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les Eldridge, Dominion

 

"미래 한 시점서 본 인류 진화 모습"

 

 

"인간은 지구상 모든 종류의 생물들과 같은 생명의 흐름 속에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달리 자의식을 가지게 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존에 도움이 되는 도구와 습속을 만들게 됐다. 그들은 출생지역을 떠나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퍼져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먹이를 꾸준히 조달하는 방법을 만들어내고 자연에서 격리된 생활공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을 만들고 그를 통해 모든 자연계를 지배하는 권능을 선포했다.

 

인간은 크게 번성했으나 머지않아 한계에 부닥쳤다. 개체 수가 1백억을 바라보게 되자 결국 자기네가 자연을 아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개체 수를 무한정 늘려가며 먹이를 계속 생산하고 자원을 계속 채취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생물들을 없애면서 인간만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깨우친 인간은 그때까지의 번성을 뒷받침해 온 가장 큰 밑천, 즉 지혜를 다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모든 존재가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개체수 증가를 억제하기 시작했다. 환경 파괴를 삼가고 다른 생물종들을 모호함으로써 남아있는 생태계를 보존했다. 겅제활동을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로 제한했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썩 훌륭한 삶이었다."

 

뉴욕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나일스 엘드리지는 <인간의 권능> 끝에 미래 어느 시점에서 볼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희망적으로 적어놓았다. 그러나 스티븐 제이 굴드와 함께 진화의 비연속성을 주장해 온 엘드리지가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인간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인간에게 어떤 장래가 있는가?" 하는 물음들을 차례로 다룬 이 책의 본문에서 내내 보여준 것은 훨씬 비관적인 관점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생물학적 진화의 흐름을 타고 태어났다. 20만 년 전에 나타난 현생인류 역시 빙하기의 기상변화 속에서 진화돼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약 1만 년 전부터 인간, 즉 현생인류는 이 생물학적 진화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수렵-채취 단계까지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각지의 지역생태계에 속해 있었다. 자연생태계에 변화가 생기면 그 안의 인간은 변화에 적응하는 진화를 이루거나 아니면 죽어갔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스스로 지역생태계를 걸어나와 자기 힘으로 생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이로부터 인간은 문화적 진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더욱 더 교묘한 연장을 만들어 쓰고 생존에 유리한 지식을 축적해 교환하게 되면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기후조건과 지형조건의 범위는 계속 늘어났다.

 

이렇게 인간은 지역생태계에서 벗어난 최초의 생물이 됐다. 다른 모든 생물종이 이웃의 생물종들과 온갖 긴밀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과 달리 인간은 인간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식량의 원천도 인간사회 속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생명의 위협도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로부터 느끼는 일이 별로 없게 됐다.

 

농업을 이룩한 인간에게는 지구 전체가 그 생태계가 됐다. 이곳 저곳에 떨어져 있던 지역생태계 안에서 제한된 방법으로 섭취하던 자원에 비해 거의 무진장한 자원이 인간 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이 광대한 자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지역생태계의 벽을 1만 년 전에 허문 인간의 코앞에 이제 지구생태계의 벽이 닥친 것이다. 이 벽의 존재는 이미 맬서스가 인구론(1798년)에서 지적한 바 있다. 맬서스의 위기의식을 인류가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력의 극대화 덕분이었다. 그런데 인류의 번영을 가속시킨 산업화가 그만큼 더 격렬한 충격 앞에 인간을 내몰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엘드리지는 이 벽을 넘을 수도, 피해 갈 수도 없는 벽으로 본다. 1만 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인간이 이제는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볼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인간은 문명의 성장을 통해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로 보는 시각에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자연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것, 지역생태계에서 벗어나 얻은 자유와 오만이 지구생태계의 벽 앞에서는 고개 숙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이 벽 앞에서 인류는 안팎으로 갈등에 빠져 있다. 안으로는 생활양식을 개조하는 과정에서의 사회정치적 문제들이 있고, 밖으로는 지구생태계에 최소한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축소시켜야 할 부담이 있다. 결론은 인구가 더 늘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능한 일일까?

