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⑤

기사입력 2008-08-22 오전 10:24:18

  뉴라이트 역사관에서는 '문명사'의 관점을 제창한다. 한국의 역사도 '문명화'의 시각에서 다시 보자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문명'이란 어떤 것인가?

  이영훈은 <대한민국 이야기> 46쪽에서 "자유, 인권, 법치, 사유재산, 시장, 자기책임 등"을 문명의 기초 요소로 정의한다.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갖춘 문명사회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이 언제의 일이었을까?

  모든 구성원들이 이 요소들을 두루 누리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무리한 일이라 하더라도, 구성원의 상당수가 누리는 사회라야 문명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당수'를 구체적으로 어느 비율로 보느냐 따지는 것은 난감한 일이지만, 이영훈의 뜻은 짐작할 만하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 시민사회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여섯 가지 요소가 대개 근대에 발달한 자유주의를 전제로 하는 개념들이니까. 그리고 사유재산과 시장, 두 가지 요소는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중시되는 것들이니까.

  앞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자본주의를 곧 문명으로 보는 관점은 참 황당하다고밖에 말할 길이 없다. 근세에 나타난 부르주아 사회 이외의 모든 인류 역사를 야만으로 보는 것이 역사관으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관점은 문명의 의미에 대한 몰이해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의미에 대한 무지도 함께 드러내는 것이다.

  연재의 앞머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성을 선험적으로, 그것도 매우 편협하게 규정하는 데 문제의 실마리가 있는 것 같다. 이영훈은 같은 책 21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도덕적 이기심이고 협동 능력입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말인가? 인간의 본성이 그것들밖에 다른 것은 없단 말인가? 이런 말도 한다. "인간을 계급적이며 공동체적인 존재로 규정한 사회주의자들의 인간 이해는 잘못이었습니다."(같은 책 15쪽) 공산권 붕괴만을 보고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이영훈의 눈을 가리는 것은 공산권의 붕괴로 나타난 자본주의의 승리인 것 같다. 그의 역사 공부는 자본주의의 승리를 이해하는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인간 이해는 공산권 붕괴에 비쳐 보이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것 같다.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 이런저런 기술 여건 아래 활용되어 온 여러 제도 가운데 하나가 자본주의라는 사실도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를 역사적 현상으로 본 마르크스"

  자본주의 출범을 16세기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16~18세기에 유행한 중상주의를 자본주의 초기 단계인 '상업 자본주의'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 자본주의'였다. 상업 자본주의가 상업 분야에 한정된 현상이었음에 반해 산업 자본주의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에 전면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초판을 내놓은 1867년 무렵에는 산업 자본주의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금융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추세가 나타날 때였다. 산업과 경제에서 시작해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변화의 흐름이 하나의 역사적 현상임을 마르크스는 인식하고 '자본주의'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흐름이 장차 어느 단계에서는 파탄을 일으키고 공산주의로 대치될 것을 예언했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마르크스 이래 많은 탐구가 있어 왔다. 사회의 조직원리로서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천착하는 것이 주류다. 그런데 근래 와서는 환경론의 관점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자유의 생태학(The Ecology of Freedom)>에서 머레이 북친이 한 말이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관념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때문에 성립되는 것이다."

"환상적 콤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뉴라이트는 자본주의를 문명 그 자체로 볼 만큼 찬양하는데, 자본주의가 그토록 좋은 것이라면 왜 근세에 들어와서야 세상에 나타난 것일까? 적어도 농업 문명 발생 이후의 인간 세계에는 시장이 어디에나 만들어져 인간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이 시장을 자본주의 원리로 운용하는 발전이 근세 이전에는 어째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일까?

  자본주의의 화려한 등장은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경제사가들은 로마제국에서도, 9~12세기의 칼리프국에서도, 송대 이후의 중국에서도 자본주의 '맹아'를 찾아낸다. 그러나 그 맹아들은 꽃 피우고 열매 맺지 못했다. 유독 19세기 유럽에서만 자본주의가 진면목을 드러내고 유럽인의 세계 정복을 위한 탈것이 되었다. 아니, 유럽인이 자본주의의 세계 정복을 위한 탈것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자본주의 원리가 현실 속에서 작동하려면 '성장'의 동력을 필요로 한다. 통제 경제는 정치의 동력이 시장의 움직임을 결정해 주니까 따로 동력이 필요 없다. 반면 외부의 개입 없이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장은 내부 동력을 필요로 한다. 중상주의 시대에는 대항해 시대 이후의 해외 교역과 약탈이 동력 노릇을 해줬다. 이 동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자 시장의 범위를 넘어 다른 부문에까지 힘을 뻗치게 된 것이 18세기 말 산업 자본주의의 탄생이었다.

  이 때부터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은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를 시작했다. 하드웨어를 맡은 산업혁명이 상품 공급을 늘려주면 소프트웨어를 맡은 자본주의가 사회조직을 바꿔 가면서 더 큰 수요를 일으켜주는 것이었다. 1만 년 전의 농업혁명 이후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술적 도약인 산업혁명이 자본주의 대두의 배경인 것이다.

