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⑮

기사입력 2008-10-06 오전 9:15:05

  지난 회에 소개한 안병직의 글 '한국 근·현대사의 체계와 방법'(<시대정신> 40호, 248~265쪽)을 보며 무엇보다 아연했던 것은 대한민국을 성공 국가로, 북한을 실패 국가로 규정하고, 따라서 한국 근·현대사는 대한민국사를 중심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는 차치하고, 역사의 의미가 성공에만 있고 실패에는 없다는 말인가? 그는 심지어 민중 운동사를 배척하는 이유까지도 여기에서 끌어낸다.

"민중 운동사가 북한의 역사관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민중 운동사가 제시하는 대로 국정 방향을 설정하면, 국가의 장래는 지금의 북한 꼴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독자들은 필자가 왜 한국 근·현대사의 주조를 민중 운동사에 두지 않고 대한민국사에 두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57쪽)

민중 운동사가 북한의 역사관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이것이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사실이라고? 물론 뉴라이트 역사관과 비교한다면 민중 운동사와 북한의 역사관 사이가 더 가깝겠지만, 그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극우의 입장에서 자기보다 왼쪽을 모두 좌파라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설령 민중 운동사가 북한의 역사관과 비슷한 것이라 치자. 그 역사관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면 지금의 북한 꼴이 된다고? 뉴라이트 주장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그런 국정 운영이 진행되어 왔다. 그 10년이 시작할 때 대한민국 경제는 IMF의 난장판에 빠져 있었다. 10년간 이른바 '좌파' 정권이 상황을 많이 호전시켜 놨다. 그런 식으로 해서 국가의 장래를 망쳐놓으려면 도대체 몇 백 년, 몇 천 년의 세월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나라 꼴 망치는 데는 이명박 정부가 훨씬 더 뛰어난 소질을 보이고 있다. 민주 질서를 퇴행시키고 있는데도 경제조차 잘 돌아갈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월스트리트가 무너지면서 달러 가치가 추락하는 와중에 원화 가치가 더 앞장서서 곤두박질치는 까닭이 뭔가? '문명의 가치'를 내세우며 '국제 협력'을 부르짖는 뉴라이트의 '성공'이 이런 것인가?

"경쟁이 어떤 상황에서도 평등보다 우월한 사회 운영 원리는 아니다"

  뉴라이트가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공산권에 대한 승리를 통해 자본주의의 성공을 확인한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 앞서 (☞관련 기사 : "뉴라이트 '자유주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밝힌 것처럼 1970년대의 경제 위기에 대한 반응 중 신자유주의가 반동적 방향의 것이라는 의견을 나는 가지고 있다. 경제학에 대해서도 경제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산업혁명 이후 근대 세계사의 흐름, 특히 그 기술사 측면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이다.

눈부신 속도의 기술 발전은 18세기 후반에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어졌다. 20세기 초반 긴박한 전쟁 상황이 기술 발전에 극한적 자극을 주었다. 그 자극이 사라진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는 기술 발전의 추세가 다소 누그러졌다.

기술 발전은 자원 공급을 확장해 준다. 한편으로는 종래 경제적 가치가 없던 자원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 채취를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 규모가 200년에 걸쳐 빠른 속도로 확장되었고, 그 확장 추세 속의 경제 운용에 적합한 체제로 자본주의가 나타났다.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는 '경쟁'이다. 경쟁은 '평등'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가진다. 경쟁이 어떤 상황에서도 평등보다 우월한 사회 운영 원리는 아니다.

연재 첫 회에 소개한 쿵족 같은 수렵·채집 사회를 생각해 보자. (☞관련 기사 : "뉴라이트에게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인가") 식량 확보에 공이 큰 사람과 힘센 사람들이 너무 큰 몫을 가져간다면, 의욕을 키우는 사람보다 의욕과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 부족 전체의 활동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같은 분량 식량의 한계효용이 적게 받는 사람에게보다 많이 받는 사람에게 작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근대 사회에서 널리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파이가 커지고 있던 상황 덕분이었다. 적극적으로 경쟁에 나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큰 이득을 취하더라도 방관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의 생존이 심각한 위협을 받지는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승자의 독식이 패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

  1945년 이후 인류의 기술 발전은 그 이전에 확보된 기술을 더 다듬어내는 범위에 그치고 새로운 원리를 개발한 것이 별로 없다. 얼마 동안은 기존 원리만 가지고도 응용의 확대와 적용의 확장을 통해 자원 공급의 증가 추세를 웬만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그때까지의 경제 체제를 그대로 지속할 수 없는 '성장의 한계' 상황이 닥쳤다.

