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壯士의 뜻

기사입력 오후 2:38:21

壯士의 뜻

"바람이 소소하니 역수 물 찬데(風蕭蕭兮易水寒), 장사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으리(壯士一去兮不復還)." 중국 문학사를 통해 가장 비장한 구절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이 대목은 형가(荊軻)가 연(燕)나라 태자(太子) 단(丹)의 부탁으로 진(秦) 시황(始皇)을 암살하러 떠날 때 지음(知音)의 벗 고점리(高漸離)와 작별하며 부른 노래다.

형가가 진나라 궁정에서 시황을 배알하는 척하다가 척살(刺殺)에 간발의 차로 실패한 뒤 시황은 형가의 주변 인물을 모두 죽였다. 다만 고점리만은 그 절세의 연주 솜씨를 아껴 두 눈을 뽑고 살려뒀다. 고점리는 기회를 엿보다가 시황의 앞에서 연주할 때 악기 속에 넣어두었던 납덩어리를 꺼내 시황을 때려죽이려 했으나 실패하고 죽었다.

형가는 원래 연나라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태자 단의 부탁에 목숨을 걸게 된 것은 전광(田光)이라는 친구 때문이었다. 연나라 원로 명사인 전광은 저자바닥에서 놀고 뒹구는 유랑인 형가의 고매한 인격을 알아보고 망년지교(忘年之交)로써 후히 대접했다.

노골화하는 진나라의 정복 사업 앞에서 연나라는 화친이냐, 적대냐,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태자 단은 화친을 통해 나라를 길게 보전할 수 없으며, 시황의 암살만이 천하를 안정시키고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그래서 전광에게 일을 맡기려 했으나 전광은 노쇠함을 이유로 사양하고 대신 형가를 추천했다.

태자는 전광을 배웅하며 일이 누설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전광은 태연히 웃으며 응락했지만 형가를 만나 태자의 뜻을 받들어주도록 부탁한 다음 이렇게 일렀다. "일을 행함에 상대로 하여금 의심케 한 것은 협객의 도리가 아니다. 태자를 만나거든 내가 이미 죽었으니 누설을 염려하지 말라고 전해 주오."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광의 죽음은 선비의 결벽증이 아니었다. 그는 태자의 뜻이 천하와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 여겼고, 손수 받들지 못하는 대신 자기 목숨을 던져 형가와 태자를 맺어준 것이다. 남은 두 사람이 숱한 갈등을 넘기고 결행에 이른 것은 전광의 살신성인(殺身成仁) 덕분이었다.

구속될 처지의 국가안전기획부 간부가 새 부장의 정치적 라이벌에게 기밀문건을 넘겨준 일을 놓고 여러 모로 한탄이 나온다. 권력기관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보다 정권과 사익(私益)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은 오랫동안 있어 왔다. 그것이 의구심만이 아니었던가.

▲ '비전 2030'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이 사람을 아끼고 그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삶을 사랑한 사람인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만이 아니라 이웃의 삶까지 아낄 만큼 지극한 사랑이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태일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데도 그의 삶 사랑, 사람 사랑을 증언한 조영래의 덕분이 크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정의보다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닐지. ⓒ프레시안

  이 이야기 속에는 세 사람의 죽음이 그려져 있다. 형가의 죽음은 후세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죽음의 하나다. 고점리의 죽음도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이에 비해 전광의 죽음은 사마천의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 문학과 예술의 큰 각광을 받지 않아 왔다.

그런데 <사기> '자객 열전'에 실린 이 이야기를 거듭거듭 읽을수록 나는 전광의 죽음에서 더욱더 깊은 뜻을 새기게 된다. 형가와 고점리의 죽음이 추상적 가치를 향한 죽음으로서 낭만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전광의 죽음은 한 도덕적 인간의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사마천의 붓끝에 나타난 태자 단의 모습은 대단히 용렬한 인물이다. 그가 진왕(시황으로 즉위하기 이전)을 암살하려 한 것은 자기 자존심과 욕심 때문이었지, 천하를 위하는 뜻이 아니었다. (위 글에서는 짧게 쓰기 위해 이 점을 깊이 따지지 않았다.) 전광에게 극진한 예를 올린 것도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였을 뿐, 선비로서 그의 인격을 존중할 줄 몰랐기 때문에 비밀을 누설하지 말아 달라는, 수준 이하의 부탁을 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광에게 목숨보다 더 귀중한 명예를 짓밟는 모욕이었다.