 

엘드리지가 예시하는 방법도 고생물학자답다. 여성해방을 통한 출산율의 하락. 문명을 가진 동물로서 인간의 특징인 가족제도가 생존 본능과 번식 본능의 특이한 결합임을 지적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가 자연스럽게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을 말한다. 그 실효성은 그가 책 속의 자문자답에서 거듭 말하는 것처럼 "두고 볼 일"이지만, 인간사회의 내적 건강과 외적 건강을 연결하는 사고의 방향은 참으로 음미할 만하다. (1996년 3월 3일)

 

 

Posted by 문천

 

Seymour M Lipset, American Exceptionalism, a Double-edged Sword

 

"위협받는 미국 자부심 회생 강조"

"불만스런 현상들이 장래 불안 부채질해도 역사적인 '예외성' 여전, 의식조사 통해 확인"

 

 

누가 봐도 미국은 보통 나라가 아니다. 남한의 1백 배가 넘는 면적이나 2억5천만의 인구도 물론 미국이 세계 굴지의 대국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의 놀라운 점은 2차대전 이후 50년 이상 최강의 군사대국과 최대의 경제대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양적인 면을 떠나 질적인 면을 살펴봐도 미국은 여러 모로 놀라운 나라다. 무엇보다 이 나라에는 역사의 뿌리가 없다. 고대사도 중세사도 없이 불쑥 하나의 근대국가로서 나타난 것이다.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오듯.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 '민족의 용광로'라는 것이 섞어놓기만 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이민들이 이 평등한 기회의 꿈에 취해 스스로 뿜은 열기가 이 용광로를 달궜던 것이다.

 

1830년대에 미국을 방문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 이래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등 유럽의 저명한 사상가들은 모두 미국을 철저한 부르주아사회, 가장 선진적인 국가형태로 인정했다. 미국인들이 세계 어느 나라와도 다른 자기 나라의 예외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물론이다.

 

근래 들어 미국인들은 이 예외성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일본과 독일 등에 경제적인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 생긴 이 불안감은 공산권 붕괴로 군사대국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더 널리 번져가고 있다. 미국 내의 여러 가지 불만스러운 현상들이 이런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높은 범죄율, 낮은 투표율, 교육계의 침체, 결손가정 증가, 마약 창궐, 빈민층 발생 등이 미국인의 자부심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세이머 립셋의 <미국은 특별하다>는 이런 불안을 가라앉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책이다. 그는 미국의 예외성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임을 밝히고 그 예외성이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근년의 방대한 의식조사 자료를 통해 확인한다. 그리고 이 예외성이 미국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지켜주리라고 전망한다.

 

봉건주의 잔재가 없었다는 점이 이 예외성의 출발점이다. 애초에 고정된 계급제도가 없었으니 이 신생국의 평등주의란 집단을 대상으로 결과를 고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대상으로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능력주의'로 방향을 잡게 된 것이다.

 

정-교 분리의 세속국가로 출발한 것도 중요한 특징이었다. 종교가 제도적인 지배력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심이 손상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신앙심이 사람들을 독단적이리만큼 강한 도덕성으로 이끈다. 식민주의든, 전체주의든, 공산주의든, 사담 후세인이든, 미국인들이 전쟁 상대를 꼭 악마로 여겨야만 하고 상대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려고만 드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초기 미국의 지배적 교회 형태가 분파적 개신교였다는 점도 지적된다. 립셋은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년)을 바탕에 깔고 개신교의 분파주의가 국가권력의 팽창을 꺼리는 자유방임주의로 연결되었음을 논한다. 오늘날까지 대통령 선거공약에 꼭 끼는 '작은 정부' 개념이 이것이다.

 

제1부에서 유럽 여러 나라 및 캐나다와의 비교를 통해 미국의 예외성을 확인한 다음 제2부에서는 미국의 예외성을 일반화하는 데 반론의 초점이 될 만한 몇 가지 현상(흑인-유태인-지식인)을 다뤘다. 저자는 이것을 미국의 "예외성에 대한 예외"라고 설명했지만, 과연 흑인 문제 같은 것을 하나의 '예외'로 깔고 넘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 인구의 10퍼센트 이상을 점하는 흑인은 립셋이 말하는 미국의 예외성의 좋은 점에서 소외돼 지내왔다. 반면 인구의 2.5퍼센트인 유태인은 능력주의의 혜택을 집중적으로 누려왔다. 미국 최대의 부호 160명 중 40퍼센트가 유태인이고 교수직의 30퍼센트를 비롯해 유태인의 고급 직종 점유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 이 책에도 밝혀져 있다. 유태인 저자가 이 두 집단의 문제를 전체 양상에 관계 없는 '예외'로 취급한 것을 흑인 독자들은 어떻게 볼까.

