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⑬

기사입력 2008-09-19 오전 11:56:26

  "악한 사람", 또는 "나쁜 놈"은 통상 상대적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성격이 모질어 보통사람이 못하는 짓을 하는 사람, 또는 통상적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 방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비난의 뜻을 더 강하게 할 때 "짐승 같은 놈"이나 "사람 같지 않은 놈"이라 하는 것을 보면 악한 사람도 사람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이라 하면 '인간'보다 '악'에 의미의 중점이 있다.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악'을 말하는 것이다. 사악한 인간이란 스스로 인간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존재다. 형식적으로는 사람이지만, 실질적 의미에서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다.

보통사람의 소박한 관점으로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적인 '악'의 관념을 앞세워야 한다. 절대악의 개념을 공급하는 종교는 여러 갈래 있고, 그 중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기독교다. 촛불 시민들이 아무리 밉더라도 그것을 "사탄의 무리"로 규정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절대악 개념 없이 힘든 일이다.

▲ 안병직의 햇볕 정책 비난을 보면 현 정부가 어째서 북한을 도발할 길을 못 찾아 안달인지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아직도 현 정부의 경제 운용 방향에 신경이 곤두서 있지만, 현 정부가 국가와 민족에 정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분야는 북한과의 관계다. ⓒ연합뉴스

부시가 한 "axis of evil"이란 말을 절대악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적 의미를 제시하는 아무 준거도 없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평소 인간이 사악할 수 있다는 생각 없이 합리적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애쓰던 나 같은 사람도 "저 놈이야말로 사악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시의 마음속에 절대악의 개념이 있음을 안 이상, 그 개념의 존재를 존중해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뉴라이트 물결에 휩쓸린 사람들 중에 우둔한 자들은 있겠지만, 사악한 인간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사실 생각한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뉴라이트 이념을 대표한다는 이들 중에서 아래와 같은 언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저 놈이야말로 사악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대중 씨는 자기의 주관적 통일 이론만 가지고 남북 수뇌 회담을 추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우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민족이야 어떻게 되었던 자기의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을 철저히 추구할 만큼 사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288쪽)

'사악'이란 유별난 말을 안병직이 썼기 때문에 이 대목이 두드러지게 눈에 거슬렸던 것인데, '우둔'이란 말을 쓰는 방법도 생각해 보면 비슷한 것이다.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읽는 것인가? 안병직이 북한 정세 보는 관점 내놓은 것을 보면 "어, 저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참 별난 사람이네."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가 우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와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우둔하다고 규정하는 것을 보면 "저 놈이야말로 우둔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을 참기 힘들다.

"'햇볕 정책'이란 말에는 북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북한 정세에 관해 안병직이 접하는 정보의 분량이 나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접하던 정보량에는 훨씬 못 미칠 것이 분명하다. 여의도연구소를 맡고 있는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위에 인용된 얘기를 하던 시절에는 큰 격차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김 전 대통령을 우둔하다고 단정 지은 까닭이 무엇인가?

위의 인용에 앞선 이야기를 보면 (같은 책, 286~288쪽) 북한이 정상 국가가 아닌 폭력 국가라는 사실, 북한이 1998년 이후 강성 대국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대북 정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안병직의 대북관이 틀린 것이고 김 전 대통령 쪽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정보량에 자신이 없으니 고집을 세우지는 않겠다. 안병직의 관점이 옳은 것이라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논법은 틀린 것이다.

'햇볕 정책'이란 말 속에는 북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이 말에 반감을 보이는 것이다. 햇볕 정책이 북한의 문제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점의 구체적 성격을 따져, 외투 벗기기가 아니라 모자 벗기기에 목적을 두어야 할 사안이라고 설득한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모자 벗기기라면 '햇볕 정책'보다 '폭풍 정책'이 더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으니까.

'폭력 국가'란 것이 이영훈의 표현으로는 "원자화된 개인을 직접 지배하는" 체제이며 "그런 국가에 외부로부터 우호적인 지원이 들어갈 때 어떠한 방향으로 변할 것인지는 기존 지배층의 이해관계가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쉽게 이해가 가는 얘기다. 그런 폭력 국가라면 우리도 20년 전까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원자화된 개인이 직접 체제의 지배를 받던 군사독재 시절, 독재를 극도로 미워하던 사람들은 누구든 외부 세력이 우리 체제를 때려 부숴 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체제의 악랄함에 대한 극단적 반발심일 뿐, 대다수 국민은 점진적 개혁을 원했고, 그것을 이뤄냈다. 사회 기반 조건의 변화에 아랑곳없이 권력에 집착하던 '기존 지배층'은 내부 모순으로 무너졌다.

