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몽양심포지엄의 주제는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의 좌우합작운동이었다. 나는 안재홍에 관한 발표를 맡았는데, 준비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냉전시대’에 관한 우리 사회의 통념을 바꿔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냉전시대를 역사 진행상의 필연적 현상으로 보는 통념이 있다. 새로 떠오른 생각은 이것을 변이(變異) 성격의 하나의 반동(反動) 현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냉전은 1990년대 초에 끝났는데, 그 흔적은 4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흔적 정도가 아니라 구조가 버티고 있다. 냉전시대의 필연성을 뒤집어 본다면 그 청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은 안재홍이 1935년 6월에 쓴 글 한 편을 읽으면서였다.
20세기 현 단계의 인류문화의 특징은, 각개민족의 세계적 大同의 방향, 즉 국제주의적 방향에 향하여 자동적 求心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하나이요, 그 반면에 각개민족이 이 세계적 즉 국제적 영향 하에 있으면서 오히려 각각 각자의 민족문화로서 純化 深化하려는 의욕 및 그 노력 중에 있는 것입니다. 즉, 가장 온건타당한 각 국민 각 민족의 태도는, 민족으로 세계에, 세계로 민족에, 交互되고 調合되는 민족적 국제주의 - 국제적 민족주의를 형성하는 狀勢이니, 이를 세분하여 말한다면, 가장 핍근하게 상대되는 1국가 1국민과의 관계에 그러하여, 주면서 받고 다투면서 배우는 연속하는 途程에서, 자기의 향상과 발전이 있고 획득과 생장이 있는 것이요, 전 세계 전 국제에 처해서의 1국민 1민족으로서도 그러한 것입니다. 인류의 문화가 그 교통 통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멀지 않은 미래에 국가와 민족의 界線을 철폐하는 시기가 있음이 ‘미래의 形相’이라고 치더라도, 금일에 吾人은 우선 세계의 1민족으로서의 문화적 순화 향상의 길을 강맹하게 걸어 나아가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미래를 지나 금일에”, <민세안재홍선집> 1, 512쪽)
안재홍의 아호 “민세(民世)”는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결합시키는 ‘민세주의’를 제창하면서 쓰게 된 것이고, 이것이 해방 후에는 ‘신민족주의’로 나타났다. 안재홍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민족국가 건설 염원이 좌절되고 분단건국의 결과를 맞은 까닭은 한 마디로 냉전에 있었다. 미-소 대립의 격화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한 두 점령국의 협력이 사라진 결과가 한반도의 분단건국이었다.
그러면 안재홍 등 민족주의자들에게 세계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허물을 물어야 할까? 나는 원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위 글에서 말하는 “국제주의적 방향”은 너무나 타당한 관점으로 보인다. 교통 통신 등 기술조건의 변화는 인간의 활동을 국가나 민족의 울타리에서 풀어내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세계화(globalization)’는 20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리키는 방향이 틀림없다. 1945년 아인슈타인이 원자폭탄 투하 앞에서 ‘세계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세계화의 추세를 바라본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화’는 경제적 세계화다. 정치제도를 그대로 둔 채 경제적 장벽만을 제거한다는 것은 국가 간, 지역 간의 착취체제를 강화시킬 뿐이므로 오히려 진정한 세계화에 역행하는 ‘사이비 세계화’라 할 것이다. 자오팅양은 <천하체계>에서 정치적 세계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근대정치학이 국가정치만을 다루고 세계정치를 도외시해 온 경향을 지적한다.
