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하나의 도시다.”

 

미국의 50개 주 중 49개 주에는 지방자치가 주(state)-군(county)-읍(township)의 3단계로 되어있다. 유일하게 하와이 주만은 읍이 없이 두 단계로 되어 있다. 하와이의 네 개 군 가운데 하나는 전체 인구의 70%를 점하는 오아후 섬이고, 또 하나는 전체 면적의 60%가 넘는 하와이 섬이다.

 

하와이만 두 단계의 지방자치를 행하는 것은 다른 주들보다 작아서가 아니다. 미국 본토에 하와이보다 인구가 적은 주는 열 개 가까이 되고 면적이 더 작은 주도 둘이나 있다. 이유는 하와이가 섬이라는 데 있다. 하와이, 오아후, 마우이, 카와이 등 네 개의 큰 섬에 인근의 작은 섬들을 붙여서 각각 하나의 군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개발과 관리의 단위가 된다. 각각의 단위를 일관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 밑에 별도의 자치단위를 안 두는 편이 좋은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행정조직을 본다면 조선시대의 1목(牧) 2현(縣)이나 지금의 2시 2군이나 모두 육지부의 조직방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섬 지역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방법이다. 일제시대의 도제(島制)처럼 제주도 전체를 도보다 작고 군보다 큰 하나의 단위로 보아 1읍 12면으로 편성한 것이 제주의 고유한 조건에는 오히려 합당한 방법이었다. 크고 작은 섬을 많이 가진 나라라서 섬 지역의 특성을 인식하는 안목은 나았던 것인지.

 

면적이 1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 하와이 섬, 인구가 백만 가까이 되는 오아후 섬이 모두 지방자치의 기초단위 노릇을 하는데 제주도가 통일된 지방자치단위를 이루지 못하고 그 밑에 기초단체를 따로 두고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 섬 위에 쓰레기처리장 만드는 일을 네 개 단체가 각각 결정하는 것이 좋은 일인가? 아스팔트 포장도 개설계획을 네 개 시-군이 제가끔 세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당장 월드컵경기장만 해도 그렇다. 이 섬에 월드컵 경기를 유치하는 일을 놓고 서귀포시와 제주도 사이에 적지 않은 혼선이 있어 왔고 유치가 결정된 이제 경기장 건설비 문제가 막막하다. 서귀포시와 다른 자치단체들 사이의 분담률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도민의 입장에서 볼 때 월드컵 경기는 제주도에 오는 것이지, 서귀포에 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월드컵 경기 개최가 도시 단위로 결정된다는 데 있다. 가로지르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제주도는 실질적으로 하나의 도시다. 그런데 그중 구(區) 하나의 크기로 볼 지역을 쪼개 '시'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때문에 월드컵 경기 유치의 주체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제주는 도-시-군의 강요된 구획방법을 벗어나 자신에게 적합한 지방자치 체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섬 전체의 장래가 달려있는 일들은 모두 하나의 자치단위로 묶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道)'라는 이름 대신 '도(島)'라는 고유한 자치단체명을 가져도 좋고 '광역시'의 이름을 취해도 좋다. 그 밑의 하위단체의 경우는 행정관만을 선출하고 의회는 따로 두지 않는 정도가 어떨까 한다.

 

거품경제가 꺼져가는 요즈음 지방자치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9년 전 지방자치 실시에 즈음하여 기존 행정체계의 대폭 조정을 구상하다가 무산된 일을 기득권층, 특히 공무원 집단의 밥그릇 걱정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작년의 여수 지역 3개 시-군 통합을 보면 주민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주의 자치구조가 주민들의 의지에 따라 새로 만들어질 날을 기다린다. 1998. 1. 16

 

내 희망사항 가운데 제일 화끈하게 실현된 항목이다. 행정구역 제주도(濟州道)는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환되었고, 기존의 2시 2군은 기초단체가 아닌 2개 행정시로 바뀌었다.(의회가 없고 시장은 도지사가 임명한다.) 이 변화가 진행될 때 나는 연변에 체류 중이어서 그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반가운 소식이었다.