6자 회담의 진행을 보더라도 한국의 햇볕 정책은 북한의 연착륙에 큰 도움이 되어온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이유 없이 햇볕 정책을 비판 정도가 아니라 비난하고 나서는 것은 북한의 연착륙이 아니라 파멸을 바라는 속셈이 아닌가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우둔', '사악' 같은 극단적 표현을 남발하는 데서 이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그리고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과의 관련성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경제를 놓고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1987년 민주화로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이 정말 무너졌던가? 엄밀히 말하면 '지배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상징적인 몇 사람이 퇴출되었을 뿐, 계층으로서의 '지배층'은 거의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87년 체제'는 '벨벳 혁명'의 꿈을 담은 길이다. 그 길을 연 혁명 주체는 정치적으로 중도적이고 경제적으로 중산층에 속하는 '시민' 계층이었다. 정치적 지향성이 약한 이 계층이 주체로 나선 것은 기존 군사독재가 사회 기반 조건의 발전에 너무나 뒤쳐져 겉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량주의 성향의 이 계층이 바란 것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변화 과정이었다.

20년간 계속된 87년 체제 속에서 바로 그런 과정이 일어나 왔다. 이런저런 곡절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좋은 변화가 참 많았다. 차분한 마음으로 2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권위주의 해소와 남북 간 긴장 완화 등, 어떤 과격한 혁명으로도 이루기 힘든 성취들이 그 동안 꾸준히 쌓여왔음을 생각하게 된다.

1987년 이후 10년간은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이 (다른 이름을 쓸 때도 있었지만) 정권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나라당은 1987년에 드러난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대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동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97년 이후 10년간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반 한나라당 세력이 정권을 담당하게 되었다.

2007년의 대통령선거는 벨벳 혁명의 허점을 드러낸 하나의 안티클라이맥스였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경제 살리기' 같은 허구의 과제가 핵심 이슈가 된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가 죽었나? 죽어가고 있었나? 그만하면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경제를 놓고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정작 요긴한 과제들이 도외시되고 말았다.

벨벳 혁명의 '허점'이라 함은 현실 정치에 작용할 수 있는 특정 집단의 조직력에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은 반대 세력을 압도하는 조직력과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 현실 상황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입지를 축소시킨다. 이 흐름을 뒤집기 위해 그들은 집요한 노력으로 경제 이슈화에 성공,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반칙을 유도하기 위한 고의적 더티플레이가 아닌가?"

  집요한 선전 활동이 시대의 흐름을 잠깐 가릴지는 몰라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잠깐 가리는 데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이 비용의 단적인 예가 조중동의 위신 추락이다. 벅찬 목표를 따라가기 바쁘다 보니 예전처럼 은근히 풍기는 정도로는 약발이 충분치 않아 원색적 나팔질과 노골적 말 바꾸기를 일삼다가 꼴이 말씀 아니게 됐다.

촛불 사태는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는 이명박 정부의 반동적 역류가 일으킨 풍파다. 이제 선전 활동 정도로 국민의 이목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 왔다. 방송 장악에 목을 매고 있지만, 장악에 성공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권력을 정신없이 휘두르는 양상은 집권세력의 대응책이 얼마나 빈약한지 보여줄 뿐이다.

미국 쇠고기 정도 사안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쩌나? 쇠고기보다 더한 폭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교육과 의료의 시장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등등….

국민들의 눈에서 시대의 흐름을 오랫동안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시도할 일은 한 가지다. 시대의 흐름을 진짜로 뒤집어놓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의 절박함만으로는 평화와 민주적 가치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한반도의 긴장을 최대한 격화시켜 놓아야만 독재시대 억압 체제의 복원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쓰다가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너무 비현실적인 '음모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어쩌랴, 워낙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려면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것을.

내가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전임 대통령들이 서명한 남북 간 조약들을 이명박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조약 내용 중에 국익을 위해 도저히 승계할 수가 없는 것이 있다면 재협상이든 추가 협상이든 요구할 일 아닌가. 뉴라이트 일각의 주장처럼 북한을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약 파기를 선언할 일 아닌가. 취임 반년이 넘도록 조약 내용을 준수할 뜻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반칙을 유도하기 위한 고의적 더티플레이가 아니면 무엇인가?

사장이 바뀐다 해서 법인체 회사가 맺은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온 나라가 들끓는데도 국제 신인도를 핑계삼아 미적거리더니, 강한 상대에게 굽실거리고 약한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신인도 올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긴장 지속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의 정부가 맞는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 등 '악의 축'을 이용해 가공의 긴장 상태를 일으킴으로써 군사 정책을 편의적으로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대외 신인도는 크게 훼손되었다. 클린턴도 탄핵 위험이 절박한 상황에서 이라크 공습을 재개해 군사 정책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지탄을 받은 일이 있지만, 부시가 벌인 짓에 비하면 약과 중의 약과다. 10년 전에 비해 미국의 '깡패국가(rogue state)' 이미지는 매우 선명해졌다.

그런 부시 행정부도 설거지 단계에 접어들어서는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상식을 많이 되찾고 있다. 6자 회담 참가국 중 미국과 함께 가장 북한에게 편협한 태도를 보이던 일본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모두가 긴장 완화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홀로 경직된 태도를 지키고 있다. 긴장 지속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의 정부가 맞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뉴라이트가 남북 관계의 긴장 상태의 지속 내지 격화를 바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펴는 미국이 세계의 군사적 긴장을 키우는 군사 정책을 취한 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빈부 격차를 늘려 제로섬게임의 한계를 최대한 확장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정치-사회적 자유를 제한하는 경향을 가진 것이다.

