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⑱

기사입력 2008-10-21 오전 10:35:38 

연재를 끝내며
  
  그 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애초에 7~8회 가량 생각하고 시작한 작업이 길어진 것은 저 자신 들여다볼수록 생각이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욕심으로는 한참 더 계속하고 싶지만, 이제 지루해 하실 때도 된 것 같군요.
  
  마지막 회는 오늘 저녁 포럼 '진실과 정의' 강연을 위해 준비한 글을 올립니다. 포럼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방향이 프레시안 독자들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방향과 꼭 겹치지는 않지만, 마무리하는 글로는 조금 다른 방향을 보여드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조금 쉰 다음 다른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 앞에 다시 나서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김기협 합장.

  뉴라이트 역사관을 그 동안 여러 층위에서 따져봤는데, 그 문제점의 가장 기본 줄기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독단성이다. 이 규정을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이기적 특성이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해서 정치 현상이나 경제 현상을 고찰하면 유용한 해석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 안에 인간 세상의 모든 현상이 들어올 수 없다. 자본주의를 비교적 잘 운용해 온 사회들은 다른 시각에서 파악되는 의미들도 함께 감안하여 복합적 정책 구조를 빚어냄으로써 인간성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 이론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이론에 매몰되어 현실 전체를 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런 '순진한' 독단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19
세기 초반 산업자본주의 시대 초기 자유주의에서 이기심만을 보는 인간관은 순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금융자본주의 시대 이래 이 관점은 많은 재검토를 받아 왔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동안의 재검토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이기심 일원론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에는 뭔가 불순한 동기가 있다고 보인다. 나는 <밖에서 본 한국사> 맺음말에 이렇게 썼다.
  
  
"자원의 한계를 의식할 수 없던 19세기에 시장 기능을 강조한 자유주의는 하나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자원의 한계가 분명해진 21세기에 시장 만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일부 세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략일 뿐이다."(329~330쪽)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정당한 학문적 노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정략 노선을
지원하기 위해 억지로 짜 맞춘 틀이다. 따라서 그 위협은 역사 교육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정책 전반에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어떤 위협을 어떤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성공'의 길이 멀어져 갈수록 현 정권은 '승리'에만 집착한다"
  
  어떤 위협을 제기하는지는 쉽게 눈에 보인다. 우선 직접적으로 역사 교육에 대한 위협이 적나라하게 진행되고 있다. 눈길을 들어 넓게 바라보면 경제 구조의 기형화, 사회 양극화, 민주주의 퇴행, 남북관계
악화 등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특성과 관계되는 문제들이 있다. 경제, 사회, 정치, 외교 등 여러 분야의 문제들은 더 잘 다룰 분들이 있으므로 문제의 개연성만을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독자들의 주의를 더 촉구하고 싶은 것은 이런 위협들이 제기되어 온 방식에 대해서다. 연재 중 역사
교과서 문제를 다루면서(☞관련 기사 : 뉴라이트는 교과서를 불쏘시개로 아는가?)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의 내용을 따지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고, 책동 방식에만 초점을 맞췄다. 내용이야 나보다 훨씬 더 잘 따질 전문 연구자들이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응을 위해서는 내용보다 방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념이고
나발이고 없이 욕심 하나만으로 권력과 돈에 눈감고 매달리던 과거 수구 집단의 행태에 비하면 뭔가 이념 비슷한 것을 들고 나온 뉴라이트는 한 단계 진화된 모습이다. 200년 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큼, 한 특정 집단이 원하는 여러 방향의 정책 노선을 관통할 만한 그럴싸한 논리를 제공해 주는 이념이다.
  
  이 이념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은 100여 년에 걸친 경험과 연구로 밝혀져 있다. 그런데
레이건 이후 미국에서 그렇게 했다. 공산권과의 대결 상황에서 전술적 이득을 노린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 후에도 그 노선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지금의 금융 공황에 이르렀다.
  