 

변화의 출발점은 2003년 10월 31일 제주를 방문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노대통령 ‘제주특별자치도 복안’”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노무현 대통령은 31일 "제주 스스로 자기발전 방향을 추슬러 나가면 제 임기 안에 제주특별자치도가 되도록 지원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제주도를 방문, 지역인사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특별자치도엔 권한을 대강 넘겨주는 게 아니라 세금도 따로 부과할 수도 있고 깎아줄 수도 있고 그 밖의 행정규제도 스스로 판단해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복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것(특별자치도)이 제주도에 무조건 이익을 가져다줄지는 모르겠으나 도민의 의견에 따라 창의적 방향 설정에 의해 중앙정부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된다 싶으면 집중 지원이 가능하고 이는 제주 발전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이는 모델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여러분이 방향을 잡아 중앙정부에 제의하고 협의하면 힘껏 도와드리겠다"며 "큰 건 하나 하자"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특별자치도' 개념은 중앙정부로부터 사실상 독립해 행정, 입법, 조세권 등을 상당부분을 독자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지방정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4-3사건에 대해 제주도민들에게 국가 차원의 사과를 한 자리였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는 이 사과 장면을 TV뉴스로 보는 순간 “이런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며 지금도 “참여정부에 들어가 일한 것 중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뭐냐고 누가 물으면 주저 없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고 대답한다.”고 회고했다. (“형가, 제주도, 그리고 노무현의 추억”, <김기협의 페리스코프-10년을 넘어>(서해문집 펴냄) 319쪽)

 

50여 년 전의 국가폭력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란 획기적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특별자치도 전환 제안에는 4-3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죄를 뒷받침하는 뜻이 있었다. 실제로 추진 과정에서 반대파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 사죄의 의미 덕분에 그런 반대를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도 제주도를 위해 국가가 일방적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방자치 입체화는 그의 주요 정책노선 중 하나인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중요한 방향이었다. 그로서는 4-3사건 사과의 의미 위에 지방자치 입체화의 출발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니,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격이었다.

 

얼마 후 주민투표법과 이에 근거한 조례가 제정되면서 특별자치도 추진은 주민투표란 방법을 갖추게 되었다. 2004년 7월 제주도의회의 주민투표조례 제정을 앞두고 특별자치도 전환을 위한 주민투표가 그해 12월로 예정되었다. 그 무렵 기초자치단체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났다. 기초단체의 폐지가 “민주주의의 역행”이라는 비판이 기초단체의 장과 의회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난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4년 8월 23일 “제주 ‘자치권 없는 행정구 도입 반대’”, <경향신문> 2004년 9월 4일 “시-군 폐지는 지방자치 역행”)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는 야당(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특별자치도 추진에 있어서 정부 및 여당(열린우리당)과 긴밀하게 협조했다. 그러나 기초단체 폐지에 대한 일각의 반대가 격렬해지자 주민투표를 늦추고 특별자치도와 행정계층 조정을 별도로 추진하기로 했다. 민심의 향방이 분명했기 때문에 한나라당도 특별자치도 추진에 정면으로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국가보안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 중 부정적 태도를 은연중 드러내기도 했다.

 

"제주도민 두려워 국보법 폐지 못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이유로 제주도가 독립할 경우 처벌 근거가 없다”는 망언을 서슴치 않아 제주도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 지난 21일 국가보안법상 ‘참칭조항’의 존치 이유에 대해 “굳이 북한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부참칭 조항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제주도 주민들이 주민투표로 독립을 선언하고 제주민주공화국을 선포할 경우 참칭조항이 없다면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

 

여기에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 역시 비슷한 발언을 하고 있다. 최 의원은 최근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할 경우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에도 부합하지 않고, 통일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 후 “(참칭조항을) 삭제할 경우, 예를 들어 제주도가 탐라국으로 독립을 선포하면 국가 변란 목적은 없다고 할 경우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에 대해 “보수 정치인들이 제주도와 도민을 정부에 대한 ‘예비 반란자’로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며 4.3의 굴레를 벗는 데 반세기가 걸린 제주도민들의 가슴에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컷뉴스> 2004년 9월 23일, CBS제주방송 김대휘 기자)

 

결국 2005년 7월 27일 제주도 주민투표에서 기초단체를 없애는 ‘혁신적 대안’이 기초단체를 그대로 두는 ‘점진적 대안’을 누르고 선택받음에 따라 그해 말 국회에서 “제주도 행정체제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되고 이듬해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이른다.