미국이 이런 소모적 정책을 택한 것은 파탄의 순간까지 강자의 입장에서 단물을 뽑아먹을 수 있는 이점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약자의 입장에 가깝고 긴장 완화의 과제를 가지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부적절한 정책이다.

그런 부적절한 정책을 '경제 살리기'라고 다수 유권자가 밀어주었으니, 경제는 살리든지 죽이든지 맘대로 하시라. 환율 시장 개입, 몰상식하게 해도 괜찮다. 시장화도 좋고 민영화도 좋고 대운하도 좋다. 그러나 제발 대북관계만은 근시안적인 장삿속으로 망쳐놓지 말기를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안병직은 김 전 대통령을 우둔하고도 사악한 인물로 본다고 한다. 나는 안병직이 우둔하고도 사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 달라고 그가 아무리 조르더라도, 우둔과 사악을 한 사람이 겸비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내 믿음은 변할 수 없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⑫

기사입력 2008-09-17 오전 8:54:14

  근대화를 하나의 성장 과정으로 본다면 일본 지배가 시작될 시점의 한국은 유아기에 있었다. 유소년기를 일본 지배 밑에서 지내고 청소년기를 반공독재 밑에서, 그리고 청년기를 개발독재 밑에서 지내다가 1987년의 민주화를 계기로 장년기에 접어든 단계라고 할까?
  
  이런 비유를 연장해서 본다면 조선의 국권 상실을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주의는 근대화의 핵심적 요소였다. 어느 곳에서나 국가는 전통시대와 비할 수 없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의 구석구석에 개입하면서 근대화 추진의 주체가 되었다. 독립국은 물론이고, 식민지에서도 식민국가가 그 역할을 맡았다.
  
  식민지 사회에 대한 식민국가의 역할은 고아원 같은 것이라 할까. 고아원 운영자가 원생을 대하는 태도는 여러 가지다. 제대로 먹이지 않으면서 강제노역을 시키고 외부 원조를 착복하는 운영자도 있다.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양심적으로 운영하며 원생들에게 같은 신앙심을 심어주고자 하는 운영자도 있다. 교육의 의미를 넓고 깊게 이해하면서 원생들의 사회 적응 준비를 최대한 도와주려 애쓰는 운영자도 있다.
  
  일본 지배는 어떤 성격의 고아원이었던가? 세 세대 이상이 지난 지금 따지고 들기에 너무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이 자기 유소년기 성장 환경의 성격을 따지고 있다면, 성장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가 아니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 환자일 것이다.
  
  그럴까? 우리 사회에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일까? 유소년기의 트라우마에서 유래하는, 청소년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해 둔 문제가 있어서, 성년이 되어 사회에서 한 몫을 맡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면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뛰어넘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가해자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자"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이 환자를 관찰해 보자. 정상적 가정 아닌 고아원에서 자라나고, 준비도 없이 사회에 나서자마자 깡패조직에 휩쓸린 사람. 패싸움에 앞장서다가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그 후에 뒤늦은 독학을 열심히 해서 칼잡이 대신 점포 경영으로 역할을 바꾼 결과 이제 합법적 사업을 꾸려나가는 자영업자가 되어 있는 사람.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범죄나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 비하면 큰 성공이다. 환경에 비해 품성도 좋고 노력도 많이 한 덕분이다. 그런데 사업도 생활도 꽤 안정된 지금까지 그의 마음속에는 불안한 그 무엇이 남아있다. 세상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 경향은 고아원 원장과 깡패 두목이 자기 인생에 어떤 작용을 했는가 하는 인식의 혼란에서 번져 나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둘 다 밉다. 그런 자들에게 얽매여 지내던 시절이 치욕스럽기만 하고, 그들에게 매달리지 않고 살아가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이 하던 짓은 모두 거꾸로만 하고 싶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힘이 부럽다. "내가 이만한 성공이라도 거둔 것은 그들의 성공을 보며 분발하고 그들의 강한 면을 배운 덕분 아니겠는가.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괴롭히고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를 질시하는 나약한 자세로는 나 자신 강자가 될 길이 없다. 이만큼 강해진 이제 나도 강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나 자신을 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들이 고마운 스승이고, 그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다.
  
  강자의 눈도 아니고 약자의 눈도 아닌 대범한 눈으로 볼 때 원장도 두목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곡절을 통해 그 위치에 서게 된 그들, 약자에게 군림하면서도 각자 내면의 고민을 가지고 있던 그들을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인간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길도 안정을 얻을 것이다.
  
  독자들이 눈치를 채셨을까? 그렇다. 나는 양비론을 펴려는 것이다. 정의감에 의지하는 수탈론-반미론에도, 실용을 내세우는 근대화론-친미론에도 새의 두 날개를 갖추지 못한 편향성이 있다. 양쪽 다 '상황'을 내세워 그 편향성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판단을 갈라놓는 어지러운 상황일랑 좀 접어놓고 우리의 존재를 직시해 보자.
  
  "우리의 정의는 활인의 칼인가, 살인의 칼인가?"
  
