다. 라드하크리슈난 대통령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자 네루는 ”우리 모두 환상 속에 살고 있었다“고 탄식했다.
  
  네루를 따르던 인도인들은 중국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비동맹정책을 추구한 네루 정부는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다. 1954년에는 ‘평화공존 5대 원칙’에 합의, 두 나라의 우의를 과시했다. 1959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면서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고, 이 무렵 중국이 인도를 제쳐놓고 파키스탄과 국경 확정 협정을 맺으면서 인도와 중국 사이에 국경 순찰대 사이의 충돌이 잦아졌지만 네루는 두 나라 사이의 근본적 우호관계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국도 네루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았다. 전쟁 3개월 전에는 중국군이 인도군 요새 하나를 완전 포위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극심한 공격을 자제하고 포위를 풀어준 일도 있었다. 인도는 영국이 1914년 티베트와 국경을 정했던 시믈라 조약을 이어받는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당사자끼리 새로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어느 나라도 히말라야 산맥 건너편에 영토의 야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어떻게든 잘 해결되리라는 전망이었다.
  
  인-중 전쟁은 인도의 자살골과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너무 깊이 들어갔다. 인도군이 스스로 주장하는 경계선인 맥메이헌 라인 북쪽에까지 진지를 구축하는 작전을 시작하자 중국군이 예상 밖의 대대적 반격으로 나온 것이다. 인도군은 일패도지했고, 나흘만에 분쟁지역의 요충지를 모두 점거한 중국군은 진격을 멈추고 협상을 요청했다. 이에 불복한 인도군은 반격에 다시 실패해 더 큰 수모를 겪었다.
  
  힌두스탄타임스 지의 필자 말호트라 씨는 전쟁 발발 후 인도 정부의 대응이 잘못된 극심한 예 두 가지를 지적한다. 그 하나는 전투병과 출신이 아닌 가울 장군을 반격전의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인도군이 참담한 패배를 겪은 후 외신기자들이 라드하크리슈난 대통령에게 가울 장군까지 포로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대통령이 씁쓸한 얼굴로 “유감스럽게도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또 하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전쟁 발발 후 18일간 온 정계가 크리슈난 메논 국방장관의 인책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네루 수상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사회주의자 메논 장관은 인도 비동맹정책의 기수로서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였다. 그는 1957년 이래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 인도군의 현대화에 막중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만, 당시는 ‘중국의 배신’을 초래한 장본인으로서 정치공세의 표적이 되었다.
  
  인-중 전쟁에서 중국은 “인도의 도발에 대해 최소한의 대응에 그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그 덕분에 제3세계에서도 침략자라는 지탄을 면할 수 있었으며 그후 인도와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의 힘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 네루 정부에게는 망신살의 원인이었던 셈이다.
  
  이 일을 돌아보며 요즈음 남북관계의 어수선한 모습을 생각해 본다. 이런저런 곡절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남북관계의 발전을 여전히 바라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염원 때문에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사실도 믿기 싫어하고 군사도발에 대한 북한의 책임에도 눈감고 싶어한다면 네루 정부 못지 않게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확인도 되지 않은 핵개발을 이유로 진행중인 관계까지 냉각시키려 드는 것은 불신을 키워 관계를 악화시키는, 파괴적이고 부도덕한 태도로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 네루 수상의 중국 신뢰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이 인-중 전쟁의 마무리 과정에 임하는 중국의 태도로 확인되었다. 중국이 용인할 한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강경파에 떠밀려 그 한도를 넘어버린 데 문제가 있었다.
  
  북한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닐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북한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서 우리의 필요와 소망에 맞출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실현해 나가는 길이다. 그런데 한쪽에는 무조건 믿자고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무조건 믿지 못하겠다고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말호트라 씨는 네루 측과 그 반대자들이 모두 정치논리에 휘말려 현실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 정계의 대북정책 논란에 대해서도 똑같이 들어맞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거인들이 전쟁 40주년을 맞아 과거를 정리하고 상대를 다시 보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는 판국에 우리는 민족과 국가의 최대 과제를 놓고도 믿음직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3>

기사입력 2002-10-19 오전 9:07:07 

 중국사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래 30년간 중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왔다. 그러다 이 달 들어 비로소 중국땅을 밟아보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절감했다.
  
  중국이 덩치 큰 나라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속에 들어가 보고는 나라의 ‘덩치’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차를 밤새워 타며 먼 곳을 구석구석 다녀본 것도 아니다. 북경에 며칠 머무르고 여행이라면 3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산해관쪽을 둘러본 정도다. 그러나 바닷물방울을 맛보고 바닷물 맛을 아는 격이랄까, 북경의 골목들을 산책하고 시장바닥을 둘러보고 이런저런 식당에서 음식 맛을 보며 은연중 느끼게 되는 것이 이 나라의 덩치다.
  