 

특별자치도 출범과 별개로 주민투표에 의한 행정체계 선택도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기초단체 통합에서는 민의가 행정체계 선택에 이미 작용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광역단체 차원에서는 국가의 기본구조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후 부산-경남-울산 통합론이 일각에서 나온 일이 있고 2012년 대선에서는 강원도의 특별자치도 전환이 문재인 후보의 공약으로 나온 일이 있다. 이 논의들의 타당성을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으나, 논의가 쉽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의 선례 덕분이며, 이런 논의를 통해 지금의 제도보다 더 좋은 방향을 찾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제주도가 그 특수한 조건을 잘 살림으로써 다른 지역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Posted by 문천

"노동집약형 관광산업으로"

 

관광은 매출액으로 제주도 전 산업의 약 40%를 점하는 중요한 분야다. 그러나 대다수 도민은 제주의 관광수입이 제주인의 주머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불만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매출 규모에 있어서도 비중이 크고 부가가치 효과도 높은 골프장과 특급호텔 등 거대시설은 거의 전부가 외지자본의 소유로, 제주인의 수입은 종업원의 급료와 약간의 재료 납품에 불과하다.

 

중문단지 건설 이래 외지의 대자본을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개발된 결과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개발계획은 단지 위주의 자본집약형을 추구해 왔다. 이것이 제주 관광산업의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일까?

 

제주 관광산업의 기본자원은 자연이다. 이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에 따라 자본과 노동력이 투입돼야 함은 물론이다. 국제수준의 호텔조차 제대로 없던 시절에 대자본을 끌어들여 중문단지를 만든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기본시설이 웬만큼 갖춰진 이제, 반반한 자연조건을 가진 곳이면 빼놓지 않고 거대단지와 거대시설로 도배를 해야 할 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곳에 와서 돈을 써줄 관광객의 입장으로 눈을 돌려 보자. 하룻밤에 20만 원씩 하는 특급호텔에 어떤 사람들이 묵어 왔는가. 일부 고소득층 아니면 공금으로 위로성 행사를 가지는 경우나 평생 한 번만이라도 실컷 사치를 해보겠다는 신혼여행객들이다. 거품이 걷힐 때 제일 먼저 씻겨나갈 사람들이다. 실제로 요즘 특급호텔의 이용률이 크게 줄어든 반면 1~2급 호텔의 이용률이 높아진 '알뜰관광' 풍조를 눈여겨봐야 한다.

 

제주관광의 마케팅 표적은 한국의 도시중산층에 집중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주의 자연과 인문 조건을 가장 요긴하게 음미할 계층이며 시장규모도 제일 크기 때문이다. 이 계층이 지금까지는 해외관광의 주류를 이뤄왔는데 근래의 상황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어서 제주관광 속의 비중을 늘릴 전망이다.

 

이 계층의 기본성향은 향락관광보다 휴양관광이다. 온갖 신기한 향락시설이 다 있는 대도시에서 빠져나와 또 새로운 향락을 찾기보다는 제주의 편안한 환경 속에서 푸근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한다. 관광객이라는 별도의 인종으로 행세하기보다 최소한의 안락성만 보장된다면 민박집에 머물며 제주사람들과 같은 식당에서 밥 먹고 싶어 한다. 이름 붙은 관광코스에서 벗어난 곳을 즐길 기회라도 있으면 횡재라도 한 듯 좋아한다. 혹시 은퇴한 뒤에 아주 와서 살 수는 없을까 이런저런 사정을 알아보기도 한다.

