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 종식 못하는 이유
북한보다 남한 쪽에 있다”
역사학자 김기협 ‘냉전 이후’ 분석
제주4·3 비극 뿌리는 미군정 실책
냉전 이후
김기협 지음/서해문집·1만8000원

4·3과 미국
허상수 지음/다락방·3만원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들먹이며 주한 미군 철수 ‘협박’카드를 휘두르는 미국 대선 공화당 경선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얘기를, 언론들은 대중적 인기를 노린 정치 포퓰리스트의 무책임한 ‘막말’로 치부한다. 하지만 그걸 황당한 ‘막말’이나 비정상으로 여길 정도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지금 상황이야말로 비정상적일 수 있지 않을까.

제주 출신으로 성공회대에서 가르친 허상수 교수는 <4·3과 미국>에서 광복 70년은 곧 “분단 70년이고, 그것은 일본제국 군대가 물러가고 미국 군대가 들어온 지 70년이 됐다는 얘기”라며 “한마디로 미군 진주 70년이었다”고 썼다. 일본제국군 주둔까지 치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국 군대가 계속 눌러앉아 (전시)작전통제권까지 쥐고 있는 상황이 정상일까.

역사학자 김기협은 <냉전 이후>에서 이런 비정상의 시작과 원인을 조선 말기, 근대 초입의 시대상황에서 찾았다. 무능한 임금이나 무책임한 관리들 또는 민족반역자들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되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울 수 없을 만큼 ‘서세동점’, 거기에 편승한 이웃의 침략이라는 압도적 시대변화 탓이 컸다고 보는 것이다.

그 비정상을 극복할 기회가 약 40년 뒤 일제 패망으로 찾아왔는데, 곧 시작된 냉전으로 기회는 날아가버렸다고 김기협은 얘기한다. 약소국을 마음대로 점령·분단할 수 있었던 대국들의 행태는 제국주의 시대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외세와 그들에 빌붙은 내부 ‘불량분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비정상의 연장을 원했기 때문에, 분단과 전쟁까지 덮어쓴 채 수백만의 희생을 치르고도 바뀐 게 없었다.

다시 40여년이 지난 1989년 냉전 종식 선언과 함께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또 다른 40년을 향해가는 지금까지 비정상은 아직 그대로다.

왜 그럴까? 김기협은 예컨대, 냉전 종식이란 것은 동유럽의 경우에나 적용 가능할 뿐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는 다르다고 얘기한다. 동아시아에서는 냉전의 전선이 사라진 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기협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원용하면서 냉전 붕괴를, 한계에 도달한 자본주의체제가 사회주의체제하의 거대 미개발 영토의 울타리를 해체하고 들어간 사건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냉전은 새로운 형태로 진행 중이며 그 주역들 역시 아직은 건재하다.

“(제1차 북핵문제) 당시 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필요했다.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 군축국과 군사정치국, 핵문제담당 특별보좌관실 그리고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이 북한 문제를 수중에 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하여) 1993년 북한이라는 작은 나라가 (1991년에 해체된) 소비에트 연방을 대신하여 미국 정부의 광대한 핵확산 금지 체제의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케네스 퀴노네스의 <2평 빵집에서 결정된 한반도 운명>)

<냉전 이후>에서 이를 인용한 김기협은 북핵문제에 북한도 책임이 있지만 더 큰 책임은 ‘악당’을 창출하고 북핵문제를 만들어낸 세력, 즉 미국 안보관료들과 군산복합체에 있다는 얘길 하고 있다. 북핵문제만이 아니다.

“1990년대 10년 동안 남북관계의 전개를 살펴보며, 한반도의 분단상태를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북한보다 남한 쪽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한에 정치다운 정치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유효기간을 넘겨버린 자본주의에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남한이 국가다운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한이 국가다운 국가, 즉 정상이 되지 못하게 만든 제1요인은 미국이라는 외세다. 과거와 다른 점은 그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서세’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내면화됐다는 것, 즉 우리 내부에 ‘외세’가 형성돼 바깥 외세와 일체가 돼 일종의 ‘아류 서세’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엉클 샘의 젖통에 착 달라붙어 있는(셀리그 해리슨) 남한 수구세력’이란 글에서 김기협은 이를 특권층, 특권구조로 설명했다. 예컨대 해방은 이런 것이었다. “기존의 특권층인 친일파는 통일건국이 이뤄질 경우 특권을 빼앗기거나 심지어 박해를 받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미국에 의존하는 분단건국을 통해 미래의 특권층이 되고자 하는 친미파가 과거의 특권층과 손잡음으로써 막강한 재력과 폭력을 갖춘 세력을 이뤘던 것이다.” 친일·친미는 쌍생아란 얘기다.

그런데 이제 서세동점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김기협은 본다. 자본주의 영토 확장의 한계, 거대중국의 등장 등이 그 징후다. 거대중국 역시 자본주의체제 내 편입으로 가능했지만, 김기협은 서세동점기 서방과는 다른 대안적 문명체제, 자본주의 이후 체제로서의 가능성을 중국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전환기에 내면화한 한국의 ‘서세’가 이 ‘냉전 이후의 냉전’ 상황을 오인해 더욱 미국에 밀착함으로써 다시 찾아온 정상화 기회를 또 날려버릴지 모른다는 걱정과 안타까움이 김기협의 한국 보수주류세력 비판에선 묻어난다.

<4·3과 미국>은 냉전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고 세상을 황폐화시켰는지를 제주 4·3사태 비극을 통해 보여준다. 두 책 모두 미국이 주역이다.

“국민을 지휘하는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제 때 그들의 불온한 사상이나 비정상적인 성향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감시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일본 정부에 저항했거나 불만을 나타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온건한 국민들과 지식인, 부유층은 현재의 상황을 불편하고 불안해 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 빨리 미군정부에 의해 정상적인 민주주의 통치가 실시되기를 바란다.”

해방 당시 미 해군 대위로 미군정 전남도군정청 정보국장을 지낸 그랜트 미드가 1951년에 낸 <주한 미군정>에서 인용한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한 사람은 일본인 경찰 간부 사카모토 아키라. 1945년 9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일본 군과 경찰, 공무원들을 그대로 앉혀 두고 그들의 행정체제를 이용했다. 사카모토가 불온시하거나 범죄자로 몬 사람들은 독립자주세력. 그에게 ‘정상적인 민주주의’란 곧 일제 식민체제였다. 사카모토의 바람대로 미군은 친일·우파 세상을 만들었다. 그게 4·3사태의 뿌리라고 허 교수는 얘기한다.

<4·3과 미국>을 쓰기 위해 미국 기록문서관리청(NARA) 자료들까지 직접 뒤진 허 교수는 4·3과 관련해 이제까지의 간접적이고 수동적이며 온정적인 미국 역할 이미지는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훨씬 더 직접적이며 적극적으로 4·3과 양민학살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미드의 지적대로 미 점령군은 한국 내의 자주독립파, 중립세력을 철저히 제거하고 친일·친미 보수우파세력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군 통제권, 작전권을 쥐고 군과 경찰을 동원해 저항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미드 외에 존 메릴, 브루스 커밍스, 그레고리 헨더슨, 리처드 로빈슨, 조지 매퀸 등 허 교수가 인용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미군정을 실패작이라 판정한 것도 흥미롭다. 허 교수는 4·3 진상조사가 상당히 진척됐고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책임 규명과 피해자 배상·보상과 지원 등은 전혀 진척이 없다며 특히 미국·미군정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