  앞서의 글에서("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란 무엇인가?") 이런 말을 했다. "수탈론은 매우 넓은 범위에서 표출되어 왔고, 또 피해망상적인 정서의 뒷받침도 받아왔기 때문에 그 담론 중에는 더러 불합리하고 편향적인 내용도 섞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탈론을 지지해 온 연구와 논설 중에는 지적 나태를 보여주는 것이 많다. 민족의 피해를 따지는 데 다소 과장하는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의로운 오류'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무비판적 분위기가 언론계만이 아니라 학계에까지 만연해 있었다.
  
  인간이란 것이 원래 오류를 저지르는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오류는 도움을 줄 대상이지, 처단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정의로운 오류'는 용서해서 안 된다. 정의란 주관적 가치관에 근거를 둔 것인데, 이것으로 객관적 사실을 재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질 나쁜 폭력이다. 파시즘의 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로운 오류'는 정의 자체를 망가뜨린다. 오류를 품은 정의는 활인의 칼이 아닌 살인의 칼이다. 살인의 칼이 당장은 불의한 자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을지 몰라도, 정의의 의미에 조그만 흠이라도 드러나는 순간 진정한 날카로움을 잃고 자신을 공격할 새로운 정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해방 전후산의 재인식> 머리말에서 박지향의 이런 말은 너무나 지당한 것이다.
  
  "민족 지상주의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논의와 관련된 여러 양태에서 잘 드러난다. 민족 지상주의는 민족이 다른 모든 가치들을 압도하고 지고의 가치로 부상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기상천외한 이념을 국민 앞에 내세우면서 그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짓누르고 있다. 민족에 앞서 인권과 자유가 먼저라는 외침은 민족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될 뿐이다."
  
  <재인식> 끝에 붙은 편집위원 대담에도 새로운 담론 방향을 모색하는 진취적 학자들이 민족 지상주의의 칼날 앞에 좌절을 느낀 사례들이 줄지어 나온다. 이것이 <재인식> 편찬의 일차적 명분이며, 논문 게재를 응낙한 국내외의 진지한 연구자들 중에는 이 좌절감에 공감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민족 지상주의'가 불러온 반발이다.
  
  "이념에 구애받지 않을 때 시각은 명쾌해진다"
  
  <재인식>에 실린 카터 에커트의 논문 '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공업화-사회 변화'에도 같은 문제의식이 보인다. "시대의 복합성을 단순히 민족의 희생과 민족주의적 투쟁이라는 역사 서술상의 패러다임으로 재단하려는 것은 조선인들 자신의 역량과 독창성뿐만 아니라 역사라는 학문 자체를 폄하하는 부당한 일"(<재인식 1>, 621쪽)이라는 그의 지적은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 편향성이 학계까지 뒤덮고 있음을 가리킨 것이다.
  
  에커트의 연구는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물적-인적 조건이 식민지시대를 통해 어떻게 확충되었는지를 밝힌 것이다. 관련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시대를 직접 연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식민지시대 한국의 실제 모습을 썩 명쾌하게 보여주는 좋은 논문이다. 민족주의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조건을 있는 그대로 보는 관점 덕분에 이만큼 명쾌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박지향이 머리말에서 "제4부는 식민지기와 해방 후 역사를 직접 연결시키는 인간군, 이를테면 박정희와 같은 인물들이 성장한 사실에서 식민지 유산을 찾아낸다."(같은 책, 17쪽)고 한 것은 에커트 논문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가치 판단이 억제되어 있는 이 언급은 이 논문에 대한 적절한 논평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영훈의 논평은 좀 다르다.
  
  "전쟁은 한반도를 제국의 공업화된 기지로 변형시키면서 조선의 경제구조를 극적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변화, 곧 근대화가 유발되었다. 그에 따라 조선인으로서 노동자와 기술자와 기업가와 관료의 수가 늘어나고 그 질이 향상되었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혁명을 주도한 박정희를 위시한 장교 그룹도 바로 그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이상이 에커트 교수의 논문입니다." (<대한민국 이야기>, 180쪽)
  
  이 설명은 한국의 근대화가 식민지시대의 기반 확보로부터 연속된 측면을 강조하며 '박정희를 위시한 장교 그룹'이 그 연속성의 축 역할을 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영훈은 <재인식> 편집위원 대담에서도 이 논문을 언급하며 식민지시대와 대한민국기 근대화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재인식 2>, 648~649쪽) 이것은 에커트 논문의 취지와 거리가 있는 관점이다. 에커트는 두 시기 사이의 관련성을 제기했지, 연속성을 말한 것이 아니다.
  
  "소외계층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하는 전쟁 상황"
  
  에커트의 논문은 일제 통치 하의 한국에서 근대화의 기반 조건이 형성되는 과정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근대화와 관련된 일본의 정책이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일본의 이익을 위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식민지시대의 근대화는 그 의미가 제한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초기 식민 정부는 이미 발전 도상에 있는 본국의 공업을 복제하거나 심지어 그것과 경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한반도에 고도의 공업 구조를 설립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재인식 1>, 604~605쪽)든가, "이 글은 의도적으로 전시 조선에서 확인되는 조선인의 출세 기회들, 그러니까 조선에서의 식민지 지배를 이해하는 데 역사적으로 중요한데도 기존 논의에서 무시되어온 양상들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이끌어왔다. 그럼에도 이것이 복합적인 식민지 지배 역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같은 책 652쪽)이라고 하는 대목 등이다.
  
