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형 관광산업으로"
관광은 매출액으로 제주도 전 산업의 약 40%를 점하는 중요한 분야다. 그러나 대다수 도민은 제주의 관광수입이 제주인의 주머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불만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매출 규모에 있어서도 비중이 크고 부가가치 효과도 높은 골프장과 특급호텔 등 거대시설은 거의 전부가 외지자본의 소유로, 제주인의 수입은 종업원의 급료와 약간의 재료 납품에 불과하다.
중문단지 건설 이래 외지의 대자본을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개발된 결과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개발계획은 단지 위주의 자본집약형을 추구해 왔다. 이것이 제주 관광산업의 성장을 위한 유일한 길일까?
제주 관광산업의 기본자원은 자연이다. 이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에 따라 자본과 노동력이 투입돼야 함은 물론이다. 국제수준의 호텔조차 제대로 없던 시절에 대자본을 끌어들여 중문단지를 만든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기본시설이 웬만큼 갖춰진 이제, 반반한 자연조건을 가진 곳이면 빼놓지 않고 거대단지와 거대시설로 도배를 해야 할 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곳에 와서 돈을 써줄 관광객의 입장으로 눈을 돌려 보자. 하룻밤에 20만 원씩 하는 특급호텔에 어떤 사람들이 묵어 왔는가. 일부 고소득층 아니면 공금으로 위로성 행사를 가지는 경우나 평생 한 번만이라도 실컷 사치를 해보겠다는 신혼여행객들이다. 거품이 걷힐 때 제일 먼저 씻겨나갈 사람들이다. 실제로 요즘 특급호텔의 이용률이 크게 줄어든 반면 1~2급 호텔의 이용률이 높아진 '알뜰관광' 풍조를 눈여겨봐야 한다.
제주관광의 마케팅 표적은 한국의 도시중산층에 집중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주의 자연과 인문 조건을 가장 요긴하게 음미할 계층이며 시장규모도 제일 크기 때문이다. 이 계층이 지금까지는 해외관광의 주류를 이뤄왔는데 근래의 상황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어서 제주관광 속의 비중을 늘릴 전망이다.
이 계층의 기본성향은 향락관광보다 휴양관광이다. 온갖 신기한 향락시설이 다 있는 대도시에서 빠져나와 또 새로운 향락을 찾기보다는 제주의 편안한 환경 속에서 푸근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한다. 관광객이라는 별도의 인종으로 행세하기보다 최소한의 안락성만 보장된다면 민박집에 머물며 제주사람들과 같은 식당에서 밥 먹고 싶어 한다. 이름 붙은 관광코스에서 벗어난 곳을 즐길 기회라도 있으면 횡재라도 한 듯 좋아한다. 혹시 은퇴한 뒤에 아주 와서 살 수는 없을까 이런저런 사정을 알아보기도 한다.
30년 전에 비하면 제주도의 민간자본 축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몇 백억대 이상의 대자본만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지금까지의 관광개발 정책 아래서는 큰 몫을 맡을 수가 없었다. 자금난과 불경기의 전망으로 거대시설 건설을 위한 외지자본 유입의 중단이 예상되는 지금이 역내자본에 근거한 중소규모 사업자를 육성할 기회다. 규격화된 호텔방을 그만 늘려야 특색 있는 민박집이 늘어날 것이요, 대형 관광식당가를 만들지 말아야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식당 스타일이 살아날 것이다.
관광산업은 서비스를 파는 산업이다. 이웃처럼 느껴지는 민박집 아저씨, 식당 아줌마들의 소탈한 웃음과 대화를 대다수 관광객은 잘 훈련된 직업적 서비스보다 좋아한다. 제주의 보통사람들이 의욕적인 자영업을 근거로 관광 일선에 나서야 관광수입의 알맹이가 제주에 떨어진다. 직업적 관광업자들이 지키는 관광단지와 관광코스에 관광객을 격리시키는 관광정책은 이제 바뀌기 바란다. 1998. 1. 15
관광은 근대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에는 즐거움을 위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계층이 아주 작았고, 따라서 그런 여행을 위한 제도와 시설도 발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구의 대다수가 관광을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있고, 관광업은 서비스산업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땅에도 20세기에 접어들어 서양 문물 도입의 한 부분으로 근대적 관광이 나타났다. 철도 부설에 이어 1910년대 조선호텔을 비롯한 여러 곳 철도호텔 개설로 관광시설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시대는 물론, 1960년대까지도 관광은 극소수 특수계층에 한정된 활동이었다. 일반인에게는 학생 시절 소풍과 수학여행 정도가 관광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1960년대 초 관광사업법이 제정되고 관광공사가 설립되면서 관광 관련 정부 기능이 확충되었으나 그 기능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집중되어 있었다. 1967년 이후 국립공원 지정이 ‘국민관광’의 본격적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지로서 제주도의 면모도 이 무렵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1973년의 제주도종합관광개발계획과 1978년의 중문단지 착공 이후 제주도는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관광지가 되었다.
