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5. 12:31

 

 

1. ‘세계정치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1945년 원폭 투하에 충격을 느낀 아인슈타인은 인류와 문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계정부 창설에 달려 있다고 했다. 현실성 없는 발언이란 비판에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세계정부라는 생각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우리 미래에는 단 하나의 현실적 전망만 있을 뿐이다. 바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전면적 파괴다.”

더 이상의 참혹한 전쟁을 인류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이미 떠올랐다. 그래서 국제평화를 보장하는 기구로 국제연맹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이 당시 가능한 세계정부였던 셈이다. 그러나 1920년 설립된 국제연맹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고, 유명무실한 상태로 있다가 1946년 유엔으로 대치되었다.

유엔은 국제연맹의 실패를 참고로 했기 때문에 그보다는 진화한 조직이 되었다. 그러나 냉전의 격화를 막는 데 실패했고, 냉전 해소 후의 평화유지군 활동도 성적이 저조하다. 지금도 국제적 갈등의 해소와 조정에 유엔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다.

국제연맹과 유엔의 한계는 국가주권의 절대성에 대한 믿음에 이유가 있다. 현대인은 모두 국가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 국가주권의 안정이 모든 평화의 전제조건처럼 여겨진다. 국제연맹이나 유엔 같은 기구가 각 국가의 요구를 절충시킬 역할을 넘어 국가의 요구를 제한할 권한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이 믿음 때문이다.

이 믿음을 뒤집어볼 수는 없을까? 중국의 철학자 자오팅양은 <천하체계-21세기 중국의 세계 인식>(노승현 옮김, 2010, 길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정치철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정치적 세계관, 즉 내가 말한 천하체계의 이론을 창조하려고 했다. 이것의 이론의 틀과 방법론은 서양의 정치철학과 매우 다르다. 먼저 이론의 틀에서 살펴보면 중국의 정치철학은 천하를 가장 높은 단계에 위치한 정치 분석의 단위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딴 것에 앞서는 분석의 단위로 간주했다. 이것은 국가의 정치 문제를 천하의 정치 문제에 종속시켜 이해하려고 한 것이자 천하의 정치 문제는 국가의 정치 문제가 근거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29-30)

철학의 이념이 없는 곳은 반드시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 서양의 정치철학이 주도하는 세계는 반드시 혼란스러운 세계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오늘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제도가 있고 관리가 있고 질서가 있는 세계는 아직도 존재하지 않지만,[?] 지리나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세계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황무지가 되거나 멋대로 약탈하고 쟁탈할 수 있는 공공 자원이 되거나 정복을 일삼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난제이다. 즉 전체적으로 무질서한 세계이자 정치적 의미도 없는 세계는 단지 폭력이 주도하는 세계일 뿐이다. (...) 한 마디로 말해서 세계는 세계가 되지 못한다. 마치 국가는 국가 제도 때문에 국가가 되는 것처럼 세계는 세계 제도 때문에 세계가 되는 것이다. (31-32)

 

근대 정치철학에 세계정치의 영역이 없다는 점을 전통시대 중국의 천하이념과 대비시켜 지적하는 것이다. 근대세계는 국민국가체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유럽인의 힘이 세계를 휩쓰는 데 따라 세계 각지의 인민이 유럽국가를 모방한 국가를 만들어 200여 개 국가가 지구 표면을 쪼개 갖기에 이르렀다.

근대세계가 전쟁이라는 대규모 폭력현상에 줄곧 시달려 온 중요한 원인 하나가 주권국가체제에 있다. 국가주권 사이의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새로운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 나머지 세계를 정복하고 있던 근대 초기에는 그 문제가 제대로 불거지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정복의 대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 이르자 근대국가 간의 충돌로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고, 아인슈타인처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전면적 파괴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인류사회를 하나의 사회로 본다면 그 효과적 운영을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오팅양의 지적처럼 근대세계에는 인류사회 전체를 운영하는 정치가 취약했다. 정복자의 사회와 피정복자의 사회가 구분되어 있던 근대 초기 상황에 적합하던 주권국가체제가 20세기 초부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백년이 지난 지금은 국가체제가 인류의 자산보다 짐 노릇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國益私益이다.

