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Leakey & Roger Lewin, The Sixth Extinction

 

"'인간=만물의 영장' 등식에 반론"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중심적인 관점이다. 생명의 역사, 생명의 본질을 인간의 이성과 경험만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초자연적 존재나 힘을 생각할 필요 없이 인간이 관찰하는 현상과 원리만으로 생명현상의 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에 작용하는 진화현상의 정점에 인간을 둔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종교적 신앙 아닌 '과학적' 사고의 발판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최근 들어 다윈 진화론의 인간중심적 합리주의를 재고하는 관점들이 여러 방면에서 모이고 있다. 고생물학의 화석 연구에서 다윈의 관점을 축소시키는 사실들이 나타나 왔다. 카오스 이론의 발달로 진화론의 근간이 되는 통계적 관점이 재검토되고 있다. 또, 환경 문제의 심화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보려는 노력이 변화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처드 리키의 <제6의 絶滅>이 이런 동향의 최신판이다. 케냐의 고인류학자 리키는 진화론의 과학적 타당성을 존중하면서도 생명의 역사 속에는 진화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음을 지적한다.

 

'절멸'이란 다세포생물이 처음 나타난 캄브리아기에서 오늘날까지 5억여 년의 진화기 속에 있었던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 사태를 말한다. 심한 경우는 기존 생물종의 95퍼센트가, 가벼운 경우에도 65퍼센트가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하나의 절멸은 지구의 생물상에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최근의 사건은 6,500만 년 전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를 이룬 백악기 절멸이다. 소행성의 충돌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으로 1억 년 이상 지상에 군림하던 공룡이 사라지고 포유류가 그 빈 자리를 이어받게 됐다고 한다.

 

이런 절멸의 시기에는 다윈이 말하는 자연선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리키는 말한다. 정상상태에서 효과적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 축적해 온 진화의 기준은 전혀 새로운 상황 속에서 깡그리 무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물의 멸종이 진화의 경쟁을 통해 완만한 과정으로 이뤄진다고 믿는 다윈의 관점에서 본다면 승리와 패배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그 결과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리키는 진화론의 필연성이 배제되고 예측할 수 없는 (소행성의 충돌 같은) 요인에 의해 판갈이가 이뤄지는 고비들이 있었음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금 위치 역시 다분히 우연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면, 언제라도 그 위치는 새로운 우연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어 리키는 '진화=진보'의 등식을 공격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카오스 이론에 접근해 가는 실험결과들의 소개는 퍽 재미있다. 한 예만 들겠다.

 

일정한 조건의 가상생태계에 여러 가지 특성의 생명체들을 차례로 투입한다. 물론 미생물-식물-초식동물-육식동물의 순서는 지키지만 민들레를 먼저 넣느냐 엉겅퀴를 먼저 넣느냐 하는 순서를 임의로 바꿔보는 것이다. 어떤 순서로 어떤 종들을 넣어도 처음에는 개체량이 들쑥날쑥하는 조정기를 얼마간 겪다가 차츰 안정된 시스템을 이룬다. 안정된 시스템에 새로운 종을 투입하면 상당한 배타성을 보인다. 사자가 여우보다 우월한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여우가 사는 곳이면 어디든 사자가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사자가 배제된 채 안정을 이룬 시스템에 뒤늦게 사자가 들어가면 그 속에서 자손을 번식하고 자리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시스템이 '역사적 특이성'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안정된 시스템을 구성하는 여러 종들을 똑같은 공간 속에 다시 풀어놓아도 원래와 같은 시스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안정된 시스템, 즉 생태계를 이뤄가는 과정에 의해 그 시스템이 특성이 규정되는 것이며 그 속에는 인간의 지혜로 파악할 수 없는 카오스의 영역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실험이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표시된 특성을 가진 제한된 수의 종들을 갖고 이런 결과를 얻었다면 더 복잡한 현실세계가 더 복잡한 현상을 보이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실험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체의 특성들은 전체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상대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절대적 우열이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를 뿐이지, 궁극적으로 낫고 못하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윈이 말한 바 "모든 생명체가 지행해 나아가는 목표"로서의 '완전성'이란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며, 인류가 그 '완전성'을 구현하는 존재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는 진화의 법칙에 따라 규정되는 필연적인 것만이 아니다. 생명체의 특성에는 절대적인 우열이 없는 것이다. 생태계의 원리는 인간의 지혜로 정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전제들 위에서 리키는 인류문명이 불러올 '제6의 절멸'을 경고한다.

 

인류의 생태계 파괴는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일이다. 6만 년 전의 오스트레일리아, 1만 년 전의 아메리카에 인류가 이주하면서 많은 동물종들이 멸정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근대문명의 발달로 생태계에 대한 인류의 위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왔다. 지금 같은 자연파괴의 속도가 계속된다면 21세기 중에 현존 생물종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 한다.

 

문명의 위기, 그리고 그 대처 방안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고 인간 이성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자는 이야기도 여러 사람이 해온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며 아프리카 야생자원 보호에 종사해 온 저자의 제안에서는 특별한 힘이 느껴진다. (1996년 1월 7일)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