  논문 도입부에서 에커트는 '전쟁'이라는 상황 변수를 부각시킨다. 총력 동원을 필요로 하는 전쟁 상황은 종래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소외계층의 능동적 참여를 요구한다. 제2차 세계대전영국은 전쟁 협력을 조건으로 여러 피지배 민족에게 독립을 약속했다. 유럽의 여성 참정권도 이 전쟁을 계기로 실현되었다. 식민지 한국에 대해 일본이 '내선일체'를 목표로 한 차별 철폐에 나선 것도 대동아전쟁의 확전 과정 속에서였다. 한국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 일본이 부득이하게 조선 개발에 나선 것을 에커트는 전쟁 상황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에커트가 보기에 일본이 조선 식민지 개발에 처음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1914년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공산품 시장 확대와 1918년 일본의 '쌀 소동'으로 절실해진 안정된 쌀 공급의 필요 때문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경제 침체로 조선 개발 노력이 쇠퇴했다가 1930년대 만주 진출에 따라 조선 개발정책이 활기를 띠고, 1937년 대동아전쟁 발발로 개발의 물결이 최고조에 오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논문 말미에서 에커트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일본 정책의 주목적은 조선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국의 역량을 강화하고 전쟁 수행에 봉사하는 데 있었다. 많은 수의 조선인들이 이 시기에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의 급박함이 가져온 아이러니이며, 일본의 관대함이 아니라 거꾸로 조선인의 능력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증거"(같은 책, 652쪽)라고 했다. 일본이 식민 통치를 통해 한국에 만들어준 근대화의 기반 조건에는 구조적 문제가 없을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에커트는 식민지시대에 형성된 한국 근대화의 인적 자원, 특히 군인 집단을 설명하면서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제 통치의 권위주의 스타일이 재현된 사실과의 관련성을 제기했다.(같은 책, 653쪽) 중요한 의미를 담은 지적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 그룹 덕분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다는 듯이 갖다 대는 것은 이영훈의 이야기지, 에커트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정택의 책동으로 드러나고 있는 뉴라이트 야욕"
  
  <재인식>에는 에커트의 논문 외에도 참고 가치 있는 진지한 연구 결과가 많이 실려 있다. 특히 지나친 민족주의 편향성을 뛰어넘어 더 넓은 지평을 바라보는 연구들에 접하게 된 것이 독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새로운 관점을 모색해 온 연구자들에게도 <재인식> 게재 요청은 반가웠을 것이다. 편집진이 공식적으로 제안한 편집 취지는 그야말로 '학문적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시도로 보였을 것이다. 편집진의 (적어도) 일부가 이 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가지고 수준 미달의 정치 선전물을 끼워 넣거나 심지어 게재 논문 내용을 왜곡해서 전파할 것을 논문 필자들이 미리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뉴라이트 측에서는 근현대사와 관련해 학계 주류를 '좌파'라 몰아붙이지만 내가 보기에 학계 주류는 '수구보수'다. 기존 민족주의 패러다임의 정상상태(normal state)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 학문적으로 더 투철한 성과물인 <근대를 다시 읽는다> 매출이 <재인식>에 크게 뒤지는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목소리 크기로 결판낼 싸움이 아니라면 학문의 발전 방향을 능동적으로 모색하는 이런 노력을 잘 수렴하는 데 학문의 장래가 있고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그런데 지금은 패러다임 전환을 심각하게 모색할 때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패러다임을 내다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에 대한 진보적 학자들의 지적을 적어도 귀담아 들을 필요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좌파'로 지목하는 이념성 강한 학자들을 '진보파'라 부르기도 하지만, 그들이 현실정치에서 어느 노선을 추구하건 학문적인 의미에서는 '보수파'다. 내가 여기서 '진보적' 학자라 함은 이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노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탈이념'이 진보성의 주된 지표이며, 따라서 민족주의도 뉴라이트도 모두 학문적으로는 보수로 보는 것이다.)
  
  <재인식>은 주류 학계와 다른 이념으로 주도권을 넘겨받으려는 뉴라이트 논객(학자라기보다는)들의 쿠데타 시도다. 이 시도가 상당 범위 진보적 학자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주류 학계의 과도한 보수성에 대한 반작용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덕분이다. 이명박 정부 등장으로 그 의도가 일찍 분명히 드러나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역사 교육을 대치하려는 야욕이 공정택의 책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노가다 스타일로 볼 때, 빠른 시간 내에 역사 교육에 심각한 훼손이 빚어질 위험이 있다. 그뿐 아니라 뉴라이트 역사관에 의탁하는 극우적 대외정책과 경제정책이 국익을 해치는 일은 벌써 진행되고 있다.
  