그러나 전광은 이 모욕을 당하기 전에 이미 응락을 해놓은 몸이었다. 그가 응락을 한 것은 진왕을 암살하는 일이 형가의 뜻에도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형가는 천하를 주유하는 몸, 연나라에 충성을 바칠 책임이 없는 신분이었다. 형가가 태자 단의 지원을 받아 진왕 암살에 나서게 하는 자신의 뜻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자기 목숨을 쐐기로 삼음으로써 전광은 명예를 되찾고자 했다.

전광이 죽은 뒤 형가가 태자 단을 찾아간 장면을 사마천은 이렇게 그렸다.

"형가가 마침내 태자를 찾아가 전광의 죽음을 알리고 전광이 남긴 말을 전하자 태자는 두 번 절하고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한참 있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전 선생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주의를 드린 것은 큰 일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쓴 것이었는데, 이제 그분이 죽음으로써 누설이 없을 것을 분명히 한 것이 어찌 내 뜻이었겠습니까?"

사마천은 담담히 적을 뿐이다. 그러나 태자 단에 대한 그의 경멸은 행간에 가득하다. 거사에 이르기까지 태자의 행동은 철저히 소인배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형가를 상경으로 올려 상사(上舍)에 머물게 하고 태자가 날마다 문안하며 태뢰구(太牢具)와 진기한 음식을 접대하고 수시수레, 말, 아름다운 여인 등을 바쳐 형가가 바라는 것을 채워줌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다."

법도에 어긋날 정도의 극진한 환대를 하면서도 태자가 형가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사실을 사마천은 여러 모로 짚어 보인다. 형가는 진왕에게 접근하기 위해 번오기(樊於期)의 목이 필요하다고 했으나(번오기는 진나라 장군으로 연나라에 망명해 태자 단에게 의탁하고 있던 인물이다.) 태자는 난색을 표한다. 형가가 직접 번오기를 찾아가 진왕을 죽이기 위해 당신 목이 필요하다고 하자 번오기는 반색을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에도 형가가 거사를 함께 할 벗을 기다리며 출발을 늦추자 태자는 난폭하고 용렬한 인물을 조수로 추천하며 출발을 재촉했다.

태자 단은 형가가 일을 함께 꾀할 인물이 못되는 소인배였다. 그럼에도 형가가 그를 뿌리치지 못한 것은 전광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전광은 왜 그 두 사람을 묶어놓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졌을까? 태자 단에 대한 충성 때문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목숨을 끊을 때 전광에게 태자 단에 대한 감정이 있었다면 경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국시대 말기의 선비는 승복하지 않는 자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것이 풍조였다.

형가는 천하를 위해 진왕을 제거할 뜻을 가진 인물이었고, 전광은 그 뜻을 이해하고 공감한 것이 아니었을까? 태자 단의 부탁을 받았을 때 전광이 형가를 추천한 것도 태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형가의 뜻을 이뤄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뜻을 이뤄 가는 과정에서 태자의 더럽고 치사스런 꼴을 보더라도 형가가 물러서지 않도록 자기 목숨으로 쐐기를 박아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마천은 그렇게 밝혀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풍긴다.

형가가 간발의 차로 암살에 실패하고 역수 가에서 그를 전송한 고점리도 진 시황의 통일 후에 홀몸으로 암살을 시도하다가 죽은 사실을 적은 다음 사마천은 이렇게 논했다. "그 뜻을 세움이 분명하고 그 뜻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니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짐을 어찌 망령된 일이라 하겠는가!"

훗날 태자 단이 진나라에 잡혀 죽은 일은 '연 세가(燕 世家)'에 극히 간략하게 적혀있다. 제후의 태자이기 때문에 제후가의 기록에 실은 것이지, 그를 넘어 그 개인의 이름이 후세에 전해진 것은 형가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 용렬한 행동 때문일 뿐이다.