  미국 경제의 파탄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식'의 매력은 우리 사회에 꽤 널리 먹혀들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의 권토중래가 예상되고 있었다. 그 단계에서 뉴라이트는 보수
진영의 담론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수구 집단이 칼자루를 쥐고 표면에 나설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뉴라이트는 '승리'했다. 그러나 권력 장악 뒤의 상황을 감당할 길이 없다.
스타일대로 쇠고기를 주물럭댔더니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7-4-7' 공약은 출범하자마자 가벼운 (금융 공황에 비하면) 유가 파동 한 차례에 날아가 버렸다. 국민의 광범한 신뢰와 지지를 모으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성공'의 길이 멀어져 갈수록 현 정권은 '승리'에만 집착한다.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에 매달리는 방식에서 문외한도 알아볼 수 있다. 불리한 상황은 얌전히 겪어내는 것이 손해 덜 보는 길일 수 있는데도, 기금 풀고 외환 풀고 자꾸 집적대서 덧나게 한다. 필요 없는 승부라도 자꾸 걸어서 점수 딸 기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역사 교과서를 놓고 그쪽 입장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못한 무리수를 자꾸 쓰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촛불' 현상이 정치 발전 없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뉴라이트 책동에 대한 대응은 '승리'보다 '성공'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보수 진영이 '좌파 정권'에 대한 '승리'를 외치는 수구 집단에 헤게모니를 쥐어준 결과 정권을 넘겨받자마자 길을 잃고 있는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진보 진영이 1997, 2002, 2004년의 주요 선거에서 거듭 승리하고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를 반성해야 한다. (여기서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은 신한국당-한나라당과 그 대항세력을 가리키는 상대적 의미일 뿐, 엄밀한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진 여건에 비해 매우 훌륭한 업적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의 폭넓은 신뢰와 지지를 받는 지도력을 안정시킨다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에 실패했다. 그 실패가 가져온 2007~2008년 선거 패배는 2중의 패배였다. 한나라당에게 졌다는 것은 병가지상사라 할 만한, 큰 문제가 없는 일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한나라당이 수구 집단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지도력의 안정에 실패한 근본적 이유는 정체성의 혼란에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권의 지도부는 보수 노선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끈 정당은(국민회의-민주당-열린우리당) 진보에서 보수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품고 있었다. 수구 세력 집권기에 '반 수구' 세력이 광범한 결집을 필요로 한 결과였다. '좌파 신자유주의' 얘기가 정색으로 오고갈 만큼 당시의 여권은 구성이 복잡했다.
  
  1997, 2002, 2004년의 진보 진영 승리는 모두 보수 진영의 분란에서 얻은
반사 이익에 적지 않은 행운이 곁들인 결과였다. 이 승리의 의미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정치 발전의 기회로 이용하는 데 진보 진영이 노력을 쏟았다면 오늘날 보고 있는 '정치의 실종'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2004년 총선의 대승 이후 여권은 그야말로 승리를 성공으로 착각한 듯, 정치 발전의 노력을 제쳐놓고 당권 경쟁에만 몰두하는 양상을 보였다. 1997년 대선을 앞둔 신한국당을 판에 박은 듯한 풍경이었다.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 10년 동안에 정치 발전도 상당히 이뤄진 것이 사실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촛불' 현상이 정치 발전 없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장내' 정치에 별 발전이 보이지 않는 동안 '장외' 정치에 큰 발전이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인프라가 확충되었기 때문이고, 두 정권의 노력이 여기에 작용했다. 노력을 더 집중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현 정권의 공세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진보 진영은 2007~2008 선거에서 참패한 후 존재감마저 잃고 있지만 사회의 민주주의 인프라는 키워져 있다. 한국
현대사의 보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인식도,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증대도, 촛불 정신과 함께 이 인프라의 일부분이다. 뉴라이트와 현 정권이 이 인프라의 파괴에 서둘러 달려드는 것은 수구집단의 통치 복원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의 집권 연장을 위한 정치공학적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반면 사회의 민주주의 인프라는 추위가 닥친 뒤에 푸름을 뽐내는 송백과도 같이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정권을 가지고 있을 때 목전의 경선과 선거보다 인프라 확충에 더 노력을 모으지 못한 것이 승리만 쳐다보고 성공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다행인 것은 현 정권이 이 인프라의
성장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을 자꾸 집적거려서 덧나게 하는 것처럼, 이 인프라의 의미를 국민들이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자꾸 집적거려 주는 것이다. 촛불부터 생각해 보라. 웬만큼 상식적인 대응을 했다면 촛불 정신의 폭발적인 힘이 그렇게 드러날 수 있었겠는가? 성공을 생각할 줄 모르고 승리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뭐든 저지르지 않고 가만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를 앞세운 현 정권의 공세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민주 시민들은 수구 집단의 현실적 위협으로부터 민주, 평화, 진실, 정의, 자유의 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분투, 노력의 과정 속에서 그 가치들은 자라날 수 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지키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키우기 위한 노력이라 할 것이다.
  
  뉴라이트는 수구 집단의 가치관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한 마디로, 모든 가치를 재물에 종속시키는 가치관이다. 예컨대 그들이 떠받드는 '자유'가 어떤 것인가? 그들은 자유를 내면화하지 않고 소유의 대상으로 객체화하며, 따라서 내 것을 주장하되 남의 것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실천의 과정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힘으로 빼앗고 돈으로 사는 물건이다. 이용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뉴라이트의 도발을 타고넘어 인간적 가치들을 키워내는 원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건, 평화건, 진실이건, 정의건, 어떤 인간적 가치든 '내 것'이란
도장을 찍고 남의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때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공자가 귀신을 공경하되 거리를 두라고 한(敬而遠之) 것도 그런 뜻 아닐까?
  