  <재인식> 출간 9개월 후 일군의 진보적 소장 학자들이 힘을 합쳐 <근대를 다시 읽는다> 2책을 엮어 낸 것은 장한 일이다. 포괄하는 연구 방향이 <재인식>과 많이 겹치지만, 학문의 발전만을 위해 만든 이 책은 한국학의 장래를 보여주는 책이다. 뉴라이트를 비판적으로 보는 주류 학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일이 이 책을 사 보라는 것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수준 미달이라고 콧방귀만 뀌면 무엇하나? 나쁜 놈들이라고 욕만 하면 무엇하나? 서학을 '사학'으로 몰아 탄압을 청하는 상소를 놓고 '정학'이 융성하면 사학이 발붙일 자리가 있겠느냐, 분란 일으킬 시간 아껴 학문에나 힘쓰라고 호통 치던 정조 임금의 기개가 그립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⑪

기사입력 2008-09-12 오전 8:43:42

  2006년 2월 나온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재인식>)에는 두 가지 면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폭넓고도 격렬한 비판을 받은 것은 그 정치성이다. "편집위원들을 대신해" 머리말을 쓴 박지향은 출간 전부터 이 문제를 겪었다고 말한다.

"한데 출간 과정에서 두 차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 모든 작업을 함께했던 출판사가 아무런 구체적인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더 이상 작업을 함께할 수 없다고 통고해온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서로 다른 두 출판사가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이 작업은 어디까지나 우리 학계의 학문적 발전을 위한 것이고 어떤 정치적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누누이 설명하고 계약을 맺었던 우리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물론 그 동안 일부 언론이 이 책의 내용을 지레짐작해서 이리저리 기사를 써온 것은 사실이지만, 편집위원들은 이 책이 그 어떤 현실 정치적 함의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혔기 때문에 출판사들의 태도는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재인식 1>, 12~13쪽)

내가 보고 있는 이 책은 출간 17일 만에 나온 4쇄본이다. 학술 논문집으로 이례적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데는 이 책의 '현실 정치적 함의', 또는 그에 대한 기대감 외에 다른 이유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논문을 실은 필자들 중에는 편집진이 표방한 '학문적 발전'이란 목적을 곧이들은 이들도 있겠지만, 편집진(박지향, 김철, 김일영, 이영훈) 중 적어도 박과 이 두 사람은 현실 정치적 함의를 명백히 지향한 것으로 나는 본다.

"빈약한 비전과 과잉된 정치성으로 빚어진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박지향 외 엮음, 책세상 펴냄). ⓒ프레시안

정치적 비판에 비해 좁은 범위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더 의미 깊은 비판으로 내가 보는 것은 학술적 가치 문제다.

박지향은 <월간중앙> 2006년 3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해전사>의 역사 인식이 놓치고 있는 다른 수많은 연구 성과를 보여 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재인식>은 <해전사>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승화이고 극복이다." 20년 전에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뛰어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재인식>에 실린 논문의 일부만을 읽어보았지만, 실제로 <인식> 다음 단계를 바라보는 좋은 연구가 여러 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재인식>은 이런 좋은 연구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현실정치적 함의'가 엿보이면서 학문적 수준이 처지는 논문들과 함께 묶어놓은 것이 제일 큰 문제다. 이것은 편집진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편집진의 잘못은 모자란 면과 지나친 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모자란 면은 학문의 앞날을 바라보는 비전이 빈약한 것이고, 지나친 면은 (일부일지 모르지만) 편집진의 현실 정치와 관련된 의욕이 책의 성격을 너무 강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비전의 빈약함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왈부하기보다 <재인식>과 같은 해에 비슷한 크기로 비슷한 범위의 연구들을 담아 나온 <근대를 다시 읽는다>와 비교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데 그치고, 이 글에서는 과잉된 정치성만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겠다.

이 목적에 마침 적합한 재료가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란 부제처럼 <재인식> 편집진의 한 사람이 <재인식> 내용을 라디오 시청자들에게 소개한 강의노트에서 출발한, 말하자면 <재인식> 안내서로 내놓은 것이다. 안내자의 자세에서 편집자의 자세를 비쳐볼 수 있는 면이 있을 것이다.

"조관자의 논문은 이영훈의 설명과 전연 다른 것이었다"

<재인식 1>에 실린 조관자(일본 주부대학)의 논문 '민족의 힘을 욕망한 친일 내셔널리스트 이광수'와 관련해 이영훈은 이렇게 썼다. 지루하겠지만 조금 길게 인용한다.