  유럽은 구석구석 다녀본 셈이다. 서쪽의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동쪽의 폴란, 헝가리, 루마니아까지. 유럽을 다니면서 자주 중국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크기도 하고 조금 작기도 한 여러 나라들을 모두 합친 유럽 전체와 맞먹는 것이 중국의 덩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중국에서 며칠 지내보며 절감한 것은 유럽의 크기와 중국의 덩치는 함께 비교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러 나라를 합친 유럽의 크기라는 것은 산술적 합계일 뿐이다. 비슷한 크기의 영토와 인구지만 하나의 역사배경을 가지고 하나의 언어를 쓰며 하나의 정부에 통제받는 하나의 나라를 이룰 때 그 크기는 각 지방의 산술적 합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중국의 물가구조에서 이 특이한 덩치의 존재를 느낀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엄청나게 싸다. 싼 물가수준은 싼 임금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급기술과 고급재료가 필요한 고급상품일수록 국제수준과 가격의 차이가 적다. 자동차는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다. 재래식 주거는 매우 싸지만 고급 아파트는 우리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대다수 국민은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물가가 싸기 때문에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화장실조차 없는 집에 살지만 골목에 몇십 미터 간격으로 공중화장실이 있다. 볼 일 보러 집밖에 나가야 하고, 고급 전자제품을 집집마다 갖추지 못하고 살 뿐이다.
  
  마이카가 없는 대신 중국 서민들에게는 자전거가 보물이다. 그리고 이 보물은 길에서도 보물 대접을 받는다. 모든 길 설계에는 자전거가 배려되고, 교통단속도 자전거길 침범에 엄격하다. 북경에서 운전을 시작한 한 한국인이 몇 달 동안 적발을 당한 것은 우회전할 때뿐이었다고 한다. 넓은 길의 맨 바깥 차선이 보통 자전거 차선이기 때문에 우회전을 하더라도 회전지점까지 그 안쪽 차선으로 가야 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익숙치 않은 것이다.
  
  기차로 같은 거리를 여행하는 데 싸구려칸과 고급침대칸 운임에는 열 배의 차이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사치와 필수 사이에 비슷한 수준의 격차가 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 중산층 수준의 안락한 생활을 하려면 절대다수 국민보다 열 배 이상의 비용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중국의 덩치를 어떤 식으로 느끼는가. 최저생활 개념에 가까우면서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안정된 생활조건을 누리는 10억 안팎의 인구가 하나의 정부를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 물가구조의 배경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임금과 물가의 국제수준과의 격차를 매우 천천히 줄여나가고 있고, 대다수 국민은 이 정책에 순응하고 있다. 그 동안 중국의 많은 수출품이 국제시장에서 낮은 임금수준 덕분에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10여 년 전 공산권 붕괴 후 중국이 본격적인 개방의 길로 접어들 때 외부의 중국 전문가 사이에는 중국의 분열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나도 이것을 솔깃하게 들었다. 공산혁명의 신화가 색이 바래 문화대혁명 같은 폭력으로 버텨 오던 나라가 개방의 길에 들어설 경우 각 지방 사이의, 그리고 사회계층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견뎌낼 힘이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저력을 서서히 드러내면서 21세기 슈퍼파워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각 지방 사이의 개발편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지만 효과적인 보완관계를 중심으로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극심한 빈부격차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빈부격차는 사회불안씨앗이면서 또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댐의 낙차가 클 때 에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위험요인이 커지는 것과 같다.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등 공권력으로 이 낙차를 크게 유지함으로써 대외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우리도 개발독재 과정에서 겪은 일이다.
  
  생활수준 향상의 열망을 가진 10억의 인구가 상당히 안정된 정책노선에 따라 세계를 상대로 그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하리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기세다. 무역장벽은 갈수록 낮아지는데, 농산물이건 공산품이건 중국제품과의 정면대결은 밝은 전망을 가질 수 없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그리 크지 않은 돈으로 안락한 관광과 풍성한 쇼핑을 즐기며 중국의 임금-물가 수준을 깔보는 마음을 품는다. 그런데 바로 이 낮은 임금-물가 수준에 근거를 둔 막강한 경쟁력이 세계시장을 뒤덮으려 하고 있다. 비슷한 분야에 생산력을 가진 데다 바로 이웃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이 이 경쟁력의 첫 번째 표적이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섬뜩한 일이다.
  
  중국이 슈퍼파워가 되더라도 미국처럼 국민의 소비수준을 높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다섯 배 인구가 미국처럼 무절제한 소비의 길로 접어든다면 지구가 오래 견뎌내지를 못할 테니까. 그 대신 소비수준 높은 국가들이 버텨내지 못하도록 경쟁력의 압박을 통해 ‘소비수준의 하향평준화’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든다. 하늘을 따르는 길과 거스르는 길이 어떤 방향인지, 조금 짐작이 갈 것도 같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