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기획위원, 편집위원으로 이름 올려놓고 지내던 프레시안에서 퇴직합니다. 기고문도 그만 보내려 합니다. 앞으로 따로 청탁받지 않고 내가 내켜서 쓰는 글은 이 블로그에만 올리려 합니다.

 

다시 돌아보며 프레시안과의 인연에 깊은 고마움을 새삼 느낍니다. 특히 세 분에게 여러 해 동안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근성 고문, 박인규 대표, 강양구 기자.

 

창간 대표인 이근성 고문과의 오랜 인연으로 시작되었죠. 고교 1년 후배이자 같은 과 후배인 이 고문과는 학창시절부터 알던 사이인데, 중앙일보에 객원으로 걸어놓고 지내던 시절에도 내 데스크를 많이 맡아준 분이죠. 같은 때 중앙일보를 빠져나오며 그분이 "선배, 노는 김에 염불한다고, 심심하면 우리 글 좀 써줘요." 하는 바람에 "페리스코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터넷신문의 장래에도, 프레시안의 노선에도 확실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습니다. 두어 해 지난 후 당시 편집국장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기고를 중단하고 몇 해를 지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2008년 <뉴라이트 비판> 집필에 들어갈 때 강양구 기자의 도움을 받아 프레시안 연재를 하면서 기고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기고를 중단한 지 몇 해 되어 서먹한 감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입사한 강 기자는 '황우석 사태' 때 그 역량과 태도를 높이 평가했던 분이었고, 그분이 청하는 덕분에 프레시안에 다시 접근할 수 있었지요.

 

그 후 몇 해 동안 강 기자가 데스크를 맡아주면서 내 집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생각이 명민하고 활달한 분이어서 내 집필 의도를 잘 이해해 주고,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방향으로도 생각을 넓히도록 많은 자극을 주었죠. 중앙일보에서 이근성 고문의 도움을 받은 것과 함께, 내 언론활동에는 정말 데스크 복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강 기자와 손발이 잘 맞아 신나게 일하고 있는 몇 해 동안 박인규 대표의 도움이 은근히 커지고 있었습니다. 강 기자의 도움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과 달리 박 대표의 도움은 완만하고 포괄적인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관을 공유하는 폭이 매우 넓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 것이죠. 그분과의 협력관계는 프레시안의 틀을 벗어나서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봅니다.

 

그밖에도 프레시안의 많은 분들에게 좋은 도움을 얻었지만, 특히 세 분의 도움은 내 프레시안 활동에 그치지 않고 내 일생의 과업을 뒷받침해준 것이라는 점에서 따로 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분, 그리고 프레시안 덕분에 <망국의 역사>-<해방일기>-<냉전 이후>를 잇는 작업이 가능했습니다.

 

대학에 있었다면 작년에 퇴직했겠죠. 그런데 더 하고 싶은 일이 남아있어서 여태까지 뭉개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이후> 와 <세세동점의 끝>. 아마 내년 이맘때까지 두 작업을 마치고 나면 더는 머리아픈 글 안 쓰게 되고, 프레시안에 의지할 필요도 없어지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지금 시점의 퇴직을 결정하게 된 데는 나름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퇴직 사실만 알려드리고 그 계기는 후일담으로 알려드리기 위해 아껴둡니다.

 

'사는 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맞고 사는 남자들  (3) 2016.06.11
독서신문 <책과 삶> "이너뷰"  (3) 2016.06.01
책방 이음(동숭동)  (1) 2016.05.11
“공부를 부탁해” (<반전시대의 논리>에 붙이는 글)  (0) 2016.03.27
다시 찾은 제주도  (0) 2016.02.07
Posted by 문천

 

 

 

 

서평에 답하는 저자의 글을 흔히 반론이라 부르지만, 내 책 <냉전 이후>에 대한 장정일의 서평 “'냉전 이후' 한국의 선택은 친미 혹은 친중 뿐인가?”에 답하는 이 글은 전혀 반론이 아니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보론(補論)’이라 할 것이다. 장정일이 꺼낸 이야기에 내 생각을 덧붙이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정일이 비교를 위해 소개한 복거일의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에 나오는 핀란드화논의에 관한 내 생각을 내놓고 싶다. 나는 복거일의 글을 읽지 않은 지 오래되므로 복거일의 생각에 직접 비평을 가할 능력은 없고, 장정일이 소개한 범위에 이야기를 한정한다. 장정일은 이렇게 썼다.