사실 '성장의 한계'는 19세기 후반에도 한 번 닥쳤던 상황이다. 자원 공급의 확장 속도가 아직은 매우 빠르던 시기였지만, 그때까지의 워낙 철저한 자유방임 경제 체제로는 지탱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둔화되었다. 승자의 독식(winner-take-all)이 패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위기에 대한 대응은 세 갈래로 나타났다. 가장 급진적 대응은 경쟁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공산주의였다. 중도적 대응은 경쟁을 허용하되 얼마간 제한을 두자는 제도경제학파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대세를 휩쓴 것은 반동적 대응인 제국주의 노선이었고, 20세기 초반 두 차례 세계대전의 파국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는 가운데 철저한 자유방임주의는 무한경쟁을 추구한 제국주의 노선과 함께 설 땅을 잃었다. 한 쪽 진영은 공산주의에 입각한 계획경제로, 다른 한 쪽은 제도경제학파의 제안을 받아들인 착근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 시장경제로 경쟁을 벌인 것이 그 결과 나타난 냉전 체제였다.

1970년대의 경제 위기는 두 진영 모두에 타격을 가했다. 그런데 공산주의 진영이 효과적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무기력한 침체에 빠진 반면, 자본주의 진영 일부가 미국의 주도 하에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나섰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상황의 문제점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격화시켜 파국을 앞당김으로써 추진 주체가 상대적 이득을 얻자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함께 추진한 군사 정책이 어떤 것이었던가. 그야말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드는 '별들의 전쟁'이었다. 경제여건에 역행하는 군비 확장은 상대방이 먼저 손 들도록 압박하는 치킨게임이었다. 냉전의 대결 상황이 이 소모적이고 반동적인 정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자본주의를 유일한 '문명'으로 숭배하는 뉴라이트 신앙"

  1990년을 전후한 공산권 붕괴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책 노선으로서 그 성공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지금 진행 중인 미국 금융 공황을 포함해 더 많은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공산권 붕괴 역시 공산권의 '패배'라고는 할 수 있지만 공산주의 경제의 '실패'라고 단언할 것은 아니다. 자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유방임 정책에는 문제가 있다. 향후 자원 공급 상황에 따라 공산주의식 계획경제의 타당성이 얼마든지 다시 검토될 수 있다.

당장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 감독의 강화를 향한 미국과 유럽의 움직임부터가 신자유주의 자유방임의 퇴조를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승리의 기세를 타고 세계화를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몰아붙였다. 미국 경제는 레이건 이래 국가재정 적자 등 구조적 문제를 키워 왔다. 그 문제를 덮어놓기 위해 거품을 키우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벗어날 수 없었으니, 호랑이 등에 매달려 달려온 셈이다.

미국 금융위기의 실상을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신자유주의 노선 지탱을 위해서는 시장의 빠른 확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실물 차원의 자원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니 금융상품의 거품으로 대신해 온 것이 한계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파이는 커지지 않는데 소수의 몫을 계속 늘리면서 다수의 눈을 환상의 부로 가려온 것이다. 우리의 부동산 거품도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금융계의 비상한 공황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없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재산세 등 다른 세원을 늘리지도 않고 세출 줄일 방안도 없이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겠다는 것은 기적을 불러오겠다는 뜻인가? 나는 이것이 공산권 붕괴를 '자본주의의 성공'으로 믿는, 그래서 자본주의를 유일한 '문명'으로 숭배하는 뉴라이트 신앙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제도든 상황과 여건에 따라 효용성을 가지는 것이다. 근대 이전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서 자본주의 좋은 것을 모르고 다른 체제를 취했던 것이 아니다. 근대에 들어와 자본주의에 적합한 상황이 전개되니까 자본주의가 고안된 것이고, 한 번 만들어진 뒤에도 현실에 맞춰 조정을 가해 온 것이다. 지금도 현실에 큰 파탄이 일어나니 신자유주의에 앞장서 온 미국조차 뭔가 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판에, 한국의 뉴라이트가 자유방임 깃발을 그대로 휘젓고 있는 것은 유사종교 수준의 인식이라 할 것이다.