노 대통령 서거를 놓고 "죽음의 평등" 이야기가 이쪽저쪽에서 나온다. 오른쪽에서 대우 남 사장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왼쪽에서는 용산 참사 희생자와 불평등 구조에 목숨 바쳐 항의한 분들 이야기가 나온다. 왜 많은 사람들이 전직 대통령의 죽음만 미화하고 그 의미를 과장하느냐는 불만이다.

노 대통령의 죽음에만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분들의 죽음에도 그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고 드러내 보여주는 데 애를 쓴다면 귀담아 듣겠다. 그러나 "남 사장을 죽음에 몰아넣은 자에게 무슨 국민장이 가당하냐?"든가, "자기 자신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는 죽음을 순수한 피해자의 죽음보다 더 애통해 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마치 죽은 분들의 평등권을 당연한 것처럼 내세우는 공박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삶에도 가치가 큰 삶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삶이 있는 것처럼 죽음에도 가치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해서든 죽음에 대해서든 가치의 인식은 개인의 주관에 달린 것이다. 큰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인식하는 대상은 사회적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된다.

유다의 죽음에서 예수의 죽음 못지않은 큰 가치와 깊은 의미를 찾는 예술 작품도 나올 수 있다. 그런 작품이 공감을 얻는 것은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죽음의 평등을 기계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죽는 본인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것도, 죽음이 곧 존재의 종말이라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되는 말이다.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모든 죽음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죽음을 존재의 종말로 보지 않는 사람은 자기 죽음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보고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오른쪽 분들에게야 하나마나한 말씀이겠지만, 인간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왼쪽 분들에게는 정말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죽음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재단하지 말아 달라고. 다른 것은 몰라도 죽음에 대해서만은 사람들의 주관을 존중해 달라고. 죽음의 가치마저 이념으로 획일화한다는 것은 너무 지독한 전체주의 방식이다.

목숨으로 항의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쓴 분이 있었다. 그런 세상을 거의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해서 목숨으로 항의하려는 사람들을 말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런 세상이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분은 자기 목숨을 끊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순수한 피해자의 죽음보다 그런 죽음이 더 애통하다. 내게는.

하나의 죽음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낸 것은 역사상 드문 일이다. 그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내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아직도 그 밑바닥까지 알지 못한다.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그 개인을 위한 눈물이라기보다 이 사회를 위한 눈물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할 뿐이다. 내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어찌 다른 사람들의 눈물에 담긴 의미를 재단하겠는가.

슬퍼하는 자는 슬퍼하게 하라.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나의 <경향신문> 절독기

기사입력 오후 3:43:20

종이 신문으로 유일하게 <경향신문>을 구독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본다. 시원찮아 보이는 기사는 첫 줄 보다가 넘어가고 재미있는 것만 더 살펴본다. 몇 달 전부터 그냥 지나가는 글이 많아지다가 거의 외부 필자 글만 보게 되었다. 문제된 유인화 글도 오늘 우리 게시판 기사 덕분에 들어가 보니 그런 글 있었던 것 같다.

첫 줄만 흘낏 보고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냥 틀린 '비'보다 비슷하면서 아닌 '사이비'가 더 나쁜 거라고 공자님도 말씀했다. 그래서 일전의 <프레시안> 글 "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에서도 <경향신문>에 비판의 초점을 맞췄다. (☞관련 기사 : "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사실 <한겨레> 인상이 더 나쁘지만, 훑어보지도 않으면서 비판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경향신문>의 그 동안 시원찮은 자세를 비판한다고 했지만. 유인화 글처럼 흉악무도한 글이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염두에 뒀으면 더 세게 조지는 건데.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을 씹었다 해서 '흉악무도'하다는 게 아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미디어의 힘을 그딴 식으로 사람 잡는데 쓰는 건 흉악무도한 짓이다.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비판하는 거라면 강렬한 패러디도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깐다고 해서…. 그 부부간의 대화를 유인화 식으로 패러디한다는 건…. 너무 조·중·동스러운 짓이다.