 

복거일은 "빠르게 늘어나는 중국의 영향력에 한국의 주권이 점점 자주 그리고 깊이 침해되는 현상"(7)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영향력에 한국의 주권이 침해되는 현상을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핀란드화란 강대한 나라 옆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가 강대한 이웃의 눈치를 보면서 강대한 이웃에게 점차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게 되는 과정으로('적응적 묵종'), 20세기에 핀란드가 러시아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주권의 손상을 입으면서 생존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용어다.

지은이는 미국의 정치학자 월터 래커의 말을 빌려, 핀란드화에 따른 적응적 묵종이 불러오는 가장 나쁜 것은 "사회의 도덕적 변질"(74)이라고 말한다. 약소국은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힘센 이웃이 신뢰하는 후보만을 고위 공직에 선출하거나, 언론을 검열하는 '국내 조정'을 쉬지 않고 행한다. 그러면서 국가의 구성원 전체가 현실 도피와 위선이라는 도덕적 타락에 빠지게 된다.

 

핀란드화라는 이름에 영문까지 붙여놓으니 마치 학계에 통용되는 용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은 냉전기 반공진영의 선전용 구호였고, 학술적 검토 대상이 된 일이 거의 없는 말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이 말을 불쾌하게 여긴다. 강대국에 인접한 나라의 현실적 문제들을 무시하는 무식하고 오만한 태도가 비쳐진 말이라는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의 기분을 내가 쉽게 이해하는 것은 <해방일기> 작업 중 비교를 위해 핀란드 사정을 살펴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2287-293,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5787) 이웃의 강대국에 휘둘리는 운명을 힘들게 헤쳐 나온 20세기 핀란드 역사에 나는 깊은 경의를 품게 되었다.

핀란드는 스웨덴왕국의 영토였다가 1809년 전쟁을 통해 러시아에 탈취되었다. 러시아는 핀란드를 자치령인 대공국(大公國)으로 만들어 간접지배 아래 두었다. 알렉산더 1세 짜르가 핀란드 대공을 겸한 것이다. 마치 청나라 황제가 유목민족의 대가한(大可汗)을 겸한 것과 같은 체제였다. 그래서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짜르가 퇴위하자 핀란드의 대공도 사라진 셈이었고, 그 해 연말에 핀란드공화국의 독립을 보게 된다.

19세기에 유럽을 풍미한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의 내부와 외부만을 구분하는 단순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와 핀란드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핀란드 민족주의 자체가 러시아의 후원으로 자라난 것이었다. 수백 년간 스웨덴의 일부로 존재해 온 핀란드를 스웨덴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러시아 지배자들은 핀란드 민족주의의 성장을 도와주었다. 핀란드 인구의 상층계급 15%가 쓰던 스웨덴어가 짜르 지배 하에서도 계속 핀란드 공용어 자리를 지켰고, 오랜 국어 진흥 운동 끝에 1892년에야 핀란드어가 스웨덴어와 나란히 공용어 자격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핀란드 민족주의가 완성 단계에 이른 바로 이 무렵에 러시아가 러시아화정책에 나섰다. 독일을 비롯한 서방 여러 나라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태까지 느슨하게 관리해온 제국 내의 이질적 요소들을 더 긴밀하게 통합하려는 노력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위기가 내부의 통제 강화를 불러온 것으로, 임오군란(1882) 국면에서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통제력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 언저리에서 일본이 등장한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1904년 러-일 전쟁에 돌입한 일본은 핀란드 민족주의 봉기를 지원하려고 무기를 보냈으나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간 일이 있다. 그런데 10년 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와 연합한 일본은 핀란드 민족주의 세력의 명단을 러시아에 넘겨 탄압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Russification_of_Finland)

