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호랑이가 감기몸살에 걸려 며칠동안 굴속에서 골골거리다가 겨우 몸을 추스르고 나왔다. 배는 고프고 기운은 없는데 그날따라 만만한 먹이가 잘 걸리지 않았다. 반나절을 허탕치고 다니던 끝에 어느 골짜기를 내려다 보니 골짜기 꼭대기의 담배밭에서 젊은이가 김을 매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적인 먹잇감에 너무나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사람이 하나뿐이니 기운 없는 몸이라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더워서 웃통을 벗어제친 모습을 보니 살집도 넉넉하고 싱싱해 보였다. 게다가 옷을 벗어놓았으니 먹는 데 걸리적거릴 것도 없었다.

 

호랑이는 너무 기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등성이 위에서부터 웃음을 터뜨리면 젊은이가 알아채고 도망을 갈 텐데, 쫓아가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반대편 골짜기로 얼른 내려가 마음놓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만큼 웃은 다음 식사를 위해 담배밭 있는 골짜기로 넘어와 보니 젊은이는 그 사이에 일을 끝내고 가버렸다.

 

여기까지 읽으면서는 옛날얘기 중에 더러 싱거운 것도 있지, 하는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덧붙인 얘기가 절창이다. (엮은이가 누구인지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표시가 없었던 것 같다- 가람 이병기, 공초 오상순, 수주 변영로 등 당대 풍류객들의 일화를 많이 담은 것으로 보아 그 풍류객들의 술자리에 많이 따라다닌 아랫세대 인물이었을 것 같다.) 어느 자리에서 공초가(기억이 확실치 않다) 이 얘기를 했는데 가람이(역시 기억이 확실치 않다) 너무나 우습고 좋은 얘기라고 생각해서 잘 기억해 뒀다가 집에 돌아가 가족을 집합시켜 놓고 이 얘기를 해줬는데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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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가족을 먹여살릴 길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어느 사내, 가장으로서의 무능을 인정하고 가정 해산을 선언했다.

 

아내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걱정이 앞섰다. "여보, 당신이 날 버리면 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에요?"

 

남편이 아내 어깨를 토닥이며 대답했다. "당신에겐 든든한 친정이 있잖소."

 

제일 급한 걱정이 걷히자 다음 걱정이 떠오른다. "난 그렇다 해도 애들은 어떻게 해요?"

 

남편이 다시 토닥이며 대답했다. "애들에겐 든든한 외가가 있잖소."

 

애들 걱정까지 걷히자 이제 남은 사람이 걱정된다. "애들과 난 괜찮더라도 당신은 어떻게 하죠?"

 

그러자 남편이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 마시구려. 내겐 든든한 처가가 있잖소."

 

Posted by 문천

 

짤막한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엄청 게으른 사람이 있어서, 밥도 아내가 떠먹여주지 않으면 끼니를 잇기 어려웠다고 한다. 친정에 일이 있어서 여러 날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내는 떡덩어리를 새끼줄에 줄줄이 묶어 서방님 목에 걸어놓고 갔다. 보름 후 돌아와 보니 서방님은 떡목걸이를 목에 건 채 굶어죽어 있었단다.

 

[아내가 혼자 친정 다니러 갈 때면 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해주곤 한다. "가시난 닷 도셔오쇼서" 하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런데 기막힌 사실은, 아내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짜로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기 나그네가 후세 사람들의 옛이야기에 등장할 만한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