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재를 위해 약간의 근현대사 연구를 살펴본 가운데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논문이 윤해동 등이 엮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 1>에 실린 이승엽(교토대)의 '조선인 내선일체론자의 전향과 동화의 논리'였다. 이 논문에는 열렬한 조선인 내선일체론자 현영섭이 매우 인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영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현영섭은 주어진 시대를 능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려 애쓰고 하나의 이론에 투철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뉴라이트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대안 교과서'를 운위하는 '뉴라이트 역사가'들이 적어도 현영섭 수준의 고민을 하고 진정성을 가지기 바란다. 지나간 70년을 되돌아보는 이점을 활용해서 현영섭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현영섭의 모습을 대략이라도 옮겨놓기 위해 이승엽 논문에 실린 현영섭 논설의 일부를 재인용한다. 논설의 출처는 여기에 다시 밝히지 않는다. 논설의 일부는 현영섭의 창씨개명이름 아마노 미치오(天野道夫) 명의로 발표된 것이다. (현영섭의 편력을 개관한 김민철의 글은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엮은 <친일파 99인 2>, 66~76쪽)
  
  "나는 꿈꾼다. 반도의 청년이 대다수 임금과 나라를 위해 기쁘게 죽는 날을!"
  
  (1) "병합 전의 조선은 지옥이었다고 해도 좋다. 오랫동안 지나의 지배와, 우열하고 탐욕스러운 지배 계급에 의해 민중의 생활은 극도로 짓밟히고, 민중은 삶을 저주했던 것이다. 러시아제국은 조선에까지 그 동방 침략의 마수를 뻗쳐왔다. 일노전쟁에 의해 일본의 서구인의 동양 침략에 대한 제지가 없었더라면, 조선인은 전부 백인의 노예가 되어 멸망했을 것이다. 과거의 조선! 근대과학의 세례를 받은 우리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역사는 전부 암흑의 역사였고, 우리가 오늘날 생존해 있는 것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과거와 현대는 완전히 면목을 달리하고 있다."
  
  (2) "나의 학생시절에 조선인 학생 친구들과 모여 함께 조선 문제를 논했을 때, 어느 학생이 '조선인이 전부 죽는다면 함께 기쁘게 죽을 것이다'라고 극히 절망적인 말을 토했던 적이 있었다. 정말로 양심이 있는 자라면 이 말을 극단적인 말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
  
  (3) "만약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외에 살 길을 알지 못한다면, 일본국토 내지 동양에서는 살아서는 안 된다. 자살하든가, 반항하여 형무소에서 살든가,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자살이다. 참으로 일본 국가를 사랑하지 않고서,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약간의 위선자가 되기보다도, 자살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자살을 원하지 않는다면, 일본 국가를 사랑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지나사변에 즈음한 조선인의 총후열성은 아직 충분치 않지만, 이와 같은 행동은 (일본에 반항했던 역사적 죄과를 : 인용자) 갚음이 되고, 명실공히 황국신민이 되는 길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아직 우리는 조건부 일본인이다. 선거권도 없고, 의무교육도 없고, 병역에 나갈 의무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생활 정도는 낮고, 또 애국심에 있어서 내지인보다 아직 특별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 사람이, 바로 금고열쇠를 건네받을 리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그 남의 집 사람이 완전히 되어 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5) "만약 끝내 조선인이 독특의 생활감정이나 언어고수한다면, 조선의 풍속습관을 견지한다면, 배타적 정치적 감정으로까지 발전할 것이라 단언하며, 우리의 자손이 불행한 날을 맞을 것을 '예언'한다. 그 불행을 나는 거의 병적으로 느끼기에, 끝내 급진적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6) "나는 꿈꾼다. 반도의 청년이 대다수 임금과 나라를 위해 기쁘게 죽는 날을! 완전히 일본화된 조선인 중에서 재상이 나오는 그 찬란한 날을! 백 년 후일까 수백 년 후일까."
  
  (7) "이력서의 원적에는 조선출신임이 밝혀져 있다. 내지에 적을 가진 타이피스트만을 찾는 상점이 많다. 호적법은 희망자에 따라 내지로 적을 옮기는 것도, 또는 조선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은 후일 해결될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창씨는 그 첫 출발이다."

  
  "근대문명만을 문명으로 규정하고 그 이전 농업사회를 몽땅 야만으로 규정한다면"
  
  (1)과 (2)에는 조선의 역사 내지 과거의 조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담겨 있다. 어떤 가치도 둘 수 없는 야만상태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은 조선인을 러시아의 노예가 될 운명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원래의 야만상태에서 건져내 준 해방자인 것이다.
  
