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주칼 교수의 '過誤'

기사입력 오후 3:06:30

주칼 교수의 '過誤'

1991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의회는 비밀경찰 관계 기록을 조사해 비밀경찰에 협력한 일이 있는 의원들에게 자진사퇴를 권유하고 불응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월 22일에는 끝끝내 사퇴를 거부한 의원 10인의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 첫머리에 경제위원장 루돌프 주칼의 이름이 있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이래 대표적 저항 지식인으로 시민포럼의 공천을 받아 의회에 진출했던 주칼의 혐의는 프라하대 교수로 있던 1961년 오스트리아에 체류할 때 같이 어울리던 미국인 학생들에 관한 정보를 비밀경찰에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주칼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협박 때문에 부득이하게 행한 일이며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대상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였음을 밝혔다. 국내 정치와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에 고백할 필요도 없는 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스스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로 소명을 마쳤다.

그러나 동료 의원들도 선거구민들도 냉담했다. 사퇴가 유죄를 시인하는 것으로 여기고 버티던 주칼은 결국 다음 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프라하의 봄을 잊지 못해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전향을 거부해 교수직에서 쫓겨난 뒤 20년간 막노동으로 살아오면서도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수많은 글로 체제의 변화를 촉구해 온 한 양심적 지식인이 기다리던 새 체제 아래 매장당하고 만 것이다.

동구권 해체 후 드러난 비밀경찰의 행적을 보면 인간의 약점을 여지없이 파고든 온갖 추악한 공작이 다 있었다. 돈, 권력, 명예, 섹스, 이용되지 않은 미끼가 없다. 고삐 풀린 인간성 파괴 속에서 주칼의 '과오'는 '인간의 조건'을 결코 넘어선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몰락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지만 그런 안타까움을 밟으며 동유럽의 민주화는 진행됐던 것이다.

고영복 씨 간첩 혐의 발표는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 사회에서 그만큼 능동적으로 활동해 온 인물이 도대체 무슨 동기로 36년간 두 얼굴을 지켜왔다는 말인가. 남한에서 고 씨의 위치가 황장엽 씨가 북한에서 가졌던 위치보다 더 안정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동기에 대한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고 씨가 체제의 갈등 속에 희생되더라도 그의 '과오'에 대한 인간적 이해가 있어야 우리가 추구하는 체제가 '인간의 얼굴'을 가질 것이다. (1997년 10월)

▲ <춘추>의 기재는 매우 간략하고 포폄의 표현이 전혀 붙어 있지 않다. '팩트'만을 적어놓은 것일 뿐인데, 생각 있는 사람은 그 팩트만을 보고도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포폄이 저절로 된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춘추>를 정리하매 난신적자가 떨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역사 서술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고, <친일인명사전>은 그 의미를 잘 살린 작업이다. ⓒ프레시안

  기원전 11세기 중엽의 중국에서 상나라를 물리친 주나라 왕은 무왕이었다. 무왕이 몇 해 후 갑자기 죽었을 때 아들 성왕이 아직 어린 나이였다. 무왕의 동생 주공이 섭정을 맡아 천자 노릇을 대신하다가 성왕이 성년이 된 후 물러났다. 주공이 실질적인 천자 노릇을 잘하면서도 신하의 본분을 잘 지킨 것을 공자가 높이 찬양하여 유교의 전범이 되었다.

