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⑧

기사입력 2008-09-02 오전 9:13:50

  요즘 '선진화'란 말이 '민영화'를 대신해서 많이 쓰이고 있다. 촛불 집회에 밀려 과도한 민영화를 삼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도 끝내 포기할 수 없어 이름을 바꿔서라도 추진하려니,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이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왜 '민영화'란 이름이 민감한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정책이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한 여러 나라에서 큰 부작용과 반발을 불러온 정책이 공기업 민영화이기 때문이다.

  경제 자유주의에 입각한 고전적 자본주의 이념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 등 시장 원리를 보장하는 관리자의 역할에 그치고 경제 주체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시장 왜곡을 꺼리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자본주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18세기 중상주의 시대에 국가가 적극적 경제 정책을 구사하는 풍조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산업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시장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국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자유시장 원리가 거의 완벽하게 실현되는 단계에 이르자 그 한계에 대한 성찰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기업'이란 국가가 경제 주체로 시장에 나서는 현상이다. 시장을 자유방임으로 놓아두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자유시장 이념에서 벗어나는 이 현상은 자유시장 원리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투철한 원리보다 현실과의 타협을 추구한 결과다. 따라서 그 타당성은 현실 조건에 비추어 평가될 수밖에 없다.

  현실 조건이 바뀌거나 현실 조건에 대한 관점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의 타당성은 재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민영화 확대가 이뤄지기도 하고 국유화(또는 공영화) 조치가 취해지기도 한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어떤 근거로 어떤 평가를 내렸기에 대대적 민영화를 주요 정책방향으로 세우게 된 것일까?

"자유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는 '자연독점' 분야"

  일반적으로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원리를 철저히 적용함으로써 대상 기업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정신이 있어야 네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 관료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이 아닌 경제적 목적에 기업 운영을 집중할 수 있고, 경영의 책임도 막연한 유권자 집단보다 명확한 주주들을 상대로 할 때 더 분명할 수 있다고 한다.

  민영화의 능률 향상 경향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자연독점(natural monopoly)' 현상이다.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겨놓을 경우 능률적 운영이 되지 않는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방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하나의 설비 세트가 시장 전체의 잠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른바 '네트워크 산업'이 이 영역의 대표적 사업 분야다.

  요즘 수돗물 민영화 가능성을 가지고 말이 많은데, 바로 수돗물을 가지고 1850년대 영국 사회가 큰 홍역을 치른 일이 있다. 산업도시의 발달로 수돗물 수요가 급증하고 있던 당시 수돗물의 절반 이상을 민간 회사들이 공급하고 있었다. 경쟁 때문에 수익성이 낮아서 수도 회사들이 설비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염병이 창궐, 큰 희생을 본 뒤에 전면적 공영화로 넘어갔다.

  철도, 우편, 상하수도, 도시가스, 전기, 통신 등 자연독점 분야 사업들은 대중의 복지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공공성'을 가진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분야 사업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업자가 맡을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설비 투자가 큰 사업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극히 중요하기 때문에 경쟁이 극한으로 달리기 쉽다. 경쟁이 일단 제거된 뒤에는 독점의 횡포가 매우 심하게 되고, 외진 곳의 교통이나 우편처럼 수익성이 낮은 경우는 서비스가 원활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장기적 설비 투자에 있어서도 사회의 수요에 대비하는 기준과 회사의 이익을 위한 기준 사이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도 유선전화의 경우에는 공기업의 독점을 푸는 변화가 일어났다. 선로는 한국통신이 계속 독점하고 있지만, 그 이용을 놓고는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체제가 되었다. 이것은 기술 발달에 따라 자연독점의 특성이 없는 영역을 구분해 민간으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공기업 독점을 피할 수 없던 분야들에 대해 기술 조건 변화에 따라 민영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따라잡는 길보다 따라잡히는 길을 보여주는 '캐치-업' 이론"

  그런데 지금의 '선진화' 바람이 불안한 것은 기술 조건 변화에 의거한 실용적 기준이 아니라 집권 그룹의 취향에 따라 도매금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영화'란 말을 쓰지 못해 대신 쓰는 '선진화'란 말이 뉴라이트 역사가들에게 무슨 뜻으로 쓰인 것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병직과 이영훈의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는 제 5부를 "선진화의 기로에서"라는 제목으로 내놓았다. 대한민국 60년사를 '건국의 시대'(1948~1960), '개발의 시대'(1961~1987), '민주화의 시대'(1988~2007)로 구분하고 2008년 이후를 '선진화의 시대'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선진화의 구체적 내용을 안병직은 이렇게 말한다. "빈곤을 완전히 추방하고 사회적 복지의 확충을 위해 1인당 소득이 적어도 10~20위권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2006년 현재 1만8000달러니까 동일 가치로 3만 달러는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간 세계 평균성장률의 1.5배에 해당하는 6퍼센트 정도의 고성장을 이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을 병행하는 것이 선진화입니다."(<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294쪽)

  한국이 향후 10년간 세계 평균의 1.5배 고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까? 안병직은 아브라모비츠의 '캐치-업 이론'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고 한다. 아브라모비츠의 1986년 논문은 '사회 역량(social capabilities)'을 [안병직은 '사회적 능력(social capability)'이란 이름으로 내놓았다] 가진 후발국이 자유롭게 선발국의 선진 기술을 전수받을 경우 선발국보다 빠른 경제성장을 통해 생산성과 소득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45~1970년간 유럽국가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신흥 산업국들의 고속 성장을 설명한 것이다.

