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놓고 미국과 한국에서 대결정책과 포용정책이 경쟁하는 상황은 북한에 관한 연구와 저술에도 투영된다. 북한체제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문헌에는 대결정책을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보이고, 비교적 너그러운 시각을 보여주는 문헌의 필자는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연구와 서술의 자세가 치우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고하는 책의 편향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북한 관계 연구와 서술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풀린 지 오래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태도 사이의 균형이 이제야 잡혀가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관권의 규제가 덜 심했기 때문에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가 작은 편이다. 남북관계의 심층적 탐구를 시작하는 단계의 필자가 미국 문헌에 비중을 꽤 많이 두게 된 것은 그 까닭이다.

지금까지 퀴노네스의 <한반도 운명>, 위트-폰먼-갈루치의 <북핵위기의 전말>, 오버도퍼의 <두 개의 한국>, 해리먼의 <코리안 엔드게임> 등 미국 관리, 학자와 언론인의 저술을 많이 활용해 왔다. 나는 포용정책의 타당성을 크게 보고 대결정책을 건전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의견을 갖고 있는데, 위 책들은 대개 내 의견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나도 내 편향성 때문에 문헌 활용에서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니었을까? 한 차례 반성해 본 결과 크게 심한 문제는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놓는다.

위의 미국인 필자 중 셀리그 해리먼은 미국 관계에서 종북주의자딱지가 붙은 인물인데, 내가 보기에도 조금 지나친 대목이 더러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필자들은 한반도에 대한 지식의 한계나 정치적 보수성 때문에 지나치기보다는 미흡하게 느껴지는 곳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각이 포용정책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그에 맞서는 대결정책이 너무나 엉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철저한 반성을 위해 대결정책을 지지하는 쪽 문헌을 열심히 검토해 봤다. 그쪽 문헌으로 가장 영향력 큰 것이 척 다운스의 <북한의 협상전략>(손승종 옮김, 도서출판 한울 펴냄)으로 보인다. 다운스의 경력은 199910월에 나온 이 책에 국방부 아-태지역 부국장 / 미공공정책연구소(AEI) 아시아담당 부실장 역임 / 현재 크리스토퍼 콕스 미하원 정책위원회 의원장 외교안보담당 보좌관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책에는 원서가 “Over the Line - North Korea's Negotiating Strategy”란 제목으로 1999“The AEI Press, Publisher for 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서 펴낸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마존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이 책은 19981월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책 내용에 1999년에 일어난 일들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볼 때 1999년 후반 이후에 증보판이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저자가 AEI에서 일하면서 쓴 책을 AEI 부설 출판사에서 간행한 책이니 AEI가 어떤 기관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기관 이름을 국내에서 미국기업연구소로 번역하는 일이 많은데, 적절치 못한 번역 같다. “American Enterprise”란 미국의 특별한 사명,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가리키는 것이다. 1938년 창설된 이 기관은 정부권력의 제한, 사기업, 개인의 자유와 책임, 기민하고 효과적인 방위와 대외정책, 정치적 책임성과 공개적 토론 등 미국의 자유와 민주적 자본주의의 원리를 방어하고 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을 명시적 목적으로 한다.(<Wikepedia>, AEI) 여기서 “Enterprise”기업이 아니다. 나라면 이 기관명을 아메리칸엔터프라이즈 연구소라 번역할 것이다.

AEI네오콘 소굴로 정평 있는 기관이다. AEI를 발판으로 근년 활동한 사람들 중에 딕 체니 부부, 존 볼턴, 폴 월포위츠 등의 이름이 얼른 눈에 띈다. AEI는 부시 정권 아래 전성기를 누렸다. 연간 수입이 20001890만 달러에서 20083130만 달러로 늘어났다. 부시는 재임 중 세 차례 AEI에 찾아와 연설을 했는데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AEI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러분 잘 아시죠? 이곳의 우수한 인재들을 내가 얼마나 많이 빌려갔습니까?”

