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⑦

기사입력 2008-08-29 오전 8:35:14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내가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하나가 지금 세계 정세의 변화를 '원교근공'에서 '근교원공'으로 돌아가는 추세로 보는 것이다. 맺음말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기원전 3세기의 중국, 그리고 19~20세기의 세계에서 원교근공책이 위세를 떨친 데는 어떤 조건이 작용한 것이었을까? 플러스섬게임의 상황이었다는 공통점을 우선 들 수 있다. 새로운 기술 체계가 광대한 영역으로 퍼져나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자원 공급이 무제한으로 보일 만큼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었다. 늘어나는 자원의 적정한 소비를 위해서도 장기간의 대규모 전쟁이나 군비 확장이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원교근공의 세상은 매우 역동적이면서 위험한 세상이었다. 전체 시스템을 기준으로 보면 원교근공은 불합리하고 낭비가 많은 정책이다. 가까운 상대와의 싸움은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것이 되기 싶다. 팽창 중의 세계가 아니라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정책이다." (<밖에서 본 한국사> 328-329쪽)

  
  냉전 체제는 원교근공의 체제였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끼리 편을 맺어 바로 이웃의 나라들과 적대하는 상황이 온 세계에 벌어졌다. 하나의 민족이 둘로 쪼개져 극한 대립을 계속한 한국은 그중에서도 심한 상황이었다.
  
  공산권 붕괴 후 근교원공의 흐름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가장 확실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유럽연합이다. 남아메리카에는 좌파 정권 연대가 형성되어 왔고, 이슬람권에도 지역 연대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가 크게 발전한 위에 남북 간의 긴장 완화로 이 흐름 안에 들어와 있다. 한국의 움직임이 아직 빠른 편은 아니지만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국과의 관계는 줄어드는 추세에 접어들어 있는 것인데, 이 추세를 뒤집으려는 정치세력이 있어서 전망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절대적인 것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
  
  냉전의 종결을 가져온 공산권 붕괴는 자원 공급의 한계 때문이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자원의 한계가 드러났을 때, 미국은 긴축으로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군비 확장에 박차를 가해 소련의 경쟁 포기를 이끌어냈다. 냉전의 마지막 고비는 치킨 게임의 양상이었다. 미국은 이 승리를 발판으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새로운 흐름 속에서는 전에 절대적이던 것이 모두 상대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의 안보에도 냉전시대와 같은 공산권의 절대적 위협이 사라졌다. 중국도 러시아도 한국의 '주적(主敵)'이 아닌 교역과 교류의 상대가 되어 있다. 북한도 아직은 긴장 완화 수준이지만, 이미 2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다.
  
  이 상황 변화 속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절대적 의미의 '혈맹' 관계가 더 이상 존재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이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동맹자로서 특수 관계를 계속해 나갈 만한 상황일까?
  
  모든 관계는 쌍무적인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의 필요만 생각하지 말고 미국이 새로운 상황 속에서 과연 한국을 어떻게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통치 체제의 복원에 목표를 둔 대한민국 건국"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군은 일본, 남한, 그리고 서태평양의 섬들에 군정을 시행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방면을 제외한 일본제국을 접수한 셈이다. 군정 지역에서 키워낸 가장 중요한 맹방이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지도층과의 타협을 통해 기존의 국가에 약간의 변화를 가하고 다시 출범시켰다. 망가진 국가를 수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38선 이남에 세운 국가는 이와 달리 미국의 신제품이었다. 공산 진영과의 가장 중요한 대치점의 하나인 이곳은 미국에게 동방의 교두보였다. 미국은 장기간 관리하기에 좋은 국가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첫 번째 조치는 임시정부와 건준 등 자생적 지도력을 무력화하는 것이었고, 다음 조치는 반공 세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활동할 때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산 세력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이들을 폭넓게 포용하려는 입장이었다. 적어도 친일파보다는 좌익을 건국 과업에 더 적합한 인재 집단으로 보았다. 미국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미국은 일본과 피터지게 싸웠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자 일본제국의 반공 전통을 요긴하게 여기는 입장이 되었다.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등 일본의 개조를 최소한으로 한 것도 그 까닭이었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한국에도 일본의 통치 체제를 최대한 되살려내는 것이 미국의 기본 방침이었다.
  