191710월혁명으로 세워진 소련 볼셰비키정권은 민족 자결의 원칙 아래 핀란드의 독립을 용인했다. 독립 직후 핀란드는 유산계층을 옹호하는 백군과 무산계층을 대표하는 적군 사이에 치열한 내전을 치렀고, 독일의 지원으로 승리를 거둔 백군파 의회는 독일에 종속하는 왕정을 추진했으나 뒤이어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는 바람에 공화정을 출범시키게 되었다. 소련과의 관계는 얼마동안 순탄했으나 스탈린 집권 후 긴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할 때 히틀러는 소련이 핀란드와 발트 3국을 차지할 것을 양해했다. 소련은 네 나라에 군사기지 제공을 요구했는데 핀란드만 거절했고, 얼마 안 되어 세 나라가 소련에 합병된 반면 핀란드는 소련을 상대로 100여 일에 걸친 겨울전쟁을 치렀다. 19403월 전쟁이 종결될 때 핀란드는 영토 등 상당한 양보를 강요당했지만 독립을 지켰고, 타격은 소련 쪽이 더 컸다. 소련 군사력에 대한 평가가 크게 낮아져 독일의 소련 공격 결정을 앞당기는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 종결 후에도 핀란드에 대한 소련의 요구가 계속 가중됨에 따라 또 한 차례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핀란드는 영국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데 실패하자 독일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19416월 독-소 개전과 함께 제2차 핀-소 전쟁도 시작되었다.

핀란드는 소련에 대한 항쟁에서 독일의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추축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겨울전쟁으로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고는 진격을 멈추고 방어만 했다.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레닌그라드 포위작전에도 독일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에 말려들지 않도록 노력했고, 덕분에 종전 후에도 전범국의 멍에를 피할 수 있었다.

2차 핀-소 전쟁을 끝낸 19449월의 휴전협정은 핀란드에게 엄청나게 가혹한 조건이었다. 그래도 독립은 지켰다. 독일과의 최후의 결전을 남겨놓고 있던 스탈린이 더 이상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93912월 겨울전쟁 개전 이후 근 5년 동안 핀란드의 대 소련 항쟁에 아무 연합국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소련이 연합국의 일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련을 적대하는 냉전 상황이 되자 자기네처럼 소련에 당당히 맞서지 못한다고 핀란드를 비웃으며 만들어낸 말이 핀란드화였다.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자기네와 달리 핀란드는 소련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데도!

 

핀란드의 존경스러운 20세기 역사를 주제넘게 깔보는 핀란드화라는 말이 철 지난 지금까지 횡행하고 있다는 데 열 받아서 말이 많아졌다. 이제 장정일의 글 중 정말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마지막 대목을 살펴보겠다.

 

<냉전 이후>1)남한과 북한의 통일 문제와, 2)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미국중국)의 지정학적 경합을, 3)문명사적인 렌즈로 성찰하고자 한다. 이런 기획은 1), 2)의 방법과 설명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한반도의 모순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명론을 얘기하면 할수록 우리가 역사 속에서 내릴 주체적 판단이나 역사에 개입할 능력은 찾기 힘들다. '원자론적 문명(서양)이냐, 유기론적 문명(서양)이냐?'는 꽤 거창하지만, 문명론을 걷어내고 나면 '친중파로 갈아 탈 것이냐, 친미파를 고수할 것이냐?'의 문제로 축소된다. 문명론()적 설명은 한반도를 탁란(托卵)하는 조류의 일종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환단고기>에 미친 '환빠', 상고사(上古史)의 수렁에 빠진 김지하, 북한의 종교인 김일성주의는 탁란하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더란 말인가?

 

나는 <냉전 이후>에 앞서 한국현대사를 다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돌베개 펴냄)<해방일기>(너머북스 펴냄)에서도 문명사의 관점을 적용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 노력을 깊이 살펴주는 것이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문명사 같은 거시적 관점을 제기한다 해서 우리의 주체적 판단이나 개입할 능력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런 관점이 너무 생소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20세기 한국은 서양근대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믿음 속에서 자라나고 활동해 온 우리는 특정 문명의 가치체계에 묶여 문명의 일반적 성격에 대한 감각이 퇴화되어 있다. 그래서 역사의 흐름도 뜻의 역사아닌 힘의 역사로만 파악하기 쉬운 것이다.

