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Bergman, Orion's Legacy
"사냥이란 개념 통해 문명 위기 진단"
"현대문명의 자연정복, 사냥꾼 처벌로 상징화 - '사냥문화의 극복' 포스트모더니즘 과제 암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인류가 1만여 년 전쯤 농업을 시작하면서 특이한 발전의 길로 접어들었다. 자연의 세계와 다른 문명의 세계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의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과 동떨어진 혼자만의 위치에 서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인류는 자연에서 직접 먹이를 구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사냥과 관련된 개념들이 얼마나 현대인의 의식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가 하는 지적으로 찰스 버그먼은 <오리온의 후예들>을 연다.
예컨대 여자를 구하는 남자를 사냥꾼의 자세로, 남자의 손에 떨어지는 여자를 사냥당하는 동물의 입장으로 비유하는 관념은 일반 현대인의 의식 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이 관념은 문명의 형성기 사냥의 시대에 남자들이 사냥을 전담하던 상황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사실 이 관념은 20세기의 '과학적' 발견으로 강화된 것이다. 1924년 남아프리카의 해부학자 레어먼드 다트는 요하네스버그 부근의 동굴에서 백만년 전 유인원의 유골을 발굴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이름붙여진 이 유인원은 같은 동굴에서 원숭이의 구멍난 두개골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커다란 짐승을 잡아먹고 산 것이라고 다트는 추정했다.
인류의 조상이 오랫동안 사냥을 주업으로 하였으리라는 다트의 주장은 수십년간 많은 고고학자-인류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오랫동안 사냥으로 살아오면서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 사냥의 행동양식에 의해 결정되었으리라는 설명도 여기서 파생돼 나왔다. 예를 들어 사냥의 주체였던 남성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학설이 오랫동안 풍미한 데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비롯해 인간의 공격성과 파괴성을 어떻게든 해명해야 했던 시대상황이 작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80년대 이후 이 학설이 불신을 받게 된 데는 남녀평등이 강조되는 새로운 시대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트의 '육식 유인원' 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사냥꾼? 사냥감?(The Hunters or the Hunted?)>에서 C K 브레인은 요하네스버그 원숭이 두개골의 구멍이 유인원의 무기가 아니라 표범의 이빨로 난 것임을 치밀하게 고증했다. 그 무렵 인류의 조상은 큰 집승을 잡아먹으러 찾아다니기보다 잡아먹히지 않으려 피해다니기 바빴으리라는 것이다.
사냥을 생업으로 하는 아프리카 부시먼의 면밀한 연구도 육식 유인원 설에 반증을 제공한다. 사냥에 종사하는 남자가 사냥에 쓰는 시간이 1주일에 10여 시간에 불과하며, 사냥한 동물이 인간의 식량 중 차지하는 비중도 5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이라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사냥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일 뿐, 문화 형성 방향을 결정하는 배경요소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당당한 정복자로서 사냥꾼의 모습은 문명이 성립된 뒤에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라고 버그먼은 설명한다. 그리스신화의 위대한 사냥꾼 오리온은 세상의 모든 짐승을 죽이겠다고 장담한다. 키오스 섬의 짐승을 모두 죽인 뒤 오리온은 그 섬의 공주 메로페를 겁탈했다가 두 눈을 잃고 쫓겨난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도움으로 시력을 되찾지만, 인간이 여신과 통교했다는 죄로 사냥의 여신 알테미스가 보낸 전갈에게 물려죽는다.
그러나 신들은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해서 밤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 겨울하늘의 오리온은 바로 앞의 황소좌 꽁무니를 끝없이 쫓아다닌다. 어찌 보면 플레이아데스 성단(星團)의 처녀들을 쫓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자기 뒤에 전갈좌가 쫓아오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 짐승과 여자를 한없이 추구하며 죽음의 위협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이 신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사냥꾼의 모습이었을까?
이성과 폭력이 그리스인의 사냥 신화에 어울려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냥은 자연에 대한 도전이며 문명의 힘을 집중해서 발휘하는 행위였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크세노폰과 플라톤이 후진의 교육에서 사냥을 중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테베의 사냥꾼 악티온이 다이아나 여신의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 죄로 사슴의 모습으로 변해 자기 개들에 찢겨죽는 설화는 매우 상징적이다. 말하는 능력, 자기가 주인임을 밝힐 능력을 빼앗긴다는 것은 문명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는 사냥꾼에게 꼭 맞는 처벌이라 할 것이다.
유럽에서는 근세까지 사냥이 인간의 중요한 활동영역으로 지속되어 왔으며 그런 속에서 그리스인이 만든 사냥 이데올로기가 전승되어 왔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철학을 '지식의 사냥'으로 보았던 관점은 유럽인의 근대과학에까지 그대로 살아있다. 오늘날 운위되는 '문명의 위기'를 '사냥문화의 위기'로 좁혀 봐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 따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과제는 사냥문화의 극복에 있는 것일까. (1996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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