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2. 21:17

지난 주말, 어머니가 차도를 보이고 계실 때 병실에 들어서는 나를 마침 어머니 곁에 있던 장 여사가 보고 "어제보다도 많이 좋아지셨어요. 아침식사도 깨끗이 비우셨어요." 하자 그 옆에 있던 채 여사가 "저희한테 쌍욕도 하셨다구요." 하고 둘이 깔깔 웃는다. "미안합니다. 무슨 욕을 들으셨어요?" 물으니 장 여사가 "잘 하시는 거 있잖아요?" 하곤 둘이 서로 눈길을 나누며 합창한다. "이, 쌍년아!"

지난 2월 주 여사 자리를 채운 채 여사는 세 분 중 제일 나이가 적어 아내와 비슷하고, 또 연길 출신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갔을 때 얘기하다 보니 아내가 연변에서 근무하던 주 서점(연변신화서점)에서 제일 가까이 지내던 동료의 하나인 신 과장의 친구임을 알게 되었다 한다. 그 후로는 아무 얘기도 더더욱 스스럼없이 해주게 되어 마음이 매우 든든하다.

채 여사의 친구 신 과장은 나도 여러 번 자리를 같이해 꽤 알 만한 사람이다. 입이 형편없이 더러우면서도 아무에게도 기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는 사람. 입만 뻥끗했다 하면 뒤집어질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 아내 이야기로, 식사 중에 신 과장의 기습 조크에 걸려 사래 들려보지 않은 사람이 동료 중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신 과장만 만나봤지만 그의 쌍둥이 동생은 형보다도 사람 웃기는 재주가 한 수 더 위라고 하는데, 채 여사는 두 형제와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동생 쪽과 더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형제의 결혼관계도 코믹하다. 아내들이 또 쌍둥이 자매라니! 형제간에 동서간이요, 자매간에 동서간인 집안이다.

채 여사도 유머 감각이 여간 아닌 분 같다. 내가 어머니 곁에 앉아 있는 동안 채 여사가 다른 환자분들 대하는 걸 보면 아주 능동적이다. 꼭 해야 할 일 아니라도 해드릴 일을 잘 찾아서 기분좋게 열심히 하고, 성질이 고약한 환자들에겐 냉정하고 단호하다. 저번에 어머니 옮겨모실 가능성을 여사님들께 얘기해 드릴 때도 채 여사의 반응은 매우 솔직했다. "할머니 가시면 여기 병원 생활 심심해서 어떻게 하지?"

아내가 얼마 전에 전해준 얘기. 어머니가 욕설을 제일 남발하시는 건 목욕시켜 드릴 때라고 한다. 잘 않던 움직임과 익숙치 않은 자극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실 것이다. 한번 어머니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떼시는 걸 보니 무슨 소리가 나오실지 뻔해서 선제공격을 했다고. 채 여사와 어머니가 눈을 똑같이 부릅뜨고 마주 보며 "이, 쌍..."까지 합창이 나오다가 어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시더니 욕을 끝맺지 않고 딴전을 피우시더라고.

여사님들이 기분좋게 받아드리니까 그들을 향한 어머니의 욕설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향을 보인다. 어쩌다 간호사가 혈압 재러 들어왔다가 잘못 건드리면 적대적인 표정을 곁들인 오리지널 욕설이 나오시지만, 여사님들에겐 일상적인 취미활동으로 들리는 경쾌한 가락에 얹으신다. "이, 쌍~ 년아~"

엊그제 내가 산에 간 동안 아내가 혼자 가 뵈었는데, 내가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한다. 자기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채 여사에게 욕설을 내뱉으려 하시는데 채 여사가 눈치를 채고 "이, 쌍~"까지 맞춰드리니까 뒷부분을 삼켜버리셨다가, 잠시 후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이, 쌍~"까지 하신 다음 채 여사의 부릅뜬 눈을 보시고는 한 템포 쉬어서 "예쁜아~" 하시더라고. 채 여사가 그대로 흉내를 내드리니까 그 창작품이 마음에 드시는 듯 "이, 쌍~ 예쁜아~"를 몇 차례고 되풀이하시더라고.

이번 주 들어 식사는 죽 한 그릇을 꼬박꼬박 비우시지만 간식은 그리 많이 드시지 않는다. 여사님들도 아직 조심스러워서 많이 권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기력이 보름 전보다 많이 떨어지셔서 식사 후에 오래지 않아 잠에 빠지신다. 식사 후 30분 가량은 소화를 위해 윗몸을 일으킨 자세로 계시는데, 그 자세로 잠에 빠지실 때가 많다. 노래를 불러드리면 입을 오물거리는 정도라도 따라 하시고 오래 버티시는데, 수필을 읽어드리면 여축없이 잠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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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2. 21:10

오늘 아침부터 진지를 제대로 드시기 시작했다. 점심 때 식사를 모시니 지난 주까지처럼 적극적으로 빨리 드시지는 않지만 죽 한 그릇 가뿐히 비우신다. 절반쯤 드셨을 때 잔 새우 볶아둔 것을 섞어 드리느라고 사이가 좀 떴지만 재촉하는 기색이 없으시다.