"북한의 성취를 원천적으로 부정해야 할 필요성"

  자본주의 신앙이 역사 인식에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 이영훈과의 대담 중 안병직은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되질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70년간의 실험 끝에 결국 실패로 귀결됨으로써 명백히 증명되었습니다. 사회주의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의 자유와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이기적인 것이므로, 이 이기심을 살려 두어야 거기에서 무한한 발전의 동력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263쪽)

1990년을 전후한 공산권 붕괴가 안병직에게는 자본주의의 절대적 정당성에 대한 증거다. 과거에서 미래까지 변하지 않는 정당성이다. 지금 월스트리트가 무너지건 말건 자본주의의 핵심인 자유방임 원리를 지켜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자본주의가 과거에도 언제나 우월한 체제였다는 믿음을 그는 굽히지 못한다. 1930년대 대공황 속에서 소련이 가장 적은 충격을 받았던 사실을 그가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북한 경제가 한 때 남한보다 우월했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하다.

안병직과 이영훈의 대담 중 이런 이야기들이 있다.

"흔히들 19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의 소득 수준이 남한보다 높았다고 합니다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식민지기에 일제가 북한에 건설한 중공업이 그 기반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안병직, 같은 책, 267쪽)

"해방과 분단에 따른 혼란에 이어 한국전쟁으로 인한 산업 시설의 파괴로 한국 경제는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떨어졌습니다."(이영훈, 같은 책, 160쪽)

이영훈은 다른 책에서 이런 이야기도 했다.

"그 상당 부분이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만, 드러난 건물이나 저장 시설이야 그러했지, 분리 가능한 핵심 설비를 폭격의 대상으로 방치해 둘 정도로 북한의 지도부가 어리석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북한이 1960년대까지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앞섰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이 선전하는 대로 사회주의 생산력의 덕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북한이 일제로부터 받은 물적 유산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대한민국 이야기>, 171~172쪽)

손발이 척척 맞는다. 북한의 전쟁 파괴가 더 심했다는 상식 중의 상식 앞에서 이승만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폭격 피해를 부풀리고 북한의 업적을 깎아내리기 위해서는 줄이는 고무줄 잣대. 그래도 뉴라이트 논설 가운데는 모처럼 이승만에게 비판적인 대목이다. 직접적 표현은 아니지만, 적은 폭격에도 큰 피해를 입을 만큼 어리석었다는 얘기니까.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 때문에 북한의 성취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필요가 생겨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 역사의 대목대목을 하나도 빠짐없이 성공의 역사로만 해석하야 하는 편향성을 또한 피할 수 없다.

공산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을 실패할 운명의 나라로, 자본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한을 성공할 운명의 나라로 규정한다는 것은 역사학의 문법에 맞지 않는, 쉽게 말해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그래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원리주의 성향의 유사종교가 떠오르는 것이다.

"몰상식한 역사관이 몰상식한 정책을 밀어주는 추세"

▲ 멜라민 사태를 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속내? '멜라민이면 어떻고 멜라닌이면 어떤가? 쇠고기도 원산지 표시만 하면 각자 알아서 가려먹을 일인데, 포장에 표시만 잘하면 알아서들 먹겠지.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손가락질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저런 하급식품에 신경쓸 필요도 없는데. 쯧쯧.' ⓒ연합뉴스
 

  '승리'를 곧 '성공'으로 풀이하는 뉴라이트 세계관은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한 쪽으로만 열어준다. 진보 진영의 선거 패배는 곧 그들의 실패라고 뉴라이트는 본다. 패배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승리자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시대 친일파도, 지금 '강부자'도 뉴라이트의 눈에는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성공한 자들이다. 성공했다는 것은 목표가 올바르고 노력이 충분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친일파 비판은 실패한 자들의 시기심일 뿐이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는 종부세는 "잘못된 세금 체계"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종부세의 타당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 없다. (지난 주 이준구의 글 "MB정부, 최후의 안전핀까지 뽑았다"보다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성공한 자들을 대접해 주기는커녕 부담을 지우려 들다니, 올바른 세금체계일 수 없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 방안도 그렇다. 대기업 소유자들은 그들의 눈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더욱 큰 성공을 돕는 것이 정치다. 범죄를 사면해 주고, 세금을 줄여주고,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 기회를 만들어주고,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해줘야 그들이 신나서 사업을 잘한다. 그렇게 해서 파이를 키워놓아야 열등한 인간들도 부스러기나마 얻어먹을 수 있다. 성공할 능력도 없는 자들을 배려한 전임 대통령은 어떤 보답을 받았나? 성공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보답도 할 줄 안다. 표로든, 돈으로든.

