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6. 08:51

어제 친구 세 분이 다녀가셨다. 어머니보다 한 살 아래의 이정희 선생님. 같은 과 동료로 계시던 김호순 선생님. 그리고 건국대 국문과에서 퇴직한 강인숙 선생님은 같은 과 계시던 이어녕 선생님의 부인이시다.

세 분이 전번에 다녀가신 것이 11월 초순이나 중순이었던 것 같다. 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 11월 하순이었는데, 다녀가신 기록이 앞에 없다. 회복 추세가 시작되신 것이 11월 중순이었으니까 여러 달째 기력도 없고 정신도 혼미하시던 모습을 보고들 가신 것이다.

그때도 운전을 맡아준 강 선생님의 조카며느님이 이번에도 세 분을 모셔왔다. 전번에는 어머니를 보신 다음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가셨는데, 이번에는 미리 먹고 들어가서 느긋하게 보자고들 하셔, 킨텍스 모퉁이에서 마중해 전에 어머니도 모시고 가끔 가던 굴밥집에 갔다.

미리 연락할 때부터 이 선생님이 그 점심은 당신이 산다고 장담하셨는데, 그럴 만한 사유가 있는지 평소 같으면 계산을 그분에게 절대 넘기지 않는 두 분 선생님이 양해들을 해주신다. 나중에 병원에서도 이 선생님이 어머니께 용돈 쓰라고 금 일 봉을 주셨다. 두 사람 조직도 못해 자손이 없으신 분인데, 친척이나 후배 중에 도와드린 분이 있었는지. 아무튼 굴파전 하나 곁들여 매생이 국밥으로 한 식사는 모두들 대만족이셨다.

기사분이 차에 남아있을 바에야 병원 현관 앞에 내려드린 뒤 주차장에 들어가게 하면 될 것을, 이 선생님이 가게에 들러 뭘 사가지고 들어가야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약 200 미터를 걸어야 했다. 이 선생님이 그 연세에 쌩쌩하신 분이지만 걷기는 힘들어 하신다. 가게 들를 일은 두 분 선생님이 말렸지만,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데 꽤 시간이 걸렸고, 내가 강 선생님을 먼저 올려보냈다.

김 선생님과 함께 이 선생님을 모시고 방에 들어서니 어머님과 강 선생님은 벌써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강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여사님들이 내게 어떤 관계냐고 묻기에 선생님 남자친구의 아내라고 했지." 이어녕 선생님이 이대 국문과 들어갈 때 어머니가 학과장이었고, 계시는 동안 어머니가 무척 아끼셨기 때문에 가까운 분들이 어머니의 '보이프렌드'라고 놀리는데, 강 선생님까지 한 몫 거드시는 것이다.

이 선생님이 곁에 앉자 어머니가 반가운 표정을 띠신다. "나 알겠소?" "그럼 알구말구." "내 이름이 뭐요?" "이-정-희!" 나까지 놀랄 정도다. 상태가 좋으실 때는 그만큼 사람을 알아보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정확하게 인식하실 것을 꼭 바랄 수는 없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세 분 선생님들, 모두 놀라 마지않는다. 석 달 전 와서 보신 모습과 너무 다른 것이다.

이 선생님이 반대편에 앉아 있는 김 선생님을 가리키며 "저 사람도 알아보겠네." 하니까 고개를 돌려 보시곤 "오! 호호!" 탄성을 올리신다. 40여 년 전부터 자매간처럼 가까운 동료로 지내 온 김 선생님을 오랫만에 보시면서는 말씀보다 이런 괴성이 제격이시다. 함께 산에 다니며 빚어온 가닥이다.

강 선생님은 부군께서 보낸 것이라며 한과세트를 가져오셨고, 김 선생님은 머핀 두 봉지와 과일을 가져오셨다. 좋아하시던 한과를 과연 드실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길쭉한 강정 하나 끄트머리를 끊어 입에 넣어드리니 우물우물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신다. 강정 하나를 다 드신 다음 이번엔 머핀을 조금 잘라드리니 이것도 끄덕끄덕. 선생님들이 모두 기뻐하시는 거야 그렇다치고, 이 선생님은 어머니가 더 못 드시겠다고 백기를 드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는 듯이 자꾸 권하신다. 옆에서 눈치를 드려도 하도 막무가내셔서, 결국엔 무례할 정도로 제지를 해야 했다. 무례는 김 선생님께도 저질렀다. 어머니 흥을 돋워 드리느라고 목소리를 자꾸 높이시는데, 워낙 볼륨이 좋은 분이셔서 도저히 방치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다른 할머니들 쉬시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소리지르세요."