어제 식사를 영 못하시는 것을 보고는 튜브 피딩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닥터 한이 얘기했었다. 그저께부터 링거를 꼽아놓았지만 속도를 높이지 못하기 때문에 영양 공급이 충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연말까지 반 년 너머 튜브 피딩을 하며 맥없이 누워계시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부쩍 걱정이 되었었기 때문에 안정된 모습을 되찾으신 것이 무척 반가웠다.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한 차례 고생이 이제 마무리되시는 것 같다.

닥터 한은 가벼운 감기일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만일을 생각해서 혈액검사를 맡겨놓았다고 했다. 노쇠하신 몸이라서 가벼운 문제에도 반응이 크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 년 전 회복을 시작하신 뒤로 이 정도 문제가 처음이라는 것이 아마 운이 좋으신 편일 것이다.

어제까지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보면서는 요양원으로 옮겨 모시는 것이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고비를 넘겨 기력을 되찾으신다 해도 병원 아닌 곳에서 이런 문제를 겪으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볼 일 보기 전과 본 후의 생각이 다르다더니, 용태가 안정되신 것을 보니 역시 옮기시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도로 고개를 든다. 아무래도 병원에 계시면 뭐든 감염 위험이 더 클 것이고, 생활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드리는 일이 위험 조금 줄이는 것보다는 중요할 것 같다. 다만 응급 태세는 더 비중을 두어 생각할 일이니 규모가 작은 시설에 모시지는 말아야겠다.

혹시 비슷한 문제를 겪으실 경우를 대비해 며칠 동안의 용태 변화를 적어둔다.

월요일(4): 화요일 오전에 들은 바로, 저녁 후에 기침을 좀 힘들게 하시다가 음식을 조금 토하신 뒤 기력 없이 쉬셨다고 한다. 월요일 점심때 모셨던 아내가 이 말을 듣고는 평소보다 더 많이, 좀 과하시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간식을 드셨다고, 체하신 게 아닌가 싶다고 얘기했다.

화요일(5): 점심 전에 가 보니 기운 없는 모습이었고, 점심식사는 절반 안 되게 하셨다. 의식은 분명하셨고, 천천히 잡수시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만 드시겠다는 말씀도 분명히 하셨다. 저녁 후에 가 보니 점심때와 별 차이 없는 모습이셨고, 저녁식사는 반 그릇 하셨다는 애기를 들었다.

수요일(6): 9시에 들르니 닥터 한이 방 앞에 있어서 가벼운 감기로 생각된다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6시경 들르니 37.3도 가량의 미열이 있고 조금 멍하신 상태였으나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괜찮게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목요일(7): 점심때 가니 체온은 정상이시라 하는데 의식이 조금 흐리신 것 같았다. 식사를 떠 드리는데 입에 무신 채 잊어버리시는 것 같을 때도 있고 삼키기 힘들어 하시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3분의 1 가량 떠 드린 뒤 포기했는데, 잠시 후 오한이 드는 것처럼 괴로워하셨다. 닥터 한이 와 보고 아직 체온이 정상이라도 열이 오르기 시작할 것 같다고, 링거를 꼽도록 했다. 저녁 후에 가 보니 머리에 찬 물수건을 얹어놓아 드렸는데, 얼굴의 홍조로 보아 열이 꽤 있으신 것 같고 의식이 잘 잡히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금요일(8): 점심 전에 가니 열은 내리신 듯 홍조가 가셨고 괴로움이 없어 보였다. 내가 온 것을 보고 빙긋이 웃음을 띠시니까 곁에 있던 여사님들이 반가워하는 것이, 그 동안 그만한 표정도 없이 지내셨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말씀이 없으시니까 저희가 너무 재미없었어요.” 하고 농담도 건넨다. 그러나 의식이 오래 집중되지 못하시는 것 같았고, 식사가 나와 권해 드리려니 눈은 뜨신 채로 반응을 못하신다. 닥터 한이 와 보고는 저녁까지 식사를 못하실 경우 튜브 피딩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오늘(9): 기운이 떨어지셨을 뿐,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신다. “어머니, 노래 부를까요?” 해도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푸른 하늘 은하수> 가사를 보여드리며 부르니 즉각 따라 읊으신다. 그러면서 정신이 바짝 드시는 듯 눈에 장난기가 초롱초롱 떠오르고 농담도 시도하신다. 수필집에서 한 꼭지 읽어드리니 그만큼은 집중이 계속되지 못하시는 것 같다. 식사는 천천히라도 힘들지 않게 하시고 딸기와 과자도 좀 드셨다.