힘의 역사 안에서는 작은 힘이 큰 힘 앞에서 아무런 작용력도 갖지 못한다. 그러나 뜻의 역사에서는 아무리 작은 뜻도 말살되지 않고 나름의 싹을 틔운다. 핀란드의 역사를 보라. ‘독립같은 거룩한 명제를 핀란드 민초들이 내건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저 핀란드인다운 삶을 지키려 애썼을 뿐이고, 그 값을 기꺼이 치른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유럽의 변방에서 낮은 문화수준과 취약한 국가 위상에 머물러 있던 한 소규모 민족이 백년 후 지구촌에서 가장 위대한 사회의 하나를 일궈내기까지의 과정에는 당랑거철(螳螂拒轍)과 같은 장면이 수없이 포개져 있다. 전쟁 한 번 겪을 때마다 많은 피를 흘리고 많은 손해를 봤다. 그러나 내 것 지키고 남의 것 넘보지 않는 자세를 꾸준하게 지킨 끝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장정일이 말하는 탁란(托卵)’사대주의의 다른 표현일까? 나는 사대가 유기론적 천하체제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여기에 주의란 어미를 붙여 폄하하는 것은 유기론적 천하체제를 부정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본다는 의견을 기회 있을 때마다 내놓는다. ‘탁란이 자연계에서 흔한 현상은 아니지만 지속가능성을 가진 행태이기에 하나의 지속적 현상으로 관찰되는 것 아닌가. 여기에 무슨 도덕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는가. 탁란 거부 현상일 수 있겠다고 장정일이 드는 사례들을 보면 그가 탁란에 쓸데없는 반감을 갖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확실한 생각은 알지 못하겠다.

제목에서부터 친미 혹은 친중 뿐인가?” 했는데, 이 마지막 문단에서 되풀이하면서 문명론을 걷어내고 나면하는 조건을 붙인다. 아우, 그걸 왜 걷어내? 내 글에선 문명론이 알짜인데. 개항기 이래 목전의 이해관계에 휩쓸려 우리 민족사회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지 않는 풍조가 너무 많았다. 지금 친미냐, 친중이냐 질문이 떠오르는 것도 중국의 성장에 따라 현실적 이해관계가 엇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명사적 관점의 개발을 통해 현실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사회의 주체적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당연히 친중쪽에 무게를 더해줄 것이다. 북한 문제를 놓고도 미국을 만족시키는 길보다 중국을 만족시키는 길이 장기적으로 우리 민족사회에 더 유리한 조건을 형성해줄 개연성이 크다고 나는 본다. 분명히 말한다. 나는 친중파다. 하지만 과거의 대부분 친일파나 친미파처럼 일신의 이득을 위한 선택은 아니라고 믿어주기 바란다.

핀란드화란 말 때문에 떠올리게 되었지만, 핀란드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 18세기까지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19세기에는 러시아 지배를 받고, 20세기 들어서는 소련의 야욕에 맞서 싸우는 힘든 상황을 오랫동안 겪으면서도 침략을 막는 데 그쳤을 뿐, 기회가 왔다 해서 침략자의 응징에 나서기를 삼갔다. 그래서 외세의 주구 노릇을 하지 않고 이웃의 존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핀란드는 1970년대까지 소득수준이 낮았는데도 스웨덴이 비자 면제로 취업 이민을 대거 허용하는 등 도움을 준 덕분에 쉽게 발전의 길에 오를 수 있었다. 2백 년 전까지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던 나라끼리 그토록 좋은 관계를 키울 수 있었던 데는 북유럽 국가로서 문화적 유대감이 한 몫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Posted by 문천