  일본이 건져주기 전에 조선인이 처해 있던 상황이 워낙 참혹했기 때문에 "오늘날 생존해 있는 것이 불가사의할 정도"라고 현영섭은 말했다. 일본의 조선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 전의 상황을 나쁘게 규정할 필요가 있었을 테니, 과장이 조금 심했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점에서는 이영훈도 현영섭보다 별로 못하지 않은 것 같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근대문명만을 문명으로 규정하고 그 이전 농업사회를 몽땅 야만으로 규정한다면, 일본의 조선 합병을 문명 전파의 혜택으로 고마워할 수 있다. 다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이영훈에게는 일본의 실효적 지배 밑에 살고 있던 현영섭과 달리, 왜 꼭 일본이 그 역할을 맡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 역할을 객관적 기준에서 제대로 해낸 것인지 밝힐 부담이 더 얹혀져 있을 뿐이다.
  
  (3)을 보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민족주의,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일제 통치에 굴복하는 데 대한 대안이었다. "결국 자살이다." 잘라 말하는 것이 그 대안들을 나름대로는 목숨을 건다는 심정으로 모색한 결과였을까, 아니면 그저 난폭한 말장난이었을까. 이 글을 발표한 것은 1938년,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터뜨린 뒤다. 모든 대안에 대한 그의 부정은 대안을 모색하던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을 담은 것이기에 그토록 극단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현영섭 친일노선의 진정성을 드러난 글만 놓고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당시 수많은 친일파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을 개진한 사람의 하나이므로 적어도 기회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그의 관점을 이승엽이 정리해 놓은 것이 조금 더 참고가 될 것이다.
  
  "현영섭은 민족주의 진영에 대해 '저 민족주의자의 지배를 받을 정도라면 죽음을 택하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극단적인 언어를 쓰며 강한 불신감을 나타냈다. 또한 운동의 현상적 측면에서, 민족주의 운동은 끊임없는 파벌싸움을 통해 스스로 세력을 약화시켜 결국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지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했다. 민족주의 사상이란 '하등의 과학적 배경을 가지지 않은 제멋대로의 감정으로 조선에 있어서는 민중의 무지에 호소'하는 것일 뿐이니, '가정부(假政府)를 만들어 정쟁에 빠져 정치노름을 한 그들 저주받을 민족주의자들'은 결국 '옛날 조선의 지배계급이 멋대로 마음껏 했던 것과 같이, 자유롭게 설치고 싶은' 권력욕 때문에 '타도 제국주의의 미명에 의해, 조선의 민중을 유혹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 220~221쪽)
  
  "전향자는 스스로 전향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가지기 쉽다"
  
  (4)에서 현영섭의 고뇌는 계속된다. 그는 모든 대안을 내팽개치고 일본의 조선 통치 이념 '내선일체'를 끌어안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념을 뒷받침해 주지 않았다. '내선일체'는 진정성 없는 사탕발림이었다. 그는 이 사탕발림을 현실로 끌어오기 위해 조선이 일본에게 갚아야 할 역사적 죄과까지 꾸며내야 했다. 원죄와도 같은 이 죄과를 갚으려는 조선인의 노력이 '내선일체'의 구원을 가져오는 길이라고 그는 믿었던, 아니, 믿고 싶어했던 듯하다.
  
  (6)은 현영섭이 자신의 이상향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 '재상'이란 '일본국' 재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대동아공영권을 지배하는 '일본제국' 재상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힘은 당시 현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 원리에 내재된 모순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까지 숱한 반발이 있었던 것이지만, 현영섭은 그 힘만을 찬양하며 조선인도 그 힘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제국주의의 힘을 그토록 동경했다면, 왜 그는 혼자 조용히 조선인 대열을 떠나 일본인이 될 길을 찾지 않고 조선인 전체가 함께 갈 것을 촉구하고 나섰을까? 조선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제국주의에 더 잘 공헌하고 공로를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이었을까? '조선'을 극렬히 부정한 그의 태도로 보아 후자 쪽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그리고 그의 전향 경력이 그의 열성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친일 논객으로 나서기 얼마 전까지 그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계열 반체제 운동에 몇 해를 바친 바 있다.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앨 고어가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장했다. 그런데 그 직전 고어 진영에서 정치자금법에 저촉되는 스캔들이 터져나온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공화당 쪽에서 "고어가 그런 소리 할 자격이 있느냐?"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고어는 "개종자의 열정(convert's fervor)으로 이해해 달라"고 유머로 대꾸했다.
  