입원해 계신 19개월 동안 세 분 선생님은 대여섯 차례 와 보셨지만, 이번 방문처럼 기뻐하시는 것은 처음이다. 3개월 전에 사람도 잘 못 알아보시고 팔조차 못 움직이시는 것을 보며 이렇게 담소를 다시 나눌 일은 아마 모두 포기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도 칭찬이 빗발칠 수밖에. 독신으로 지내신 김 선생님, 약간 오버까지 하신다. "아들이 여럿이니 하나쯤 걸리기도 하잖수. 나처럼 자손 없는 사람은 부럽기가 한량없네." 속으로는 '선생님도 쓰러지시기만 하세요. 제가 모실께요. 연습은 아주 잘 해놨어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참는다. 김 선생님은 독신이라도 친정이 워낙 든든하셔서 자식 못지않은 조카들이 즐비한 분이니 어떤 농담이라도 드리겠지만, 실향민 출신으로 친척도 적은 이 선생님 앞에선 조심스럽다.

세 분이 흐뭇한 마음을 안고 떠나신 후 조금 더 곁을 지켜드렸다. 꽤 길게 흥분상태를 지내신 만큼 약간 노곤한 기색을 보이시지만 크게 힘들어 하지 않으신다. 이 정도면 불원간 일반병실로 옮기셔도 지내시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이제 틀니를 넣어드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저녁때 갔다. 휴가 갔던 장 여사가 돌아와 있는데,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던 채 여사도 그대로 있다. 둘러보니 주 여사가 안 보인다. 그래서 장 여사에게 잘 다녀오셨어요? 인사한 다음, 이번에는 주 여사가 휴가 가셨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뜻밖에도 "휴가가 아니라...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주 여사는 지난 11월 중순, 어머니 회복이 시작될 무렵 여기 왔으니 세 달 있은 셈이다. 그런데 그 전부터 오래 있던 김 여사와 박 여사가 연말에 떠난 다음 새로 온 강 여사와 장 여사를 이끌고 8층 중환자실을 꾸려 왔다. 그 사이에 더러 적은 일도 있지만, 일하는 자세가 대단히 훌륭한 분이다. 자기 몫을 해 내는 정도를 넘어서서, 방을 꾸려가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새로 합류한 분들이 쉽게 적응하도록 배려하는 태도가 매우 훌륭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떠나다니. 그 동안 열심히 일해 온 자세가 오래도록 일할 기반을 닦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뜻밖이다.

어머니가 회복되시기 전 상태부터 쭉 살펴왔기 때문에 어머니가 필요로 하시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던 주 여사가 없어져 매우 아쉽다. 그래도 이제 한 달 남짓 된 강 여사와 장 여사가 일에 꽤 익숙해져 있고, 어머니도 상당히 든든한 상태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집에 돌아와 형에게 메일로 감사 전화 하라고 일렀다. 어머니 전화를 주 여사 전화로 해 왔기 때문에 번호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 전화를 위해서는 장 여사 번호를 보내줬다.