서평에 관한 두 개의 잘못된 믿음이 있다. 첫 번째는 '그 책을 다 읽고 쓰는 일'이 서평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책의 전체를 말하는 일'이 서평이라는 것이다. 논의를 위해 두 개의 오해를 시간 순으로 나누었지만, 실상 두 개의 오해는 하나로 연결 된다. 즉 서평은 '그 책을 다 읽고, 그 책의 전체를 말 하는 일' 혹은 '그 책의 전체를 말하기 위해, 그 책을 다 읽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평도, 독서도 그런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모월모일까지 서평을 써야 할 (장르 불명의) 500여 쪽 분량의 책이 있다고 치자. 앞서 말한 것처럼 서평은 '그 책의 전체를 말하기 위해, 그 책을 다 읽는 일'이거나 '그 책을 다 읽고, 그 책의 전체를 말 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은 500여 쪽의 책을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서평 쓰기에 착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23쪽에서 갑자기 그 책을 말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화제(topic)를 발견했다면, 혹은 112쪽에서 그 책과 연관하여 꼭 짚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주제(Thema)를 발견했다면 500여 쪽의 책을 다 읽는 일이 오히려 무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500여 쪽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예의 23쪽이나 112쪽으로 돌아와 그 화제와 주제를 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평은 '그 책을 다 읽고 쓰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텍스트는 단일한 목소리나 이야기가 아닌, 여러 겹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갖고 있다. 디스코텍 천정에 달려 있는 미러볼(mirror ball)이 무수한 작은 거울 조각으로 쌓인 구체(球體)이듯, 텍스트 역시 여러 겹의 주제와 화제로 만들어진 다면적인 구체다. 하므로 완벽하다고 말해지는 그 어떤 서평도 그 책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으로 발본색원되는 텍스트는 당연히 없으며,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을 통해서도 발본색원되지 않는 것이 텍스트라고 해야 한다. 서평이 '그 책의 전체를 말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이런 뜻에서이며, 이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종종 잊어버리는 교훈을 다시 일깨운다. 책은 여러 번 읽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어느 책에 관한 서평 역시 되풀이 쓸 수 있어야 한다. 책은 새로 읽을 때마다 독자에게 새로운 주제와 화제를 나누어주며, 그때마다 미러볼의 무수한 작은 거울조각과도 같이 새로운 서평이 씌어 질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발본색원은 이런 방식으로서만 가능하다.

김기협의 <냉전 이후>(서해문집 펴냄)는 적어도 세 가지 주제 혹은 화제로 구성되어 있다. 1)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의 통일 전략과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비사 2)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미국·중국)의 지정학적 이해 갈등 3) 냉전과 냉전 이후를 설명하는 문명사적 변환. 대개 남한과 북한의 분단 체제를 취급하는 책이나 담론은 1)과 2)로 자신의 임무를 마감하는데, 유독 김기협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바로 3)의 문명사적 설명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이 글의 끝에 잠시 언급하기로 하고, 550여 쪽이 넘는 <냉전 이후>를 읽는 중에 나를 자꾸만 뒤로 끌어당기면서 '서평에 관한 잘못된 믿음'을 따르지 마라고 유혹한 '(되돌이표) 지점'에 관해 먼저 거론하겠다. 읽는 사람마다 '(되돌이표) 지점'도 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이 책 1부 마지막에 실린 '유기론적 세계 체제 형성의 가능성을 바라본다'(93~99쪽)가 그것에 해당한다. 거기서 대목을 인용한다(인용문 속의 []는 인용자의 것이다).

앞에서 중국의 '전통 시대 천하 체계의 복원' 가능성을 언급했다. (…) 천하 체계란 말에서 내가 초점을 두는 의미는 유기론적 관계다. (93쪽)

[모든 물질이 독립적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물리학적 발견에 맞추어 모든 사회가 독립적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원자론적] 관점은 19세기를 풍미하면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뒷받침해 주었고, 사회과학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후반부에는 물리학계에서 원자론이 사라졌지만 그 영향을 받은 사상과 제도는 살아남았다. 국제 사회가 독립적 국가로 구성된다고 하는 '만국공법' 사상도 그중 하나였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천하 체계는 이에 비해 유기론적 특성을 가진 것이었다. 어느 구성원도 절대적 독립체가 아니었다. 큰 나라에 '자소(字小)'의 책임이, 작은 나라에게는 '사대(事大)'의 책임이 있었다. 크고 작은 나라들이 지속적인 상호 책임 관계로 얽혀 있었다. 각 나라의 내부도 원자화된 개인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본분에 따라 역할을 맡는 군군신신(君君臣臣)의 유기적 조직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봉건적'이라고 하는 사회 체제다. 