  여러 사람 앉은 자리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워 물 때, "왜 옆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느냐?" 나서서 불평하는 사람은 원래 안 피우던 사람보다 최근 끊은 사람이기 쉽다. 전향자는 전향 대상에게 전향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는 동기 외에도 스스로 전향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가지기 쉽다. 안병직, 이영훈, 김문수, 이재오, 신지호 등 전향 경력 인사들이 유별나게 극단적이고 과격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현영섭의 주장과 틀을 같이 하는 것"
  
  (5)의 내용은 일반 친일파와도 구분되는 현영섭의 철두철미한 친일 노선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의 친일파 주류는 이광수, 최남선으로 대표되는 '평행제휴론'이었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일본제국의 일부가 되겠다는 입장으로 그 중에는 '조선 자치' 주장도 있었다. 반면 현영섭이 대표한 '동화일체론'은 소수파이면서도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영섭은 언어, 풍속 등 조선의 정체성을 파기하지 않으면 "배타적 정치적 감정"으로 발전하여 조선인의 자손에게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식민주의 역사관을 받아들여 세계사가 약육강식을 통한 '대국가주의' 흐름을 타고 있으므로 일본의 조선 합병을 거역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본 것이다.
  
  자본주의화를 뜻하는 '문명화'를 지금의 세계사에서 거역할 수 없는 필연으로 보아 민족주의를 벗어던지고 고속성장에 매진할 것을 제창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70년 전 현영섭의 주장과 놀랄 만큼 틀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물론 현영섭만큼 센세이셔널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명색이 민족국가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정도면 따라갈 만큼 따라가는 것으로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인수위 책임을 맡은 어느 대학 총장이란 양반이 '오렌지'를 '어륀지'로 읽을 수 있는 영어교육의 필요를 주장해 눈길을 모은 일이 있다. 조그만 일이지만 이런 조그만 일에서 그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섬세한 발음 감각에서까지 동화 대상에 최대한 접근하려는 그 정성은 같은 시기에 태어났던들 현영섭의 동지로 훌륭한 자격이 있었을 것이다.
  
  (7)에서 현영섭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차별 철폐를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지혜와 용기와 자비심을 겸비한 현대의 영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뭇 사람들과 달리 현실을 직시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자기 한 몸보다 '조선인'이라는 더 큰 나를 구원하고자 애쓰고, 그 노력을 통해 일본의 영광을 향한 역사의 흐름에도 공헌하는 훌륭한 인간이며 좋은 일본인이라고.
  
▲ 친일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서 배척할 수 있을 때 친일파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 이승만은 '반일'을 외치면서도 친일의 의미를 밝힐 길을 막았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파 단죄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뉴시스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 편견에서 출발하여 객관세계를 일률적으로 규정"
  
  패전 후 고국으로 귀환하는 일본인 대열 속에서 현영섭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일본에 간 후 다른 곳도 아닌 주일 미국대사관에 그가 근무한 것은 호구지책이었을 뿐일까, 아니면 그의 출신과 경력에 적합한 어떤 역할을 맡기 위해서였을까? 완전한 일본인이 되려는 꿈을 이뤘다는 만족감 속에 이 세상을 떠났을까?
  
  조선을 부정한 현영섭의 신념이 애초에 헛된 망상이었을까, 아니면 일본의 패망이라는 잔인한 현실에 억울하게 짓밟힌 아름다운 꿈이었을까? 그와 같은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좌익에서 전향했던 인정식의 비판이 이승엽의 논문에 인용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현영섭씨의 소론이 자신의 말로는 리상주의라 하지만 사실은 리상주의도 아무 것도 아니다. 확실히 사고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옛날의 '아나-키즘'의 무체계적인 잔재를 많이 엿볼 수가 있다. 개인의 감정과 주관적 편견에서 출발하여 무엇이든지 되는대로 객관세계를 일률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과연 하나의 사상이라 할 수 있을가. 이것은 무의미한 '로-만티시즘'의 수음이 아니면 치인의 꿈에 떠러지기가 쉽다."
  
  인정식도 내선일체 이론가로 활약한 사람이지만, 일체화의 한 주체로서 조선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조선을 미리 부정해 버리는 현영섭의 주장을 그는 사상도 못 되는 것이라고 경멸했다. 세계화의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주체로서 한국인의 입장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 뉴라이트 이론가들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는 '친일'을 무조건 매도하기보다 그 실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노력이 아쉽다. 현영섭의 동화일체론만이 아니라 인정식의 평행제휴론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이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70년이 지난 지금 동화일체론과 너무나 닮은꼴의 뉴라이트 역사관에게 횡행할 틈을 주는 것이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⑨

기사입력 2008-09-05 오전 8:28:30

  두 달쯤 전인가? 한승수 총리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러 조계사를 방문하려다가 무산된 일이 있다. 조계종 측 연기 요청으로 방문을 취소했다는 보도를 처음엔 무심히 보아 넘겼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총리가 출발 전에 연락을 받고 취소했다는 총리실 발표와 달리, 총리가 조계사 부근까지 갔다가 분위기가 여의치 않음을 알고 차를 돌렸다는 보도가 또한 있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보도 중 어느 쪽이 옳은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총리실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총리실에서는 총리의 체면이 많이 깎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싶은 동기가 있는 반면, 다른 쪽 보도에는 뻔히 드러날 사실을 굳이 왜곡할 동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리실 발표가 옳은 것이었다면 악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오보를 낸 신문사를 어찌 검찰이 그냥 두었겠는가.
  