"그가 협력자로 돌아선 것은 적어도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흔히들 친일파라 하면 그렇게 알고 있지만, 조관자의 논문은 그러한 통설적 이해를 정중히 거부합니다. 오히려 이광수는 진지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름 아니라 일본을 조선이 본받아야 할 선진 문명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선의 불결, 무질서, 비겁, 무기력 등에 절망합니다. 그러한 야만의 조선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일본인처럼 깨끗하고 질서 있고 용감하며 협동하는 문명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이야말로 조선 민족이 재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서 그는 정직하였습니다. 조관자 교수는 그러한 정신세계의 이광수를 '친일 내셔널리스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친일을 하는 민족주의자! 이 얼마나 모순된 표현입니까. 그러나 저는 그러한 모순된 표현에서 이광수만이 아니라 식민지기를 살았던 대다수 지식인의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서 협력과 저항은 신구 두 문명이 격렬히 충돌하는 고통이었으며, 그 속에서 문명인으로 소생하기 위한 실존적 선택의 몸부림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이야기>, 104~105쪽)

조관자의 논문을 아직 읽기 전에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광수를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는 데 학술연구까지 필요한 것일까,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관자의 논문을 얼른 읽어보니, 이영훈의 설명과 전연 다른 것이었다. 이영훈의 글에 나오는 이광수의 모습은 조관자의 논문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재인식>에 실린 좋은 논문들, 너무 아깝다"

이영훈은 '친일 내셔널리스트'란 말을 놓고 "이 얼마나 모순된 표현입니까." 하고 경탄하는데, 이것은 조관자가 아무 모순도 없이 명쾌하게 내놓은 개념이다. 조관자가 말한 '친일 내셔널리즘'이란 "일본 내셔널리즘의 폭력적인 전개에 의해 전도된 식민지 내셔널리즘의 한 형태"였으며, "조선인이 제국 일본의 '주체=신민'이 되는 내셔널리즘의 한 형태"였다.

민족주의에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두 개의 얼굴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질서의 얼굴과 폭력의 얼굴이다. 나는 민족주의의 폭력성을 싫어하지만,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는 카오스를 피할 필요를 더 절실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조관자는 폭력성에 나보다 예민한 분으로 보인다. 내셔널리즘에 대한 그의 고찰은 그 "권력 운동의 근본 문제"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내셔널리즘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병리적 현상이며, 친일 내셔널리즘은 그 병리성이 이중으로 겹쳐져 나타나는 것이라고 그는 본다. "민족을 위한 친일"이라는 친일 내셔널리즘은 파탄을 피할 수 없는 사상누각이라고 그는 보는 것이며, 이 논문은 그 파탄을 확인하는 것이다.

조관자의 논문에서 중요한 몇몇 대목을 인용한다. 이런 발췌는 필자의 진의를 전하는 데 물론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이영훈의 왜곡을 분명히 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원 논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시쳇말로 '개념 있는' 논문이다.

"'내선일체에 대응한 '동조동근'의 혈통과 역사적 전통을 창출하며, 조선인이 제국 일본의 '주체=신민'이 되는 내셔널리즘의 한 형태를 정립하려 했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친일 내셔널리즘'이라 부르고, 최남선과 더불어 그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였던 이광수의 논설을 통해 '민족을 위한 친일'이 형성되고 파탄되는 지점을 추적하려고 한다."

"민족 사학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이른바 민족 개량주의의 근대화론자들이 일제의 민족 분열 정책에 이용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들은 근대 문명 국가를 욕망하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정립하였기 때문에 일제와 타협하는 생존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러나 닫힌 공간의 균일성은 가상된 것에 불과하며, '주체=전체'의 복합적 내셔널리티를 의미하는 '내선일체'는 그 공평성이 결코 실현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파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적극적인 친일이 단순히 민족주의 운동을 포기한 결과가 아니며 식민지 자본주의가 생존하기 위한 전진적인 투항이라고 예견한다. 종속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을 우선시하여 독립의 목표를 상실한 것은 확실히 패배적인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친일 내셔널리즘의 자본과 권력 운동이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귀결이다."

"'조선심'을 사멸하는 것이 '일심일체'인 상황에서 일본의 '형제'들에게 '조선인의 마음'에 호소해 달라고 하는 역설. 생존의 이익을 도모하는 친일 내셔널리즘의 힘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가상된 동포애의 집단 도취적인 희생을 찬미하는 파시즘의 낭만적 수사다. 차별과 억압을 원망하는 조선인, 차별과 억압의 이익을 지키고 싶은 일본인, 길항하는 두 마음을 의식하면서 이광수는 '깨끗한 일본 혼'의 대사를 읊고 '천황의 적자'를 연기한 것이다."

"이광수는 미군정이 친일 내셔널리즘을 배제하지 않고 반공주의 국가를 준비하는 것에 안도한다. 미국을 적대시하던 '친일'에서 '친미'로 돌변한 모습을 보고 그를 '변절의 천재'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다. 적어도 이광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충실했다. 강자의 문명과 패권을 욕망하는 '친일 내셔널리즘'이 '민족주의적'인가, '친일적'인가, '친미적'인가 하는 문제는 상황 변수에 불과하다."

"생존이 위협당하는 곳에서는 강자도 약자도 살아남기 위한 힘을 욕망한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위기의식이 크면 클수록 힘에 대한 욕망도 커지고 배타적인 절대 권력의 탄생을 바라게 된다. 절대 권력은 체제 안의 균열을 억압하는 정치 신학을 구축한다. 모든 권력 주체들이 '민족주의'를 선망하는 것은 그것이 '피와 혼'의 논리로써 '우리'라는 자연의 귀소, '원초적 합의'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전향도 '문명에의 귀의'로 해석하고 싶은 욕심"

이영훈은 조관자의 논문을 설명하면서 이광수가 진지하고 정직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조관자의 논문에서 이광수의 진지함은 집요함이었고, 정직함은 어리석음이었다. 전향 전에도 전향 후에도 이광수의 내셔널리즘은 힘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 욕망에 눈이 가려 반일 내셔널리즘보다도 더욱 뚜렷할 수밖에 없는 친일 내셔널리즘의 모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그의 지성이 허약했다는 사실, 반일, 친일, 친미의 어느 상황 변수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신념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이 논문은 보여준다.