관광지로서 제주도의 장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본토와 꽤 큰 차이를 가진 기후와 풍광인데, 이것은 국내 관광객에게 어필한다. 또 하나는 섬으로서 격절성인데, 이것은 해외 관광객 유치에 유리한 조건이다. 제주도 관광개발 초기에 일본인 관광객의 역할이 컸는데,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아직 몹시 나쁠 때 제주도의 격절성이 활용된 것이다. 지금 중국인 관광객에게 비자를 면제하는 것도 이 격절성 덕분이다.
16년 전 위 글을 쓸 때 내가 오판한 사실이 하나 있다. 외국인을 위한 관광지로서 제주도의 장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저렇게 많이 찾아올 줄 몰랐다. 이 오판을 나는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근년 중국인 관광활동의 급격한 증가가 워낙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래 표는 세계관광기구(World Tourism Organization)가 집계한 10대국의 2011-2012년도 해외관광비 지출액이다. (<Wikipedia> "Tourism"에서)
순위 |
국가 |
2011년 지출액 |
2012년 지출액 |
증감 | |
1 |
|
$72.3 billion |
$102.0 billion |
| |
2 |
|
$85.9 billion |
$83.8 billion |
| |
3 |
|
$78.7 billion |
$83.7 billion |
| |
4 |
|
$51.0 billion |
$52.3 billion |
| |
5 |
|
$32.5 billion |
$42.8 billion |
| |
6 |
|
$44.1 billion |
$38.1 billion |
| |
7 |
|
$33.3 billion |
$35.2 billion |
| |
8 |
|
$27.2 billion |
$28.1 billion |
| |
9 |
|
$26.7 billion |
$27.6 billion |
| |
10 |
|
$28.7 billion |
$26.2 billion |
|
중국인 관광객 증가는 제주도 관광산업을 위해 다행한 일이다. 제주도는 앞으로도 중국인 관광객의 사랑을 많이 받을 것이다. 기후와 풍광으로 제주도 못지않은 해남도(海南島)가 중국에 있지만, 몇 해 전 해남도에 가보니 관광산업이 관광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건전한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도 관광업은 해남도보다 훨씬 세련된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
해남도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면 15년 전 생각한 노동집약형 관광업의 필요성은 중국인 상대 관광업에도 적용된다. 앞서의 글에서 자연의 타자화를 근대 산업문명의 특성으로 지적했는데, 타자화의 대상은 자연에 그치지 않는다. 관광산업도 관광 대상 사회와 관광객 사이의 타자화를 전제로 발전을 시작했다.
성숙한 단계 관광문화에서는 이 타자화가 완화된다는 사실을 유럽 관광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광지 주민들은 관광객을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시선을 별로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관광객도 주민의 관점에 접근해서 그곳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단체관광객은 그러지 못하는 수가 많지만) 관광객과 주민 사이에 거리감이 적다.
해남도에서 본 중국 관광업은 제주도보다도 자본집약형 형태가 지배적이었다.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곳은 몽땅 울타리를 쳐 놓고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것이 관광사업의 주축이고, 여관과 식당은 이익 극대화가 장사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기색이 없다. 제주도가 해남도보다 풍광이 좋아서보다 바가지 염려 없이 관광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제주도를 더 좋아하는 중국 관광객이 많을 것 같다.
관광단지의 자본집약형 관광업에서는 타자화 원리가 굳게 지켜진다. 반면, 소시민이 주체인 노동집약형 관광업에서는 주민과 관광객 사이의 장벽이 낮아진다. 중국의 관광정책이 당국의 직접 수입에 집착하지 않고 주민의 사업 기회를 키워주는 쪽으로 바뀌기 전에는 제주도와 한국 관광업이 상대적 이점을 누릴 것이다.
제주도를 떠난 후 자주 가보지 못하고 있는 동안 좋은 소식 하나를 들었다. 올레길 운동 출범이다. 인구 60만 명의 제주도는 조그만 사회다. 제주도 주민은 관광업에 직접 종사하지 않더라도 생활의 환경과 조건에 큰 영향을 끼치는 관광사업의 건전한 발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올레길 운동은 제주도 관광업의 주도권이 관에서 민으로 옮겨가는 건전한 발전의 징표로서 반가운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1992년 리우환경회의 이후 ‘지속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 개념이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의 일환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개발의 지속가능성은 자연환경의 보호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관광의 지속가능성에서는 사회와 문화의 보호에도 큰 중점을 둔다.
지난 15년간 제주 관광업의 변화에는 반가운 측면이 많다. 제주도 관광업의 활기가 더욱더 자라나는 한편 그 활기가 주민들의 생활에도 부담보다 즐거움이 되기 바란다. 앞으로의 관광업 발전에 ‘지속가능성’의 기준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그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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