  총리실의 발표에 사실 왜곡이 있었다면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크나큰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는 누구든 거짓말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체면 정도 문제를 가지고 사실을 꾸밀 정도라면 거짓말이 너무나 습관화된 분위기 아니겠는가. 큰 거짓말보다 작은 거짓말이 더 무섭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이제 얼굴만 봐도 거짓말을 기대하게 됐다. 무슨 일이든 불리한 얘기가 있으면 천편일률로 "전혀 사실무근" 노래를 부른다. 떠도는 얘기가 사실과 다른 것이라 하더라도, 왜 그런 얘기가 그럴싸하게 떠도는 것인지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본 흔적이 보이면 좋겠다. 그런데 그가 표정 하나 안 바꾸며 "전혀 사실무근"을 읊은 사안 중에 그런 극단적 표현이 적합했던 경우는 내가 아는 한 하나도 없었다.
  
  이번 연재를 구상하면서 한 가지 마음먹은 일이 있다. 현실적 비판을 하되 도덕적 비난은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민족 정서를 가지지 않았다고, 나와 같은 도덕 감각을 보이지 않는다고 욕하고 비난한다면 나 자신과 일부 독자들의 카타르시스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길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아니, 그에 앞선 BBK '진실 게임' 때부터 국민들이 익숙해져 오고 있는 '거짓말 문화'의 현실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뢰'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들이 지금 정권에서는 너무나 무시되고 있고, 뉴라이트 역사관에 그런 풍조를 부채질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자체마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뉴라이트"
  
  뉴라이트가 보는 한국 근현대사는 한 마디로 자본주의화의 역사다. 단 하나의 기준으로 역사를 재단하니 일제 통치도 고마운 일이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은 자본주의 발전을 방해한 테러리즘으로 보일 것이고,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은 좌파 책동에 놀아난 무책임한 사보타지로 보일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은 한국이 근현대를 통해 겪어 온 변화의 한 갈래다. 그밖에도 민주주의 발달과 민족주의 성장 등 여러 갈래 흐름이 서로 얽혀 한국 근현대사를 빚어 온 것이다. 다른 모든 측면을 무시하거나 자본주의화에 종속시키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사실 학문적 의미를 가진 하나의 역사관으로 볼 만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일방적인 시각으로는 자본주의 자체마저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자본주의의 간판인 '자본'이란 무엇인가? "더 많은 재부(wealth)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고 있거나 사용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재부"라는 것이 표준적 해석이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보는 한국 자본주의화 역사는 자본의 여러 형태 중 물질적 재부만을 보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자본의 네 가지 형태 가운데 기계, 건물, 토지와 함께 '인간 자본'을 꼽았다. 훈련과 교육을 통해 획득한 기술과 능력은 값비싼 기계나 마찬가지로 생산 활동을 통해 원래 획득에 든 비용회수하고 이윤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부론>의 '인간 자본'은 인간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공헌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만을 추상화하여 물질 자본의 속성에 유추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도 급여를 인간 자본의 '이자'로 보는 이론을 비판한 대목이 있다. 인간을 물질에 유추해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물질 중심 관념이지만, 비물질 자본의 영역을 탐구하는 출발점으로서도 의미를 가진 것이 스미스의 '인간 자본' 개념이다.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론이 부각되면서 비물질 자본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브라모비츠의 캐치-업(catch-up) 이론 중 '사회 역량(social capabilities)'도 일종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이해된다. 비물질 자본의 개념은 아직도 명확하게 규정되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적 자본'이 논의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비물질 자본 전체를 넓은 의미의 사회적 자본에 넣어서 생각하겠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를 패망으로 이끄는 상황"
  
  앞의 글(☞관련 기사 :"뉴라이트는 왜 미국에게 목을 매는가?")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간단히 언급했다. 사회적 자본의 의미를 파악하는 실마리로 삼기 위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검사가 두 명의 강도 용의자를 심문하고 있다. 혐의가 입증되면 각각 10년형을 구형할 수 있는 범죄다. 그러나 확보된 증거는 주거 침입죄 뿐이다. 그것으로는 6개월형밖에 구형할 수 없다. 강도죄를 입증할 길은 자백뿐이다.
  