진행 중인 내 비판은 뉴라이트 정책이 아니라 '역사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몰상식한 역사관이 몰상식한 정책을 밀어주는 추세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민족도 국가도 안중에 없이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이용 대상인 하나의 주식회사일 뿐, 정체성과는 관계 없는 존재다.) 자기 정체성을 '이기적 존재'로만 규정하고 달려드는 자들이 사회 통합(social integrity)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가장 반동적인 제국주의 노선이 득세하던 사정을 생각하게 된다. 경쟁의 주체인 국가들이 목전의 득실에만 매달려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승리'를 곧 '성공'으로 보던 사회진화론의 시대였다. 그 교훈을 깡그리 무시하는 집단이 21세기의 국가 하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부끄럽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⑭

기사입력 2008-09-30 오전 10:24:39

  안병직은 <시대정신> 2008 가을호에 실은 '한국 근현대사의 체계와 방법'이란 글에서 현행 중등 역사 교과서들에 비해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우월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의 중요한 논점 하나를 아래 대목에서 볼 수 있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정치사나 경제사 등 사회과학계의 역사 연구를 역사학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데, 이러한 견해는 한국 사학계가 아직도 근대과학의 이론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발언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힌다. 한국 사학계가 아직까지 근대과학의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그들이 한국근현대사를 제대로 서술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여간 심각하지 않은 문제를 제기한다." (<시대정신> 40호, 250쪽. 안병직 발행·편집의 이 잡지를 내가 구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또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과학계의 역사 연구를 역사학이 아닌 것처럼 말한 역사학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정말 그렇게 말한 역사학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역사학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진지한 역사학자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학자의 정치사 연구나 경제학자의 경제사 연구 중에는 역사학의 관점에서 별 의미가 없는 것도 있지만, 역사학계에 중요한 공헌이 된 것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 상식 아닌가?

안병직의 위 발언은 교과서포럼에 역사학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반박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그 뜻은 아래 글에 더 분명히 나타난다.

"한국의 사회과학계에서 대안 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출판하자 한국 사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역사학 전공자들이 아닌 연구자들의 저서라고 비하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들이 과연 역사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역사학이란, 본래 '역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지, 거기에 무슨 독점적 연구의 특허권을 가진 학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 261~262쪽)

이것은 좀 위험한 생각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에는 여러 분야 기술자들이 매달린다. 그 모두가 '자동차 만들기'에 공헌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몇몇 기술자가 생산라인 밖에서 모여 저희들끼리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자면 목적인(final cause)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와 역사 서술은 다른 것이다.

서울대의 문중양(국사학과)과 김영식(동양사학과)은 학부에서 계산통계학과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들이다.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전공했고, 연구의 초점을 계산통계학이나 화학공학이 아닌 역사학에 두었다. 그 결과 역사학에 대한 공헌 능력이 역사학계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교과서포럼 멤버들이 분류사 연구자더라도 문 교수나 김 교수처럼 역사학에 초점을 둔 학술 활동을 해 왔다면 이번의 자칭 대안교과서보다는 훨씬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전공 학자들은 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자기 분야의 권위에 문제가 없다"

▲ 역사 서술에 '사회과학자'들이 역사학자들보다 나은 점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은 점은 대기업의 사사(社史) 편찬에서 보통 발휘된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는 그들에게 좀 벅찬 과제였던 것 같다. 사진은 <한국근·현대사> 공식 출간을 설명하는 이영훈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연합뉴스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에는 '역사 교과서'로 삼기 어려운 많은 문제가 있고, 편집·집필진에 진지한 역사학자가 없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보인다. 안병직은 역사학계의 배타성을 탓하는 듯하다. 역사학계의 '나와바리' 문제는 동양사 전공자로서 한국사에 관심을 키워 온 나 자신 어려움을 겪어 온 것이고, 우리 역사학계에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가 자라났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안 교과서 문제를 놓고는 "역사학자 없이 하니까 잘못된 것이다." 하는 뜻보다 "잘못된 것을 보니 역사학자 없이 했다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뜻으로 들린다. 설령 교과서포럼에서 역사학 교수 두엇을 포섭해 이름을 올렸다 하더라도 책 내용에 문제가 많으면 "제대로 된 역사학자의 참여가 없었다."는 지적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뉴라이트처럼 자금력과 영향력이 큰 세력에서 교과서포럼에 역사학자 하나 동원하지 못한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면, 다른 전공 학자들은 결과가 신통치 않다 해서 자기 분야의 학문적 권위에 손상을 입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역사 교과서 관여가 도덕적 문제일 뿐, 학문적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학자가 이 일에 끼어든다면 그야말로 학문적 생명을 걸어야 한다. '대안교과서'에 학문적 권위를 걸고 달려든 사람은 이영훈 한 사람뿐인 것 같다. (그는 역사학자를 자처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온 학계의 구경거리가 되어있다.