 

30년 전에 비하면 제주도의 민간자본 축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몇 백억대 이상의 대자본만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지금까지의 관광개발 정책 아래서는 큰 몫을 맡을 수가 없었다. 자금난과 불경기의 전망으로 거대시설 건설을 위한 외지자본 유입의 중단이 예상되는 지금이 역내자본에 근거한 중소규모 사업자를 육성할 기회다. 규격화된 호텔방을 그만 늘려야 특색 있는 민박집이 늘어날 것이요, 대형 관광식당가를 만들지 말아야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식당 스타일이 살아날 것이다.

 

관광산업은 서비스를 파는 산업이다. 이웃처럼 느껴지는 민박집 아저씨, 식당 아줌마들의 소탈한 웃음과 대화를 대다수 관광객은 잘 훈련된 직업적 서비스보다 좋아한다. 제주의 보통사람들이 의욕적인 자영업을 근거로 관광 일선에 나서야 관광수입의 알맹이가 제주에 떨어진다. 직업적 관광업자들이 지키는 관광단지와 관광코스에 관광객을 격리시키는 관광정책은 이제 바뀌기 바란다. 1998. 1. 15

 

관광은 근대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에는 즐거움을 위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계층이 아주 작았고, 따라서 그런 여행을 위한 제도와 시설도 발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구의 대다수가 관광을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있고, 관광업은 서비스산업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땅에도 20세기에 접어들어 서양 문물 도입의 한 부분으로 근대적 관광이 나타났다. 철도 부설에 이어 1910년대 조선호텔을 비롯한 여러 곳 철도호텔 개설로 관광시설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시대는 물론, 1960년대까지도 관광은 극소수 특수계층에 한정된 활동이었다. 일반인에게는 학생 시절 소풍과 수학여행 정도가 관광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1960년대 초 관광사업법이 제정되고 관광공사가 설립되면서 관광 관련 정부 기능이 확충되었으나 그 기능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집중되어 있었다. 1967년 이후 국립공원 지정이 ‘국민관광’의 본격적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지로서 제주도의 면모도 이 무렵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1973년의 제주도종합관광개발계획과 1978년의 중문단지 착공 이후 제주도는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관광지가 되었다.

 

관광지로서 제주도의 장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본토와 꽤 큰 차이를 가진 기후와 풍광인데, 이것은 국내 관광객에게 어필한다. 또 하나는 섬으로서 격절성인데, 이것은 해외 관광객 유치에 유리한 조건이다. 제주도 관광개발 초기에 일본인 관광객의 역할이 컸는데,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아직 몹시 나쁠 때 제주도의 격절성이 활용된 것이다. 지금 중국인 관광객에게 비자를 면제하는 것도 이 격절성 덕분이다.

 

16년 전 위 글을 쓸 때 내가 오판한 사실이 하나 있다. 외국인을 위한 관광지로서 제주도의 장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저렇게 많이 찾아올 줄 몰랐다. 이 오판을 나는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근년 중국인 관광활동의 급격한 증가가 워낙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래 표는 세계관광기구(World Tourism Organization)가 집계한 10대국의 2011-2012년도 해외관광비 지출액이다. (<Wikipedia> "Tourism"에서)

 

 

순위

국가

    2011년 지출액

2012년 지출액

              증감

1

 China

$72.3 billion

$102.0 billion

01 !40.5

2

 Germany

$85.9 billion

$83.8 billion

03 !2.4

3

 United States

$78.7 billion

$83.7 billion

03 !6.6

4

 United Kingdom

$51.0 billion

$52.3 billion

07 !2.5

5

 Russia

$32.5 billion

$42.8 billion

02 !31.6

6

 France

$44.1 billion

$38.1 billion

01 !13.6

7

 Canada

$33.3 billion

$35.2 billion

04 !5.7

8

 Japan

$27.2 billion

$28.1 billion

06 !3.3

9

 Australia

$26.7 billion

$27.6 billion

05 !3.4

10

 Italy

$28.7 billion

$26.2 billion

02 !8.8

 