 

자오팅양이 말하는 중국의 세계정치철학이란 천하이념이다. 맹자와 양혜왕의 대화에 이 이념이 나타난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선생께서 천리를 머다 않고 오셨으니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지신 것이겠지요.” 할 때 맹자가 임금께서는 왜 꼭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어질음[]과 옳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대답한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 이익보다 인의를 앞세우는 도덕주의를 흔히 읽지만, 맹자는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가 궁극적으로 이롭게 해주는 데 있고 어질음과 옳음은 그 수단임을 스승 자사에게 배운 바 있었다. 그가 양혜왕에게 어질음과 옳음을 앞세운 것은 양혜왕이 말한 이로움이 천하의 이로움이 아니라 위나라의 국익이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읽는다. (사마광도 <자치통감>에서 그렇게 풀이했다.)

목적이어야 할 이로움에 방법에서부터 매몰된다면 그 이로움은 공익(公益) 아닌 사익(私益)이 될 위험이 크다. 천하의 이로움보다 특정 국가의 이로움이 되고 백성의 이로움보다 위정자의 이로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이데올로기에 매몰된 현대인은 국익공익으로 착각하는 일이 많지만, 천하의 이익 앞에 국익도 한낱 사익으로 보는 것이 천하이념이었다.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이 세계정부의 필요성을 외친 것은 천하, 즉 인류사회의 이익을 위해 개별국가의 욕망을 절제시킬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그 필요는 계속해서 커졌다. 인류와 문명의 파괴를 위협하는 무기의 출현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가 한계에 닥쳤음을 기후 변화 등 환경문제에서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주권국가체제의 무한경쟁이 이 문제들을 악화시켜 왔고 앞으로도 계속 악화시킬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권국가체제가 자리 잡고 있는 상태에서 국가주권을 제한하는 세계정부체제로 옮겨가는 데 어떤 방법이 있는가? 20세기에 두 가지 방향의 시도가 나타났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그를 중심으로 한 추축동맹은 독일과 추축국의 활동공간’(Lebenstraum) 확보를 표방했다. 능력 있는 국가(민족)들이 능력 없는 국가들을 힘으로 눌러 초국가적 지배체제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희박한 방법임이 확인되었다.

또 하나 방법이 국제연맹과 유엔처럼 주권국가들의 연대와 자발적 양보를 추구하는 길이다. 지난 백년간 이 방향으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연대와 양보의 필요가 커지고 있는 데 비하면 실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기후변화협약에 가장 책임이 큰 나라인 미국이 신뢰받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동안 기후변화의 혹독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20세기에 모색된 두 가지 방법, 강경책과 온건책이 모두 좋은 전망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인류가 약육강식의 정글을 벗어날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공동의 전제로 삼았던 근대적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3. 원자론적 세계관의 질곡

 

19세기 후반 사회과학이 형성될 때 그 모델은 자연과학이었고 당시의 자연과학계는 원자론에 휩쓸려 있었다. 물질세계가 독립적 기본단위인 원자로 구성된 것이라는 원자론에 기대어 초기 사회과학자들은 인간사회도 개인이라는 독립적 기본단위로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를 풍미한 원자론은 다음 세기로 넘어가기도 전에 그 근거지였던 물리학계에서 무너지고 말았지만 사회과학계, 그리고 그를 통해 제도와 관습에 끼친 영향은 훨씬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개인의 인권과 국가의 주권이 그 대표적인 예다. 원자론의 관념 속에서 원자가 그 자체로 존재의 정당성을 갖는 것처럼 독립된 개인이 침해받을 수 없는 내재적 권리를 갖는다는 계몽주의 인간관에서 사회계약설이 나오고, 같은 방식으로 국가주권을 내세우는 만국공법 체제가 나온 것이다.

물질계를 바라보는 데도 인간사회를 바라보는 데도 원자론과 유기론의 적절한 배합이 필요하다. 그런데 근현대인의 세계관은 원자론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 왜 이런 치우침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그 치우침이 왜 그리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인가?