주공이 섭정을 맡고 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그 형제인 관숙과 채숙이 상나라 잔여세력과 함께 일으킨 반란이었다. 이 반란을 진압한 후 주공은 형 관숙을 처형하고 동생 채숙을 추방했다. 형제들에게 가혹한 처분을 내린 이 일이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회에 대한 의무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유교 도덕론의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맹자가 기원전 319년부터 몇 년 동안 제나라 선왕에게 의탁하고 지낸 일이 있었다. 당시 선왕의 큰 과제는 북쪽의 연나라 정벌이었는데, 정벌의 명분을 맹자 같은 도덕군자에게 승인받고 싶은 것이 그를 우대한 동기였던 모양이다. 맹자는 이 명분을 승인해 줬다. 그런데 정벌군이 살인·약탈 등 명분을 무색하게 하는 행태를 보여 맹자가 승인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왕이 난처한 입장이 되었을 때 진가라는 신하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주공 같은 성인도 형제들에게 상나라를 맡겼다가 일이 잘못되어 참혹한 형벌을 내리기에 이르렀으니, 그리 될 줄 알면서 맡겼다면 어질지 못한 것이고, 모르고 맡겼다면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성인도 이처럼 완벽할 수 없는 것인데 왕께서 하신 일에 약간의 허물이 있다고 맹자가 심하게 따질 수 있는 것인지, 그 입을 틀어막아 놓겠다는 것이었다.

진가가 맹자를 만나 마음먹은 대로 따졌다. "주공이 반란 일으킬 것을 알고 맡기셨는가?" "모르고 맡기셨다." "그러면 성인에게도 허물이 있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맹자의 대답이 주공을 옹호하는 명 논설로 전해진다.

"주공은 동생이고 관숙은 형이었으니 주공의 허물이라 하더라도 그 또한 마땅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옛날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는 허물이 있을 때 그것에 매달린다. 옛날 군자의 허물은 일식과 월식 같아서 사람들이 모두 바라보고, 고침에 이르러서는 모두 우러러보았는데, 지금 군자는 어찌 허물에 매달리기만 하는가? 게다가 그에 맞춰 변명만 늘어놓는구나."

어젯밤 <친일인명사전>을 다룬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을 보며 생각난 대목이다. 허동현과 주익종, 이 사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쪽 얘기의 주된 내용인즉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여 포폄을 행해야 한다, 민족국가를 이루고 있는 지금의 잣대로 식민지 시대의 행위를 재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허물에 매달려 변명만 늘어놓는" 꼴 아니겠는가. 어느 누구도 상황에 대한 완벽한 판단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허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독립한 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식민 지배는 부자연스럽고 폭력적인 상황이었다. 일본의 힘이 아무리 압도적인 것으로 보일 때라도 그 문제점은 감춰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민족을 위한 친일"이란 말까지 나온다. 일신의 영달을 위한 친일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속을 어떻게 꿰뚫어보고 그 본심이 착한 것이었다고 판단한단 말인가? 그리고, 본심이 착한 것이라고 해서 있는 허물이 없어지는가? 민족의 독립이 역사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한다면 그 흐름을 가로막은 허물은 본심의 선악에 관계없이 엄연한 것이다.

양쪽 패널의 관점 차이는 '친일'의 의미에서 극명하게 갈라졌다. 새 사전의 가치를 옹호하러 나선 박한용과 주진오는 '친일'이라는 "팩트(fact)"를 밝히는 것이 사전의 목적이라고 하는 반면 허동현과 주익종은 '친일'을 "죄악"으로 보는 전제를 바닥에 깔고 있었다.

10년 전의 논의 양상이 뒤집힌 것이다. 10년 전의 친일 논의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친일'을 무조건 '반민족'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었고, 반대자들은 친일 행위라 해서 합리적 행동까지 싸잡아 범죄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반론을 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친일을 규명하자는 쪽에서는 가치판단 없이 사실만을 밝힌다고 하는 반면 그 반대자들은 친일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 유죄 판단을 하는 것처럼 펄펄 뛰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여기에 바로 <친일인명사전>의 가치가 있다. 최소한의 사실 규명도 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친일을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합리적 기준에 관계없이 목청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사전 편찬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사실이 규명된 상황에서는 보다 냉정한 시각과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친일을 옹호하려는 입장에서는 변명할 길이 좁게 되었다. 그래서 사전 수록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있는 몇몇 사례를 지적하고 나오는데, 적절치 못한 수록일 경우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과장하기 위해 수록 자체가 마치 '단죄'인 것처럼 엄살을 떨게 되는 것이다.