  진실과 정의는 허위와 불의에 승리함으로써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이다. 1987년 국민의 승리는 진실과 정의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독재 체제가 가로막고 있던, 진실과 정의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 것일 뿐이다. 독재 체제 아래서도 진실과 정의를 마음속에서 키우고 있던 이들이 있었지만, 보통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보통사람들도 걸을 만한, 꽤 편안한 길이 지금은 열려 있다. 진실과 정의를 얼마만큼 받아들일 지는 각자의 성품에 달려 있을 뿐이다.
  
▲ '촛불 문화'는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화를 보여준다. 물리적 변화, 화학적 변화와 차원이 다른, 생물학적 진화에 비길 만한 비가역적(非可逆的) 변화다. 명박산성, 물대포와 군홧발, 방패의 물리력으로 이 변화를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리라. ⓒ프레시안

  "궁둥이를 쳐든 채 머리통만 구멍에 처박은 타조"
  
  이런 생각들을 바탕에 깔아놓고 뉴라이트의 도발에 대한 구체적 대응책을 생각해 본다. 역사관 따져보기 작업을 마무리하는 글이니, 당장 진행 중인 교과서 문제부터 살펴보자.
  
  점입가경이랄까, 무리수가 무리수를 불러온 끝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꼴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협의회?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도 잘 따라와 주지 않으니 직제에도 없는, 따라서 권한도 책임도 없는 모임을 하나 만든 모양이다. 정부 측 직권수정이 도리에 어긋난다는 사실은 알기에 그 책임을 떠맡아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만들었겠지만, 잘 떠맡겨질까? 제도적 근거도 없고 구성원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는 모임에게서 권위를 빌리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꼴이, 궁둥이를 쳐든 채 머리통만 구멍에 처박은 타조를 떠올리게 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보낸 보고서를 놓고 교과서 수정 필요성의 증거처럼 일제히 사설로 떠들어댄(17, 18일) 수구 신문들도 가관이다. 그 보고서의 어디에 절차를 무시하고 수정을 서둘러야 할 절박한 이유가 담겨 있단 말인가? 글 읽을 줄 아는 모든 국민에게, "우리에겐 너무나 절박한 정략적 동기가 있습니다" 광고하고 있는 꼴이다.
  
  이 사태에 임해 관계된 여러 부문의 반응에서 전화위복의 느낌을 받는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에 지엽적으로는 불만을 느끼는 점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하나의 국가기관이 대응하는 자세로는 훌륭한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학계 연구단체들이 입장을 표명한 것도 반가운 일이다. 과거 독재 시절에 역사학자들이 비정치성을 표방한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 관성으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경시해 온 풍조가 이 번 일을 계기로 다소나마 바뀔 것을 기대한다.
  
  무엇보다, 역사 교사들의 움직임에 큰 기대를 가진다. 교사는 교육에서 교과서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다. 설령 이번 '교과서 전투'에서 뉴라이트가 승리해 교과서가 얼마간 개악되는 일이 있더라도, 역사 교육의 의미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심화는 그를 만회하고도 남는 우리 사회의 소득이 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눈앞에서 도발을 행하고 있는 것은 뉴라이트를 앞세운 수구 집단이다. 나는 이 도발이 진보 진영에 대한 것이기 이전에 여러 인간적 가치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이 가치들을 아끼는 사람들의 대응이 도발에 대한 승리를 넘어 바로 그 인간적 가치들의 성공을 바라보기 바란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그 가치들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 가치들이 어느 단계에서고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지키고 키우기 위해 애쓰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임을 생각하면, 고되더라도 보람찬 길이 될 것을 기대한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⑰

기사입력 2008-10-17 오전 7:56:49

  1987년 군사 독재 종식 후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는 한쪽에서 비장한 한 마디 말이 터져나왔다. "이 땅의 보수는 죽었는가?"
  
  이 말에 당시 사람들은 생뚱맞은 느낌을 우선 받았다. 진보는커녕 진정한 보수주의조차 용납되지 않던 수십 년 반공 독재에서 겨우 벗어난 마당에, 보수가 갑자기 설 땅을 잃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니? 그래서 그 말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 세력의 안타까움을 담은 말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여운이 남았다. '진보'의 물결에 휩쓸린 세상 속에 '보수'를 표방하는 세력으로 민정당 하나만이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는 '균형'의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김영삼 민주당의 신한국당 합류를 놓고도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이 통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보수가 분명한 (진보가 아니라는 뜻에서) 민주당이 민정당과 합쳐 수구정당 아닌 보수정당을 이끌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로 볼 수 있었다.
  
  그 이후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는 '합리적 보수'가 하나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선거 제도가 살아난 상황에서 수구정당 간판으로 대중의 지지를 모을 수 있겠는가. 당내 권력은 수구집단이 쥐고 있어도, 겉에 내건 간판에는 '보수'라고 적혀 있었다. 이 간판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말 합리적 보수주의자라 할 만한 사람들도 얼마간 끌어들였다. 민주화 세력이 모두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동안, 신한국당-한나라당은 '보수'의 이름을 선점하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 진정한 보수에 대한 사회의 잠재 수요를 이용한 것이다.
  