어머니 상태는 오늘도 썩 좋으시다. 죽을 조금 남기셨지만, 요 전날처럼 잡수실 기운이 없어서 남기신 것이 아니라 태연히 앉아서 "먹을 만큼 먹었다." 하는 표적으로 손을 휘휘 저으신다. 강정을 하나 꺼내 둘로 잘라 한 쪽을 드리니 우물우물 끄덕끄덕 맛있게 드셨지만, 또 한 쪽을 드리려 하니 "그건 네가 먹어라." 하신다. 과일즙을 꺼내며 "소화제는 드셔야죠?" 하니까 "안 먹어도 된다." "조금만 드세요, 어머니." 하니까 고개를 까딱까딱. 한 숟갈 입에 들어가시자 표정이 약간 바뀌며 "더 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리 많이 드시지 않고 이내 만족하신다.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숫자에 대한 집착. 들어갈 때 염주알을 세고 계셨던 듯, 한 곳을 꼭 쥔 채 "잊어버렸어." 하신다. 그리고는 내게 "몇이야, 몇?" 다그치신다. 내가 점쟁인 줄 아시나? 대충 보고 어림짐작으로 "서른여덟입니다, 어머니." 했더니 못 미더워하시며 또 묻고 또 묻고 하시다가 급기야는 내게 들이대며 세어보라고 하신다. 얼른 세어보니 37 아니면 38 같아 "서른여덟 맞아요, 어머니." 했더니 또 다시 세어보라신다. 찬찬히 세어보니 37이다. 그래서 "이제 보니 서른일곱이네요, 어머니." 했더니 "그것 봐." 하고 종주먹을 들이대신다. 내가 세어보는 동안에 "거기다 넷을 더하면..." 하는 식으로 종잡을 수 없는 숫자 얘기를 중얼거리신다. 15분 가량 염주를 놓고 싱갱이를 벌이시다가 "에잇, 집어쳐!" 하고 관심을 거두신다.

"식전에 금강경 좀 읽을까요, 어머니?" 하니까 "그거 좋지." "제가 소리내 읽을까요, 어머니?" 하니까 이번에도 "그거 좋지." 꺼내서 읽다 보니 어머니와 내가 한 장씩 번갈아 읽어서 다 끝낼 때 식사가 들어왔다. 내가 치우며 "금강경도 식후경!" 하니까 흥겨운 표정으로 "그래, 금강경도 식후경!" 따라 하신다.

지금까지 여사님들과 협조, 의논할 일은 주 여사가 앞장서 줬는데, 이제는 세 분과 고르게 '소통'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내일부터는 읽을 것을 가져가서 병실에 좀 길게 머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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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16. 08:44

오늘 점심때는 잠깐 걱정이 들었다. 세 달 가까이 줄곧 기력이 좋아지시기만 했는데, 오늘은 눈에 띄게 약해 보이셨다. 내가 온 것을 알아보시면 무슨 말씀을 한 마디 하실 때도 있고 한 차례 웃음을 띠기만 하실 때도 있는데, 오늘은 웃음이 좀 희미해 보이셨다.

막 식사를 시작하시는 참이었다. 먹여드릴 채비를 하고 있던 강 여사에게 숟갈을 넘겨받았는데, 식사에 흥을 보이지 않으신다. 시치미떼고 점잔떠시는 것도 아니다. 의식이 흐릿하신 것 같다. 식사 뒤쪽으로 가서는 입에 죽을 무신 채 삼킬 것도 잊어버리기도 하신다. 식사 시작하시던 때 이후 처음으로 약간이지만 남기신 채로 식판을 치우지 않을 수 없었다.

웨하스 한 조각을 둘로 나눠 드렸는데, 본능적으로 입에 넣어 우물거리시는 것 같고, 그 맛에 신경이 집중되지도 않으시는 것 같다. 과일즙을 꺼내는데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입에 한 숟갈 들어가자 그제야 뚜렷한 감흥이 다소나마 일어나시는 듯하다. 침대 등을 중간 정도까지 내려놓고 반야심경을 읽으니 따라 웅얼거리셨지만, 금강경으로 옮기니 가만히 듣다가 이내 잠이 드신다.