치우침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보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있었다. 자원 공급의 엄청난 확장 덕분에 균형, 조화, 안정을 요구하는 유기론보다 경쟁과 발전을 뒷받침해주는 원자론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끌린 것이다. 경제의 급속한 팽창 속에서 경쟁에 적극적인 입장이 권력과 재부의 획득에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진보(변화)는 좋은 것이고 정체는 나쁜 것이라는 믿음이 19세기 후반의 유럽에 팽배했다. [깨진 유리창 설화]

기술의 발전 속도는 20세기 들어 완화되었다. 그런데도 19세기 유럽에서 원자론에 의거해 일어난 자유주의와 진보주의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사상계의 지배적 위치를 지키고 있다.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바탕 위에 구축된 자본주의체제의 관성이 중요한 이유다. 20세기 초 이래의 세계대전 위협에 이어 20세기 후반 환경 문제를 통해 자연과의 관계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반성이 시작되는 단계에 와 있다.

개인의 인권과 국가의 주권을 절대시하는 풍조는 원자론적 세계관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와 책임이 짝을 이루지 못하고 권리만이 절대화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건전한 현상이 아니다. ‘인권사회가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관계 속에서 (인간 사이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인권의 내용과 수준이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 타당성 없는 관념이 사회를 뒤덮을 때, 명목상의 평등이 실질적 불평등을 가려주기도 한다.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뒷받침이 없는 명목상의 주권 평등은 국가 간의 협력과 갈등 처리를 어렵게 만든다. 갈등의 평화로운 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국제질서 수립의 목적을 위해서도 무력에만 의존하게 되고 협력의 성과를 만족스럽게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자발적 협력을 통한 국제질서 수립도 어려운 것이다. 이미 세워져 있는 주권국가체제가 세계평화 추구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4.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

 

근대인의 사고방식은 단절위주였다. 물질세계를 원자로 쪼개고 인간사회를 개인으로 나눴을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까지 매듭을 지었다. 시간의 흐름을 무수한 순간으로 이어진 하나의 직선으로 보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 사이의 연결이 끊겼다. 역사 속의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과 별개의 존재였고, 진보가 끊임없이 이뤄진다는 믿음에 비춰본다면 옛사람들은 물질문명 수준도 낮고, 민주주의나 개인주의를 누릴 줄도 몰랐던, 지금 사람들보다 열등한 존재였다.

근대 초기, 기술의 발전이 빠르고 그 기술을 적용할 영역이 많이 남아있을 때는 그런 단절이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단절에 기인한 파괴나 낭비가 바로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조화와 안정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하면 된다!”(Can do!)의 시대였다.

인류는 문명을 가진 덕분에 다른 생물종과 다른 수준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만 그 자유가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어느 문명 어느 시대에도 최소한의 질서를 위한 절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문명을 지키고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이 크게 늘어났을 때 착각이 시작되었다. 자유를 무제한 늘릴 수 있으며 그것이 좋은 방향의 변화라는 착각이었다. 그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던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이제 전반적인 절제의 필요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더 심각한 문제는, 깨닫지 못한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깨달음이 나타나지 않아야 사사로운 이익이 보장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모두 어울려 절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제를 전환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새로운 지혜를 빚어내려 애써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가르침을 새로운 자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수천 년 문명 발전의 큰 방향은 정글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문명 발생의 가장 큰 조건은 복잡한 언어였다. 동물마다 나름의 소통 방식을 갖고 있지만 대개 감정 표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인간은 복잡한 내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언어를 발전시켰다. 투쟁에는 복잡한 내용이 필요 없다. 협력을 위한 의사소통이 복잡한 언어를 필요로 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문자를 발전시켜 더욱 복잡한 내용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역사상 중요한 문명은 모두 제국을 형성했다. 그 문명권의 세계정치를 운용한 것이다. 지금은 제국이란 말이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근대 이전의 제국은 수준에 오른 문명권의 정치조직이었고, 사익을 억누르고 공익을 추구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었다. 근대는 제국, 즉 세계정치가 사라진 시대였고, 그런 시대의 제국주의는 제국의 껍데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도(人道)가 쇠미한 시대에 인도주의가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대 이전의 제국은 종교와 결합되어 있었다. 제국이 문명의 몸이라면 종교가 마음이었다. 문명권의 평화체제는 제국과 종교의 두 축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것이고 모든 큰 종교에는 세계(문명권)의 평화 유지를 위한 원리가 들어 있다. 근대 합리주의와 세속주의가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여러 종교 전통에서 인류평화의 원리를 찾아내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Posted by 문천

 

Usually it is the discontent with my own style, and at times a strong urge to change it, that makes me reluctant to take hold of the writing brush. Excessively contrived effort for change may lead to misconceived sophistication, while changeless repetition is likely to result in inflexible stagnation.