<춘추>의 기재는 매우 간략하고 포폄의 표현이 전혀 붙어 있지 않다. '팩트'만을 적어놓은 것일 뿐인데, 생각 있는 사람은 그 팩트만을 보고도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포폄이 저절로 된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춘추>를 정리하매 난신적자가 떨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역사 서술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고, <친일인명사전>은 그 의미를 잘 살린 작업이다.

'친일'이 과연 죄악일까? 친일 문제를 깊이 연구해 온 박한용이 친일 행위를 '매국형', '직업형', '전범형'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매국형'과 '전범형'은 분명히 범죄 차원에서 생각할 대상인데 극소수에 해당되는 것이고, '직업형'의 경우는 사정이 복잡하다. 허물이라 하더라도 '죄악'이라기보다 '어리석음'으로 생각할 측면이 많다.

진가가 맹자에게 따진 주공의 허물도 나쁜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어리석음'의 문제다. 주공은 그 허물을 반성하고 고침으로써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도덕에서 반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친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역사의 흐름에 어긋나는 짓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반성을 제대로 한다면 일시적인 고통을 통해 허물을 고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그 일시적인 고통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그리고 친일을 통해 확보해 놓은 기득권을 지킬 수 있을까, 눈치만 보며 허물에 매달려서는 새 시대를 당당한 자세로 맞을 수 없는 것이다. 해방 후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큰 죄악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 대신 눈치로 빠져나갈 여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 일각의 '친미' 경향은 일제시대의 '친일' 못지않은 수준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반미'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우방으로서 미국을 존중하되,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 사회를 등짐으로써 역사의 죄인이 될 위험을 피하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 조심할 필요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친일의 의미를 제대로 밝히지 못해 온 사정이 작용해 왔다. 역사의 경험을 이 사회가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서 사회 차원의 반성이 안 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드러내 보이기만 하면 스스로 말한다. <100분 토론>에서 박한용과 주진오가 목청 한 번 높이지 않고 담담히 임하는 태도와 비교해 허동현과 주익종이 말 자르기에 바쁘고 눈길이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며 정직한 역사 서술이 "난신적자를 떨게 하는" 힘을 느낀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소인정치의 시대

기사입력 오전 8:37:09

소인정치(小人政治)의 시대

중국의 고대봉건제에서 지배 계층, 즉 제후(諸侯)와 대부(大夫)를 군자(君子)라 했고 피지배 계층, 즉 서인(庶人)을 소인(小人)이라 했다. 군자와 소인은 말하자면 정치사회적 계급의 호칭이었던 것이다.

예기(禮記)에 "형벌은 대부에게 미치지 않고(刑不上大夫) 예법은 서인에게까지 내려가지 않는다(禮不下庶人)"고 한 것도 신분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사회 질서의 원리가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피지배 계층이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통제되는 반면 지배 계층은 명예를 아끼는 마음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공자는 도덕성을 기준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관점을 세웠고, 군자와 소인은 도덕적 계급이 되었다.

10세기에 세워진 송(宋)나라는 종래 왕조의 직접적 인신(人身) 지배와 달리 관료 집단 중심의 통치 구조를 만들었다. 새로운 지배 계층으로 떠오른 사대부(士大夫) 집단은 이념에 따라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스스로를 군자로 자처하면서 정치 이념과 무관한 피지배 계층을 소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같은 지배 계층 속에서 자기 뜻에 맞지 않는 부류를 사이비(似而非) 사대부라는 뜻에서 소인으로 규정했다.