"지구의 피부병에서 심복지환으로 자라난 인류"

  농업혁명이 당시의 인류사회에 어떤 체제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분명히 밝히기 힘들다. 농업혁명은 산업혁명에 비해 여러 곳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산만하고 완만하게 진행된 과정이었기 때문에 때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많은 체제들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곳에서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 조직이 계속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산업혁명의 진행 과정에서는 자본주의가 사회 조직 원리로서 가장 강력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농업혁명 후의 농업사회 안에서 사회 조직 원리가 변화를 겪은 것처럼 산업혁명 후의 산업사회에서도 사회 조직 원리는 바뀔 것이다. 자본주의는 급속한 기술발전의 배경 없이는 지속되기 어려운 문제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농업혁명도 산업혁명도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였다. 자연에 아무런 조작도 가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과 별 차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간 것이 수렵-채집 단계였다. 그러다가 지구의 표면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곡물과 가축을 키우게 된 것이 농업혁명이었다. 자연이 던져주는 것을 '얻어먹는' 단계에서 자연의 식량 창고에 들어가 '찾아먹는' 단계로 넘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은 인류가 자연을 쥐어짜서 '뺏어먹는' 단계로 넘어온 것이다. 지구의 표면에만 손대는 것이 아니다. 근육이고 뼈대고 내장이고 가만두는 것이 없다. 농업문명 단계의 인류가 지구의 피부병이었다면 이제 심복지환이 되었다. 아예 숙환(宿患)이 될지도 모른다.

  지구의 위기에 대해서는 환경과 생태 분야에서 많은 심각한 지적이 쌓여오고 있다. 이 글에 인용해 오고 싶은 것이 많지만,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해 인구와 에너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좁혀 보겠다.

▲ 화석연료 고갈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태에서 대안 에너지 전망은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핵 에너지는 부존량이 화석연료의 10배 이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폐기물 문제를 포함해 안전한 사용 방법이 아직도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청정 에너지'란 선전을 반대자들은 '청정한 독약'이라고 비웃는다. ⓒ뉴시스

"에너지 위기는 지구의 경고"

  산업혁명 출발점인 18세기 말의 세계 인구는 약 10억으로 추산된다. 그 이전의 인구 증가율은 연 0.04~0.05%로 추정되니, 인구가 갑절로 늘어나는 데 10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구가 10억에서 20억으로 늘어나는 데는 약 120년이 걸렸다. 그로부터 다시 갑절로 늘어나는 데는 겨우 50년의 시간이 걸렸다. 폭발적인 팽창이다.

  200년 전보다 개체수가 6배로 늘어난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은 얼마나 늘어났을까? <위키피디아>의 "World Energy Resources and Consumption"조에 따르면 지금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은 1인당 평균 약 2.1㎾다. 가장 큰 나라는 단연 미국, 11.4㎾이고, 그 밑으로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이 6㎾ 수준이다. 가장 작은 나라는 방글라데시, 1인당 평균 0.2㎾. 산업혁명 초기의 세계 평균은 지금의 방글라데시보다도 훨씬 낮았을 것이다.

  문제는 평균 에너지 소비량이 인구 팽창보다 계속 더 빨리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개혁 개방 시작 후 2.5배 늘어나 1.6㎾까지 올라와 있다.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을 이루겠다는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더 늘릴 것이다. 1인당 0.7㎾에 머물고 있는 11억 인구의 인도는 또 가만히 있겠는가?

  산업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에너지는 '자원 중의 자원'이 되었다. 농산, 광산, 공산의 모든 생산 분야에서 에너지가 핵심 원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에너지원이던 화석연료가 고갈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안 에너지의 개발 필요가 오래 전부터 부각되어 있지만, 아직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면 희소성에 의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시장의 기본 법칙이다. 그런데 세계는 오랫동안 에너지 저가(低價) 체제에 길들어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자원 약탈을 위해 만들어진 저가체제가 냉전시대까지 계속된 것은 기름값 인상이 체제 경쟁에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유가 상승이 시작되었지만, 최근 기록한 배럴당 150달러도 시장 법칙에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기름값이 완전한 자유방임에 맡겨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존속을 위한 성장의 열쇠가 거기 걸려 있기 때문이다. 시장 법칙에 맞는 수준까지 기름값이 올라갈 경우, 전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것이 예상된다. 고전적 자본주의 원리로는 그런 상황을 견뎌낼 수 없다. 플러스 성장 상황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가 체제 안정에 공헌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지만 마이너스 성장 상황에서는 양쪽 다 태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계급사회를 바라보는 신자유주의"

  인위적 에너지 저가체제는 1973년 이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유가 현실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가운데 고유가 시대에 대한 적응 방법이 모색되어 왔다. 현 정부가 "7-4-7" 공약을 내걸 때는 임기 동안 유가 상승이 없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기도가 현실에 꼭 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출범하자마자 깨닫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신자유주의는 보다 현실성 있는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전 세계를 계급사회로 재편하자는 것이다. 인구의 대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힘 있는 자들을 최대한 만족시키고 나머지는 힘으로 누르면 된다는 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으로 자유와 인권의 의미를 좁혀서 해석하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언론 통제, 경찰력 강화 등 억압체제 구축에 활용할 기술발전도 쌓여 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노선이 민족주의, 민주주의 등 기존 가치체계를 뒤집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자유주의 인간관이 편협하고, 따라서 불안정하다는 데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민주주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었음에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신자유주의자들은 고무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문명 전통의 힘이 이례적으로 약한 사회가 아니라면 반응이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뉴라이트가 기존 가치체계를 뒤집는 데 힘을 쏟는 것도 신자유주의 노선 실행을 위한 노력이다. 민족주의가 드러난 타도 대상이고 민주주의가 숨겨진 과녁이다. 자본주의화 이외의 역사에서 모든 의미를 지워버리려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한국인의 인간성이 그들이 규정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빈약한 것일까? 한국 사회의 문명 전통이 한 때의 상황을 틈탄 계급 사회 편성 시도에 짓밟힐 만큼 허약한 것일까? 앞으로 밝혀질 일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