일 터지기 전 <경향신문>의 시원찮은 짓들이나 흉악무도한 짓까지도, 반성만 제대로 한다면 구독을 끊을 사유까지는 안 된다. 내게는. 그런데 너무도 반성을 할 줄 모른다.

차악이라도 아껴 줄 가치가 있는 거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조·중·동이 '비'라면 <경향신문>은 '사이비'다.

돌아가신 분이 신문 보고 마음 상하셨다면 조·중·동 보고 상했겠냐고 내가 물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힘을 조·중·동보다 경향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사이비는 차악이 아니라 최악이다.

6월 말까지만 반성을 기다려 보겠다.

유인화 글을 보며 글쟁이로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든다. 게시판에서 이렇게 주고받는 글은 마음대로 써도 괜찮다. 쌍방향이니까.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내놓을 때는 근본적으로 일방적인 것이 된다. 메시지를 내놓기 전에 확고한 것으로 만들려는 강박 때문에 오버하기 쉽다.

<프레시안>에 쓰는 데는 시간에도 돈에도 쫓기지 않는 입장이라서 강박이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메시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오버할 위험에 늘 불안하다. 10년 전 쓴 글들을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리 심한 망발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다행스럽게 여긴다.

ⓒ경향신문

  지난 금요일 내가 속한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경향신문>에 좋은 점이 있다고 봐서 구독해 왔고, 그 동안 추한 꼴 좀 보였다 해서 확 끊어버릴 생각도 없다. 그런데 잘못된 일이 밝혀졌는데도 반성을 제대로 못한다면 계속 구독할 의미가 없다.

영결식이 있던 5월 29일 만평 란과 조그만 사설 한 꼭지에서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는 표시는 있었지만, 그 잘못이 어떤 잘못인지 반성도 충분해 보이지 않았고, 그 잘못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점까지 그 정도밖에 뜻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한심스러웠지만, 시간을 두고 더 반성하는 게 있겠지, 하고 기다려 왔다.

오늘 아침 두 개 면을 털어 나름대로 그 동안의 반성 내용을 내놓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제대로 된 반성이 아니다. 그래서 <경향신문>을 끊기로 했다.

두 면 중 한 면(5면)은 아예 반성을 등진 방향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보다 자기네가 나쁜 짓을 덜해 왔다고 우기는 내용이다. 50보 도망간 놈이 100보 도망간 놈 흉보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변명도 못 되는 변명에 진짜 반성(비슷한 것)과 똑같은 지면을 쓰다니. 쯧쯧.

그런 대로 반성 비슷한 형식을 갖춘 4면을 들여다봐도 한숨이 폭폭 나올 뿐이다. 주 기사의 소제목만 봐도 "검찰 주장에 대한 반론·해명 보도", "정권 차원의 '기획 수사' 의혹 제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 수사 촉구" 등 그래도 자기네가 잘했다고 우기는 내용이 주종이고, 정작 잘못에 대해선 "검찰 발표 의존과 일부 과도한 보도"라고 마지못해 조금 끼워 넣었을 뿐, 끝까지 "성찰하는 언론의 자세 지켜"라며 국면이 완전히 뒤집어진 뒤에 뒷북 좀 친 것을 가지고 생색낸다.

5월 29일 올린 글("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에서 경향신문을 중심으로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지만, 나는 미디어 비평가가 아니다. 한 독자로서 불평을 털어놓은 것뿐이다. 신문을 꼼꼼히 보지도 않는다. 읽을 만한 기사가 있으면 읽지만, 마음에 안 드는 기사는 제목이나 첫 줄만 훑어보고 지나가 버린다. 5월 4일자 유인화의 칼럼도 나중에 보니 그런 물건이 있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나지만 내용은 안 읽었던 것이다. "시원찮은 글 또 하나 있나보군."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만약 읽었더라면 그 흉악무도함에 분노하지 않았을 수 없다.

오늘 반성 기사 중 이 글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유인화 문화1부장의 5월 4일자 칼럼 '아내 핑계대는 남편들'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을 전제로 썼다. (…) 이는 그만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컸다는 걸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슨 구차한 소린가? "<경향신문>이 올려서는 안 될 글을 올렸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제대로 된 반성이 왜 못 나오나?