  그래서 죄수 둘을 따로 불러 똑같은 제안을 한다. "네가 강도죄를 자백하고 저 놈이 자백을 거부하면 너는 방면이고 저 놈은 10년이다. 저 놈이 자백하고 네가 거부하면 거꾸로다. 둘 다 자백하면 5년으로 깎아준다." 둘 다 거부하면 물론 6개월씩이 된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결정을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결정을 내려야 한다.
  
  두 죄수를 갑과 을이라 하자. 갑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을의 결정은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외적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을이 자백할 경우를 먼저 생각해 보자. 자기도 자백하면 5년이고, 자기만 거부하면 10년이다. 이번에는 을이 거부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기만 자백하면 방면이고, 자기도 거부하면 6개월이다. 어느 조건 아래서도 자백하는 쪽이 이익이다. 을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두 죄수가 자기 형량을 줄이는 데만 욕심이 있고 상대방 형량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경우, 합리적 선택은 자백이다.
  
  그런데 두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고 각자의 선택이 집단의 득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자. 갑과 을이 모두 자백하면 두 사람의 형량 합계는 10년이다. 한 쪽만 자백해도 합계는 같은 10년이다. 한편 둘 다 거부하면 합계가 1년이 된다. 갑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가 자백하면 합계는 어차피 10년인 반면 자기가 거부하면 을의 결정에 따라 10년이 될 수도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다. 거부하는 길이 집단에게는 훨씬 유리한 것이다.
  
  조직폭력단의 결속력에는 이런 경제적 효과가 있다. 동료를 배신한 후과가 자기 형량을 줄이는 이익보다 훨씬 클 수 있고, 동료를 옹호한 보상이 자기 형량을 늘리는 손해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집단에서는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 집단의 큰 손해를 초래하는 일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본딩 조직력과 브리징 조직력의 차이"
  
  '사회적 자본'을 좁은 의미에서 볼 때는 '문화적 자본'과 구분하여 계량적 파악이 가능한 사회망(social network)에 초점을 둔다. 이렇게 좁은 의미로 보아도 사회적 자본이 중요한 경제학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로버트 퍼트넘의 연구 <혼자 볼링(Bowling Alone)> 덕분이었다.
  
  1995년 발표된 그의 논문은 최근 50년간 미국의 경제 체질 약화를 볼링 클럽을 비롯한 미국 사회의 네트워크가 축소되어 온 추세와 연관시켜 해석한 것이다. 계량적 자료를 폭넓게 활용한 연구가 아닌데도 그 참신한 개념이 학계를 넘어 전 사회의 관심을 끌었고, 많은 협력자들이 나서서 관련 연구를 확장한 결과 2000년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퍼트넘이 제시한 개념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사회적 자본의 형태를 '본딩(bonding)'과 '브리징(bridging)'으로 구분한 것이다. 본딩은 동질적 집단 내의 유대감이고, 브리징은 이질적 집단들 사이의 연대감이다. 대표적인 본딩 조직은 폭력배다. 브리징 조직은 자원 봉사나 취미 활동 등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단체에서 나타난다.
  
  브리징 조직력이 경제에 좋은 영향만 끼치는 반면 본딩 조직력은 집단 내부의 이익에만 공헌하면서 전체 사회에 대해서는 손해를 끼치는 경향도 있다. 그렇다고 본딩 조직력이 약한 것이 사회에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본딩 조직력이 브리징 조직력의 기초가 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조직력의 적절한 배합이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퍼트넘은 설명한다.
  
  자본가 집단은 자본가 집단대로, 노동자 집단은 노동자 집단대로 집단 내에 적정 수준의 본딩 조직력을 가지면서 다른 집단들 사이에도 집단이기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브리징 조직력을 가지는 것이 개인, 집단, 사회의 이해관계를 잘 조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며, 또한 경제 발전을 순조롭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 촛불 세대는 박정희를 영웅시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개발독재를 재현하려는 현 정부를 바로 그 세대가 조롱하고 나선 데는 어떤 역설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 박정희의 업적이 한국사 속에서 좋은 의미로 살아남는 길이 유신을 겪어보지 않은 이 세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레시안

