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3. 00:31

 

인류문명의 출발은 산업을 만들어낸 데 있었다. 원시시대의 인류는 자연 속의 식물 열매를 따먹거나(채집) 동물을 잡아먹고(수렵) 살았다. 식량이 될만한 식물과 동물을 골라 경작하고 목축함으로써 인류는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종전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

 

문명의 기반이 된 두 산업, 농업과 목축을 서로 연결해 시너지효과를 불러온 것이 소였다. 소는 원래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기 시작한 동물이었지만, 농사에 쓰면서 농업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줬다. 사람의 힘으로 개간하기 힘든 지형을 소의 힘으로 개간해 대량경작이 가능한 농지로 만들고 그 땅을 역시 소의 힘을 빌려 경작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등 문명의 발상지에서 일찍부터 농사에 소를 사역한 흔적을 보면 문명의 선진성에 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농업문명이 본격화한 2천여 년 전부터 관직이나 부족 이름에 소가 나올 정도로 소가 중시됐다. 특히 복점(卜占)과 희생(犧牲)에 쓰인 데서 우리 조상에게 소가 가졌던 강한 상징성을 확인할 수도 있다.

 

1001 마리 소를 판문점으로 몰고 가는 장면부터가 세계의 이목을 모을만한 장관(壯觀)이었거니와, 역사를 통해 가까이해 온 동물인 때문인지 민족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금에는 묘하게 와 닿는 점이 있다는 데서 정주영씨의 북행(北行)은 성공적인 이벤트였다. 그런데 돌아온 정씨의 보따리에서 나온 큼직한 꾸러미 하나가 북한 석유의 합작개발계획이라니, 이 또한 묘한 상징성을 던져주는 일이다.

 

농업혁명의 완성단계에서 소가 맡았던 것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산업혁명의 완성단계에서 맡은 것이 석유다. 1859년 채굴이 시작된 이래 140년 동안 석유는 인류가 쓰는 에너지원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충당할 정도로 쓰임새가 커졌다.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란 말처럼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입장을 뼈아프게 느껴 왔다.

 

북한 유전의 개발가치가 정작 얼마나 될지는 낙관할 수 없다. 60년대 중반, 유전개발의 가능성으로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군사정권의 문제점을 호도했던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북한의 유전 선전도 비슷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소가 가고 기름이 온다는 것은 재미있는 상징성의 연결이다. 소는 민족사의 출발점을 상징하는 동물이고 석유는 민족분단시대의 고통을 상징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199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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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