의리(義理)를 추구하는 군자의 모임인 붕(朋)과 이익을 좇는 소인들의 모임 당(黨)을 구분해서 보는 구양수(歐陽修)의 붕당론(朋黨論)은 지배 계층의 붕당 현상이 정치 구조의 한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순기능과 역기능을 아울러 드러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좋은 붕당은 훌륭한 정치를 가져오지만 나쁜 붕당은 정치를 망치는 최대의 원흉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정치를 얘기할 때 '당쟁(黨爭)의 폐해'를 누구나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심어준 통념대로 조선 정치사가 소모적-파괴적 당쟁사 뿐이었다면 그 나라가 어떻게 500년이나 버틸 수 있었겠냐고 당쟁사 연구가 박광용 교수는 반문하며 선인들이 추구한 군자정치(君子政治) 이념의 계승이 현실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의 정당들은 도덕성을 강조한 동양 정치의 전통도, 정책 노선을 추구하는 서양 정치의 원리도 일체 아랑곳 않는 것 같다. 지방대의원의 양식을 못 믿어 중앙당의 공천 심사권을 강화하는 여당이 세(勢) 불리기를 위해 지구당을 조정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권력과 이익을 따라서만 정당이 움직인다면 민주주의는 어느 곳에 깃들인단 말인가. (1998년 5월)

▲ "말도 안 되는 판결을 거듭거듭 내리는 헌법재판관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이완용이 그대들보다 더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프레시안

  내가 어릴 적에는 '유교 망국론'이 '당쟁 망국론'과 함께 우리 사회에 상식처럼 통하고 있었다. 지금은 유교와 당쟁이 동아시아 문명과 조선 정치의 핵심이었다는 사실과 서양 세력과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들을 의도적으로 폄훼한 측면이 밝혀짐에 따라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그림자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유교의 도덕 정치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인 문제에만 몰두해서 민생 등 현실 문제를 소홀히 함으로써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혐의가 일반인의 생각 속에서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도덕 정치와 대비되는 것이 마키아벨리즘으로 대표되는 현실주의 정치다. 20세기 초반 열강의 침략 앞에서 동아시아의 선구적 지식인들은 서양인의 현실주의를 부러워하며 과거의 도덕주의를 반성했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유교의 일부 문제점을 지적해 주자 그것을 열렬히 증폭시켜 유교와 도덕주의를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주의도 서양에서 절대적 진리로 통하는 것이 아니다. '마키아벨리스트'는 비판의 의미를 품은 말로 통한다. '서양 오랑캐'라 하지만 그들도 도덕의 중요성을 나름대로 이해한다. 특히 공직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명료한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

이해관계에 따른 행동을 제한하는 도덕성이 공직에서 문제가 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공직에는 개인의 힘이 경쟁하기에 너무 강한 공권력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는 자기 이익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넓은 범위에서 허용된다. 사법적 기준에만 걸리지 않으면 도덕적 기준으로는 별 제한이 없다. 그러나 공직자의 공권력 행사를 이처럼 너그럽게 허용했다가는 사회 질서가 남아날 수 없다.

도덕 정치가 동아시아에서 일찍부터 발달한 것은 국가의 공권력이 높은 수준까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마키아벨리 시절까지 그런 규모의 공권력이 형성되지 않고 있었다. 그 후 근대국가가 만들어지면서 공권력 남용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것이었다.

그런데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서양의 힘을 너무나 선망한 나머지 과거의 도덕주의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도덕성을 무시하는 풍조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분을 놓고 한국 대통령이 "선거 때 무슨 소리는 못하냐?" 하는 장면이 이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양에서 도덕주의의 힘이 유교의 도덕주의보다 아무리 약한 것이라 해도 "거짓말은 나쁜 짓"이란 기초상식은 지켜지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 정도 기초 상식도 통하지 않는 것이다.

미디어 법 관계 헌법재판소 판결은 무엇보다 공직의 도덕성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헌법재판소…참 해도해도 너무한다. 법률의 의결 과정에 하자가 있어도 의결된 법률의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수도 이전 위헌 판결에서 보인 헌법재판관들의 어처구니없는 수준 문제가 그대로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일이다. 아니, "관습 헌법"? 헌법재판소는 헌법 만들어내는 데가 아니란 말야! 국민이 원하는 헌법은 정당한 절차 거쳐서 대충 만들어 놨어! 꼭 고치거나 보탤 게 있으면 또 정당한 절차 밟아서 만들 거야! 재판관 너희들 입맛대로 만들어줄 필요 없단 말야!