  "하나만의 눈으로는 사물의 상호관계를 파악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발전을 역사의 큰 흐름으로 제시한다 하더라도, '자본'의 의미를 충분히 넓게 파악하기만 한다면 지나치게 편협한 역사관을 피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봄에 있어서도 민족주의, 민주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가치기준의 실마리를 '자본'의 의미로부터 도출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일제 통치를 미화하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찬양하는 등 상식과 통념을 벗어나는 경향은 물질적 자본만을 중시하고 비물질 자본을 시야에 담지 못하는 결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눈 하나만을 가지고도 사물을 자기 식으로 바라볼 수는 있다. 그러나 사물의 거리와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눈 둘(또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앞의 여러 글에서 일제 통치와 이승만에 대한 뉴라이트의 관점을 따져보았으나, 박정희의 통치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 없다. 일제 통치와 이승만 독재를 정당화하려는 뉴라이트의 시도는 워낙 터무니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나 쉽게 논박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 통치는 그에 비해 함부로 평가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의 도덕성에 관해서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이 있겠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장 위대한 한국인'의 하나로 인식되는 그의 이미지는 도덕적 비판으로 흔들릴 것이 아니다.
  
  박정희 통치가 한국에 어떤 득실을 가져왔는지 평가에 나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를 놓고 "도덕성은 어쨌건 한국을 크게 발전시킨 대통령"이란 평가를 서슴없이 내리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자본의 관점도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는 한국 사회의 본딩 조직력에는 공헌했지만, 브리징 조직력에는 큰 손상을 입혔다고 나는 본다.
  
  1960년대 한국은 기술 축적도 자본 축적도 빈약한 나라였다. 그는 자본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재벌 중심 특혜 경제를 키워냈고, 기술력의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저임금 체제를 구축했다. 노동 인구의 도시 유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농촌 경제를 열악한 상황에 묶어놓았고 낮은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박멸했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체제를 흔들지 못하도록 사법부와 언론과 학생운동을 군화발로 짓밟았다. 신뢰가 아닌 폭력으로 지켜지는 체제 아래 권력 아닌 권위는 모두 힘을 잃고 가진 자는 모두 '도둑놈'으로 보이게 되었다.
  
  1961년에서 1987년까지 26년간의 군사독재는 참혹하고 부끄러운 일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 모든 일이 '경제 개발'이란 하나의 가치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경제 통계의 한 쪽을 보며 허망한 느낌에 빠진 일이 있다. 1960년에서 1990년까지 30년간 한국의 총 경제성장률이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와 거의 같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통계였다.
  
  "한국 사회의 브리징 조직력을 차단하는 '명박산성'"
  
  박정희 통치의 성과는 그의 죽음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그 후의 계승-발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여지를 가진 것이다. 그 성과의 가치를 더욱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통치 스타일과 다른 방향으로 보완-조정하는 것, 그가 억눌렀던 측면을 살려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브리징 조직력을 멋지게 드러낸 것이 촛불 운동이고, 그 주역이 박정희를 영웅시하는 젊은 세대라는 사실이 의미 깊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본뜨려고만 하는 것 같다. 40년 전 상황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통치 스타일도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그늘을 후세에 남겼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고속성장을 위해 분배를 외면하고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가진 자들의 본딩 조직력만 키우는 개발독재를 재현하겠다고? 물질적 자본만으로 세상을 보는 편협한 역사관이 거들어주지 않는다면 상상해 내기도 어려운 시대착오다.
  
  안병직과 이영훈은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주도한 하나의 집단을 상정한다. 개항기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흥 지주층이 일제에 협력하면서 고등교육을 받아 전문기술을 가진 실력자 집단으로 자라났고, 대한민국에서도 경제 발전의 주축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집단이 지금 '고소영', '강부자'로 이어졌다고 여기기 때문에 현 정부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친일파 청산'의 실패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브리징 조직력을 차단하는 '명박산성'은 이 집단의 본딩 조직력을 지키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⑧

기사입력 2008-09-02 오전 9:13:50

  요즘 '선진화'란 말이 '민영화'를 대신해서 많이 쓰이고 있다. 촛불 집회에 밀려 과도한 민영화를 삼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도 끝내 포기할 수 없어 이름을 바꿔서라도 추진하려니,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이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왜 '민영화'란 이름이 민감한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정책이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한 여러 나라에서 큰 부작용과 반발을 불러온 정책이 공기업 민영화이기 때문이다.

  경제 자유주의에 입각한 고전적 자본주의 이념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 등 시장 원리를 보장하는 관리자의 역할에 그치고 경제 주체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시장 왜곡을 꺼리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자본주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18세기 중상주의 시대에 국가가 적극적 경제 정책을 구사하는 풍조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산업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시장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국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자유시장 원리가 거의 완벽하게 실현되는 단계에 이르자 그 한계에 대한 성찰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기업'이란 국가가 경제 주체로 시장에 나서는 현상이다. 시장을 자유방임으로 놓아두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자유시장 이념에서 벗어나는 이 현상은 자유시장 원리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투철한 원리보다 현실과의 타협을 추구한 결과다. 따라서 그 타당성은 현실 조건에 비추어 평가될 수밖에 없다.