  뉴라이트가 단기간에 큰 세력을 모은 배경에는 이 합리적 보수의 여망이 있었다. 그 성공에는 기수로 나선 안병직의 이미지가 큰 몫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1980년대까지 그는 서울대에서 특출한 권위를 가진 교수였다. 운동권의 명망은 차치하고, 나 같은 보통 학생도 그의 열정적 연구 자세를 존경했다. 이번 작업에 착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가 나오든 나는 "안 선생님"이라고 그를 지칭했다. 이상한 얘기가 간간이 들려도, 학자로서의 그의 본질과는 관계 없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 교수님, 총재님은 몰라도 "선생님" 소리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학자로서 할 수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왜 이렇게 되었나? 현실 정치에 관여한다고 해서 학자의 자세를 꼭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 아닐 텐데. 학문이란 것도 이렇게 덧없는 것이었나 서글픈 생각의 한쪽으로, 그의 학문의 한계에서 뉴라이트 이념의 한계를 읽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치 이념은 역사관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뉴라이트에 '뉴'를 붙인 까닭 역시 그냥 보수 아닌 합리적 보수로 봐달라는 뜻일 것이다. 게다가 경제사학계의 태두 안병직이 앞장섰으니, 학문적 근거도 제대로 갖추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할 수 있었다. 서울대 교수 출신이 보수 정권에 영입된 이가 한둘이 아니지만, 학자로서 권위가 안병직만한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없었다. 더구나 그가 나선 것은 보수 진영이 정권도 쥐지 못하고 있을 때 '백의종군'의 모양새였다.
  
  뉴라이트 운동의 출발점으로 새로운 역사관을 내세운 것도 그럴싸한 일이다. 정치 이념은 역사관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진보 진영에 비해 보수 진영이 역사관을 소홀히 해 온 것은 그 동안 이념 없이 권력만을 주물러 온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다. 건전한 보수건 합리적 보수건 의미 있는 보수가 되려면 역사관 정도는 당당히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안병직의 뉴라이트'라면 뭔가 볼 만한 역사관을 들고 나올 것을 기대했다. 정치계만이 아니라 학계에도 한 차례 경종이 되기를 바랬다. 나는 국사학계 주류의 풍조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국사 해체' 같은 소수의 주장도 열심히 살펴보며 그 좋은 뜻을 잘 받아들이려 애쓴다. 중국에 체류할 때 교과서포럼 관계 보도를 이따금 접하며 그쪽에서도 뭔가 괜찮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역사학자 아무개"가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작업을 한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독자들 중엔 "음, 누가 역사학계를 대표해서 방어에 나섰나 보군." 생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재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입장이 아니다.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면서, '역사학자' 타이틀도 반납해야 옳지 않을까 가끔씩 고민도 하는 사람이다. 내 딴엔 역사 공부라 생각하며 공부를 계속하지만, 학술 논문을 낸 지 10년이 다 돼가는 사람이 '역사학자'를 자칭하기가 멋쩍어지는 것이다.
  
  나서는 입장을 굳이 가리자면 '역사평론가'라 할까? 작업에 임하며 첫 번째 원칙으로 마음먹은 것이 사실 관계를 다투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실 관계는 그 분야 연구자들의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비평하는 것이다. 작업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관이라 할 수 없는, 하나의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관점"
  
  부정적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리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겠다. 역사관이라면 역사의 일부분을 보는 눈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보는 눈이다. 그런데 뉴라이트 역사관은 자본주의 발생 이전을 보지 못한다.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를 문명의 유일한 형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눈으로는 '자본주의 이후'를 내다본다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도 극히 경직된 의미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좁고 비뚤어진 시각인가? 인간을 보는 시각이 좁고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역사관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인간관이다. 인간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 탐구하는 마음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역사가 의미를 갖고 파악되는 것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규정하고 인간에게 그 이상 관심 없는 사람의 시선 앞에서 역사는 아무 의미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사람은 자기 관점 안에만 갇혀 있으며,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역사관 이전에 인간관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을 어떻게 '이기적 존재'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런 눈으로 역사를 보면 역사가 증발하고 사회를 보면 사회가 무너진다. 뉴라이트 논설에서 제일 눈에 띄는 점이 민족을 부정하는 것인데, 부정의 대상은 민족만이 아니다. 자유방임 경제에 방해되는 모든 가치가 부정된다. 민주화를 찬양하는 것처럼 쓰기도 하지만 사실은 민주화를 경제 발전의 부산물로 볼 뿐이다.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 가운데 한 쪽을 골라야 한다면 그들의 선택은 뻔한 것이다.
  