2007년에 AEI의 활동방식이 큰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다. 여러 과학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회의(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s)의 제4차 평가보고서를 반박하는 연구를 촉구하면서 연구 경비 외에 1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한 사실을 영국 <가디언>지가 보고하면서 뇌물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기후변화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이 책동이 석유회사 엑손모빌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대가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따랐다. AEI 측은 이 비판이 과장된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여러 관계자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부정해 온 사실이 있기 때문에 친기업편향성에 대한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에는 제임스 릴리의 추천사가 붙어있다. 1980년대 후반 주한대사를 지내고 이어 주중대사를 지낸 인물(1928~2009)이다. 릴리는 1991년 관직에서 은퇴한 후 AEI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중국 칭다오에서 12살까지 자라며 중국어를 능통하게 익히고 1951년부터 CIA에서 일한 릴리는 그 세대 미국인 중 최고의 중국통이었다.

척 다운스는 릴리와 함께 1997<타이완해협의 위기>를 엮은 일이 있다. 국방부 아-태지역 부국장을 지낸 다운스를 동아시아 정책전문가로 키워내려고 릴리가 지목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애초에 제임스 리라는 한국계 미국인의 진술을 책으로 만들려는 릴리의 기획에서 출발한 것이다. 제임스 리는 한국전쟁에도 미군으로 참전하고 28년간(1966~1994) 유엔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보좌관 자격으로 북한을 상대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북한의 협상행태를 이해하는 과업에 대해 리 씨만큼 시종일관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오랫동안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이 분야에 대한 그의 탁월한 업적을 인정한 AEI 출판사는 당시 국무부 아시아 국장이던 제임스 릴리 전 대사의 권유에 따라 리 씨를 채용하여 북한과의 군사적 협상기록을 재구성토록 하였다. (...) 리 씨의 훌륭한 연구조사 초안은 제6장 및 제7장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 책 전반에 걸쳐 그에게 연구조사를 맡긴 AEI 출판사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그의 조언과 코멘트에 대해 사의를 표명하였다. (<북한의 협상전략> 11-12감사의 글”)

 

인용문 중 릴리가 국무부 아시아 국장이라 했는데 릴리는 그런 자리를 맡은 일이 없었다. AEI 내에서의 역할 표시를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닐지? 그리고 다운스는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6-7장만을 제임스 리의 진술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제4-5장도 제임스 리에게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근거를 가진 주장이 아니라 독자의 인상이다.

이 책의 제7장까지는 해방 후 1980년대 중엽까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나타난 북한의 대응자세가 다뤄져 있다. 그리고 제8장에는 같은 기간 북한의 태도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 실려 있다. 그러고 나서 제9불안의 조성과 제10진실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실무자로 활동하던 1990년대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러한 책의 구조에서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1980년대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추출한 판단 위에서 1990년대 상황을 설명하는 접근방법이다. 예컨대 제9장 모두에 이런 서술이 나온다.

 

정치적 고립과 임박한 경제적 파탄에 직면한 부랑국가(rogue regime)가 희소한 자원을 핵무기에 쏟아붓는 것은 실로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문제이다. 그것은 전쟁의 가능성뿐 아니라 북한주민에 대한 고문(extortion)의 가능성도 높여주는 것이다. 북한정권은 만일 생존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핵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북한 국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과 체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적 우려가 증대됨에 따라 미국은 북한이 초래한 위기상황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같은 책 307-308)

 

1990년대 초반 북한의 경제위기의 초점은 에너지 확보 문제에 있었다. 그 시점에서 핵발전소 건설에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군사위기의 초점은 핵 불균형에 있었다. 핵발전소 건설하는 김에 핵무기 개발까지 고려하는 것 역시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핵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한 일이 있었는가? 없었다. 1994년의 서울 불바다발언이 이 시기 북한에서 나온 가장 호전적 표현이었는데, 이것도 핵무기가 아니라 장사정포를 믿고 한 말이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핵전쟁을 일으킬 의도가 있는가 하는 것은 외부인의 의심일 뿐이다. 그리고 합리적 외부인은 북한이 그런 확실한 자멸의 길을 스스로 택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운스는 북한을 부랑국가로 규정하기 때문에 그런 미치광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보고, 또 그 규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1993-94년 북핵위기의 본질을 북한의 핵전쟁 위협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벗어날 길이 없는 순환논리다.