기운을 되찾으실 동안 두 차례씩 계속 가 뵈어야겠다. 의식이 다시 활발해지시는 과정에서는 내가 드릴 수 있는 종류의 자극이 요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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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22. 21:06

어제 대덕화 보살님과 그 올케인 성진행 보살님이 다녀갔다. 어머니께서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하신다. "졸업생들이구먼." 하신다. 그러나 어렴풋이 기억이 깔려 있으신 듯,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도반을 상대하는 어투가 되신다. 사고력이 명민하신 데 비해 기억력에 결함이 있으신 것인데, 생각하면 그걸 꼭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기억력이 완벽한 사람은 보르헤스 작품에나 나온다. 찾아오는 이들을 그 정도 응대해서 당신 마음을 보여주실 수 있다면 나름대로 정상적인 삶이라 할 것이다. 요양원에 옮기시면 생활을 충분히 즐기며 지내실 것이 기대된다.

두 분 보살님이 재작년 초여름 어머니 쓰러지실 때 모시고 있던 분들이다. 병원에 여러 번 찾아준 것이 어머니를 불제자로서 존경하기 때문이라 하지만, 아마 그 인연도 많이 생각될 것 같다. 대덕화 님에 비해 성진행 님이 자주 못 왔는데, 알고 보니 전주에 사신다 한다. 그렇게 먼 데서 서울 오는 길에 이렇게 시간 내 찾아와 주시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대덕화 님은 산뜻한 용모처럼 성품도 명민한 분인데 성진행 님은 차분한 눈길에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분이다. 두 분 다 어머니의 씩씩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에 무척 기뻐했지만, 더 오랫만에 온 성진행 님의 소감이 더 큰 것 같았다. 그런 모습으로 회복되시도록 보살펴드린 공로를 치하받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어 가고 있는데, 성진행 님의 치하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어머니만이 아니라 내 모습도 좋아졌다고, 큰 수행을 닦은 스님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씀 들으며 참 눈밝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다. 지난 2년간의 내 생활에는 수행의 의미가 있었다. 엄격한 절제를 통한 수행은 아니었지만, 일과 생활이 의미가 큰 화두들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축이 어머니 모시는 일이었다. 2년간 어머니께 제일 많은 자극을 드린 것이 나였는데, 내 마음에 그만큼의 안정감이 있었던 것이 어머니의 회복 방향에 작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두 분을 보낸 뒤 작은형과 통화가 되었다. 일요일날 오후에 다녀간 얘기를 여사님들에게 듣고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드디어 받았다. 실망감을 어쩔 수 없다. 파라밀과 용인백암을 들러 보라고 당부한 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 못 가봤다는 것이다. 일요일 올라오는 길에 들러보려 했는데 못 찾았다고 한다. 동네 이름과 시설 이름만 외워 가지고 전화번호도 없이 나섰던 모양이다.

왜 그럴까? 3월 초 이래 매주 어머니 뵈러 오는 것을 보며 생활감각이 좀 안정됐는가 했는데... 남쪽으로 모시면 형이 더 쉽게 자주 찾아뵙는 것이 어머니께도 기쁨이 되고 우리 내외도 책임을 더는 길이 되지 않을까, 형제간에 당번 교대하는 것도 모양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형 성격에 맞지 않는 역할을 내가 꿈꾸었던가보다. 딴 세상 사는 신선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역시 요양원도 우리 내외가 결정해야겠다. 요즘 어머니가 사람들 응대하시는 가닥을 보면 한편으로 요양원에 가서 생활 내용이 풍부해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빠지고, 또 한편으로는 답답한 병원 생활에 언제 짜증을 일으키기 시작하실지 조마조마하다.

진인선원과 용인백암 사이의 선택이다. 진인선원이 오래된 곳이라 운영에도 안정감이 느껴지고 시설, 환경에서도 약간 우월하다. 위치에서만 용인백암이 우월하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불교계 시설을 꺼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번 회복되시면서 여러 가지 집착을 벗어나신 느낌을 받는데, 불교에 대한 집착도 그중의 하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여생을 지내시는데, 불제자라는 이름표도 떼어버리시고 가급적 보통 할머니로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불교계 시설을 꼭 피할 것은 아니라도, 더 못하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있으면 하는 생각으로 용인백암을 살펴 왔다.

그런데 어제 두 분 보살님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보이신 불제자 모습에서 느껴진 것이 있었던지, 불교계 시설을 회피하는 마음이 약해졌고, 또 형에게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진인선원에 무게를 두게 된다. 요양원이 안정된 곳이면 가족에게 살펴볼 부담이 적고, 또 진인선원 같으면 우리가 다니기 쉬운 곳이다. 형이 다니기엔 좀 힘들지만, 덜 힘들다 해서 책임감을 더 느낄 사람도 아니니 앞세워 고려할 조건이 아니다. 다음 주 중에 진인선원에 모실 준비를 하고, 형이 이번 주 중에 의견을 내면 받아들일 여지를 두기로 한다.

막상 진인선원으로 마음을 돌리고 보니, 불제자 이름표 붙이고 지내시는 것이 어머니께 크게 불편한 일 없으실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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