중국의 정치철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정치적 세계관, 즉 내가 말한 ‘천하체계’의 이론을 창조하려고 했다. 이것의 이론의 틀과 방법론은 서양의 정치철학과 매우 다르다. 먼저 이론의 틀에서 살펴보면 중국의 정치철학은 천하를 가장 높은 단계에 위치한 정치 분석의 단위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딴 것에 앞서는 분석의 단위로 간주했다. 이것은 국가의 정치 문제를 천하의 정치 문제에 종속시켜 이해하려고 한 것이자 천하의 정치 문제는 국가의 정치 문제가 근거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29-30쪽)
철학의 이념이 없는 곳은 반드시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 서양의 정치철학이 주도하는 세계는 반드시 혼란스러운 세계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오늘날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제도가 있고 관리가 있고 질서가 있는 세계는 아직도 존재하지 않지만, 지리나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세계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황무지가 되거나 멋대로 약탈하고 쟁탈할 수 있는 공공 자원이 되거나 정복을 일삼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난제이다. 즉 전체적으로 무질서한 세계이자 정치적 의미도 없는 세계는 단지 폭력이 주도하는 세계일 뿐이다. (...) 한 마디로 말해서 세계는 세계가 되지 못한다. 마치 국가는 국가 제도 때문에 국가가 되는 것처럼 세계는 세계 제도 때문에 세계가 되는 것이다. (31-32쪽)
문명의 기반조건인 과학기술의 발달은 20세기 들어 국민국가의 벽을 낮추고 약화시키는 세계화의 길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가 두 차례 세계대전이었다. 1930년대에 안재홍의 민세주의 제창은 세계사의 흐름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냉전체제를 하나의 반동체제로 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슷한 맥락에서 반동체제의 예로 19세기 전반의 ‘비엔나체제’를 생각할 수 있다. 그 시대의 과학기술 발달은 민족국가의 강화와 공화정의 확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전쟁의 충격 속에서 빚어진 비엔나체제는 반세기간 시대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었다. 같은 틀에서 2차 대전의 충격 속에서 빚어진 냉전체제가 반세기간 시대의 흐름을 가로막은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19세기 전반의 경우, 비엔나체제가 유럽 정치계를 고착시켜 놓고 있는 동안에도 시대의 흐름은 바닥에서 계속 흘러가다가 1860년대 들어 봇물처럼 터져 나왔기 때문에 그것을 ‘반동’ 체제라 하는 것이다. 과연 20세기 후반의 냉전시대에도 그런 복류가 있었던가? 냉전체제의 반동성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일 것 같다.
그래서 제3세계의 비동맹주의 노선을 살펴볼 생각이 났다. “비동맹”은 바로 냉전체제의 블록화를 거부하는 깃발이었으므로, 냉전체제의 구속을 받지 않는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을 찾는다면 그쪽일 것 같다.
제3세계의 민족주의 운동을 위키피디아로 더듬어보기 시작하는데 인도네시아의 "삔찌실라(Pancasila)’가 눈에 들어왔다. “5대 원칙”이라는 뜻의 빤짜실라는 1945년 6월 수카르노가 발표한 선언인데 인도네시아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채택된 것이니, 우리의 기미년 독립선언문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 것이다.
2차 대전 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군의 진주를 반기고 협력관계를 맺었다. 일본의 패전이 가시화되고 있을 때 일본 남방군사령부는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을 방조했고,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네덜란드의 복귀 전에 진도를 나가 놓기 위해 건국 작업을 서둘렀다. 그 과정의 뚜렷한 고비 하나가 빤짜실라의 선포였다.
그런데 5대 원칙의 내용이 안재홍의 신민족주의와 너무 흡사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1. 유일신에 대한 믿음
2. 하나의 인도네시아
3. 국제주의
4. 인도네시아 전통 속의 민주주의(무샤와라, 무파깟)
5. 정의와 복지
안재홍의 민세주의는 이름대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국제주의)의 결합이므로 빤짜실라의 제2, 제3원칙에 상응한다. 그리고 해방 후의 신민족주의는 여기에 민주주의를 결합한 것이고, (1945년 9월에 발표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그 민주주의가 흔히 “다사리주의”라 불리는 전통 속의 민주주의 원리다. 제4원칙과 닮은꼴이다. 제5원칙은 상식적인 내용이라 할 것이고, 제1원칙만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보며,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결합, 그리고 계몽주의적 기준이 아닌 고유한 전통 속의 민주주의 원리를 발굴하는 것이 당시 비(非)서양 세계가 일반적으로 바라본 노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국은 냉전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에 그 노선을 추진할 수 없었던 반면 인도네시아는 냉전의 압력이 덜했기 때문에 그 노선에 따라 나라를 세우고 키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냉전시대 동안 세계의 표면적 움직임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장악한 제1세계와 제2세계, 그중에서도 제1세계, 그리고 그중에서도 미국의 정책에 크게 좌우되었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옹유한 제3세계는 수세에 몰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느 단계, 예컨대 물질의 힘이 퇴세에 접어들고 상대적으로 마음의 힘이 더 부각되는 단계에 이르면 세상을 뒤덮을 흐름이 제3세계에서 복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사회과학 등 학술 연구도 제1세계에서 주도해 왔고 따라서 제1세계의 관점에 제한받아 온 측면이 있다. 물질 중심의 학문적 관점에 가려져 있던 다른 관점들이 자라난다면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하던 것과 다른 모습의 20세기 후반기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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