10장 모두에 북한에 대한 다운스의 관점이 직설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북한의 협상행태에 대해 때때로 제정신이 아닌’, ‘비이성적인’, ‘변덕스러운’, 또는 괴이한등의 단어들이 사용되지만, 이들 중 어떤 단어도 이처럼 작고 가난하고 힘없는 약소국가가 교묘하게 구상하여 솜씨 있게 실천에 옮기는 효과적인 협상전략의 특징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이라는 매우 일리 있는 어휘도 사용되지만 때때로 이것은 북한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해서가 아니라 아무리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북한의 책략을 예측하는 것은 종종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은 협상 주도권을 잡기 위해 때때로 기상천외한 사건을 일으키며 협상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기습적인 방법으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처럼 협상을 외교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낯익은 협상전술을 수없이 반복하고, 일련의 근본적인 협상목표를 지독하리만큼 끈질기게 추구하는 국가는 일찍이 없었다. 북한은 협상 스타일의 특징이 만천하에 잘 알려졌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내놓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자신의 요구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엄청난 양보를 받아냈다. (같은 책 362-363)

 

한마디로 북한과 협상한다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란 말이다.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려 들고 대화에 응하는 것 자체를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여기는 경향은 이런 주장에 근거를 둔 것이다. 미국에 북한 전문가가 적고 그 영향력이 작기 때문에 다운스처럼 합리적 근거도 없이 북한을 괴물로 규정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큰 목소리로 대북정책을 좌우하는 일이 많았다. 비교적 실용주의적인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누구와도 대화는 필요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북미회담을 진행한 결과 곡절 끝에 1994년의 기본합의서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1990년대의 북한-미국 관계를 살펴본 결과 위에 인용한 다운스의 관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1980년대 이전에 대해서는 그 관점의 타당성을 인정할 만한 대목이 꽤 있다. 그러나 동구 공산권 붕괴와 소련 해체로 인한 절대적 위기 앞에서 북한이 미국 등 외부를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벗어나는 것이 별로 없다. 클린턴의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하는 미국의 대결주의 세력은 합리적 근거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다운스처럼 북한을 괴물시하는 관점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고, AEI는 이 수요에 응해 다운스의 책을 기획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운스의 책이 나온 것은 남한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서 미국의 클린턴 정부와 포용정책을 조율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다운스가 용납할 수 없는 노선이다. 다운스는 제네바 합의가 북한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고, 시간을 번 북한은 군사력 강화에 매진했다고 주장한다.

 

만일 제네바 핵합의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 합의에 서명한 후에도 북한이 계속해서 비밀리에 핵능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발전된 미사일 기술은 이 지역 국가들이 새로운 핵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기 몇 주 전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이 핵합의를 위반하고 대규모의 지하 핵시설을 건설 중이라는, 의심할 만한 사실을 포착했다. (...)

북한은 이전의 협상에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4자회담을 이용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경감하기 위한 양보를 얻어내고, 국내 정치적인 숙청의 구실을 제공하고, 정치적인 탄압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북한이 전가의 보도처럼 수없이 반복해서 써먹은 전략이다. 북한은 이러한 전략을 통해 정전협상을 진행시키는 동안에도 무력을 동원해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 들었고, 휴전협정을 위반하면서 군사력을 증강시켰고, 테러를 통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대화를 제의하면서 남한의 정치에 개입하려 했고, 사찰을 거부하며 양보를 얻어냈으며, 최근에는 평화회담을 주장하면서 미사일 개발을 완료한 것이다. (같은 책 397-398)