중국인 관광객 증가는 제주도 관광산업을 위해 다행한 일이다. 제주도는 앞으로도 중국인 관광객의 사랑을 많이 받을 것이다. 기후와 풍광으로 제주도 못지않은 해남도(海南島)가 중국에 있지만, 몇 해 전 해남도에 가보니 관광산업이 관광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건전한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도 관광업은 해남도보다 훨씬 세련된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

 

해남도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면 15년 전 생각한 노동집약형 관광업의 필요성은 중국인 상대 관광업에도 적용된다. 앞서의 글에서 자연의 타자화를 근대 산업문명의 특성으로 지적했는데, 타자화의 대상은 자연에 그치지 않는다. 관광산업도 관광 대상 사회와 관광객 사이의 타자화를 전제로 발전을 시작했다.

 

성숙한 단계 관광문화에서는 이 타자화가 완화된다는 사실을 유럽 관광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광지 주민들은 관광객을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시선을 별로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관광객도 주민의 관점에 접근해서 그곳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단체관광객은 그러지 못하는 수가 많지만) 관광객과 주민 사이에 거리감이 적다.

 

해남도에서 본 중국 관광업은 제주도보다도 자본집약형 형태가 지배적이었다.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곳은 몽땅 울타리를 쳐 놓고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것이 관광사업의 주축이고, 여관과 식당은 이익 극대화가 장사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기색이 없다. 제주도가 해남도보다 풍광이 좋아서보다 바가지 염려 없이 관광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제주도를 더 좋아하는 중국 관광객이 많을 것 같다.

 

관광단지의 자본집약형 관광업에서는 타자화 원리가 굳게 지켜진다. 반면, 소시민이 주체인 노동집약형 관광업에서는 주민과 관광객 사이의 장벽이 낮아진다. 중국의 관광정책이 당국의 직접 수입에 집착하지 않고 주민의 사업 기회를 키워주는 쪽으로 바뀌기 전에는 제주도와 한국 관광업이 상대적 이점을 누릴 것이다.

 

제주도를 떠난 후 자주 가보지 못하고 있는 동안 좋은 소식 하나를 들었다. 올레길 운동 출범이다. 인구 60만 명의 제주도는 조그만 사회다. 제주도 주민은 관광업에 직접 종사하지 않더라도 생활의 환경과 조건에 큰 영향을 끼치는 관광사업의 건전한 발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올레길 운동은 제주도 관광업의 주도권이 관에서 민으로 옮겨가는 건전한 발전의 징표로서 반가운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1992년 리우환경회의 이후 ‘지속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 개념이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의 일환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개발의 지속가능성은 자연환경의 보호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관광의 지속가능성에서는 사회와 문화의 보호에도 큰 중점을 둔다.

 

지난 15년간 제주 관광업의 변화에는 반가운 측면이 많다. 제주도 관광업의 활기가 더욱더 자라나는 한편 그 활기가 주민들의 생활에도 부담보다 즐거움이 되기 바란다. 앞으로의 관광업 발전에 ‘지속가능성’의 기준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그 길이 될 것이다.

 

 

Posted by 문천

"생활환경도 특산물이다."

 

농업과 환경은 원천적인 상극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1백만 년 전 현생인류가 나타나고부터 1만여 년 전 농업이 발생할 때까지 지구상 인류의 개체수는 1백만에서 5백만 사이를 오락가락했다고 한다. 지구생태계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들에게 큰 위협을 가하는 일 없이 기후 등 조건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면서 지낸 것이 인류의 원시상태다.

 

그러다 어느 날 농업을 발명하고부터 개체수가 엄청나게 늘기 시작해 지금은 원시상태의 1천 배가 넘는 상태에 와 있다. 이 번영은 다른 생물종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 것이다. 인류에게 쓸모 있는 생물종만을 골라 더욱 쓸모 있는 모습으로 바꿔가며 키우고 쓸모없거나 해로운 생물종은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에 박멸해 가며 지구 표면을 인류의 번식에 유리한 모습으로 바꿔온 것이다.