"사회과학자들 한 일이 역사학자들 하는 것과는 역시 다르구나 싶은 점"

  안병직은 '사회과학계'를 한국 사학계와 대비해서 교과서포럼의 배경으로 내세운다. 교과서포럼 멤버들의 전공이 하도 중구난방이다 보니 오합지졸의 인상을 주는 것이 안쓰러웠던가보다. 뭐든 하나의 학계를 갖다대면 일관된 학문적 원리가 작용했다는 인상을 줄까 하는 뜻인가 본데, 전공의 최소공배수를 기껏 '사회과학' 정도로밖에 줄일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학에서 경영학까지, 사회과학 전체를 일관하는 학문적 원리가 뭐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일까.

그는 한국 사학계가 "근대과학의 이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마치 교과서포럼의 '사회과학자'들은 그런 이론을 갖춘 것처럼 풍긴다. 그래서 과연 어떤 이론을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글 끝까지 읽어보았지만, 이론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내세운 이야기는 민중 운동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사에 중점을 둔다는 것, 실패국가를 무시하고 성공국가만을 바라본다는 것, 두 가지뿐이다. 이것은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 기껏해야 이념적 기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과학자들의 작업이므로 역사학자들의 작업보다 과학적 기준에서 우월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사실 안병직이 짚어서 제시하지는 않아도, 사회과학자들 한 일이 역사학자들 하는 것과는 역시 다르구나 싶은 점이 있기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역사 교과서'로서는 치명적 결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뚜렷한 예로, 연재 첫 회에서 지적했던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관점 같은 것이다. 근대 자연과학은 자연의 추상화를 탐구 방법 확장의 기반으로 삼았다. 물리학개론에서 말하는 점(point)이니 강체(rigid body)니 하는 것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자연의 한 측면만을 추상화해 이론의 전개를 손쉽게 한 것이다.

사회과학은 자연 현상 대신 사회 현상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시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고전경제학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상정한 것은 복잡한 인간의 한 측면만을 추상화해 이론의 전개를 손쉽게 한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 존재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활을 통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정신병자나 천치가 아닌 경제학자라면 연구는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전제 하에 진행하더라도 현실 생활에서는 인간을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학술적 가정(hypothesis)을 역사 해석에도, 국가 정책에도 적용시키려 드는 자들은 정신병자일까, 천치일까? 자기 마음속에 이기심밖에 없으니 남들도 다 그런 줄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社史) 수준"

  과학에 대한 맹신은 근대적 현상의 하나였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이 18~19세기 산업혁명의 발판이 되었고 산업혁명이 근대사회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20세기 중엽까지 과학에 대한 신뢰는 거의 종교 수준이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발표를 계기로 환경문제가 일반인의 의식에 부각되면서 과학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과학 자체를 그야말로 '과학적'으로 고찰하는 노력이 과학의 한계를 밝혀내면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이 열렸다.

과학이 신앙의 대상이던 시절에 자라난 '근대 역사학'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 역사학의 특성을 나는 이렇게 본다.

"인쇄술 발전으로 정보의 축적만이 아니라 유통까지 대형화한 단계에서 근대 역사학이 나타났다. 피지배층까지 문자를 향유하게 되면서 국민 통제 수단으로 국민 교육이 개발되고 역사 교육이 그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역사 교육의 내용을 확보하고 담당자를 양성하기 위해 직업적 역사학자들이 대학에 자리 잡고 분과 학문으로서 근대 역사학을 키워냈다.

근대 역사학이 투쟁의 무기로 쓰인 것은 근대가 투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민족국가들은 국민에게 민족의 영광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역사'를 경쟁적으로 개발했고, 이 경쟁에는 '과학성'이 동원되었다. 그래서 근대 역사학은 유사과학(pseudo-science)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 성격을 더욱 강화한 것이 계급투쟁을 제창한 마르크시즘이었다." (<밖에서 본 한국사>, 11쪽)


근년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학계 주류의 서술 기조가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묶여 왔다는 뉴라이트 측의 지적에 나는 동의한다. 따라서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데도 일부 세력의 항일운동에 절대적 비중을 두는 대신 대다수 한국인이 처해 있던 현실 상황에 더 주목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뉴라이트 쪽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실증'을 내세우는 데는 역사 개발의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뜻이 보인다. 그 실증이란 것이 역사학자들보다 숫자놀음에 익숙하다는 이점을 활용해 유사과학의 특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면 그 한계는 뻔하다. 인간 자체의 이해 노력을 외면하는 유사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배척하면서 또 하나의 다른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뿐이다. 기존 역사관이 민족과 민중에 복무하는 것이라면 뉴라이트 역사관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사(社史) 수준으로 물러서는 것이다.