  현실 조건이 바뀌거나 현실 조건에 대한 관점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의 타당성은 재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민영화 확대가 이뤄지기도 하고 국유화(또는 공영화) 조치가 취해지기도 한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어떤 근거로 어떤 평가를 내렸기에 대대적 민영화를 주요 정책방향으로 세우게 된 것일까?

"자유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는 '자연독점' 분야"

  일반적으로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원리를 철저히 적용함으로써 대상 기업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정신이 있어야 네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 관료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이 아닌 경제적 목적에 기업 운영을 집중할 수 있고, 경영의 책임도 막연한 유권자 집단보다 명확한 주주들을 상대로 할 때 더 분명할 수 있다고 한다.

  민영화의 능률 향상 경향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자연독점(natural monopoly)' 현상이다.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겨놓을 경우 능률적 운영이 되지 않는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방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하나의 설비 세트가 시장 전체의 잠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른바 '네트워크 산업'이 이 영역의 대표적 사업 분야다.

  요즘 수돗물 민영화 가능성을 가지고 말이 많은데, 바로 수돗물을 가지고 1850년대 영국 사회가 큰 홍역을 치른 일이 있다. 산업도시의 발달로 수돗물 수요가 급증하고 있던 당시 수돗물의 절반 이상을 민간 회사들이 공급하고 있었다. 경쟁 때문에 수익성이 낮아서 수도 회사들이 설비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염병이 창궐, 큰 희생을 본 뒤에 전면적 공영화로 넘어갔다.

  철도, 우편, 상하수도, 도시가스, 전기, 통신 등 자연독점 분야 사업들은 대중의 복지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공공성'을 가진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분야 사업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업자가 맡을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설비 투자가 큰 사업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극히 중요하기 때문에 경쟁이 극한으로 달리기 쉽다. 경쟁이 일단 제거된 뒤에는 독점의 횡포가 매우 심하게 되고, 외진 곳의 교통이나 우편처럼 수익성이 낮은 경우는 서비스가 원활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장기적 설비 투자에 있어서도 사회의 수요에 대비하는 기준과 회사의 이익을 위한 기준 사이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도 유선전화의 경우에는 공기업의 독점을 푸는 변화가 일어났다. 선로는 한국통신이 계속 독점하고 있지만, 그 이용을 놓고는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체제가 되었다. 이것은 기술 발달에 따라 자연독점의 특성이 없는 영역을 구분해 민간으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공기업 독점을 피할 수 없던 분야들에 대해 기술 조건 변화에 따라 민영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따라잡는 길보다 따라잡히는 길을 보여주는 '캐치-업' 이론"

  그런데 지금의 '선진화' 바람이 불안한 것은 기술 조건 변화에 의거한 실용적 기준이 아니라 집권 그룹의 취향에 따라 도매금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영화'란 말을 쓰지 못해 대신 쓰는 '선진화'란 말이 뉴라이트 역사가들에게 무슨 뜻으로 쓰인 것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병직과 이영훈의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는 제 5부를 "선진화의 기로에서"라는 제목으로 내놓았다. 대한민국 60년사를 '건국의 시대'(1948~1960), '개발의 시대'(1961~1987), '민주화의 시대'(1988~2007)로 구분하고 2008년 이후를 '선진화의 시대'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선진화의 구체적 내용을 안병직은 이렇게 말한다. "빈곤을 완전히 추방하고 사회적 복지의 확충을 위해 1인당 소득이 적어도 10~20위권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2006년 현재 1만8000달러니까 동일 가치로 3만 달러는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간 세계 평균성장률의 1.5배에 해당하는 6퍼센트 정도의 고성장을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을 병행하는 것이 선진화입니다."(<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294쪽)

  한국이 향후 10년간 세계 평균의 1.5배 고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까? 안병직은 아브라모비츠의 '캐치-업 이론'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고 한다. 아브라모비츠의 1986년 논문은 '사회 역량(social capabilities)'을 [안병직은 '사회적 능력(social capability)'이란 이름으로 내놓았다] 가진 후발국이 자유롭게 선발국의 선진 기술을 전수받을 경우 선발국보다 빠른 경제성장을 통해 생산성과 소득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45~1970년간 유럽국가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신흥 산업국들의 고속 성장을 설명한 것이다.