  이 방침에 부응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이승만이었다. 해방 당시의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신망도 흔들리고 추종 세력도 없는 한 노인이었다. 30여 년간 미국에서 살아온 그의 유일한 밑천은 미국을 어느 한국인보다도 더 잘 아는 것이었고, 그 밑천이 그를 해방 공간의 남한에서 승리자로 만들었다.
  
  아직 매카시즘이 휩쓸기 전, 냉전 체제 형성 과정 중의 미 군정이 강경한 반공 노선을 아직 고착시키기 전부터 이승만은 반공에 올인했다. 자신이 권력을 쥘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친일파 포용은 반공과 동전 앞뒷면이었다. 일본 패전으로 불안에 떨고 있던 친일파, 특히 군인과 경찰 출신이 모여들어 이승만의 세력 기반을 만들어주었고, 이들과 공생관계를 맺은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폭력국가로 만들었다.
  
  "묵살된 한국인의 염원, 민족국가와 민주주의"
  
  1882년 조·미 수호조약으로 한·미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1945~48년의 미 군정은 그 이전과 전연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었다. 1948년 8월 15일의 정부 수립을 뉴라이트는 '건국'이라 부르며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처럼 야단법석인데, 이 정부 수립은 한국인의 염원보다 미국의 필요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당시 한국인의 큰 염원은 민족국가와 민주주의였다. 아무리 이승만을 떠받드는 자라도 당시의 대한민국이 이 염원을 채워주는 최선의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불행한 사정은 크게 보아 당시 세계정세에 기인한 것이었거니와,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한국인의 선택을 제한한 결과였다.
  
  미 군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통치 주체가 바뀐 후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 수준은 더 높아졌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한국은 초라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게 대단히 중요한 나라의 하나였다. 1970년대 들어 중국이 국제 무대에 나오면서 냉전 맥락의 특수한 중요성이 한 등급 떨어졌고, 공산권 붕괴 후로는 그 중요성이 사라졌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역할은 냉전 체제의 맹주에서 세계화의 기수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이나 대만처럼 극히 특수한 경우를 제하면 이제 미국은 어느 나라와도 보호-피보호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경쟁자가 있을 때는 졸개를 확보하기 위해 두목이 용돈도 풀어주고 하지만, 이제 졸개도 필요 없다. 가끔 하나씩 시범으로 패줄 때는 혼자 힘으로 충분하다.
  
  러시아와의 관계에도, 중국과의 관계에도 미국은 한국이라는 지렛대를 특별히 필요로 할 일이 없다. 국력이 꽤 자라난 이 나라와의 경제관계를 유리하게 끌어가는 것이 중요한 일일 뿐이다. 미국에 기대던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있어서 다른 데 팔아먹기 힘든 불량 쇠고기를 덥석 받아주면 그건 횡재일 뿐이다. 보상으로 뭘 내놓을 필요도 없다. 지명위원회의 독도 표기에나 신경 써주는 척하는 정도로도 그저 감지덕지니까.
  

▲ "헹님, 제 전임자 땜에 속 많이 썩으셨죠? 이제 맘 푹~ 놓으세요." "효도를 하려 하니 부모가 안 계시더라는 옛말이 맞구나. 매케인이 들어오든 오바마가 들어오든 이제 'business as usual'도 끝인데. 쇠고기나 열심히 팔아다오." ⓒ연합뉴스

  "왜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 소리를 듣는가?"
  
  미국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20년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혈맹'을 오매불망하는 사람들의 머리는 어떻게 된 것일까?
  
  앞서 올린 글에 대한 독자의 댓글 중에 뉴라이트재단과 뉴라이트연합을 내가 혼동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실 어느 쪽이나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움직임인데, '뉴라이트'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사람의 생각과 성향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는 없는 것이다. 내 비판의 일차적 대상은 재단 쪽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표명한 역사관이다. 그러나 그 역사관의 특징이 연합 쪽의 정치적 움직임과 일관된 흐름을 보이는 것은 하나로 묶어서 취급한다. 뉴라이트연합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도 뉴라이트 역사관과 연결된 흐름을 본색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도 비판의 범위에 들어간다.
  