어제 약간 변화의 조짐을 느낀 것이 있지 않았다면 걱정이 크게 들었을 수 있다. 그저께까지에 비해 말씀이 적고, 목소리도 크게 내시지 않았고, 장난기도 덜하셨다. 장난기가 아주 없으신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내가 들어갈 때 곁에 있던 주 여사가 "누가 오셨나요?" 하자 "나 아는 사람이야." 하는 말씀은 평소와 같았지만, 더 능청스럽다고 할까, 말씨에 장난기가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 누구예요? 며느리예요?" 거듭 다그치자 "이 사람? 우리 며느리 남편이야." 하셨다. 유머 감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대답이셨다. 며느리 잘 못 알아보시는 것을 여사님들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데, 대답에서 며느리를 앞세워 주시니 여사님들이 재미있어 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며느리와의 관계에 대해 우리 없을 때 과외공부를 시켜드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는 내내 반응이 명민하면서도 차분하셨다. 식사를 마치신 후 무심한 눈길을 앞쪽으로 향하고 가만히 앉아 계시는데,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관조하고 계시는 듯한 기색이었다. 내가 말씀을 걸면 얼굴을 살짝 돌려 내 얼굴을 보며 들으신 다음 말씀이든 표정이든 가벼운 반응을 보이고는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가셨다. 내가 "어머니, 어제 제 생일이었어요." 하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랬니? 몰랐구나." 하시고, "어머니, 생일이 되니까 어머니께서 저 낳아주신 일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니까 가볍게 "뭐 별걸..." 내가 짐짓 정중하게 "고맙습니다, 어머니." 하며 고개를 깊이 숙이자 말씀은 없이 큰 웃음으로 입가가 양쪽 귀에 걸리셨다.

기력과 정신을 되찾으신 이래 새로운 느낌 때문에 감수성과 표현이 확장되어 있다가 다시 익숙해지시면서 안정된 양상으로 접어드시는 것이 아닐까 하고 반갑게 생각했다. 오늘 기운이 떨어져 보이시는 것도 그 연장선 위에서 생각하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래도 오늘 너무 맥없어 보이신 것은 마음에 걸려 나오기 전에 주 여사랑 잠깐 얘기를 나눴다. 어제부터 좀 조용해지신 변화에는 주 여사도 동의하면서, 자기가 보기에 걱정스러운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단, 생각에 깊이 잠기실 때가 많고, 그럴 때 여쭤보면 옛날 일들을 생각한다고 하시며 자식들 이름을 다 대기까지 하시더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기억이 여러 개 단층선으로 쪼개져 그 사이를 넘나들 때 착란 비슷한 현상을 일으키시는 것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주 여사의 말을 들으면 그 단층선들이 상당히 해소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난 일들에 대한 생각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점심때 피곤한 기색을 금세 보이신 것은 졸리우실 때라서 그랬을 것이란 주 여사 말이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저녁 후에 잠깐 들러서 용태를 한 번 더 살펴봐야겠다. 내일 낮에 친구분들(이정희, 김호순, 강인숙 선생님) 찾아오실 때 오늘 점심때 같은 모습을 보여주시면 너무 아깝겠다.

 

저녁 전에 잠깐 뵈러 갔다가 예상 외로 오래 붙잡혀 있었다. 진짜로 '붙잡혀' 있었다. 오후에 푹 쉬고 기운이 나 계신데, 호통 모드를 넘어 깡패 모드시다. 내게야 한 마디를 하셔도 호통이 정상이지만, 간병인 여사님들에게까지 호통쪼시다. 그래도 여사님들은 좋아만 하는 것이, 점심때 모습으로는 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막 쌍욕도 하고 꼬집기까지 하셨어요." 하면서도 싱글벙글, 그렇게 깡패짓 하게 만들어 드린 게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기색이다.