인터넷으로 그 글을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치워놓은 모양이다. 올려서 안 될 글이라서 없앤 게 아니라 놓아두면 불편하니까 치워놓은 모양이다. 그 글의 한 대목처럼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 하는 배짱일까?

우리 동호회 게시판에 보인 대로 그 글의 앞부분을 옮겨놓는다. 보기 흉한 글이다. 흉하지만, 내가 <경향신문> 끊기로 한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옮겨놓는다.

여자 : 당신 구속 안 되겠지? 다른 대통령들은 2000억 원 넘게 챙기던데. 우린 80억도 안되잖아요. 고생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돈 좀 보낸 건데. 지들은 자식없나. 지들은 돈 안 받았어!
남자 : 내가 판사 출신 대통령이야! 고시 보느라 당신에게 가족생계 떠맡긴 죄밖에 없다고. 15년 전 내가 쓴 책 <여보 나 좀 도와줘>에 고생담이 나오잖소.
여자 : 그래요. 당신 대통령될 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로 동정표 좀 얻었잖아. 이번에도 내가 총대 멜게요. 우리 그 돈 어디다 썼는지 끝까지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말 안 해도 국민들이 다 알 텐데 뭘….
남자 : 걱정 마. 내가 막무가내로 떼쓰는 초딩화법의 달인이잖아. 초지일관 당신이 돈 받아서 쓴 걸 몰랐다고 할 테니까.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연극 공연용으로 적어본 대사입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아무리 나쁜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쓴 글이라도 이것은 신문에 실어서 안 될 비열한 글이다. '무죄추정' 차원 얘기가 아니다. 대상자의 범죄 행위가 확정판결을 받은 뒤라 하더라도 범죄의 범위를 벗어나는 인격적 모멸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처럼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것은 읽는 사람의 낯을 화끈거리게 하는 부끄러운 글쓰기다. 이런 글을 쓰는 인간, 그 심성은 어떻게 되어먹은 것일까.

이런 글을 <경향신문>은 버젓이 지면에 실었다. 앞으로도 자기네 기자의 의심이 가는 일이 있으면 이런 식의 글을 또 실을 것인가? 앞으로도 자기네 기자가 큰 실망을 느끼는 일이 있으면 이런 식의 글을 또 실을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 오늘 <경향신문> 반성 기사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경향신문>을 끊는다.

<경향신문>이 '조·중·동'보다 나은 신문이니까 지켜줘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조·중·동'과 비교될 만한 신문을 지켜줄 생각이 없다. 무능하고 무력한 것은 참아줄 수 있고 감싸줄 수 있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상대에게 사랑을 줄 수는 없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親美면 또 어때?

기사입력 오전 8:12:01

親美면 또 어때?

지난 12월 19일 밤 파리의 클레망텡 교수가 이메일로 "재미있는 후보"의 당선을 축하해 주면서 그곳 사람들의 노 후보에 대한 가장 뚜렷한 인식은 "미국 가 본 일이 없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지식인들이 재미있게 생각할 특징이다. 미국의 위성국가쯤으로 알았더니, 자존심이 제법 아닌가!

국내에서도 널리 공감을 불러일으킨 태도였다. 반미 정서까지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종래 한국 지도층의 미국에 대한 태도에는 애들 말대로 '쪽 팔리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위에 여중생 역사(轢死) 사고 처리와 부시 정권의 무리한 대북 압박 정책에 대한 반감이 겹쳐져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는 노 후보의 태도를 '반미'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려 든 사람들이 있었다. 노 후보의 반대자들은 그의 반미적 태도가 한미 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비난했고, 반미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노 후보를 자기편으로 생각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매도에 가깝게) 비판하는 글을 꽤 많이 쓰는 사람이지만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의 구조적 문제가 온 세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걱정하고, 과거의 한미 관계가 떳떳하지 못했던 것을 아쉽게 생각할 뿐이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에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노 당선자의 미국에 대한 태도도 나와 비슷한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친미'고 '반미'고 이름 붙여 자신의 태도를 고정시키는 것은 개인으로서도 성숙한 사고가 되지 못하기 쉽고, 더구나 국정의 책임을 가진 공인으로서는 국익에 충실할 수 없는 태도다. "반미면 또 어떠냐"는 반문에는 중립적 태도를 반미로 몰아붙임으로써 스스로의 편향된 친미를 드러내는 단세포들에 대한 짜증이 묻어 있다.

