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대의 미니버스"

 

LA에서는 자동차 없이 꼼짝도 할 수 없다. 전철도 지하철도 없고, 대부분의 버스는 구역 내에서만 운행하기 때문에 승용차가 아니면 돌아다니기가 너무 힘들다. 여행자라도 차를 빌리지 않으면 관광버스가 데려다주는 곳밖에 다닐 수 없다.

 

지금은 1천만을 헤아리는 LA의 인구가 아직 1백만이 안 되던 1930년대까지 이 도시는 미국에서 가장 전차 노선이 잘 깔려있는 도시의 하나였다. 그런데 1938년에 자동차회사 GM이 스탠다드 석유회사, 파이어스톤 타이어회사와 힘을 합쳐 전차회사를 매입했다. 그리고 전차를 없애버렸다.

 

2차대전 후 팽창하는 LA의 도시계획은 자동차 위주로 설계됐다. 시내의 어느 지점도 고속도로에서 6km 이상 떨어진 곳이 없다. 그러나 세계제일의 도로망도 7백만 대의 차량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LA시민들의 냉소적인 자랑거리 두 가지는 '세계최대의 주차장'과 '원조 스모그'다.

 

필자가 처음 제주에 와본 것이 1980년이다. 통계를 찾아보니 그때 제주도의 등록차량은 6천 대 미만이었는데 최근의 통계(1996년)는 12만여 대로 20배 이상 늘었다. 그 주범은 승용차, 특히 자가용 승용차다. 화물차는 이 기간 중 10배 는 반면 자가용 승용차는 물경 70배로 늘어 전체 차량 대수의 56%를 점하고 있다. 화물차의 증가를 생산활동의 성장에 대략 비례하는 것으로 본다면 소비 성향이 강한 자가용 승용차는 그보다 7배의 속도로 증가해 온 것이다.

 

거품시대의 대명사 자가용은 불황기를 맞아 수많은 제주의 가구에 힘겨운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쉽게 차을 없앨 수도 없는 것은 그 편리함에 길이 든 까닭도 있지만 공공운송 체계가 미흡한 때문이다. 이 거품을 시원스레 걷어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결단에 앞서 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보통사람들이 자가용 없이도 불편하지 않게 다니려면 얼마나 큰 공공운송 체계가 필요할 것인가? 제주에서 가장 외지고 작은 마을이라도 하루 20회 이상 버스가 닿고 가장 한적한 군도(郡道)라도 50회 이상 버스가 지나다닐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지금 운행 중인 시외버스 330대의 갑절이면 충분하리라 한다.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버스는 중소형이면 된다. 330대의 미니버스를 투입해 수만 명의 자가용 차주들로 하여금 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앞으로도 자가용의 추가 수요를 막을 수 있다면 제주의 경제를 위해, 그리고 제주의 환경을 위해 엄청난 이득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갑절의 버스를 운행하면서 수지를 맞춘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공공운송은 공영사업이 되어야 할 것이며, 지금보다도 운임을 낮춰 적자 폭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마 연간 100억원대의 적자가 날 것이다. 그러면 이 적자를 보전할 재원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자가용 승용차의 차량세를 대폭 올리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새로 등록하는 차량은 곧바로 크게 올리되 기존 차량은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상당수의 차주는 앞으로 자가용의 보유를 포기하겠지만, 역시 상당수의 차주는 보유를 계속한다고 볼 때 머지않아 차량세 수입 증가가 1백억원대에 이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세계라 하더라도 교통만은 시장논리에 방임할 수 없다는 것이 LA의 교훈이다. 제주의 환경은 제주인의 쾌적한 생활을 위한 조건일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다. 330대의 미니버스로 몇 만 대 승용차를 대신할 수 있다면 이 불황기에서 얻는 최대의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1998년 1월 14일에서 20일까지 <한라일보>에 “IMF와 제주”란 제목으로 여섯 꼭지 글을 올린 일이 있다. 5년간 살던 제주도를 떠나며 그곳에 대한 생각을 한 차례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김현우님 글 “운전면허증을 찢어라!”를 보며 그중 한 꼭지가 생각나 꺼내보고, 그때의 생각에 몇 마디 더 보태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연주의자가 아니다. 기계문명에 대한 반감도 크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기계의 하나가 되어 있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렇게 익숙하다는 사실에 합당한 이유가 없는 것 같고, 그 때문에 인류사회가 겪는 손해가 너무 크다고 생각된다.