이 어처구니없는 수준이란 것이 기술적 수준은 아닐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법률로 밥 벌어먹고 살아온 재판관들에게 기술적 문제가 있다면 더 나은 수준을 누구에게 바라겠는가? 도덕성의 수준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도덕성이란 게 뭔가? 양심껏 행동하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양심의 질에 얼마간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수준이 있으리라는 전제 아래, 사람들이 이해관계보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사회가 크게 잘못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이 도덕주의 관점이다.

자기를 희생시켜 국가와 민족에게 헌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이익을 버리면서 남들에게 잘해주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신분과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여러 가지 얘기할 수 있겠지만,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불신을 받지 않도록 애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아니겠는가?

"입법 과정에 불법성이 있지만 법률의 효력에 문제가 없다." 온갖 패러디를 즉각 불러일으키는 이런 판결 내용을 놓고 이해관계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의 호불호를 떠나, 헌법재판소의 기능에 대해서는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 마음에 드는 판결 내려줬다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헌법재판소의 국가 질서 유지 기능에는 기대감을 줄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권 유지 기능이라면 몰라도.

이완용을 생각해 보자. 당대의 어느 누구 못지 않은 교양과 기능을 아울러 갖춘 인물이었다. 그리고 대한제국 정부의 최고직에 있던 인물이었다. 한일합방이 잘된 일이라고 우기는 뉴라이트 논객들조차도 이완용까지는 옹호하고 나서지 못한다. 자기 신분과 역할에 대한 책임을 너무 뚜렷하게 등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판결을 거듭거듭 내리는 헌법재판관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이완용이 그대들보다 더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기 바란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치세의 능신, 난세의 등신?

기사입력 오후 3:41:12

  어제 몇 시간 청문회 중계방송을 봤습니다. 거기 나타난 형님 모습은 예상한 데서 별로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젯밤 자리에 누워서도 새벽이 가깝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막상 형님의 총리 취임이 목전의 일로 다가오니 좋은 생각보다는 궂은 생각이 더 많이 마음 속을 오가는군요.

보름 전 공개 편지는 고심 끝에 드린 것입니다. 거기도 썼습니다만, 이번 일 정말 석연치 않습니다. 그래도 형님과 이만한 연분을 가진 놈이 그런 큰일을 모르는 체 가만 있는 것이 형님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도리가 아니라 생각되어 굳이 썼습니다. 여러 해 공개적인 글을 써 온 중에 가장 뒷골 당기는 글이 되었지만. (☞관련 기사 : "형님, 절대 속지 마세요!")

그 편지에서 형님의 결정을 최대한 납득하려 애쓰며 형님의 미덕으로 현명함과 겸손함을 꼽았습니다. 어제 형님 모습에서도 그 두 가지 미덕은 대충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민망한 구석이 많았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형님 식의 현명과 형님 식의 겸손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답변 중 여러 차례 강조하시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바르게 살려고 늘 노력해 왔다고. 그러니 수준 이하의 도덕성 문제로 나를 의심하지 말아 달라고. 그런데 형님, "바르게" 산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나쁜 짓 않고 산다는, 주어진 규범을 잘 지킨다는, 소극적인 의로움을 말씀하시는 거죠? 옳고 그름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의로움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찾아 겪기보다는 무난한 선택이 가능한 방향만을 바라보며 형님은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바로 형님의 현명함이요, 겸손함입니다. 내 신수 불편할 일을 피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함이요, 내 분수 넘어서서 세상을 어찌하려 들지 않는 것이 겸손함입니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 없는 자리에서는 정말 좋은 미덕입니다. 그러나 어지러운 상황에서 길을 찾아내는 창조적 역할이 필요한 자리에는…. 조조를 놓고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란 말이 회자되거니와, 형님껜 "치세의 능신, 난세의 등신"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정운찬 총리 후보자. ⓒ프레시안
너무 심한 말씀 같습니까? 그러면 청문회 녹화를 한 번 더 돌려보세요.