 

한국 독자에게 특히 흥미로울 만한 부분은 미국과 일본을 비교한 제3부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는 선진국들 중 여러 면에서 가장 대조적인 나라들이다. 여기 인용된 통계 중 재미있는 한 가지는 1992년 CNN방송에서 행한 것이다. 16개국 국민을 상대로 어느 나라가 10년 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미국이 42퍼센트, 일본이 20퍼센트, 독일이 8퍼센트의 득표로 1, 2,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국가별로는 15개국에서 미국이 1위로 나오고 꼭 한 나라에서 일본이 1위로 나왔다. 어디였을까? 일본에서도 미국이 거의 더블스코어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 1위를 준 유일한 나라는 바로 한국이었다.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 특이성이 있다는 사실도 나름대로의 진단을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1996년 6월 16일)

 

 

Posted by 문천

 

Lawrence Weschler, Mr Wilson's Cabinet of Wonder

 

"예상 밖 지적 모험 세계로 동참 유도"

 

 

박물관 전문가들의 회의장에서 윌슨은 가장 진지한 발표자의 하나다. 현대세계에서 박물관의 의미,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그의 발표는 다른 참석자들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그의 경력을 따져보면 '전문가'로서 그의 자격이 조금 의심스럽기도 하다. 촬영기사로 일하던 그가 '주라기 기술박물관'을 세운 것은 1984년의 일이고, 로스앤젤레스의 서북쪽 부도심 컬버시티의 베니스 대로변에 40여 평의 상설전시관을 연 것은 1987년, 그가 41세 때의 일이었다.

 

이 박물관이 재미있는 곳이라는 소문을 뉴욕의 논픽션 작가 로렌스 웨슐러가 들은 것은 1990년께. 로스앤젤레스에 간 길에 들러 웨슐러는 겹겹이 싸인 의문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든다. 그후 로스앤젤레스에 갈 때마다 박물관을 찾아 윌슨을 만나며 웨슐러는 예상 못했던 지적 모험의 세계를 헤매게 됐고, <윌슨 씨의 요지경 박물관>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같은 모험에의 동참을 청한다.

 

한적한 위치에 평범한 건물. "Museum of Jurassic Technology"라는 소박한 간판에 다가서 보면 매주 세 차례, 몇 시간씩만 열리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방문객이 벨을 누르자 윌슨이 손수 문을 연다. 입장료는 없고 2달러50센트의 기부금은 안 내도 좋고, 내면 더 좋다는 안내. 윌슨은 책상으로 돌아가 읽던 책을 집어들고 방문객은 전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카메론의 어떤 개미가 뇌 속에 기생하는 식물 때문에 천성과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그 식물의 번식에 이용당한다는 얘기, 이과수폭포 옆의 휴양지에서 독일가요를 듣던 중 떠오른 영감으로 기억과 망각에 관한 획기적인 이론을 세운 어느 심리학자 얘기, 이런 희한한 이야기들이 시청각 기재를 두루 동원한 아주 모범적인 방법으로 전시되어 있다. 놀라운 전시 내용에 탄복하면서도 이것들이 과연 '주라기 기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의아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전시물들을 계속 구경해 나가면서 -250대 1의 축척으로 복원한 노아의 방주, 풍경화를 표면에 조각했다는 살구씨(볼록렌즈가 없다), 게다가 17세기의 어떤 영국 여자 뒤통수에서 잘라냈다는 뿔까지!- "아니, 설마..." 하는 생각이 두 갈래로 든다. "이게 설마 모두 사실일 수가..." "박물관이란 데서 설마 마구 지어낸 이야기를..."

 

결국 웨슐러는 윌슨에게 다가가 무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여기가 뭐 하는 덴가요?" 이 질문으로부터 두 사람 사이에 몇 년 간에 걸친 토론이 시작됐고, 그 내용을 웨슐러가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전시 내용에서 박물관의 정체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비유임을 이해하면서 웨슐러는 새로운 흥미가 솟구침을 느끼고, 그 비유의 뜻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윌슨을 더 깊이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웨슐러의 마음이 지르는 소리없는 탄성을 독자들은 거듭 듣는다. 가장 큰 탄성은 윌슨 소장품의 유래가 바로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 옥스퍼드 애시몰리언의 유래에 의탁한 것임을 알아차린 순간이었으리라! 수집품을 넘겨주기로 한 계약을 후회해 아들을 거쳐 며느리까지 취소를 위해 싸우다 결국 며느리의 의문사로 마무리된 수집가 일가의 비극. '주라기 기술박물관'의 번듯한 도록에까지 찍혀있는 이야기다.

 

이것이 300년 전의 영국 일을 짜깁기한 것이었다니, 과연 그 뜻은 무엇일까. 여기서 웨슐러는 합리주의에 억압당하기 전, 이 세상을 경탄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던 르네상스정신이 윌슨에게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렇다. 사실 여부를 합리적으로 따지기보다 주어진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경탄을 일으키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 모으던 전근대적 '요지경박물관', 이것이 자연과 신에게 겸손한 인간의 자세였다.

 

윌슨의 박물관은 포스트모던 기법을 써 전근대인의 정신을 위해 행하는 근대정신에 대한 복수다. 그 박물관은 박물관의 전통에 대한 반란이며, 동시에 박물관 정신의 완성을 위한 도전이다. (1995년 12월 10일)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