기력도 좋고 정신도 또렷하신데, 착란 현상은 평소보다 심하시다. "전문가들한테 뒤치닥거리를 해줘야지..." 비슷한 말씀을 거듭거듭 하신다. "누가 전문가예요, 어머니?" 하니 "전문적인 공부 한 사람들 있잖아." 하셔서 "그러면 역사학자나 국어학자도 전문가인가요?" 하니까 "그렇지. 일이 그 사람들한테 다 몰린단 말이야. 그러니까 힘들지." 정신이 맑으실 때 생각이 꽤 멀리까지 흘러가셨던 것이 착란을 거치면서 흔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금강경을 읽어드릴까 여쭈니 오만상을 찡그리고 실감나는 목소리로 "지-겨-워!" 하신다. 그러면 반야심경을 읽을까요, 했더니 더 찌푸리시고 "그건 더 지겨워!" 그래서 "어머니, 그럼 노래 부를까요?" 했더니 거부 반응 준비로 얼굴을 찌푸리다가 잠깐 눈알을 굴리시더니 "그래, 불러라." 하신다. 여사님들과 가끔 부르신다는 "아리랑"과 "푸른하늘 은하수"를 부르니 처음에 따라 부르실 것처럼 입술을 달싹달싹하시다가, 금세 포기하고 감상에 집중하신다. "잘했다." "그만하면 합격을 줄 만하다." "다시 불러봐라." 하시는 데 따라 너댓 번씩 부른 끝에 "열심히 하니까 나아지는구나. 다른 건 없냐?" 그래서 이것 저것 목소리 낮춰 부를 만한 걸 부르다가 "행복의 나라"가 아다리가 되었다. 한 번 부를 때마다 뭐라고 논평을 하시곤 "그거 또 한번"을 붙이시는 바람에 열 번쯤 불렀다. 노래를 모르고 사는 내가 1년치 노래를 앉은 자리에서 부른 것 같다. 정말 지겹다.

여덟 시도 훌쩍 넘어 일어서려 하니 막무가내로 붙잡으신다. "일하러 가야 돼요. 먹고 살아야 돼잖아요?" 하면 "해봤자 별 수 있냐?" "어머니, 저 아직 저녁도 못 먹었어요. 집에 가서 먹어야 해요." 하면 "여기서도 밥 주던데?" 결국 장 여사가 쫓아와 설득에 나서 준 바람에 겨우 빠져나오려니, 흐뭇한 미소를 띠고 손을 살래살래 흔드신다. "어때, 혼났지?" 하는 표정으로 보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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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2009. 12. 16. 08:39

그저께는 점심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들어서며 보니 장 여사가 떠먹여 드리고 있다. 얼른 손을 씻고 숟갈을 넘겨받았는데, 좀 웃기신다는 생각이 든다. 장 여사가 떠 드릴 때는 한 입 무실 때마다 흥에 겨워 고개도 흔들고, 눈길도 움직이시던 분이, 내가 앞에 앉으니 근엄한 표정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입만 벌려 죽을 받아 잡수신다. 뭔가 시치미를 떼고 계신 것 같아, 저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사래라도 들리지 않으실까 걱정될 정도다.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나도 근엄한 표정과 자세로 작업에 열중했다.

다 잡수시고 물까지 드신 다음 무심한 척 앞만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 얼굴을 약간 치뜬 진지한 눈길로 20초 가량 쳐다보고 있으니 내게 눈길을 돌리신다. 이럴 때 눈에 힘을 줘 크게 부릅뜨고 나를 마주 보시다가 내가 "픽!" 웃음을 터뜨리면 따라서 "픽!" 웃으시며 긴장을 풀 때가 많다. 그런데 그저께 반응은 "뭘 노려봐, 이놈아!" 하는 호통이셨다. 나는 움찔! 하는 기색을 과장되게 보여드리고는 진지한 표정을 그대로 지키며 "노려본 게 아니고, 어머니 모습이 고와서 쳐다봤습니다, 어머니." 능청을 떠니까 퉁명스럽게 "곱거나 말거나!" 하고 눈길을 도로 돌리신다.

침대 머릿가 서랍장 위에 놓아두었던 간 과일 병으로 손을 뻗치니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곁눈질로 힐끗 보시고는 "그건 뭐냐?" 물으신다. "소화제예요, 어머님." "소화제? 무슨 소화제?" "며느리가 만들어드린 맛있는 소화제 모르세요?" "모르겠는데? 아무튼 먹는 거라면 먹어보자." 이제 시치미는 안녕이다. 향기롭고 달콤한 과일즙의 매혹 속에 못생긴 아들까지도 예뻐 보이시는 모양이다. 드실 만큼 드신 뒤에 내가 또 한 숟갈을 푸자 말씀하신다. "너도 한 입 먹으렴."