이영훈은 또 이광수의 전향 이유를 "일본을 조선이 본받아야 할 선진 문명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조관자는 전연 다른 의견이다. 이광수가 2차 유학기(1915~1919)에 <매일신보>에 실은 글에서 "조선의 신사조차도 지식과 인격을 결여한 어린이로 비칠 것"을 상상하며 부끄러워한 것에 대해 "그를 비롯한 도쿄 유학생 출신들이 문명 콤플렉스 때문에 주체성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밝혀 말했다. 이광수의 진심이 어떠했든, 이 논문에서 조관자가 이해한 각도는 이영훈의 설명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영훈이 문명을 자본주의 문명으로만 본다는 것은 앞서 여러 번 지적한 문제거니와, 이광수의 전향도 '문명에의 귀의'로 해석하고 싶은 그의 욕심은 이해 못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편집한 책에 게재한 논문의 내용을 이렇게 뒤집어서 설명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이기를 바랄 뿐이다. 조관자가 부정적으로 본 친일 내셔널리즘을 이영훈이 다분히 긍정적인 개념처럼 내놓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2중 부정은 긍정이라 생각한 것일까?

반일, 친일, 친미가 모두 '상황 변수'일 뿐이라고 조관자가 말하는 것은 "강자의 문명과 패권을 욕망하는" 이광수의 빈약한 정신세계를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물질세계에서만 가치를 찾는 이영훈은 바로 이 '상황 변수'에만 매달린다. 당시의 상황 변수에 투철했던 '친일 내셔널리즘'을 바람직한 모델로 보며 지금의 상황 변수에 투철한 '친미 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그에게는 "강자의 문명과 패권을 욕망하는" 이광수가 바로 선구자일 것이다. 이광수에 관한 논문을 <재인식>에 실으려면 조관자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가 썼어야 했다.

"편집자의 책임과 권한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 '현실 정치적 함의'가 없는 작업이라던 <재인식> 편집진의 강변은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거쳐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그리고 공정택의 교과서 교체 책동으로 이어지는 로드맵 앞에 무색하기만 하다. <재인식>의 논문 필자들이 이 거대한 음모의 첫 희생자가 아닐까. 그들은 왜 아무 말이 없을까. ⓒ국민일보

조관자 논문처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은 아니라도, 같은 책에 실린 최경희(미국 시카고대학)의 '친일 문학의 또 다른 층위 : 젠더와 야국초'에 관한 설명에서도 이영훈의 아전인수 욕구가 눈에 띈다. 이런 대목이다.

"어머니가 그 아들을 비열하고 무책임한 조선의 사생아가 아니라 정직하고 책임 있는 제국의 아들로 바치고자 하는 뜻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배신한 조선의 남자에게 복수하는 겁니다." (<대한민국 이야기>, 106쪽)

이영훈의 왜곡을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독자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 다만, 최경희의 논문이 훌륭한 비평 논문이며, '나쁜 조선'과 '좋은 제국'을 대비시킨 대목이 없으며, '복수'의 의미를 "조선의 남자"에 대한 것보다 훨씬 폭넓게 추궁한 연구라는 내 의견만을 밝히고 지나가겠다.

<대한민국 이야기> 머리말에서 이영훈은 출판 전에 원고를 <재인식> 공동편집위원이던 김철과 박지향에게 보였다고 한다. 박지향의 학문 수준이나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그의 글을 통해 얼마간 판단할 수 있었지만, 김철이 그 원고를 보고도 자신이 편집에 참여한 책에 대한 그토록 심한 왜곡을 용납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김철 교수도 원고를 읽어 주었는데, 그의 충고에 따라 이 책의 제1장을 거의 다시 썼다"(앞의 책, 8~9쪽)고 이영훈이 말한 데서 김철의 이의 제기가 얼마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온 책 내용에 대해서는 김철도 승인했다는 이야기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 편집위원들의 머리말에도 이런 말이 있다. "<재인식>에 논문을 낸 분들 가운데에는 편집진의 생각이나 역사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여러분이 억울하게 쓰게 된 '보수우익'이라는 누명에 분노와 당황스러움을 표명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재인식>의 일부 논문을 볼 때, 편집진 전체는 몰라도 이영훈이나 박지향의 생각이나 역사관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인식'을 가지고 게재를 응낙한 것인지 몰라도, <재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누리는 평판 앞에 분노와 당황을 느낀다는 것은 딱한 일이다. 게다가 편집진 중 한 사람이 <대한민국 이야기> 식으로 왜곡해서 내놓는 것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짓이다. 게재료를 줬으면 그 논문들이 편집자의 '사유재산'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