  앞글에서도 말했듯, 내게는 캐치-업 이론의 타당성을 따질 능력이 없다. 그러나 안병직의 설명(같은 책, 78-86쪽)을 보아서는 한국의 향후 고속 성장이 오히려 어렵다고 판단할 근거로 보이는 이론이다. 지금 다른 나라는 제쳐놓고, 중국과 인도가 캐치-업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위치에 있다. 인구 20억이 넘는 경제권이 고속 성장의 궤도에 올라선 이제 한국에게는 세계 평균 수준의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7-4-7'은 유치할 뿐 아니라 황당한 공약이었으며, 금년 성장률은 역시 세계 평균 수준으로 낙착될 것이 이미 확실해지고 있다. 고속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에 맞춰 정책을 세우는 것이 최선의 길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뉴라이트는 고속 성장 정책을 부추기고만 있다. 부적합한 상황을 무릅쓰고 고속 성장을 추구하려면 비상한 수단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규모 민영화가 그 비상한 수단이 아닌가 걱정되는 것이다.

"비상한 목적을 위한 비상한 수단으로서의 비상한 특혜"

  공기업의 대규모 민영화가 과연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까? <위키피디아>의 'privatization' 조를 보면 제조업이나 판매업 분야에서는 민영화가 능률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으나,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경향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자연독점이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독점 민간기업의 행동 양식이 이론적으로도 독점 공기업과 다르지 않은 것이므로 개선의 효과를 바랄 수 없다고 한다. 운영이 방만한 공기업이라면 그대로 둔 채 경영 합리화를 꾀하더라도 민영화 못지않은 효과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공기업 중에는 민영화가 바람직한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와 집권 세력은 민영화의 타당성을 차분하게 실질적으로 따지기보다, 민영화를 가로막아 온 '좌파' 정부가 쫓겨났으니 밀린 숙제 하듯 민영화를 해치워야 한다고 눈감고 서두르는 분위기다.

  민영화가 정말로 절실한 분야에서 민영화가 이뤄진 일이 있다. 은행이다. 그런데 IMF에 몰린 상황에서 황급히 진행되다 보니 외환은행 경우처럼 국가 사회에 큰 피해를 남긴 일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민영화와 관계된 가장 큰 위험으로 지적되는 것이 특혜다. 차분한 검토 없이 분위기를 만들어 졸속으로 처리할 경우 이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비상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위해 취하려는 비상한 수단이 비상한 특혜가 아닌가 하는 조짐이 여러 모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친다. 그 비즈니스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기업에 유리한 고환율 정책을 쓰다가 된통 혼이 난 일이 있다. 광복절 특사 명단에 재벌 총수들을 싹쓸이해 넣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출총제 폐지 등 규제완화와 감세의 약속.

  이들에게 비즈니스란 재벌이다. 그렇다면 공기업 민영화도 '재벌 친화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영화에도 여러 형태가 있지만, 지금 정부가 고려하는 방향은 자산 매각이나 국민 참여주가 아니라 주식 매각인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넘겨받을 주체는 대기업이다. 지금까지 환율 정책이나 특사에 나타난 것 같은 노골적 특혜가 매각 과정에 있을 것이 물론 걱정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독점 분야의 사업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큰 특혜다.

▲ 2002 월드컵 때부터 길거리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가진 공간이 되었다. 그 의미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명박산성과 물대포는 우주인처럼 낯선 것이었다. 이 정부의 정책 구조가 대립 지향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눈치채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고속 성장의 필요와 공안 정국은 동전의 앞뒷면"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믿은 것이 다수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 이유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무슨 뜻을 담은 약속인지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출범 몇 달 안 돼 지지율이 산산 조각난 것이다.

  고속 성장의 약속에 진정성이 있었는가? 열악한 외부조건 때문이었다고, 그래도 6개월 동안 선방한 것이라고, 이제 재벌 친화적 정책들을 국회에서 밀어주기만 하면 약속이 실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 외부조건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세계경제의 현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힘든 일이지만, 심증이 가는 것이 있다. 고속 성장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는 뉴라이트의 캐치-업 이론이라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 개발과 군사적 위협, 두 가지는 억압 체제의 단골 핑계거리다. 엉뚱한 데다 보안법을 휘두르고 만화 같은 여간첩 사건을 발표하는 것은 북한의 위협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은 20년 전은 물론, 10년 전과도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있다. 고속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사회 긴장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뉴라이트나 현 정부에도 고속 성장이 불가능함을 아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 나는 믿는다. 그래도 고속 성장을 우기는 것이 정략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없는 것 아닐까. 장밋빛 꿈으로 분배의 요구를 덮어버리고, 긴장의 힘으로 억압 체제를 빚어내면 얼마나 '통치'에 편리할까. 꿈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해명해야 할 때가 오더라도, 지난 6개월을 외부 악재와 국민 저항의 탓으로 돌리는 식으로 둘러댄다면 핑계가 모자랄 걱정이 있겠는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