  광복보다 건국이 더 중요하다며 요란 떠는 것을 보면 민족보다 국가가 더 소중하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가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뉴라이트에 경도된 이명박 정부가 일본과 미국 대하는 자세를 보라. 대한민국은 뉴라이트에게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이다. 뉴라이트의 모든 가치는 재물에 걸려 있다. 자본주의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관점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강한 자의 자유를 외치며 그 단결을 부르짖는다. 강한 자들이여, 어째서 약하고 못난 자들에게 민족이란 이름, 윤리란 이름으로 발목을 붙잡히는가! 우리가 힘들여 번 돈을 왜 그들에게 세금이란 이름으로 빼앗겨야 하는가! 우리의 권리, 우리의 재산,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뭐든지 다 하자!
  
  "'질서 속의 발전'을 바라는 보수주의자의 뜻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길"
  
  편협한 관점은 받아들여지는 범위도 좁을 수밖에 없다. 정치 이념이라면 넓은 범위의 지지를 받고자 애써야 할 것인데, 이처럼 인간도, 세상도, 역사도 좁게 보는 관점을 기껏 만들어낸 까닭이 뭘까? 그리고 이렇게 좁아터진 관점이 지금의 한국에서는 어째서 이토록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일까?
  
  편협한 관점에도 장점이 있다. 초점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유연한 관점은 많은 사람들을 수긍시킬 수 있지만, 편협하고 과격한 관점이 좁은 범위의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집중력을 따라갈 수 없다. 이 집중력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민주적 질서의 미숙성으로 인해 단기적 전술이 장기적 전략보다 잘 통하는 사정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민주주의의 안정적 시행에 힘든 여건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하나는 오랫동안 쌓여 온 전제 통치의 경험으로 인해 민주적 질서 감각이 체질화되어 있지 못한 문제다. 지식층, 중산층의 시민들도 아직까지 흔히 대통령에 대해 '제왕'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빈부 격차로 나타나는 중산층의 불안정성이다. 경제적 가치에 대한 과민성이 민주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는 상황이 쉽게 벌어진다. (자본주의-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체제의 중추 노릇을 한 '중산층'이 한국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적 중간 계층에게는 '중산층' 지향 의식이 강하므로 그 지향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통해 나타나는 불안정성을 "중산층의 불안정성"이라 해 둔다.)
  
  현 정부는 이 두 가지 문제를 고착시키거나 오히려 더 악화시키려 노력한다. 정책 추진에서 합리적 방법보다 가급적 무리한 방법을 택하는 (방송 장악이 대표적이다) 태도에서부터 대통령 중심의 전제적 통치를 복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국회에서도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대통령 측의 '벼랑 끝 전술' 앞에 제 구실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양극화를 심화하려는 의도는 더 노골적이다. 죽어 있지도 않고 죽어가고 있지도 않던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것은 분배를 외면하고 성장만을 바라보겠다는 뜻이다. 출범 1년이 안 되었어도 그 동안의 실적과 태도에서 이 뜻이 충분히 확인된다. 파이가 커지면 약자의 몫도 생긴다 하지만, 그 약자의 몫이 강자의 뜻에 좌우되도록 만든다는 것 아닌가.
  
  이것은 사회의 질서와 발전이 아니라 갈등과 퇴행을 바라보는 길이다. '질서 속의 발전'을 바라는 보수주의자의 뜻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길이다. 나는 '합리적 보수'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로 일어서기 바라며, 그럴 만한 여건이 갖춰져 왔다고 생각한다. 무슨 까닭으로 편협한 뉴라이트 담론이 이 시점에서 보수 진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 6월항쟁을 계기로 통치의 대상이던 국민이 정치의 주체로 나아갈 길이 열렸다. 그 직후의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히트시킨 '보통사람'이란 말이 당시의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그 보통사람들이 내다보던 변화에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그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 그들은 영영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고명진·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이 땅의 합리적 보수는 죽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보수주의자다. 이런저런 불평을 하기는 해도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괜찮은 사회라는 생각이 20년래 바뀌지 않는다. 다들 지금까지 살아온 식으로 꾸준히 애쓰며 살아가면 충분히 좋은 사회를 이뤄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는 혁명적 변화도 기적적 변화도 바라지 않는다.
  