  앞글에서도 말했듯, 내게는 캐치-업 이론의 타당성을 따질 능력이 없다. 그러나 안병직의 설명(같은 책, 78-86쪽)을 보아서는 한국의 향후 고속 성장이 오히려 어렵다고 판단할 근거로 보이는 이론이다. 지금 다른 나라는 제쳐놓고, 중국과 인도가 캐치-업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위치에 있다. 인구 20억이 넘는 경제권이 고속 성장의 궤도에 올라선 이제 한국에게는 세계 평균 수준의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7-4-7'은 유치할 뿐 아니라 황당한 공약이었으며, 금년 성장률은 역시 세계 평균 수준으로 낙착될 것이 이미 확실해지고 있다. 고속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에 맞춰 정책을 세우는 것이 최선의 길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뉴라이트는 고속 성장 정책을 부추기고만 있다. 부적합한 상황을 무릅쓰고 고속 성장을 추구하려면 비상한 수단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규모 민영화가 그 비상한 수단이 아닌가 걱정되는 것이다.

"비상한 목적을 위한 비상한 수단으로서의 비상한 특혜"

  공기업의 대규모 민영화가 과연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까? <위키피디아>의 'privatization' 조를 보면 제조업이나 판매업 분야에서는 민영화가 능률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으나,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경향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자연독점이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독점 민간기업의 행동 양식이 이론적으로도 독점 공기업과 다르지 않은 것이므로 개선의 효과를 바랄 수 없다고 한다. 운영이 방만한 공기업이라면 그대로 둔 채 경영 합리화를 꾀하더라도 민영화 못지않은 효과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공기업 중에는 민영화가 바람직한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와 집권 세력은 민영화의 타당성을 차분하게 실질적으로 따지기보다, 민영화를 가로막아 온 '좌파' 정부가 쫓겨났으니 밀린 숙제 하듯 민영화를 해치워야 한다고 눈감고 서두르는 분위기다.

  민영화가 정말로 절실한 분야에서 민영화가 이뤄진 일이 있다. 은행이다. 그런데 IMF에 몰린 상황에서 황급히 진행되다 보니 외환은행 경우처럼 국가 사회에 큰 피해를 남긴 일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민영화와 관계된 가장 큰 위험으로 지적되는 것이 특혜다. 차분한 검토 없이 분위기를 만들어 졸속으로 처리할 경우 이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비상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위해 취하려는 비상한 수단이 비상한 특혜가 아닌가 하는 조짐이 여러 모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친다. 그 비즈니스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기업에 유리한 고환율 정책을 쓰다가 된통 혼이 난 일이 있다. 광복절 특사 명단에 재벌 총수들을 싹쓸이해 넣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출총제 폐지 등 규제완화와 감세의 약속.

  이들에게 비즈니스란 재벌이다. 그렇다면 공기업 민영화도 '재벌 친화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영화에도 여러 형태가 있지만, 지금 정부가 고려하는 방향은 자산 매각이나 국민 참여주가 아니라 주식 매각인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넘겨받을 주체는 대기업이다. 지금까지 환율 정책이나 특사에 나타난 것 같은 노골적 특혜가 매각 과정에 있을 것이 물론 걱정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독점 분야의 사업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큰 특혜다.

▲ 2002 월드컵 때부터 길거리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가진 공간이 되었다. 그 의미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명박산성과 물대포는 우주인처럼 낯선 것이었다. 이 정부의 정책 구조가 대립 지향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눈치채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고속 성장의 필요와 공안 정국은 동전의 앞뒷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믿은 것이 다수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 이유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무슨 뜻을 담은 약속인지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출범 몇 달 안 돼 지지율이 산산 조각난 것이다.

  고속 성장의 약속에 진정성이 있었는가? 열악한 외부조건 때문이었다고, 그래도 6개월 동안 선방한 것이라고, 이제 재벌 친화적 정책들을 국회에서 밀어주기만 하면 약속이 실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 외부조건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세계경제의 현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힘든 일이지만, 심증이 가는 것이 있다. 고속 성장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는 뉴라이트의 캐치-업 이론이라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 개발과 군사적 위협, 두 가지는 억압 체제의 단골 핑계거리다. 엉뚱한 데다 보안법을 휘두르고 만화 같은 여간첩 사건을 발표하는 것은 북한의 위협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은 20년 전은 물론, 10년 전과도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있다. 고속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사회 긴장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뉴라이트나 현 정부에도 고속 성장이 불가능함을 아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 나는 믿는다. 그래도 고속 성장을 우기는 것이 정략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없는 것 아닐까. 장밋빛 꿈으로 분배의 요구를 덮어버리고, 긴장의 힘으로 억압 체제를 빚어내면 얼마나 '통치'에 편리할까. 꿈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해명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지난 6개월을 외부 악재와 국민 저항의 탓으로 돌리는 식으로 둘러댄다면 핑계가 모자랄 걱정이 있겠는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