하급자의 충성과 상급자의 승인(및 보호)를 교환하는 봉건 관계를 근대인은 '인신 예속'이라 하여 미개한 제도, 심지어는 사악한 제도로까지 여겨왔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절대시하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천하 체계의 해체는 '만국 평등[=만국공법]' 이념의 자랑스러운 승리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만인 평등' 이념이 구호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해 왔다. 오히려 이 구호는 현실의 불평등을 가려놓음으로써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보호할 필요를 부정하여 세상을 정글 상태로 만드는 데 이용되어 왔다. '만국 평등'도 마찬가지였다. (95~96쪽) 
 
두 인용문은 이렇게 말한다. 원자론에 입각한 서양의 국제 정치가 표면적으로는 만국 평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만국 평등의 실상은 강대국의 횡포를 은폐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며, 원자론적 국제 질서가 만들어낸 '정글 세계'에서 제국주의가 생겨났다. 반면 중국 전통의 유기적 세계관이 만들어낸 국제 정치는 자소와 사대가 짝을 이루는 상호 책임과 호혜로 얽혀 있다. 서양 제국주의가 원자론에 입각한 패권주의라면, 중국의 천하 질서는 유기론에 바탕을 둔 강대국과 약소국의 공존과 협치다.

지은이가 <냉전 이후>에서 서양과 동양의 정치철학을 비교하는 까닭은 1991년 냉전 종료와 함께 '서세(西勢)'도 종료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약 500년 넘게 지구를 지배해 왔던 것은 서양이다. 하지만 냉전의 종료는 (최소한 동북아에서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해소"(554쪽)이며, 그것은 곧 새로운 문명을 호출한다. 권말에 붙은 지은이의 맺음말 '200년에 대한민국은 거의 주권 국가였다'에서 두 대목을 인용한다.

서세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원리로는 개인주의요, 체제로는 자본주의다. 개인을 완전한 독립체로 보고 그 능력의 발휘에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이다. 힘 있는 국가가 약한 국가를 마음대로 침략하는 제국주의도, 사회 양극화를 가져오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이 원리와 체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555쪽) 

그래서 '서세동점의 해소'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모순과 한계를 논하는 '세계 체제론'의 연구와 토론이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중국의 굴기가 한 국가의 성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질서의 구조에 근본적 변화를 향한 움직임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이 합쳐지는 곳이 바로 서세동점의 해소가 아니겠는가. (556~557쪽)

<냉전 이후>의 서평을 청탁받고 꾸물거리는 사이에 <한겨레> 이인우 기자가 도올 김용옥을 인터뷰한 '[토요판] 특집 도올의 한국, 도올의 중국 - "중국이 미국보다 조금 더 리니언트한 제국 되지 않을까"'(4월 23일치)가 나왔다. 이 대담에서 도올은 "중국은 또 하나의 미국, 미국의 21세기 후계자가 되어선 안 돼. 중국은 '뉴 오더'(새로운 질서), '뉴 아시아틱 오더'를 창출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밑줄은 인용자의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강자는 늘 선악의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닌다. 문제는 21세기의 중국이 20세기 초반의 선한 미국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하려고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일 것이다. 비관적 견해가 많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어디가 더 선한 제국이냐가 아니라, 중국이 미국보다는 조금은 더 리니언트한(관후한) 제국이 되지 않을까? 세계인들은 중국이 어떤 제국이 될 것인가를 미리부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조차 저 도덕성을 상실한 미국과 비교해 중국이 꼭 미국만 못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미래의 중국인들이 미국이 구현하지 못한 선한 제국으로서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거야. 중국은 맹자 이래 수천 년간 왕도의 위대함과 패도의 위험성을 학습해온 제국이다. 걱정할 것은 중국의 천하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부흥 과정에서 표출되는 과도한 중화 민족주의다.

▲ 지난 3월 31일(현지 시각) 핵 안보 정상 회의 이후 양자 회담을 가진 버락 오바마(왼쪽 끝)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오른쪽 끝) 중국 국가 주석. ⓒAP=연합뉴스


김기협과 도올은 국제 관계에서 중국은 미국과 다른 정책을 취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렇게 믿는 근거는 천하 체계(천하주의)라는 중국의 고대 정치철학이다. 두 사람의 발언은 중국의 천하 체계가 서양의 제국주의와는 무척 다른 문화적 헤게모니 지배였다는 최근의 연구와 맞물리면서, 중국에 관한 새로운 눈뜨기를 주문한다. 하지만 친중파 혹은 김기협의 용어로 "중국 대안론[자]"(530쪽)라고 분류할 수 있는 두 사람과 달리,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혐중파도 있다. 일찍이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쓴 복거일이 대표적이다.