  나 같은 보수주의자가 1987년 이후 양산되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6월항쟁 당시에는 보수주의자의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20년 동안에 보수 성향을 드러내게 되었다. 민주화의 성과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민주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경제가 빡빡해도 옛날과 비교해 흐뭇해하며 도로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남북관계의 점진적 발전으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지켜야 할 권력이나 큰 재산도 없으니, '수구'가 될 리도 없고, 세상이 그저 조용했으면 해서 '합리적 보수'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이 합리적 보수주의가 아직까지 효과적인 정치적 표현의 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대표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거대 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가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선택에 제약을 준다. 보수를 표방하는 한 쪽 정당은 수구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보를 표방하는 한 쪽 정당은 아직도 정책 노선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양대 정당이 구태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들에게 '적대적 공존'을 보장해 주는 소선거구제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기형적 안보 의식에 있다고 본다. 미국을 '혈맹'이라 부르며 무리하게 매달리는 경향이 냉전 해소 후 20년이 다 되도록 한국 사회 일각에서 걷히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군사적 안보를 위한 의존 관계의 필요성이 사라졌지만, 정치적 안보, 경제적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가 아직도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제도 문제도 정치적 안보 의식이 제대로 자라난다면 60년 전 눈 감고 베껴 온 미국식 제도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고, 경제정책 노선도 경제적 안보의식이 갖춰지면 철늦은 신자유주의 바람에 휘말리지 않게 될 것이다.
  
  뉴라이트의 목적은 진보 진영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의 봉쇄다. 그람시가 말한 '문화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를 보수 진영 내에서 장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 헤게모니의 구축을 위해서는 '상식' 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다. 진보와 경쟁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진보와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가 실제로 문화 헤게모니를 획득한 것은 보수 진영의 기존 조직인 한나라당 내에서일 뿐이다.
  
  총선 이후 뉴라이트가 표면에 대거 나선 것도 한나라당의 '합리적 보수' 요소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가로막기 위한 목적이 첫 번째 아닐까 생각된다. 한나라당에 아직까지 제 정신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신자유주의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인 뒤의 선거를 어떻게 감당할 지 생각 좀 해 보기 바란다. 나도 한 마디 해줘야겠다. "이 땅의 합리적 보수는 죽었는가?"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⑯

기사입력 2008-10-10 오전 9:44:33

  융통성 없는 행동을 놓고 "교과서대로 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글이란 것, 책이란 것이 쓴 사람의 생각을 담는 것이다. 적당한 정도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필자의 주견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이 글이나 책의 가치를 보장해 주는 기본조건이 된다.

그런데 교과서는 주견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는, 융통성이 없어야 하는 책이다. 교육의 기본 재료인 교과서가 필자의 가치관에 따라 들쑥날쑥하다면 교육의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시장 가치를 추구하는 일반 서적달리 교과서는 제도적 가치를 추구하는 책이다.

옛날옛적부터 어떤 교육에나 교재는 있었다. 교과서도 교재의 한 형태다. 다만 그 특징은 제도적 성격이 강하다는 데 있고, 근대적 제도인 국민 교육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다.

국민 교육의 목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피교육자 개개인의 근대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주는 기능적 측면이다. 또 하나는 국민을 국가 체제에 순응시키는 이념적 측면이다. 역사 교육은 국민 교육의 이념적 측면을 대표하는 분야로 출발했다.

역사학이 학문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역사관 덕분이다. 역사관 없이 과거사를 살피는 것은 골동의 취미일 뿐이다. 어느 사회에나 나름대로 질서의 원리가 있다. 그 원리는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 하는 인식에 근거를 두는 것이고, 이 철학적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창문이 역사관이다.

관습의 힘이 크게 작용하던 전통 사회에서는 질서의 원리에 대한 이견이 크지 않았다. 변화가 빨라진 근대 사회에서 서로 다른 원리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근대 사회의 주축이 된 국가 사회들이 각자의 원리를 표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민족국가 사이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주의가 그 원리의 핵심이었으나, 19세기 후반 자본주의가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후로는 정치경제 체제 문제가 비중을 키우게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역사 교육과 역사 교과서도 국가 사회의 질서 원리를 재생산하는 제도로 자라났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는 소속한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고 키우는 방향으로 편찬되는 것이며, 시류에 너무 민감하지 않은 안정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 나라에도 인류 보편의 가치, 평화를 지향하는 절실한 움직임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1999년에 역사 교과서의 개혁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무조건 정당화하고 아랍과의 갈등을 상대방 책임으로만 떠넘기던 것이 기존 서술 방침이었다. 100년 전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다시피 한 땅이었고 그 땅을 유대인들이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사들이며 주변 아랍인들과 도와가며 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오만한 아랍인들은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고향을 찾아 온 유대인들을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유엔의 결정까지 무시하면서 이스라엘을 없애기 위한 전쟁을 걸었다. 이스라엘은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의지 하나로 침략을 물리쳤으며, 팔레스타인 난민은 이스라엘이 쫓아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난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

50년간 이스라엘 역사 교육에 통용되던 이 서술 기조를 벗어난 새 교과서에는 이스라엘의 등장으로 곤경에 빠진 아랍인의 입장도 설명되어 있고, 유대인 측의 잘못된 판단이나 무리한 정책도 지적되어 있다.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적과 영광으로 찬양만 하기보다 훨씬 합리적인 설명을 시도했다.