 

Misconceived sophistication is an empty shell that does not hold my own personality, while inflexible stagnation is a closed trap of confining myself. I should find a way of synthesizing the two properly, following the ancient teaching "允執厥中". Since a man's writing style is the reflection of the man's feelings and thinkings, its changes and developments are supposed to be made in step with the changes and developments of the man himself.

 

t.n. "允執厥中" was the central part of Emperor Yao's advice to Emperor Shun on handing over the throne. It is generally understood to mean "Concentrate on the important matter, avoiding the extremes."

 

[by Shen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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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김기협:
해방 당일 이래 선생님 활동은 무엇보다 민족통일전선 결성에 목적을 둔 것이었습니다. 지난 14일 만났을 때 통일전선의 전망을 여쭈니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는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이제 비상정치회의에 독촉이 합류해 비상국민회의로 방향을 바꾸면서 좌익의 참여를 아예 포기하고 있습니다. 김원봉, 성주식, 김성숙, 유림 등 임정 비주류 요인들도 이에 반대하며 주비회를 탈퇴하고 있습니다.

좌익이 배제된 비상국민회의는 진정한 ‘통일전선’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비상국민회의 추진에는 통일전선 포기의 뜻이 있지요. 그것이 최선을 다하는 자세일 수 있습니까?


안재홍:
나는 탈퇴한 분들의 뜻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21일 주비회에서 비상국민회의로의 선회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김성숙 씨가 그 자리에서 바로 반대했지요. 장덕수 씨가 “우리는 임시정부를 절대 지지한다. 임시정부의 법통은 절대적이다” 주장하자 김성숙 씨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내가 주장해 온 ‘임정보강론’과 합치하는 말씀입니다.


“임시정부의 최고목표는 오직 조선의 독립이요, 독립을 위하여 용감히 싸우는 혁명적 정신이다. 임정의 지지는 구성인물에 있지 않고 그 정당한 정책에 있다. 만약 임정이 그릇된 정책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여러분은 주장할 것이다. 공산당과 좌익진영은 초대를 하였는데 자기네가 참석치 않았다고. 그것이 잘못이다. 왜 좌우익이 같이 참석하게 하지 못하고 참석치 않을 회의를 가지는가? 형식적 주관적 초대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객관적 실제적으로 참석할 전 민족적 합치의 통일을 위주하는 회의라야 될 것이다. 우익만의 통일은 민의를 가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 추구해서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아쉬운 점이 있어도 일단 임정의 권위와 김구 선생의 영도력을 중심으로 비상국민회의를 궤도에 올려놓으면 그 후에 아쉬운 점을 메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통일전선에 대한 집착을 접어놓는 것이 나중에라도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병자호란 때 부득이 작성한 항서를 김상헌이 찢어 던지자 최명길이 주워 모으며 “찢는 대감도 계시고 줍는 저도 있어야지요.” 했답니다. 어떤 일에나 여러 역할이 있죠. 나는 탈퇴한 분들과 같은 생각이지만 비상국민회의에 남아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기협:
최명길의 역할도 필요한 것이었죠. 그렇지만 선생님의 성격과 경력을 아는 사람들은 선생님께 최명길의 역할보다 김상헌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그런데도 최명길의 역할을 바라보시는 것은 그쪽 역할 맡아줄 사람이 너무 없어서인가요?


안재홍:
좋은 분들이 많이 있죠. 지금 상황에서 그쪽 역할의 필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해서 내 미력도 그쪽으로 보태려는 겁니다.

지난 반년간 나는 어떤 정치이념이 좋다는 주장을 내놓기보다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에 어려운 점이 많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좋은 생각을 가진 분들도 상황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자기 생각에 고집을 세우는 바람에 일을 잘 풀어오지 못한 것이 참 답답합니다.