"잿밥에 마음이 가 있으니 염불에 공을 들일 수 없다"

  역사학계의 실태에 대한 뉴라이트 비판 중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이 꽤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정략적 의도에 쫓겨 주장하는 본인들조차 제대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아쉬운 일이다. 안병직의 이런 말도 말인즉 매우 지당한 말이다.

"근현대사의 연구는 고대사나 중세사와는 달리 역사 과목 이외에 해당 연구 분야의 이론을 제대로 습득해야 수행할 수가 있는데, 지금의 한국사학계처럼 다른 학문 분야의 역사학 전공자들과의 학제적 교류를 기피하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시대정신> 40호, 262~263쪽)

두 가지 방향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지적이다. 하나는 근대사회가 전근대사회보다 구조가 엄청나게 복잡해졌기 때문에 전통시대 연구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관점을 포괄하지 않으면 총체적·실효적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근대 들어 분과 학문들이 늘어나 전통시대에 역사가가 맡고 있던 역할을 나눠 맡아 왔다는 점이다.

선진국에 비해 다른 분야들과의 학제적 연구가 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한국 역사학계가 극복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전통시대사 연구도 그렇지만 특히 근현대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절실한 문제다.

그런데 뉴라이트의 문제는 이런 문제를 지적만 했지, 그 극복을 위해 스스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교과서포럼은 역사학자를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나? 교과서포럼 안에서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것도 문제 극복을 위한 합당한 길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대로 우호적이라 할 만한 몇 사람에게 부탁해 보았습니다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고 이영훈은 말한다. (같은 책, 327쪽) 우호적인 역사학자들조차 수긍할 수 없을 만큼 결함이 큰 방향을 추구한 것이고, 교과서 교체라는 현실 정치적 목표에 쫓긴 때문일 것이다.

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진정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뉴라이트는 이 문제들을 끌어 모아 자기네 주장의 명분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잿밥에 마음이 가 있으니 염불에 공을 들일 수 없다. 반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제 지적에는 과장을 일삼으면서 막상 문제 극복을 위해서는 진지한 노력이 없으니 학문적 도전이 아니라 정치적 책략으로 보이는 것이다.

Posted by 문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⑬

기사입력 2008-09-19 오전 11:56:26

  "악한 사람", 또는 "나쁜 놈"은 통상 상대적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성격이 모질어 보통사람이 못하는 짓을 하는 사람, 또는 통상적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 방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비난의 뜻을 더 강하게 할 때 "짐승 같은 놈"이나 "사람 같지 않은 놈"이라 하는 것을 보면 악한 사람도 사람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이라 하면 '인간'보다 '악'에 의미의 중점이 있다.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악'을 말하는 것이다. 사악한 인간이란 스스로 인간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존재다. 형식적으로는 사람이지만, 실질적 의미에서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다.

보통사람의 소박한 관점으로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적인 '악'의 관념을 앞세워야 한다. 절대악의 개념을 공급하는 종교는 여러 갈래 있고, 그 중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기독교다. 촛불 시민들이 아무리 밉더라도 그것을 "사탄의 무리"로 규정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절대악 개념 없이 힘든 일이다.

▲ 안병직의 햇볕 정책 비난을 보면 현 정부가 어째서 북한을 도발할 길을 못 찾아 안달인지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아직도 현 정부의 경제 운용 방향에 신경이 곤두서 있지만, 현 정부가 국가와 민족에 정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분야는 북한과의 관계다. ⓒ연합뉴스

부시가 한 "axis of evil"이란 말을 절대악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적 의미를 제시하는 아무 준거도 없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평소 인간이 사악할 수 있다는 생각 없이 합리적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애쓰던 나 같은 사람도 "저 놈이야말로 사악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시의 마음속에 절대악의 개념이 있음을 안 이상, 그 개념의 존재를 존중해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뉴라이트 물결에 휩쓸린 사람들 중에 우둔한 자들은 있겠지만, 사악한 인간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사실 생각한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뉴라이트 이념을 대표한다는 이들 중에서 아래와 같은 언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저 놈이야말로 사악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대중 씨는 자기의 주관적 통일 이론만 가지고 남북 수뇌 회담을 추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우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민족이야 어떻게 되었던 자기의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을 철저히 추구할 만큼 사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288쪽)

'사악'이란 유별난 말을 안병직이 썼기 때문에 이 대목이 두드러지게 눈에 거슬렸던 것인데, '우둔'이란 말을 쓰는 방법도 생각해 보면 비슷한 것이다. 북한 정세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읽는 것인가? 안병직이 북한 정세 보는 관점 내놓은 것을 보면 "어, 저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참 별난 사람이네."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가 우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와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우둔하다고 규정하는 것을 보면 "저 놈이야말로 우둔한 놈 아닌가?" 하는 생각을 참기 힘들다.