 

제주 땅에도 기천 명 인구가 살며 채집과 수렵으로 생활한다고 하면 몇 만 년이 지나도 환경에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지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수십만 명이 살고 있는 이상, 환경을 그대로 지킨다는(preservation) 것은 불가능하다. 가까운 장래에 큰 파탄을 맞지 않도록 최대한 아끼는(conservation) 것이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환경을 아낌에는 개발의 이익과 환경의 가치 사이에 끊임없는 저울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발과 관련된 논의에서 흔히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현재 드러난 가치에만 시각이 한정된다는 점이다. 환경자원의 잠재적 가치를 넓고 깊게 음미하지 않는다면 황금알 낳는 거위를 잡아먹는 어리석음을 면할 수 없다.

 

희소성은 재화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결정적 요소다. 그 동안 제주의 관광과 특작물이 희소성의 가치를 누려온 것은 국가의 장벽 덕분이다. 해외관광이 어려운 시절 이국적 풍취를 제법 가진 제주가 관광지로 인기 있었고, 수입과일이 귀하던 시절 제주의 감귤과 온실재배 바나나, 파인애플이 경쟁력을 가졌다. 그러나 무역개방과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그 희소성은 빛이 바래고 있다.

 

희소성을 누릴 대체상품으로 제주의 환경을 생각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육지부의 환경파괴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에 비하면 제주는 마음먹고 노력하면 한국인 대다수가 와서 살고 싶어 할 곳으로 지킬 수 있다. 아무리 돈 있다고 우리말과 우리 음식이 없는 곳에 가서 살려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쾌적한 환경을 찾아 뉴질랜드로 이민 갔던 사람들 중에 돌아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지 않은가.

 

농업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을 학대하기보다는 환경을 아끼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라 생각한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사이의 캘리포니아 해안지대에는 소위 실버타운이 즐비하다. 그곳에서 쾌적한 노후를 지내려고 미국 각지에서 평생 번 돈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곳에서는 농업과 목축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대신 자연환경을 잘 지킴으로써 땅값 상승과 서비스산업의 성장을 기하고 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물과 기름 소비의 억제다. 원수(原水) 값을 올리는 최근의 정책은 반갑지만, 더 바짝 올려 다른 곳에서 물을 실어오는 원가 수준에 접근시켰으면 한다. 수입가격이 엄청나게 오르는 기름을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영농형태는 지양하고 농업과 목축업의 규모를 지금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름의 소비세와 자동차등록세도 제주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 길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1998. 1. 17

 

‘개발’이란 무엇인가. 잠재해 있는 가치를 캐어내 활용하는 것이다. 문명 발생 이래 인간은 새로 습득한 기술을 이용해 자연을 개발하는 일을 꾸준히 해 왔다. 새 기술을 습득함에 따라 전에는 활용가치가 없던 사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달한 근대에 이르러 ‘개발’ 작업이 인간의 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농업기술의 발달에 따라 황무지와 삼림이 경작지로 개간되고, 재료기술의 발달에 따라 쓸모없던 물질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인간사회마저도 새로운 산업구조 안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의 대상이 되었다.

 

개발 작업에는 인간이 주체가 되고 자연이 대상이 된다.(인간사회를 개발할 때는 문명인이 주체, 미개인이 대상이다. 개발 대상이 되는 미개인은 자연과 같은 속성으로 간주된다.) 인간은 원래 자연의 일부이기도 한 것인데 개발 작업에 임하는 인간은 그 측면을 묵살한다. 자연을 타자화(他者化)하여 ‘정복’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자연의 타자화는 문명 초기부터 있어 온 현상이다. 그런데 근대 이전의 타자화는 그리 철저한 것이 아니었는데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세계에서는 자연 정복을 인간의 당연한 과업으로 여기는 사상이 풍미했다. 더 많은 자원을 자연으로부터 착취하고 ‘미개한 자연’을 남겨두지 않는 것이 인류를 더 훌륭한 존재로 만드는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역사에 대한 관점의 변화에 비쳐진다. 근대 이전의 역사관은 폐쇄회로 형태가 지배적이었다. “하늘 아래 어느 것도 전혀 새로운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역사 속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에는 문명이 무한히 발전해 나간다는 진보사관(Whig interpretation)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변화를 꺼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조건 환영하는 습성을 근대인은 갖게 되었다. 인간 자신의 모습이 바뀌는 것도 좋아하고 자연의 모습을 바꾸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모든 개발은 가치를 창출하는 절대 선으로 간주된다.