오른쪽에 단세포가 있으면 왼쪽에도 단세포가 있기 십상이다. 세상은 참으로 조화롭지 않은가. 얼마 전 노 당선자가 꺼낸 '친미적 자주'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란에서 깨닫게 된다.

노 당선자의 자주적 태도를 좋아하던 사람들 중에 당선 후 미국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데 실망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친미'와 '자주'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어서 '친미적 자주'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거나 무게가 '친미'에 있고 '자주'는 장식처럼 붙인 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노 당선자가 취임 후 정책 추진에서 비자주적이고 친미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 때 가서 꺼낼 이야기다. 말만 놓고 시비를 벌일 일이 아니다. 거시적·장기적으로는 '자주'를 추구하되 미시적·단기적으로는 '친미'에 다소의 무게를 둔다는 것이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더 바랄 바 없이 훌륭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친미적 자주'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은 '반미적 자주'를 원하는 것일 게다. 그것도 좋은 얘기다. 미국은 정말 문제 많은 나라다. 미국을 악의 축, 또는 하나의 가상 적국으로 생각하고 미국의 주장과 요구를 늘 의심으로 대하는 외교 자세도 하나의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그리고 국익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외교 노선으로 채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마치 친미는 악이요, 반미는 선인 것처럼 자주보다 반미에 집착한다면 이것은 친미를 가장한 숭미(崇美)에 못지않은 독단이다. 우리에게 긴요한 것은 자주다. 어느 한 나라에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자주의 자세를 세우고 나면 어느 나라를 더 친하게 대하고 덜 친하게 대할지는 그 때 그 때의 판단에 따라 택할 수 있다. 미국 아니라 어떤 나라라도 절대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길이다.

냉전시대의 대한민국에게는 절대적으로 배척해야 할 적성국과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할 우방국만 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외교'라는 것이 없는 나라였다. 지금은 외교를 꽤 가진, 훨씬 자주적인 국가가 되어 있다. 미국을 적대한다고 해서 더 자주적인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의 외교를 더 신축성 있게 만드는 것이 자주성을 늘리는 길이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여행자 수에서도, 투자 규모에서도, 교역량에서도 중국이 미국의 중요성을 추월하고 있으며 몇 년 후면 미국과 큰 격차를 가진 최대의 교류 상대가 될 것이다. 미군의 한국 주둔은 갈수록 어색한 일이 되어 가고 있으며, 미국의 잣대에 맹종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자세는 이미 시대착오가 되어버렸다.

심한 시대착오 증세는 부시 정부 언저리에도 많이 보인다. '맞춤형 봉쇄'니 뭐니 띄워 보다가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가 의연한 태도를 보이니 주워 담기 바쁘지 않은가. 두 군데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럼스펠드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국민 대다수가 남북관계 발전을 김대중 정권 최대의 (또는 유일한) 업적으로 꼽는 바탕에는 한미 관계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이 인식은 12월 19일 선거에서도 확인되었다. '전에 놀던 방식(business as usual)'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김정일에게 가르쳐주라고 부시가 전화로 김 대통령에게 요구했지만, 전에 놀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깨닫고 있는 것은 부시 자신이다.

자주성만 확보한다면 친미를 범죄시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좋은 면을 애써 아낄 필요도 있다. 한국의 국제 관계가 너무 중국 일변도로 쏠리지 않도록, 다변화의 중요한 요소로 미국과의 관계가 큰 가치를 가질 날도 멀지 않았다.

당선자가 취임 후에 곧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미국 쪽에서 먼저 떠들어대는 꼴이 예쁘지는 않다. 그렇게도 와 주기를 바란다면 노 당선자, 가서 사진이라도 같이 찍어 주고 와라. 하지만 더 중요한 외교 상대가 되어 가고 있는 중국 방문은 정말 좋은 결실을 얻도록 잘 준비해서 추진하기 바란다.