복거일은 "빠르게 늘어나는 중국의 영향력에 한국의 주권이 점점 자주 그리고 깊이 침해되는 현상"(7쪽)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영향력에 한국의 주권이 침해되는 현상을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핀란드화란 강대한 나라 옆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가 강대한 이웃의 눈치를 보면서 강대한 이웃에게 점차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게 되는 과정으로('적응적 묵종'), 20세기에 핀란드가 러시아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주권의 손상을 입으면서 생존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용어다.

지은이는 미국의 정치학자 월터 래커의 말을 빌려, 핀란드화에 따른 적응적 묵종이 불러오는 가장 나쁜 것은 "사회의 도덕적 변질"(74쪽)이라고 말한다. 약소국은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힘센 이웃이 신뢰하는 후보만을 고위 공직에 선출하거나, 언론을 검열하는 '국내 조정'을 쉬지 않고 행한다. 그러면서 국가의 구성원 전체가 현실 도피와 위선이라는 도덕적 타락에 빠지게 된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중국에 의한 핀란드화를 한껏 우려하고 있는 복거일은 한국이 그보다 앞서 겪은 '미국에 의한 핀란드화'를 절대 자성하지 않는다. 사회의 도덕적 변질이 '핀란드화/적응적 묵종'의 가장 나쁜 폐해라면, 대한민국의 미국화(Americaniz)만큼 한국 사회를 도덕적으로 타락시킨 것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한국의 중요한 국가 정책이 미국의 이익과 합치해야 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는 관행이고, 국익을 위해야 할 정치가나 고위 공직자들이 미국 정치인과 줄을 대기 위해 안달하거나, 아예 미국 정부의 '제5열'이 되는 것조차 불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열거한 도덕적 타락도 문제려니와, 외국군(미군) 장기 주둔과 외국군에게 자기 군대의 전투작전권을 헌납하고 되찾지 않는 것은 아예 도덕적 자살이다. 김기협의 말을 들어보자.

대규모 외국군의 지속적인 주둔은 '독립국' 자격에 실질적으로 저촉되는 조건이다. 한민족의 반도 국가 일천 년 역사를 통해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면서도 전쟁 상황 외에는 중국 군대가 반도에 주둔한 예가 없었다. (…) 남한 정권이 미국의 국익을 도외시하고 민족의 복리만을 추구하는 입장에 설 수 없었던 것은 주한 미군의 존재 위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50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거일이 미국에 의한 대한민국의 핀란드화를 묵살하는 까닭은 "미국은 역사상 제국주의적 특질을 가장 적게 보인 제국"(31쪽)이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보기에 미국이 행사한 제국주의는 제국주의 가운데서도 "가장 선량"하며 "비공격적 특질"(이상 33쪽)을 가졌다. 반면 21세기의 초강대국이 예약되어 있는 중국은 냉전 종식 이후에 선의의 제국주의 역할을 떠맡은 미국과 달리,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 줄곧 제국주의를 추구해 왔다고 말한다. 복거일은 그 증거로 중국이 "자신을 '천하(天下)'라고 부르는 관행"(43쪽)을 꼽는다. 미구(未久)에 닥칠 "중국의 제국주의는 미국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일방적이고 압제적이고 공격적일 것이다"(44쪽)라고 말하는 그는 중국을 "가장 나쁜 형태의 제국주의"(45쪽) 국가로 만드는 동력으로 변질된 공산당과 극단적인 중화 민족주의 사이의 제휴와 악순환을 든다. 현재의 중국 공산당은 이미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정당성을 잃은 압제적 일당(一黨)은 "자신이 잃은 정당성을 민족주의를 통해서 되찾으려" (48~49쪽)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경제가 발전해서 자유에 대한 중국 시민들의 열망이 커지면, 공산당 정권은 민족주의를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49쪽) 

세 명의 논객은 모두 중화 민족주의를 경계한다. 하지만 김기협과 도올이 천하 체계(천하주의·천하)를 서세와 미국 패권주의를 대체할 (오래된) 새로운 문명으로 반기는 것과 달리, 복거일은 그것을 전혀 새롭지 않은 오래된 야만으로 본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체 천하 체계란 무엇인가?