연합국 외상회담이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이제 더 미적거려서는 안 됩니다. 며칠 전 빈센트 씨 담화에 “현재 조선에 90여 개 정치단체가 있어서” 새 임시정부 수립이 어렵다는 말이 있었죠. 우리 비상국민회의 주비회에서는 정당이 56개밖에 안 된다는 성명을 냈는데, 구차한 얘기죠. 서로 다른 정치이념이 56가지나 될 수 있습니까? 같은 이념을 가지고도 정치인들이 화합을 못한다면 민족이 화합할 수 있다고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전 민족의 통일전선을 바로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범위의 통합이라도 미소공위의 보조에 맞춰 해내야 합니다.


김기협:
선생님은 11월 27일 막 귀국한 김구 선생과 대담할 때 좌익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죠. 좌우 합작을 이루지 못하면 분단 점령이 민족 분단으로 이어질 위험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좌익을 배제하는 비상국민회의를 지지하신다는 것은 민족 분단의 위험을 감수하신다는 것입니까?


안재홍:
하느님이 내 소원을 꼭 한 가지만 들어주신다면 민족 분단을 막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합니다. 분단된 독립은 통일된 종속보다도 더 나쁜 것입니다. 분단된 독립이 진정한 독립이 될 수도 없는 것이고요.

생각해 보세요. 민족이란 집단에는 저절로 뭉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성질을 국가라는 제도가 가로막고 있으면, 민족과 국가가 서로 대항하는 형국이 됩니다. 민족의 힘과 국가의 힘이 서로 합쳐도 장래를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두 가지 힘이 서로 맞선다면 어떤 꼴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공산당의 비협조가 너무 심합니다. 11월에도 두 차례나 근택빌딩으로 찾아가 독촉 참여를 권했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모스크바 결정이 전해지자 바로 다시 찾아가 이주하 씨에게 “탁치반대 운동을 아니하고서야 무슨 운동을 하겠느냐”는 말을 듣고 이제야 합작의 길이 열리는구나,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공산당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지요. 그러고도 1월 7일 4당 대표가 모였을 때 공산당 입장을 배려한 표현으로 ‘4당 코뮈니케’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공산당을 끌어들일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산당 없이라도 할 일을 해 나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김기협:
4당 코뮈니케의 폐기는 후세 사람들도 무척 안타까워하는 일입니다. 서중석 선생은 합의 내용에 앞서 “해방 이후 좌우익 간에 있었던 최초의 중요한 합의”이며 “국내의 주요 정당이 한국에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데 합의를 본 유일한 문서”라는 점을 중시했지요.

그런데 4당 코뮈니케의 폐기는 공산당이 아니라 한민당의 책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민당 김성수 씨는 엊그제 담화에서 코뮈니케 제1항을 놓고 “공산당 이주하가 조공은 신탁을 절대지지하므로 수정할 수 없다고 고집하여 필경 결렬된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려 했지만, 그 회담에서 이주하 씨가 “신탁을 절대지지”한다고 하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코뮈니케 제1항은 이런 내용이었죠.


“조선 문제에 관한 모스크바 3국외상회의의 결정에 대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을 보장하고 민주주의적 발전을 원조한다는 정신과 의도는 전면적으로 지지한다. 신탁(국제헌장에 의하여 의구되는 신탁제도)은 장래 수립될 우리 정부로 하여금 자주독립의 정신에 기하여 해결케 함.”


신탁을 지지하는 내용이 아니라 표현을 유보한 것일 뿐이며, 신탁을 별도로 언급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 아닙니까? 그 정도 표현이 적당하겠다고 한민당 대표로 온 김병로 씨와 원세훈 씨도 동의했던 것을 대표까지 교체해 가며 번복한 것은 참 심했습니다. 이 일만이 아니라 통일전선에 대한 그 동안 한민당의 성의가 공산당만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안재홍:
한민당의 문제점이야 눈 있고 귀 있는 사람으로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른 건 차치하고, 몽양과 나를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데야 더 할 말이 없죠. 한민당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김병로, 원세훈 씨 같은 분들까지 깔아뭉개고 노골적으로 나오는 데는 정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민당에 민족의 장래를 위한 소중한 자원이 많이 포용되어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행정, 경영, 기술, 모든 분야의 높은 수준 훈련과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대부분 한민당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민당이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건준 때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몽양은 좌파의 설득, 나는 우파의 설득을 맡고 있습니다. 누구 일이 더 힘든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민당과 정면으로 맞서는 일은 피할 것입니다. 한민당의 편협한 노선을 따라가지 않으면서 한민당이 따라올 만한 길을 보여주는 것을 나와 국민당의 역할로 생각합니다.