 

19988월에 불거진 금창리 의혹을 지적하는 것이다. 미국은 금창리 현장 확인을 위해 북한에 거액을 지불하고, 근거 없는 의혹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다운스는 북한 붕괴론에 확신을 보여준다.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을 나쁘게만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붕괴가 사실로 일어나기만 하면 근거 없는 정보를 유통시키거나 잘못된 의견을 내놓은 데 대한 책임을 추궁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북한의 붕괴가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붕괴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개입정책은 정반대로 붕괴가 불가피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훗날 미국이 북한정권의 생존을 연장해주었다는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안보 및 도덕적인 의미에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있어 북한정권의 생존을 돕기 위해 의무를 분담한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목표인 것이다. (같은 책 400)

 

퀴노네스 등 국무부 관리들의 회고를 보면 북한과의 대화에 반대하는 국방부 관리들의 대결주의 자세에 좌절감을 느끼는 경험이 거듭거듭 나온다. 바로 다운스 같은 사람들이 국무부 관리들에게 어려움을 많이 안겨주었을 것이다.

국방부 관리들이 대외관계에 군사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럴 경우 대결주의 관점을 앞세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 말에 현역군인으로 대북관계 업무에 참여한 찰스 프리처드도 국무부 관리들에게는 답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2001년 정권교체 때 대북관계 담당자 중 프리처드가 유일하게 유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처드 역시 결국 부시 행정부의 꽉 막힌 대북정책에 좌절감을 느끼고 2003년 사임하기에 이른다. 다음 회에 프리처드의 책 <실패한 외교>(김연철-서보혁 옮김, 사계절 펴냄)를 훑어보면 다운스가 국방부 관리라기보다 네오콘 나팔수였다는 사실을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문천

 

1993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은 세계를 긴장시켰다. 냉전 종식으로 팩스 아메리카나의 평화시대를 바라보고 있던 시점이었다. 새 국제질서 속에 아직 편입되지 않고 남아 있는 몇 개 고립국가 중 하나인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은 세계평화에 대한 큰 위협으로 여겨졌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40년에 걸친 고립정책은 이로 인해 한계점에 부닥쳤다. 핵무기 보유 가능성만으로는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명분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핵무기 보유 가능성이 농후한 나라를 계속 무시하고 국제질서 밖에 버려두는 것은 세계평화에 너무나 큰 위협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국제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향을 모색하기로 했다. 끌어들이려 노력하는데도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면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명분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이었다. 소련과 중국의 보호를 잃어버린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려는 동기도 없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미국은 로버트 갈루치 국무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협상단을 구성,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이끄는 북한 협상단과 6월초부터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은 곡절 끝에 이듬해 10월 북한 측의 핵안전조치 수용과 미국 측의 경수로 제공을 골자로 하는 기본합의문을 도출, 위기의 불을 껐다.

 

당시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으로 협상단에 참여했던 케네스 퀴노네스가 북한의 핵위협이란 제목으로 회고록 집필을 마무리하고 있다. 우리 운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불바다한 마디에 우왕좌왕하던 우리로서는 한반도 상황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회담 당사자가 아닌 한국 측은 북-미 관계 개선으로 자신이 소외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남북대화 확대를 북-미간 협상타결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것을 요구했으나 대화를 위한 진정한 의지가 있었는지 퀴노네스는 의심스럽게 본다. 19943월 협상타결의 전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한국 측이 찬 물을 끼얹어 북한 측의 불바다발언을 유도했다고 보는 것이다.

 

조속한 협상타결을 바라는 퀴노네스의 입장에서 한국 측 사정을 이해하기보다 일을 어렵게 만든 점을 원망하는 마음이 앞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측의 무책임성은 다른 면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협상단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 회담 진행상황을 정기적으로 한국정부에 알려줬다. 그러나 이 정보가 한국언론에 너무 쉽게 새나가기 때문에 이 통보를 중단했다고 한다.