"'햇볕 정책'이란 말에는 북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북한 정세에 관해 안병직이 접하는 정보의 분량이 나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접하던 정보량에는 훨씬 못 미칠 것이 분명하다. 여의도연구소를 맡고 있는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위에 인용된 얘기를 하던 시절에는 큰 격차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김 전 대통령을 우둔하다고 단정 지은 까닭이 무엇인가?

위의 인용에 앞선 이야기를 보면 (같은 책, 286~288쪽) 북한이 정상 국가가 아닌 폭력 국가라는 사실, 북한이 1998년 이후 강성 대국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대북 정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안병직의 대북관이 틀린 것이고 김 전 대통령 쪽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정보량에 자신이 없으니 고집을 세우지는 않겠다. 안병직의 관점이 옳은 것이라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논법은 틀린 것이다.

'햇볕 정책'이란 말 속에는 북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북한에서 이 말에 반감을 보이는 것이다. 햇볕 정책이 북한의 문제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점의 구체적 성격을 따져, 외투 벗기기가 아니라 모자 벗기기에 목적을 두어야 할 사안이라고 설득한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모자 벗기기라면 '햇볕 정책'보다 '폭풍 정책'이 더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으니까.

'폭력 국가'란 것이 이영훈의 표현으로는 "원자화된 개인을 직접 지배하는" 체제이며 "그런 국가에 외부로부터 우호적인 지원이 들어갈 때 어떠한 방향으로 변할 것인지는 기존 지배층의 이해관계가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쉽게 이해가 가는 얘기다. 그런 폭력 국가라면 우리도 20년 전까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원자화된 개인이 직접 체제의 지배를 받던 군사독재 시절, 독재를 극도로 미워하던 사람들은 누구든 외부 세력이 우리 체제를 때려 부숴 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체제의 악랄함에 대한 극단적 반발심일 뿐, 대다수 국민은 점진적 개혁을 원했고, 그것을 이뤄냈다. 사회 기반 조건의 변화에 아랑곳없이 권력에 집착하던 '기존 지배층'은 내부 모순으로 무너졌다.

6자 회담의 진행을 보더라도 한국의 햇볕 정책은 북한의 연착륙에 큰 도움이 되어온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이유 없이 햇볕 정책을 비판 정도가 아니라 비난하고 나서는 것은 북한의 연착륙이 아니라 파멸을 바라는 속셈이 아닌가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우둔', '사악' 같은 극단적 표현을 남발하는 데서 이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그리고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과의 관련성으로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이다.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경제를 놓고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1987년 민주화로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이 정말 무너졌던가? 엄밀히 말하면 '지배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상징적인 몇 사람이 퇴출되었을 뿐, 계층으로서의 '지배층'은 거의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87년 체제'는 '벨벳 혁명'의 꿈을 담은 길이다. 그 길을 연 혁명 주체는 정치적으로 중도적이고 경제적으로 중산층에 속하는 '시민' 계층이었다. 정치적 지향성이 약한 이 계층이 주체로 나선 것은 기존 군사독재가 사회 기반 조건의 발전에 너무나 뒤쳐져 겉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량주의 성향의 이 계층이 바란 것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변화 과정이었다.

20년간 계속된 87년 체제 속에서 바로 그런 과정이 일어나 왔다. 이런저런 곡절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좋은 변화가 참 많았다. 차분한 마음으로 2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권위주의 해소와 남북 간 긴장 완화 등, 어떤 과격한 혁명으로도 이루기 힘든 성취들이 그 동안 꾸준히 쌓여왔음을 생각하게 된다.

1987년 이후 10년간은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이 (다른 이름을 쓸 때도 있었지만) 정권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나라당은 1987년에 드러난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대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동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97년 이후 10년간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반 한나라당 세력이 정권을 담당하게 되었다.

2007년의 대통령선거는 벨벳 혁명의 허점을 드러낸 하나의 안티클라이맥스였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경제 살리기' 같은 허구의 과제가 핵심 이슈가 된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가 죽었나? 죽어가고 있었나? 그만하면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경제를 놓고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정작 요긴한 과제들이 도외시되고 말았다.