 

김현우님 글은 자동차의 존재가 사람들 생활에 끼치는 위해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자동차가 넘쳐나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의 중요한 한 측면이다.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에너지 낭비다. 자동차 운행에 쓰이는 연료 소비만이 아니라 자동차 재료에 들어가는 에너지까지 생각한다면, 현대문명의 위기를 구성하는 자원과 환경 문제의 주범 중 하나에 틀림없다.

 

모든 ‘문명의 이기(利器)’에는 남용의 위험이 있다. 제일 눈에 잘 띄는 예가 휴대전화다. 30년 전에 존재하지도 않다가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는 휴대전화 중에는 과잉소비가 꽤 있다. 이 과잉소비에도 개인의 원자화, 사회질서 약화 등 부작용이 따른다. 하지만 자동차의 과잉소비가 초래하는 온갖 위험과 손해에 비길 만한 것은 아니다.

 

위험과 손해를 가져오는 물건이라도 꼭 필요한 것이라면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자동차에는 필요악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자격에 한도가 있다. 꼭 필요한 규모보다 열 배 스무 배 넘는 과잉소비를 약간의 필요성 때문에 방치할 일은 아니다.

 

비교적 폐쇄된 공간인 제주도에 살면서 제주도의 차량 수요에 대해 생각해 봤다. 1996년 제주도의 등록 차량 12만여 대 중 약 7만 대가 자가용 승용차였다. 공공버스는 3백여 대였다. 공공버스 대수를 갑절로 늘려 편의성을 높이면 얼마나 많은 자가용 보유자들이 자가용 대신 버스 서비스에 만족하고 살 수 있게 될까 생각하며 위 글을 썼다.

 

당시 제주도에는 버스로 쉽게 다닐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운행 간격이 길고 연발, 연착이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어느 곳에서나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고, 또 어느 버스를 타기 위해 몇 분이나 기다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면? 나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량등록세나 유류소비세를 엄청 높여 자가용 보유와 운행을 억제할 경우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큰 비용을 감내하고 마이카를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차가 줄어든 도로 상황에서 ‘마이카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고, 그들이 내는 세금은 대중교통 확충의 재원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부자가 못 되는 사람들 중에는 ‘마이카의 비용’에서 기쁘게 벗어나는 사람이 많고 환경조건의 향상을 반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마이카의 자유’를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대부분을 만족시킬 만한 카셰어링 제도가 보급될 것이다. 주먹구구지만, 제주도에 1천 대의 공공버스가 운행된다면 아마 지금 10만 대를 넘어섰을 자가용 승용차의 수요가 1만 대 미만으로 떨어지리라는 추정이 그리 허황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자가용 승용차가 줄어들면 구입자금과 운행비용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제주 사람들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질 것이다. 환경 훼손이 줄어들어 관광자원의 가치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생활도 더 쾌적해질 것이다. 이렇게 두루두루 좋은 길을 마다하고 각자 자가용 굴리느라고 고생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제주 떠난 지 15년이 되었고, 최근 가본 지도 5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는 것은 무엇보다 섬으로서의 특성 때문이다. 반도국가의 일부로서 제주가 겪는 마이너리티의 위치에 한민족이 중국문명권의 일부로서, 그리고 세계의 일부로서 겪어 온 마이너리티의 역사를 겹쳐보고 싶은 마음에서 애초에 제주 가서 살 생각을 했던 것이다.

 

제주인은 마이너리티의 조건으로 인해 역사 속에서 많은 불이익과 고통을 겪어 왔다. 오늘의 상황에서 그 마이너리티의 조건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은 작은 나라 한국이 작다는 조건으로 겪어 온 불이익과 고통을 벗어나기 바라는 마음과 이어진 것이다. 제주에서 살아보고 제주 역사를 살피면서 나는 제주 잘 되는 길이 우리 민족 잘 되는 길과 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키워 왔다.

 

자동차에 매여 살지 않는 세상을 꿈꾸면서도 제주를 통해 그 꿈이 이뤄질 것을 생각한다. ‘차 없는 세상’ 좋은 것을 모두들 알게 되더라도,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대통령이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변화의 길을 찾아내고 실행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제주인의 합의가 한국인의 합의보다는 훨씬 쉽지 않겠는가.

 

제주인들에게 부탁한다. 자동차 줄이는 길을 찾아 달라고. 여러분 생활을 안락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길이며, 관광지로서만이 아니라 낙토(樂土)로서 제주도의 가치를 늘리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을 제주도가 보여주면 육지것들도 고마운 마음으로 배울 테니, 마이너리티의 조건을 유리한 쪽으로 뒤집는 길이기도 하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