 

이 관점에 대한 뚜렷한 반성이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1963년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출간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고 1973년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나왔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개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 개발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시야에 넣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런 한계 없는 변화란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이 명백한 상식을 물질문명의 발전에 도취된 근대인은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발이 어느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개발할 자원이 무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노력만 더 기울이면 얼마든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 왔을 때, 창출해 온 가치보다 파괴해 온 가치가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성장의 한계’다.

 

산업화가 아직 덜 되었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 가치를 파괴해 나간다. 그러다가 그것들이 희소성을 갖게 되었을 때에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제주도는 개발이 힘든 곳이었다. 산업화 이전의 농업문명 단계에서도 수분을 쉽게 투과시키는 지질 때문에 농업 확대가 어려웠다. 산업화 단계에 들어와서도 위치 때문에 제조업이 크게 발전할 수 없었다. 제주인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 조건이다. 그런데 바로 그 조건 덕분에 제주의 자연환경이 잘 지켜질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의 산업화 과잉시대에는 엄청나게 큰 가치를 갖게 되었다.

 

제주도 개발의 최후 관문은 물 문제였다. 이 관문 돌파를 위해 1960년대 후반 어승생저수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물 문제 해결의 진짜 열쇠는 관정(灌井)에 있었다. 수백 미터 땅속에서 뽑아내는 지하수의 분량이 어승생 공급량의 수십 배에 이른다. 이 관정 기술 덕분에 제주도의 농업이 크게 확대되고, 목축업도 종래의 방목을 넘어 집약적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관정에서 뽑아내는 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섬 위에 떨어지는 빗물의 대부분은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땅 속으로 스며든다. 해수면 가까이 내려와서야 땅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해안 가까운 샘에서 나오기도 하고 바닷물 속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해안 가까이 샘이 많은 것이다.

 

지하수위(地下水位)라는 것이 있다. 소금물이 담긴 대야 속에 커다란 스펀지 한 덩어리를 놓고 스펀지 위에 주전자로 물을 붓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을 많이 부을 때는 스펀지를 적신 물이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소금물의 수면보다 꽤 높은 선까지 채워져 있고, 적게 부을 때는 수면 가까이로 내려간다. 그것이 지하수위다. 비가 많이 내릴 때는 지하수위가 올라가고 가뭄 때는 내려간다.

 

그런데 수십 년간 관정으로 물을 뽑아내다 보니 지하수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에 이르렀다. 15년 전에도 이 문제가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었다. 조금 높은 곳의 샘들은 말라붙고 낮은 곳의 많은 샘들이 버려졌다. 지하수 수압이 낮아지면서 전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던 곳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어왔기 때문이다.

 

제주 지낼 때 나는 기회 있는 대로 수돗물 값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물론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다. 더군다나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생업을 위협하는 얘기다. 그러나 섬의 생명의 근원이라 할 지하수원의 안정성에 대한 위협에 비하면 작은 이해관계일 뿐이다. 농업과 목축업이 더 확장되지 않는 선에서 응급대책을 시행하고 장기적으로는 더 축소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돗물 값 책정에 직접비용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직접비용이라면 관정의 설치와 유지, 운영, 그리고 공급에 드는 비용이다. 원수(原水) 값도 생각해야 한다. 육지에서 같으면 원수를 확보하기 위한 댐의 설치, 유지, 운영에 드는 비용이 원수 값의 주된 내용이 될 것이다.

 

제주도의 수돗물에도 원수 값이 포함되기는 한다. 그런데 나는 원수 값을 훨씬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책정 기준은 지하수원의 가치에 달려 있다. 지하수원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 소비 수준이 지하수원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할 만큼은 그 평가가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 값 올리란 얘기를 제주 떠난 사람이 하기가 제주인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작은 부담을 받아들임으로써 큰 손해를 피하기 바라는 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