▲ 2000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클린턴 아닌 부시였다면 6·15 정상회담의 성사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부시가 백악관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노 대통령에게 무척 답답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무식한 부시 정권을 상대로 '한국의 길'을 그만큼 지켜낸 노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뉴시스

  한국의 정치 구조에 대한 일차적 인식은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대립이다. 민자당, 신한국당을 거쳐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 행세를 해 왔고 근년 자유선진당이 그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를 자처하는 또 하나의 거대정당이 국민회의, 열린우리당, 민주당 등 이름으로 존재해 왔고, 이것을 '사이비 진보'로 비판하며 '진짜 진보'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있다.

진보와 보수의 단순한 구분은 하나의 흑백론이다. 흑백론이라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상황 인식의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묶여 더 이상의 분석적 이해를 포기하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며 대중 조작의 표적이 되는 길이다.

한국 정치에서 흑백론이 지나친 힘을 가진 것은 독재 시대의 유산이다. 독재와 반독재의 대립이 정책 차원의 모든 이슈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흑백론을 넘어서는 어떤 접근도 투쟁 자세의 선명성을 흐리게 하는 멍청한 짓 내지 나쁜 짓으로 몰렸다. 어떤 실질적 담론도 필요로 하지 않는, 투쟁 일변도의 정치판이었다.

1987년 독재 종식 후 보수·진보의 구도가 독재·반독재 구도의 뒤를 이었다. 독재시대에 형성된 기득권층이 '보수'의 이름 아래 한국 사회의 특권 구조를 지키러 한나라당(다른 간판이던 시절 포함)으로 모이고, 이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그 맞은편에서 '진보'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민주당(다른 간판이던 시절 포함)이 실제 진보성이 강하지 않으면서 진보의 간판을 달게 된 것은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였으므로, 보수와 진보의 경계선은 한나라당에 의해 그어진 것이다.

한나라당이 보수를 표방하는 것은 "이대로!"를 외치며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구' 논란이 생긴다. 정치사상으로서 의미 있는 보수는 지속 가능한 질서를 모색하는 '합리적 보수'다. 한국의 사회경제 구조에는 독재시대에 절대 권력의 힘으로 만들어진 특권·불평등의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민주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질서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리해야 될 요소들이다. 이런 요소들까지 "이대로!" 지키겠다는 맹목적 현상 유지 주장은 보수 아닌 수구에 틀림없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지지층의 유지·확대를 위해 수구 아닌 합리적 보수를 표방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방향의 노력이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돈과 힘은 수구 세력에 집중되어 있다. 다른 선택이 마땅치 않아 한나라당을 합리적 보수주의의 길로 이끌어보겠다고 참여한 사람들은 돈과 힘에 밀려 쭉정이 노릇에 그치고 만다. 김문수·이재오처럼 스스로 환골탈태를 해야 한나라당의 '주류'를 바라볼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 정권을 빼앗아 온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의 기본 노선은 보수였다. 남북 관계 발전, 복지 확대, 빈부 격차 완화 등 주요 정책이 모두 최소한의 지속 가능한 질서를 모색한 것이지, 한국 사회의 가치 기준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설령 두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담당자들에게 가치 기준의 변화를 바라는 진보적 성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가 처해 있는 현시적·잠재적 위기를 처리하기 바빠 개인적 취향을 살릴 여유가 없었다.

특권 구조의 유지를 바라는 수구 세력은 한국 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에 대한 자만심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앞에서도 "화해와 통합"을 외치는 수구 언론, "정당한 수사"였음을 강변하고 있는 검찰, 그리고 경찰력의 무절제한 남용을 계속하고 있는 정권의 행태에서 지금도 확인하고 있다.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수구 세력이 어쩌다가 10년의 세월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진보 세력이 힘을 키워서? 아니다. 스펙트럼이 너무 넓은 진보 진영은 힘을 키우기는커녕 내부 갈등을 조정해 나가기도 바빴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보수 성향의 국민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자민련과의 연합은 김대중 후보에게 충청도 표만 가져다준 게 아니었다. '빨갱이'로 몰려 온 그에게 보수 성향 국민들의 마음을 열어준 열쇠이기도 했다. 정몽준과의 단일화 곡절도 노무현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계심을 많이 누그러뜨려 주었다. 두 후보의 승리는 수많은 요인이 합쳐져 이뤄진 것이었지만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은 보수 표심을 얼마만큼이라도 끌어들인 덕분이었다.