벨벳 혁명의 '허점'이라 함은 현실 정치에 작용할 수 있는 특정 집단의 조직력에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독재시대의 기존 지배층은 반대 세력을 압도하는 조직력과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 현실 상황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입지를 축소시킨다. 이 흐름을 뒤집기 위해 그들은 집요한 노력으로 경제 이슈화에 성공,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반칙을 유도하기 위한 고의적 더티플레이가 아닌가?"

  집요한 선전 활동이 시대의 흐름을 잠깐 가릴지는 몰라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잠깐 가리는 데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이 비용의 단적인 예가 조중동의 위신 추락이다. 벅찬 목표를 따라가기 바쁘다 보니 예전처럼 은근히 풍기는 정도로는 약발이 충분치 않아 원색적 나팔질과 노골적 말 바꾸기를 일삼다가 꼴이 말씀 아니게 됐다.

촛불 사태는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는 이명박 정부의 반동적 역류가 일으킨 풍파다. 이제 선전 활동 정도로 국민의 이목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 왔다. 방송 장악에 목을 매고 있지만, 장악에 성공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권력을 정신없이 휘두르는 양상은 집권세력의 대응책이 얼마나 빈약한지 보여줄 뿐이다.

미국 쇠고기 정도 사안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쩌나? 쇠고기보다 더한 폭탄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교육과 의료의 시장화,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등등….

국민들의 눈에서 시대의 흐름을 오랫동안 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시도할 일은 한 가지다. 시대의 흐름을 진짜로 뒤집어놓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의 절박함만으로는 평화와 민주적 가치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한반도의 긴장을 최대한 격화시켜 놓아야만 독재시대 억압 체제의 복원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쓰다가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너무 비현실적인 '음모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어쩌랴, 워낙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려면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것을.

내가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전임 대통령들이 서명한 남북 간 조약들을 이명박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조약 내용 중에 국익을 위해 도저히 승계할 수가 없는 것이 있다면 재협상이든 추가 협상이든 요구할 일 아닌가. 뉴라이트 일각의 주장처럼 북한을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약 파기를 선언할 일 아닌가. 취임 반년이 넘도록 조약 내용을 준수할 뜻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반칙을 유도하기 위한 고의적 더티플레이가 아니면 무엇인가?

사장이 바뀐다 해서 법인체 회사가 맺은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 있는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은 온 나라가 들끓는데도 국제 신인도를 핑계삼아 미적거리더니, 강한 상대에게 굽실거리고 약한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신인도 올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긴장 지속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의 정부가 맞는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 등 '악의 축'을 이용해 가공의 긴장 상태를 일으킴으로써 군사 정책을 편의적으로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대외 신인도는 크게 훼손되었다. 클린턴도 탄핵 위험이 절박한 상황에서 이라크 공습을 재개해 군사 정책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지탄을 받은 일이 있지만, 부시가 벌인 짓에 비하면 약과 중의 약과다. 10년 전에 비해 미국의 '깡패국가(rogue state)' 이미지는 매우 선명해졌다.

그런 부시 행정부도 설거지 단계에 접어들어서는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상식을 많이 되찾고 있다. 6자 회담 참가국 중 미국과 함께 가장 북한에게 편협한 태도를 보이던 일본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모두가 긴장 완화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홀로 경직된 태도를 지키고 있다. 긴장 지속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의 정부가 맞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뉴라이트가 남북 관계의 긴장 상태의 지속 내지 격화를 바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펴는 미국이 세계의 군사적 긴장을 키우는 군사 정책을 취한 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빈부 격차를 늘려 제로섬게임의 한계를 최대한 확장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정치-사회적 자유를 제한하는 경향을 가진 것이다.

미국이 이런 소모적 정책을 택한 것은 파탄의 순간까지 강자의 입장에서 단물을 뽑아먹을 수 있는 이점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약자의 입장에 가깝고 긴장 완화의 과제를 가지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부적절한 정책이다.

그런 부적절한 정책을 '경제 살리기'라고 다수 유권자가 밀어주었으니, 경제는 살리든지 죽이든지 맘대로 하시라. 환율 시장 개입, 몰상식하게 해도 괜찮다. 시장화도 좋고 민영화도 좋고 대운하도 좋다. 그러나 제발 대북관계만은 근시안적인 장삿속으로 망쳐놓지 말기를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안병직은 김 전 대통령을 우둔하고도 사악한 인물로 본다고 한다. 나는 안병직이 우둔하고도 사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 달라고 그가 아무리 조르더라도, 우둔과 사악을 한 사람이 겸비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내 믿음은 변할 수 없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