김기협:
여운형 선생의 인민당이 공산당의 편협한 노선을 따라가지 않으면서 공산당이 따라올 만한 길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군요. 그러고 보면 공산당과 한민당은 정책 내용은 달라도 매사에 합작을 어렵게 하는 대립지향적 성격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박헌영의 공산당 노선은 인민당만이 아니라 공산당의 북조선분국에서도 ‘좌경 모험주의’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극좌파’지요. 한민당 주류 세력도 같은 틀의 ‘극우파’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편 인민당과 국민당의 정책노선에 그리 큰 차이가 없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합작할 수 있는 사이인데, 이것을 극좌파, 극우파와 대비되는 ‘중도파’로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극좌파는 헤게모니 투쟁을 중시하는 볼셰비즘의 전통에 따라 민족 문제를 경시하거나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극우파라 할 수 있는 한민당 주류는 식민지시대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민족 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쪽을 다 배제하고 중도파의 통일전선을 만드는 것이 극좌, 극우의 흡인력을 막는 길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익은 비상국민회의로, 좌익은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따로 나간다면 이쪽에서는 극우파가, 저쪽에서는 극좌파가 각각 주도권을 쥐게 되기 쉽지 않습니까?


안재홍:
중도파의 통일전선! 가능하기만 하다면 좋은 길이죠.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몽양과 내가 건준을 함께 한 것이 바로 중도파 통일전선의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나요? 우익에서는 외면했고, 좌익에서는 박헌영 일당이 달려들어 말아먹었습니다. 몽양과 나의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이지요.

내가 임정을 높이 받들어 온 것이 중도파 통일전선을 실현시킬 실력을 가진 주체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말에는 콧방귀 뀌는 사람도 김구 선생이 똑같은 말씀을 하면 그러지 못합니다. 민족의 진로를 밝은 길로 열어가는 가장 큰 열쇠가 임정에 있습니다. 임정이 역할을 제대로 하면 한민당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승만 박사나 독립동맹 같은 다른 해외 독립운동 세력이 임정과 보조를 맞춰주면 더욱 좋지요.


김기협:
임정이 한민당과 이 박사를 선도하기보다 거꾸로 휘둘려 버렸다고 후세 사람들은 많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 계기가 반탁운동이었다고 봅니다. 연말의 ‘국자(國字)’ 1, 2호로 임정과 김구 선생의 권위가 크게 손상되지 않았습니까? 극단적 반탁운동으로 인해 좌우합작의 길도 더 좁아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제 좌익을 배제한 비상국민회의 추진도 좌우 대립을 더 뚜렷하게 만드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안재홍:
결과를 보면 김 선생 말이 맞습니다. 국자 사건으로 임정의 권위는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큰 타격은 아닙니다. 나는 지금 임정 요인 네 분의 주비회 이탈이 더 걱정됩니다. 하고 싶은 말씀을 충분히 한 다음 비상국민회의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라도 임정의 소속은 굳게 지키기 바랍니다.

반탁운동 때문에 좌우합작의 길이 더 좁아졌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반탁운동 아니라도 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합작을 간절히 바라는 우리 염원을 좌익 일각에서 이용해 먹으려 들기 때문에 더 어려운 면도 있었습니다. 억지로 하려 해도 안 되는 지금 단계에서는 아예 큰 통일에 대한 집착을 접어놓고 우익은 우익 안에서, 좌익은 좌익 안에서 각자 단결의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좌우 대립은 더 뚜렷해지겠죠. 그럴 때 오히려 새로운 접점이 나타나지 않을까 나는 기대합니다.

“썩어도 준치”란 말대로, 임정의 권위가 아무리 타격을 받아도 그 가치는 쉽게 스러지지 않습니다. 임정의 지도력에 기대할 것이 없게 되는 상황은 바로 민족의 장래에 희망이 없게 되는 상황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임정의 권위를 지키고 키우는 데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