 

퀴노네스의 회고를 보자면 1994년 당시 한국정부는 핵 위기를 해소하기보다는 북한의 고립상태를 지속시키는 데 몰두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말 그랬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청문회라도 열어야 하는 걸까. 199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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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Jay Rosen, What Are Journalists For? Yale U P, 1999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며 언론의 역할과 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꾸준히 커져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언론문건 파동을 통해 언론의 영향력이 정치권에서 얼마나 중시되고 있는지 드러나고 있으며 언론인 자신들도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새롭게 깨닫고 있다.

언론의 위상이 가장 굳건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언론은 19세기말부터 국가정책을 선도하는 하나의 기관으로 자리 잡아 3권 분립에 추가된 4의 권부로 인식되어 왔다.

미국의 정치제도에서 법률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부분을 여론의 대번자로서 언론이 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 왔다. 평상시에는 정치 정보의 주된 전달 통로 노릇을 맡고, 때로는 워터게이트사건의 경우처럼 새로운 정치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언론이 독자적 권위를 쌓아올 수 있었던 것은 객관적 비판자의 입장을 지켜온 덕분이다. 상업주의라는 비판을 늘 받으면서도 미국 언론의 주류는 저널리즘의 직업의식을 굳게 지켜왔다. 언론사 경영자들도 직선적 이윤추구보다 사회정의를 대변하고 공정한 심판관 노릇을 하는 저널리즘의 권위를 지키고 키워나가는 것이 유리한 경영정책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욕대 언론학 교수 제이 로전은 <언론이 할 일>에서 언론이 이 객관적 비판자의 역할을 얼마간 포기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치의 공동화(空洞化) 현상 때문이다. 투표율 하락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미국인의 시민의식 퇴화 현상이 민주질서의 위기를 빚어내고 있으며 이 위기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근본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언론은 초연한 객관성을 절대적으로 지키려 들기보다 시민의식의 부활과 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전은 기록적으로 낮은 투표율을 보인 1988년 선거 후 공공(public) 저널리즘을 제창했다. ‘시민(civic) 저널리즘이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언론이 사회현상을 파악해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전한 사회현상을 유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애크런 비컨 저널>이라는 한 지방신문이 지역사회의 인종문제 의식을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대책을 공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1994년 공익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로전은 시민의 잠재역량을 높이 평가한 존 듀이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관점을 이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다. 언론인은 전문가로서보다 일반시민의 입장에서 자신이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신문의 열독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은 전반적인 시민의식 퇴화현상의 반영이다. 언론이 초연한 객관성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언론의 존재근거인 민주적 사회질서가 메말라버리고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잃게 될 것이므로 시민의식 회복을 위해 언론이 적극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로전은 주장한다.

언론계 주류는 로전의 근본적 위기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워싱턴포스트>지 편집인 레너드 다우니는 선거의 기권도 민주적 절차 속에 포함되는 주권행사 방법의 하나이므로 언론이 투표 참여를 강요하는 것은 그 본분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지 주필 하월 레인스는 언론인이 공공정책의 전도사가 될 경우 언론의 본질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시대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일부 언론은 황색 저널리즘의 곁가지로 갈라졌다. 정통 저널리즘에도 선정적 요소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권위중심의 기본자세를 지켜왔다. ‘시민 저널리즘이 또 하나의 곁가지로 자라나게 될지, 그 참여 자세가 정통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끼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언론이 근년 4의 권부로 부각돼 온 것은 민주화의 성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권부의 의미를 민주화 이전 단계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언론계 안팎에 아직도 많이 있다. 진정한 민주적 권위를 쌓아나가는 것이 우리 언론의 당면과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로전이 미국사회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은 정치염증과 시민사회의 파편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객관성의 권위를 충분히 확보하지도 못한 채 참여의 책임까지 져야 하는 것이 우리 언론 위기의 본질일지 모른다. 1999. 11.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