두 후보의 승리를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 보수 표심이었다 하더라도 무대에 올려놓아 준 것은 진보 진영이었고, 따라서 진보 진영은 정권의 주체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상황이 요구하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진보 진영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IMF사태라는 특단의 위기 상황, 그리고 자민련과 연합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계가 널리 인정되었기 때문에 보수적 국정 운영에 대한 진보 진영의 불만 표출에 어느 정도 절제가 있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정몽준과의 연합이 파기된 상황에서 선거에 승리, 진보 진영의 기대감을 극대화시켰다. 제한적 의미의 승리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과 달리 이번의 '완승'은 진보적 정책 노선을 관철할 기회를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이 기대감은 탄핵 정국에 이은 총선 승리로 더 커졌다.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은 한참 후에 나왔지만, 그런 방향의 불평은 취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미국과의 '굴욕적' 관계를 일거에 청산해 주기 바랐던지, 당선자 신분으로 대미 관계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발언을 하자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듯이 흥분하고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나 자신 대미 관계의 굴욕적 측면이 청산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일거에'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굴욕적 관계의 원인은 미국의 오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역량이 미흡한 위에 한국의 권력자들이 굴욕적 대미 관계를 권력의 발판으로 삼아 온 문제가 있다. 반대자'의 입장에만 머물러 오면서 현실 감각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진보 진영의 허점을 보여준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참여정부 경제 정책의 타당성을 단호하게 논할 만한 식견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작년 <뉴라이트 비판> 작업과 관련해 신자유주의 노선의 성격을 이해한 바에 비춰보면 참여정부에 신자유주의를 뒤집어씌운 진보 진영의 비판은 부당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부시의 미국 정부가 강요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부득이한 선에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계급화'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보수적 정책 노선이 아니다. 세계 차원의 '수구' 노선이다. 지속 가능한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특권을 유지·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다. 세계적 경제 위기로 그 본색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까지 이 노선이 미국 경제 정책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종속성이 강한 한국의 정책이 당장 벗어나기 힘든 울타리가 있었다.

그 범위를 나는 세밀히 판단하지 못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신자유주의로 지목되는 참여정부의 정책은 그 울타리에 묶인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보다는 복지 확대,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빈부 격차의 문제점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참여정부의 색깔을 판단할 더 중요한 지표라고 본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는 진보·보수 구분의 의미를 제한하는 문제가 깔려 있다. 독재시대의 유산으로서 민주화 시대에도 세계화 시대에도 맞지 않는 특권 구조다. 그 청산을 서두르지 않으면 이 사회의 피해가 한없이 누적되리라는 것은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광범위한 개혁을 요구함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고, 두 노선의 차이는 이 특권 구조가 어느 정도 청산된 후에나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이뤄져 왔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특권 구조의 인프라를 청산하지 않은 채로는 무늬만의 민주화일 뿐이며, 그것이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계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식과 원칙"을 내세운 것은 이 특권 구조에 대한 도전이었다. 상식과 원칙을 벗어난 검찰과 수구 언론의 근래 행태도 이 특권 구조의 일부이며, 이명박 정부가 독재시대로 회귀할 수 있는 것도 이 특권 구조의 힘에 기댄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의 아름다운 꿈이 장차 이 나라를 얼마나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나는 큰 관심 없다. 그런 꿈을 들고 나와 국민의 선택 앞에 내놓을 수 있으려면 이 나라를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곳으로 먼저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게 하는 것, 그것은 보수주의자의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한다.

수구 세력이 노무현을 매도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진보의 이름으로 참여정부를 걸고넘어진 자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좋게 봐주면 현실을 파악할 줄 모르는 몽상가들이겠지. 그리고 개중에는 질 나쁜 협잡꾼들도 있겠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