새로운 '수정주의' 교과서는 1994년 라빈 수상 시절에 착수된 것이었다. 네타냐후의 보수정권 아래서도 그 편찬 작업이 묵묵히 진행된 끝에 다시 평화 정책으로 돌아선 바라크 수상 시대가 되어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권 변화에 관계 없이 교육 현장을 지키며 이스라엘 국민 의식을 바꿔놓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세계의 문제아다. 대영제국의 앞잡이로 태어나 미국의 앞잡이로 자라나며 세계 평화의 암적 존재로 작용해 온 나라다. 그러나 그 나라에도 인류 보편의 가치, 평화를 지향하는 절실한 움직임이 있다. 이 움직임이 쌓이고 쌓이면서 이스라엘의 문제점을 완화시켜 왔고, 궁극적으로 극복을 바라보는 것이다. 1999년의 역사 교과서 개혁은 이 변화를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 학계 일각에서 '국사 해체'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민족주의의 폐해를 반성하는 관점이다. 나는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국사의 해체 대신 '구조 조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스라엘 역사 교육의 변화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세계 평화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역할에는 아직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역할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희망이다. 국사 교육은 양날의 칼이다.

"사회가 용납하는 역사관의 폭을 넓히는 것은 민주화의 인프라 작업"

  우리의 국사 교육도 이스라엘처럼 획기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개선의 길을 걸어 왔다. 가장 반가운 변화는 국정 교과서 체제에서 검정 체제로의 전환이다. 이 전환이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또한 반가운 것이다. 2002년까지 국사 교육에는 국정 교과서만이 쓰여 오던 것을 2003년부터 고1까지는 국정을 쓰되, 2, 3학년의 근·현대사는 선택 과목으로 검정 교과서를 쓰도록 했다. 2011년부터 모든 역사 교과서를 검정으로 할 계획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묶어놓는 데는 국가 이념의 경직성을 초래하는 폐단이 있다. 국가의 이념은 너무 쉽게 흔들려서도 안 되지만, 또한 굳어져 있어서도 안 된다. 사회의 내적 발전과 외부 조건의 변화가 모두 어느 정도 이념의 탄력성을 요구한다. 하나의 시점에 있어서도 사회를 너무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상의 자유를 뒷받침할 만한 신축성이 필요하다. 검정 체제를 통해 사회가 용납하는 역사관의 폭을 넓히는 것은 민주화의 중요한 인프라 작업이다.

지금 뉴라이트 측은 기존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당장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것처럼 요란을 떨고 있다. 이것을 보며 궁금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왜 2002년 검정 과정에서는 그런 문제가 지적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 좋은 서술 방안이 있다면 왜 당시에 그런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 신청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6일의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때 안병만 장관이 "정권이 바뀌면 역사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예." 하고 대답했다가 나중에 정정하는 촌극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정정했다는 것을 보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분명히 그런 식으로 가고 있다.

현 정부 출범이 지난 2월. 교과서포럼의 자칭 대안 교과서가 나온 것이 3월. 그 후로 기존 교과서에 대한 공격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고 있다. 교과서포럼의 뒤를 좇아 상공회의소, 국방부, 통일부가 줄줄이 나서고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속 보이는 행보에 이어 이제 한나라당이 전면적인 공세에 나섰다. '수정-보완' 정도가 아니라 '개편' 수준으로, 그것도 바로 다음 학기부터 뜯어고치자는 기세다.

검정에 한 번 통과된 교과서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수정-보완'의 경우 금년 상반기 중에 교과부가 수렴된 의견을 출판사와 필자에게 보내면 출판사와 필자가 이를 재량껏 반영해 내년 1학기 교과서를 준비한다. 단편적 '수정-보완'을 넘어서는 '개편' 차원이 되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상식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제2 건국'을 표방할 때 역사 교과서도 졸속 개편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임기 말까지 절차를 다 밟으며 차분히 진행해 2003년부터 새 교과서를 사용하게 되었다. 새 교과서의 '좌편향'이 걱정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의견 제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진행방법이었다. 그렇게 차분히 진행한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다. 그러지 않고 절차상 흠집을 남겼다면 지금 정부는 벌써 '좌편향' 교과서를 '수거-폐기'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역사학계에 맡겨놓고 가만히 좀 있으라는 것"

▲ 10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금성출판사 교과서 저자 김한종 교수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

정두언 : (또 말을 끊으며) "(북한의) 지침 때문에 쓴 것인가, 아니면 본인 소신인가."

김한종 : "어떤 부분인지(어떤 부분이 북한 책과 똑같은지) 말해 달라."