  뉴라이트가 반대자들에게 '뉴라이트'가 아니라 '올드라이트'라고 비판받는 가장 두드러진 이유가 미국과의 특수 관계에 대한 집착에 있다. 이 집착은 남북대결을 고착시키려는 의도와 이어진 것이다. '통미봉북(通美封北)'의 이 전략을 뒷받침하는 데 이승만을 떠받들고 '건국'을 과대포장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의 관계에 얼마간 긴장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긴장은 냉전시대의 숙적이라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미국 못지않은 국토와 인구를 가진 대국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체제 경쟁의 상대로서가 아니다. 미국의 새 역할과 관계된 '악의 축'으로 북한의 의미가 바뀌어 있다. 한국에게도 북한의 위협은 억압체제를 정당화해 주는 긴박한 것이 이제는 아니다. 북한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북한을 위협으로보다 부담으로 보게 된 지 오래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불쌍한 나라 미국"
  
  산업혁명 이래 두 세기 동안 계속된 자원 공급의 폭발적 팽창이 1970년대를 고비로 한계를 드러냈다. 여러 세대 동안 인류가 겪어 보지 않은 새로운 상황이 닥친 것이다. 에너지환경이란 두 개 측면에서 인류의 지속적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와 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철학의 전환이 궁극적으로 필요하다. 그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에 앞서 우선 필요한 것은 전략의 전환이다. 기존 가치관을 미처 버리지 못한 채로라도 파국을 늦추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상당한 범위의 행동방식을 당장 바꿔야 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 방향의 노력을 이미 시작했다. 선진국 가운데 그 노력을 가장 외면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세계 인구의 5%를 가지고 에너지의 25%를 소비하며 군사비의 절반 이상을 지출하고 있는 미국이 자기 몫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지만, 사실 세계화는 어차피 진행되지 않을 수 없는 변화다. 문제는 미국의 안내가 세계화를 바람직한 진로로 이끌어주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끄는 세계화는 근대적 행동방식을 무제한 확장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휩쓸리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간단하면서도 힘 있는 논리다. "너희도 나처럼 잘 살고 싶어? 그럼 나처럼 해." 피라미드 사기와 같은 수법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우리에게도 이미 꽤 익숙해진 중산층 생활양식. 자가용 승용차에 냉난방 갖춘 널찍한 주거.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이런 생활양식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구가 단 몇 년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파국은 닥치게 되어 있다. 그나마 브레이크를 빨리 밟아야지, 목전의 승리에 도취한 신자유주의 노선에 계속 말려들다가는 엄청난 충격이 쌓일 것이다.
  
  "7-4-7은 다른 나라 보기에 부끄러운 유치한 공약"
  
  지구의 위기를 내다보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이 '악의 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악'은 부시처럼 기독교 근본주의에 입각한 도덕적 개념이 아니다. 미국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이 힘든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풍요를 누리는 상황이 반세기 넘게 계속되어 온 나라다. 투표마다 세금 줄이겠다는 쪽으로 표가 쏠리는 것은 잃는 것이 두려운 마음(患失之心) 때문이다. 그 뻔한 결과로 중산층의 발판이 무너져 들어오지만, 목전의 득실에만 매달리는 투표 성향은 쉬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에 미국의 적응이 힘든 것은 사회 내부구조에 쌓여 있는 관성 때문이다. 이보다 약한 것이지만 비슷한 관성이 한국 사회에서도 작동한다. 어제 경향신문 시론에서 이정우(경북대)가 '7-4-7'을 "다른 나라 보기에 부끄러운 유치한 공약"이라 한 것은 바로 이 문제, 성장 지상주의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 변화가 한국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한탄한 것이다.
  
  안병직은 고속성장의 계속으로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는 '캐치업 이론'을 내놓는다. 경제학자가 아닌 내게는 이 이론을 정밀하게 따질 능력이 없지만, 이 이론에서 전 지구적 자원조건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1970년대부터 드러나 이제 명약관화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이 변화를 외면하는 데는 대단한 의지력이 필요할 것 같다.
  
  뉴라이트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주장을 보면 '죄수의 딜레마' 생각이 난다. 집단의 구성원이 파편화되었을 때 각자의 '합리적' 판단이 집단 전체의 득실에 불리한 쪽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문제다. 나의 이익에 100% 가치를 두고 내 이웃의 행복에 아무 가치도 두지 않는 사회가 멸망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이 딜레마가 보여준다. 인간의 이기심만으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이념은 자원 팽창 상황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뉴라이트는 한국 근현대사를 자본주의 발전의 단선적 역사로 본다. 그 기준 하나로 일제 통치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도 모두 정당화하려 든다. 이 관점이 외교에서는 미국에 맹종하며 북한을 외면하고 중국을 도발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발전 역시 역사의 한 측면이니, 그것을 중시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것 외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은 학문으로서도 가치없는 태도며, 현실 정치를 파탄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