과일즙의 매혹에서 헤어나오시자 다시 호통 모드. 그런데 역정이 깔려 있지 않은, 순전히 재미로 치시는 호통인데, 어찌 그리 시치미를 잘 떼시는지. 이건 그 다음날(어제) 아내랑 함께 갔을 때 여사님들이 해준 말인데, 왜 그 착한 아드님을 자꾸 야단치시냐고 했더니 흐뭇한 웃음을 띠고 "그놈이 내 앞에선 벌벌 떨지." 하시더라고. 살아오시는 동안 호통 모드는 대인 자세의 기본 패턴 중 하나인데, 그것을 써먹어 보실 상대역으로 내가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사님들이 일 없을 때 잠깐씩 앉아 쉬는 간이침대가 어머니 발치 건너편에 있다. 마침 두 분이 쉬고 있기에 내가 물어보았다. "오늘은 그렇게 많이 드시려고 하지 않네요. 이제 드시는 분량이 자리 잡힌 걸까요?" 그러자 두 분이 마주 보며 한 차례 웃고 한 분이 대답해 준다. "오늘 워낙 많이 드셨어요. 바나나도 반 개 잡수시고, 과자도 하나 드셨어요." 틀니를 안 하시고도 잡수실 만한 것은 이제 다 잡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단계 식생활 대책의 필요가 분명해졌다. 병원 식사가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은 공급해 주지만, 웬만한 음식 드실 수 있는 것은 권해드려도 좋다는 닥터 한의 얘기는 들어 두었으니까.

세 가지 종류의 요구르트와 웨하스(이제 영어 이름을 일본식으로 쓰는 건 이걸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 물건)를 갖춰 저녁때 다시 갔다. 정말 시간 감각은 확실히 되찾으셨다. 전 같으면 왔으면 왔나보다 하실 뿐 얼마 만에 다시 온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셨는데, 내 얼굴을 보자 "어? 너 또 왔니?" 하신다. 식사 마치고 30분쯤 되셨을 것 같은데, 여사님께 간식 드려도 괜찮겠냐 물어보니 너무 많이 드리지는 않는 게 좋겠다고 한다.

요구르트 중 떠먹는 것 하나를 먼저 드렸더니 그 강한 향기에 충격을 느끼시는 것이 역력하다. "맛이 어때요, 어머니?" "와~ 너무 달다." "이건 그만 드릴까요?"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 결국 오만상을 찡그리신 채로 다 받아 드신다. 요건 당분간 다시 권해드리지 말아야겠다. 웨하스를 한 입 크기로 쪼개 드리니 입안에서 녹이시면서 입맛을 짝짝 다시신다. 두 쪽을 드신 다음 입가심 하시라고 물을 드리니 빨대로 빨아 물이 조금 입에 들어가자마자 밀쳐내신다. 왜 그러시냐 했더니 "싱거워." 하신다. 웨하스의 뒷맛이 씻겨 사라질까봐 아까우신 것이다.

요즘 어머니 모시는 주요 메뉴의 하나로 긁어드리는 일이 떠오르고 있다. 머리가 가렵다고 긁어달라고 하시는데, 긁어드리면 눈을 지긋이 감고 완전 엑스터시에 빠지신다. 끝도 없다. 적당히 끝내려고 수작을 걸면 "잔소리 말고!" 하며 머리를 들이대신다. 어떤 때는 2,30분 하고 있으면 틈나는 여사님 한 분이 와서 교대해 주며 빨리 가시라고 한다. 며칠 전부터 내가 개발한 방법은 긁어 드릴 만큼 긁어 드린 뒤에 물티슈를 하나 꺼내 한 차례 두루 문질러 드려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원한 맛이 좋으신지 불평이 없으시다.

사흘 전(1일)인가? 진짜 기막힌 경지를 보여주신 일이 있다. 건너다 보이는 저쪽의 할머니 한 분에게 그 아드님이 와서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있었다. 그걸 가리키며 "저거 봐라." 하시기에 "뭐를요, 어머니?" 했더니 "저 착한 아들이 어머니 팔을 주물러드리는구나." 하고는 내게 눈길을 돌리시더니 "나도 뭐 좀 해받아야 되지 않겠니?" 하시는 거다. 그래서 "어디가 가려우세요, 어머니?" 했더니 "그래, 뒤통수가 좀." 하며 긁기 좋도록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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