청문회에서 누구를 상대로 얘기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셨습니까? 국회의원들을 생각하고 계셨죠? 저는 어제 형님이 국민을 상대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기되는 의혹을 회피하기에 바빴지, 국민들에게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보지 못했습니다. 총리가 되는 데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매달렸지, 총리 노릇을 잘하는 데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후보자'의 입장을 편의적으로 갖다 대는 데서 역시 형님의 현명함과 겸손함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아직 총리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업무 파악이 안됐기 때문에 소신 있는 답변을 사양하셨죠. 겸손하셨습니다. 한편 "교수 시절엔 학문적 기준으로만 발언했는데, 이제는 다른 기준도 생각해야 한다."며 극히 기본적인 일부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번복할 기미를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현명하셨습니다.

그런 미덕들이 서울대처럼 안온한 동네에선 좋게 통했죠. 전번 편지에도 썼지만, 서울대 교수들이 형님 총장 시킨 게 엉뚱한 짓 할 염려가 없다고 믿어준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서울대의 위상과 품격을 잘 지켜나가면서 기술적 개량 몇 가지 추진한 것으로 좋은 평을 받으실 수 있었죠. 그러나 대한민국을 운영한다는 건 서울대 운영과 비교도 할 수 없이 험하고 복잡한 일입니다.

용산 참사에 대한 답변 내용 생각해 보세요. 참사의 원인이 농성자가 던진 화염병에 있었다고요? 세밀한 화인에 대한 질문으로 이해하신 겁니까? 화인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주장'도 저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형님, 그 사태의 모든 원인이 그 불씨 하나에 있었다고 정말로 믿으시는 겁니까?

서울대 구성원들, 교수건 학생이건,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절박한 문제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예요. 무슨 불미한 일이 있더라도 대충 합리적인 대책에 총장의 권위만 얹으면 별 문제 없이 처리됩니다. 죽기 살기의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는 그렇게 안온한 곳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의 용산 참사 처리 방침에 형님마저 동조하고 그 결과 경찰이 "우리 손으로 불만 지르지 않으면 돼(그리고 불을 지르더라도 확고한 증거만 잡히지 않으면 돼)." 하는 무책임한 자세로 또 무슨 일을 저지른다면, 형님, 그 책임 어떻게 질 거예요?

그리고 돈 문제. 형님, 어찌 그렇게까지 망가지셨습니까? 명분 없는 돈을 받았느냐 말았느냐, 세금을 제대로 냈느냐 안 냈느냐에 앞서, 형님, 무슨 돈을 그리 많이 씁니까? 카드 결제가 월 평균 1000만 원이 넘는다고요? 한국의 대학 교수 봉급 수준이 세계 최고인데, 그것으로도 모자라는 생활을 하신다고요? 이건 정말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갑니다. 학생 시절 우리 또래론 유난히 어려운 사정을 겪었던 형님이지만, 교수 봉급도 모자라 하는 지금의 형님은 그 시절의 형님과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씀씀이가 그렇게 크다면 명분 없는 돈을 먹기도 쉽지요. 예스24 김 회장님은 저도 잘 아는 분이지만 한국 기업가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공익 마인드가 강한 분이죠. 형님이 이 사회에 공헌할 역량을 가진 분이라고 그분이 여겼기에 사회를 위하는 마음에서 형님에게 돈 쓸 생각도 하셨겠죠. 그런데 형님이 검소한 생활 자세를 지키고 있다면 김 회장님의 제안이 있더라도 공익을 위해 직접 쓰는 길을 권해드릴 수 있었을 겁니다. 형님, 월 434만 원씩 받으면서 그 밥값을 하셨다고 정말 생각하세요?