김기협은 <냉전 이후>에 "나는 최근에 자오팅양(趙汀陽)의 <천하 체계>(노승현 옮김, 길 펴냄)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서양 근대 정치철학이 국가 단위에 묶여 '세계 정치'를 성립시키지 못한 데 반해 중국의 전통 정치철학의 국가를 넘어 '천하'의 운영 원리를 탐구한 데서 향후 세계 질서의 형성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한다"(96~97쪽)고 썼다. 마침 나도 <시사IN>(제238호)에 '해군기지, 이 미련한 혐중(嫌中)론이여'를 쓰면서 이 책을 소개한 바 있다.
 
미국의 퇴락과 중국의 굴기는 금세기의 상식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은 백인도 아니면서, 황화(黃禍) 수위의 혐중 감정이 팽만 하다. '중국 때리기'의 세목들이 한국의 꼴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데도 그렇다. 우리가 현대 중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마오쩌둥·문화혁명·홍위병 정도인데, 그나마도 역사적 맥락은 잘 모른다. 선입견에 바탕한 혐중의 정체는 조선말에 있었던 위정척사 운동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분들에게 자오팅양의 <천하 체계>를 권한다. 중국 전통의 세계관과 정치철학은 항상 '국가'보다 높고 큰 '천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작금의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민족주의는 서양의 것이지 중국의 사유가 아니다. 또 변화와 종합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의 사유는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중국 사상과 서양 사상의 차이를 결정지었다"(26쪽)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중국에는 기독교나 이슬람 같은 근본주의가 번성할 틈이 없다고 주장한다. 칼 슈미트의 정치철학에서 보듯이 서양의 정치는 '적과 나'의 구별에서 시작되지만, '천하의 바깥'이 없는 중국 고유의 사유에서는 적이 필요하지 않다. 지은이를 무조건 지지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의 중국은 없으며, 다양하게 분기한 수 갈래의 중국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그것들과 접선하여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냉전 이후>(김기협 지음, 서해문집 펴냄) ⓒ프레시안

 

김기협은 '천하 체계'에 격하게 공감했다지만, <천하 체계>를 옮긴 노승현은 권말에 첨부한 꽤 길고 자세한 옮긴이의 말('천하로 세계를 사유하다')에 이 용어에 대한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였다. <상서(尙書)>, <주서(周書)>,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같은 고대 문헌에 수없이 나타나는 천하(=四海)는 자오팅양이 말하는 것처럼 "국가(state)도 아니고 민족/국가(nation/state)도 아니었던 정치/윤리 개념"인 게 맞으나,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천하가 근대적 국가 개념인 국가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자오팅양은 이 책을 2005년에 썼는데, 2007년에 발표한 '정치에 반대하는 정치'라는 논문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 역사에 두 가지 정치 제도가 있다면서 "중국 고대에는 주 왕조의 천하체계와 진한(秦漢) 이후의 제국 체계라는 두 가지 형태의 정치 제도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에서 천하 체계를 배반한 정치적 사건으로서 만리장성의 축조는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이었던 천하 모델의 완전한 상실이었[다.] 요컨대 만리장성의 축조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 속하는 천하(=세계)를 천하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민족 국가(=제국)로 정의한 정치적 사건이었다"고 비판한다. 천하 체계가 중화 민족주의로 변질되거나, 반대로 중화 민족주의가 천하체계의 외피를 쓸 수도 있다.

<냉전 이후>는 1)남한과 북한의 통일 문제와, 2)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미국․중국)의 지정학적 경합을, 3)문명사적인 렌즈로 성찰하고자 한다. 이런 기획은 1), 2)의 방법과 설명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한반도의 모순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명론을 얘기하면 할수록 우리가 역사 속에서 내릴 주체적 판단이나 역사에 개입할 능력은 찾기 힘들다. '원자론적 문명(서양)이냐, 유기론적 문명(서양)이냐?'는 꽤 거창하지만, 문명론을 걷어내고 나면 '친중파로 갈아 탈 것이냐, 친미파를 고수할 것이냐?'의 문제로 축소된다. 문명론(사)적 설명은 한반도를 탁란(托卵)하는 조류의 일종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환단고기>에 미친 '환빠', 상고사(上古史)의 수렁에 빠진 김지하, 북한의 종교인 김일성주의는 탁란하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더란 말인가?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