정두언 :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북한 역사관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김한종 : "…"

정두언 : "교과부의 수정 요구안에 대해서 응하지 않으면 교과서가 폐지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있을 텐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 ⓒ프레시안

  교과서포럼 '대안 교과서' 편찬에 역사학자의 참여가 없었다는 것이 그 책을 교과서는커녕 역사서도 되기 힘들게 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뉴라이트는 역사를 '과학'이라고 보는가?) 지금 교과서 개편 책동도 역사학계와 관계 없이 진행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교과부의 의뢰에 따라 수정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을 뿐이다.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이 교과서의 '직권 수정' 가능성을 시사해 파문을 일으킨 것이 신호탄이었던가? 그 후 한승수 총리는 "학자들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각 부처가 교과서의 잘못된 부분을 취합해 반영하도록 하라."고 저돌성을 보였다. 지난 6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사 제쳐놓고 총공세에 나선 가운데 정두언 의원의 "금성출판사 역사 교과서는 북한 교과서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나왔다.

클라이맥스인가, 안티클라이맥스인가? 엊그제는 드디어 대통령까지 나섰다. "교과서 문제도 잘못된 것은 정상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부동산세가 "잘못된 세금체계"라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뭐든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잘된' 것과 '잘못된' 것을 가리는 이분법 외에는 어떤 가치 기준도 가지지 않은 사람인가?

같은 날 20여 개 역사학 연구단체들이 행동에 나섰다. 공동 기자 회견을 열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내놓았는데, 요점인즉 역사 교과서를 역사학계에 맡겨놓고 가만히 좀 있으라는 것, 그리고 검인정 제도를 지켜 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지당한 요구다. 이것을 뉴라이트는 또 역사학계의 폐쇄성이라고 강변할 것인가? 역사학계에는 수천 명의 연구자가 있고, 한국 근·현대사 분야에만도 수백 명 연구자가 있다. 그 중에는 자기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와 관련해 한 사람의 동조자도 얻지 못한 것은 일을 추진하는 방식에도, '대안 교과서'라고 만든 내용에도 상식 이하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폐쇄성이 문제다.

"싸우지 않고 이기면 전리품을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 보자. 평화를 지향하는 수정주의 역사관은 1980년대 들어 이스라엘 역사학계의 일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의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매국노, 반역자로 몰렸다. 그러나 학문적 양심과 지성인의 양심에 따라 이 방향 연구가 쌓이고 넓혀진 결과, 1990년경까지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역사 교육에 수정주의를 적용하는 작업이 1994년 시작되어 1999년 교육 현장에 나타나게 되었다. 20년에 걸친 차분한 전진으로 역사 교육의 새 원리를 안정시킨 것이다.

한국의 '좌편향' 교과서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한국사에 해방 후 시대를 다루는 '현대사'란 장르가 나타난 것은 1987년 이후의 일이었다. 그 전의 반공독재 정권 아래서는 이 시대에 대한 역사학적 고찰이 용납되지 않았다. 따라서 1987년 이후 한국 현대사 연구자에게 정치적 성향에 관계 없이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반공독재 정권이 강요하던 시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현대사관이 2002년 교과서에 반영되기까지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안정된 관점을 얻어낼 만한 시간이었다.

뉴라이트를 앞세운 수구집단의 문제 제기 방식을 여기에 비교해 보자. 일부 경제사학자들이 간판 마담으로 나섰지만, 그들은 역사학계에서 공론을 일으키지 못했다. 역사학에 소양이 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 사람들을 모아 교과서도 못 되고 역사서로 봐주기도 뭣한 '대안 교과서'란 것을 만들어놓고는 정권의 힘으로 역사 교육을 뒤집어놓으려 한다.

역사 교육을 망치려는 '나쁜 짓'이라고 보는 입장을 잠깐 벗어나, 대한민국 국가를 빛내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밀어주려는 뉴라이트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 참 '멍청한 짓'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내놓기 위해서라 하더라도, 교육 제도의 절차를 망가뜨리는 것은 국가를 빛내는 길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밀어주려면, 억지로 교과서 자리를 빼앗기보다 현행 교과서를 공격 대상으로 놓아두고 도전자 입장에서 삿대질을 오랫동안 계속하는 것이 여론의 접촉면도 늘리고 호응도도 늘리는 길이다.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내용을 모르는 사람도 "뭔가 억지를 쓰는가 보군."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억지란 것은 내용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는 게 상식이니까.

승리를 곧 성공으로 보는 뉴라이트 사고방식이 이런 조급한 행태를 불러오는 것 아닐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란 병법 원리는 승리보다 성공의 중요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뉴라이트에게는 통하지 않는 원리다. 싸우지 않고 이기면 전리품을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스스로를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그들은 없는 싸움이라도 만들어 전리품 얻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 이기적 존재들의 집단에서는 개체의 이익을 위해 집단 전체의 득실이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과서 검인정은 교육 과정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다양한 관점을 용납하는 제도다. 기존 교과서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른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신청하면 된다. 기존 교과서를 용납한 제7차 교육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절차에 따라 교육 과정 개편을 추진하면 된다. 지금의 교과서 소동은 역사 교육의 의미를 전혀 생각지 않는, 분란을 위한 분란일 뿐이다. 그 와중에 교과서는 정략적 불장난을 위한 쏘시개 취급을 당하고 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