그래요. 형님은 교수 봉급보다도 더 풍족한 생활을 바라거나 필요로 하는 분이 되셨군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 사실 때문에 좋아하던 형님이 갑자기 싫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형님의 이번 결정에도 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형님의 공인 자격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군요.

어제 이정희 의원에게 혼나셨죠. 오늘도 혼나고 계시겠죠. 이 의원이 다른 야당 의원들에 비해 온건한 표현을 쓰지만, 그분의 질책을 정말 형님이 아프게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서면으로 제출한 답변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형님 말씀에 그분이 공인 자격을 들먹이기도 했죠. 정말 기가 막히는 장면입니다. 형님 이름으로 제출한 답변 내용을 형님이 모른다면 어쩝니까? 청문회에서야 어차피 싫은 소리 들을 만큼 들은 뒤에 국회 동의야 어떻게든 따낼 거니까, 답변 준비할 시간 아껴서 더 중요한 일에 쓰셨습니까? 국회 답변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기회란 걸 모르셨나요? 아니면 국민의 신뢰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나요?

바로 이정희 의원에게 공인의 자격과 자세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발언 중에는 민주노동당만을 위한 내용이 없었죠. 시종일관 한국 사회를 위한 한 마디 한 마디였고, 그 속에 민주노동당을 위한 크나큰 공헌이 저절로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훌륭한 공인의 자세를 갖출 수 있는 걸까요? 다른 무엇보다, 그분에게는 분수를 넘는 풍족한 생활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형님 이번 결정의 후과가 형님 일신상에 그치는 것이라면 언제고 형님 만날 때 따질 것을 기약하지, 이렇게 공개 편지를 쓰고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어제 본 형님 모습으로는 이 결정이 함축하는 의미를 형님 스스로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서 여기 적습니다.

1987년 이후 한국 민주화의 한계가 '엘리트 연합'의 성격에 있다고 보는 관점을 요즘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러 성향의 엘리트 계층 집단들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정책 노선이 결정되기 때문에 비 엘리트 계층이 소외되어 사회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심화된다는 관점이죠. 1989년의 3당 합당이 이 연합의 드러난 사례고요.

저는 이번 형님의 입각이 이 엘리트 연합의 또 하나 고비가 될까봐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은 극우, 수구, 꼴통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 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데 일로매진해 왔죠. 그래도 그 집단의 역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에 끼치는 해악에도 한계가 있으리라는 것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합리적 보수'를 대표해 온 분입니다. 형님의 행보가 당당하지 못할 때 합리적 보수가 집권 수구세력을 견제하는 힘이 줄어들고 길이 막힐 것을 저는 걱정합니다.

보름 전 편지에서 저는 형님이 입각하더라도 수구집단과 별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바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아마 형님께도 그런 뜻이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석연할 수 없었던 것은 형님처럼 '현명'하고 '겸손'한 분이 수구집단과 떨어져 있으면서 견제하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거기 들러붙어 있으면서는 '합리적' 자세를 지키기 어려우리라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의 원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합리주의자의 약점이니까요.

단기적, 미시적 관점에서는 형님의 입각이 이 사회에 좋은 효과도 많이 일으키고 형님도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난세의 등신"이란 험한 말씀을 썼습니다만, "치세의 등신, 난세의 걸신"이라 할 만한 수구집단 인물보다야 최소한 '차악'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일으키는 문제를 형님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할 수 있음은 형님 성품으로 봐서도 짐작한 일이고 어제 청문회에서의 모습으로도 확인한 일입니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타셨으니 어쩌겠습니까? 합리적 보수의 역할에 아직도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저로서는 형님이 가지고 있던 합리적 보수의 대표성을 지워버리는 데 애쓰는 것밖에 남은 일이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 어색한 자리에서 도로 벗어나시기 바라는 것은 개인적 정분을 지우지 못해서고요.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