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6. 08:35

입으로 다시 진지를 드시게 된 지 한 달이 됐다. 8개월간 튜브피딩을 하시던 끝이라 처음에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아직 기력이 많지 않으신데 배탈이라도 한 번 하시면 큰 타격이 될 수 있으니까.

거의 미음만 권해 드리면서 이틀 지내고 나니 소화 능력에 마음이 놓여 고기 삶은 것을 갈아 미음에 섞어 드리고 병원에서 나온 간 채소반찬도 조금씩 권해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로 연시도 속을 긁어두었다가 조금씩 권해 드렸다. 권해 드리는 것을 못 잡수신 것이 없고, 소화시키지 못하신 것도 없다. 연시만은 대변이 늦어지시기에 사나흘 후부터 배 중심의 과일믹스로 바꿨다.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과일이다. 감 드시면서 황홀해 하신 일은 당시에 적었지만, 그 후 배-사과-바나나-딸기-귤 등을 적당히 섞어 간 것, 언제 꺼내놓아도 대환영이시다. 처음엔 "햐~ 달다!", "야, 너무 달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따라 나오다가 차츰 덤덤해지신 편이지만, 첫 숟갈을 물고 눈을 반짝이시는 것은 아직도 그대로다.

처음엔 500cc 병에 담아 가다가 1주일쯤 지나면서는 1000cc 병으로 바꿨지만 이틀이 못 간다. 소화와 용변에 다 좋으실 것 같아 드실 수 있는 대로 거의 제한 없이 드리다가, 며칠 전 검사에서 혈당이 조심스럽다는 주의를 받고 드시는 양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 제한이 표현력 발전에 자극이 되기도 한다. 부탁, 간청, 요구, 호통, 등 온갖 화법이 이런 상황에서 재개발되는 것이다. 수량 감각에도 자극이 되신다. 오늘 낮에 병을 꺼내 놓으면서 "어머니, 의사 선생님이 이것도 너무 드시면 안 된대요. 아홉 숟갈만 드세요." 하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열아홉 아니구?" 하신다. 정말 유머 감각은 예전보다 더 좋으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세 숟갈 드신 뒤에 "몇 숟갈 드셨어요?" 하니까 "셋," 한 숟갈 더 드신 뒤에 "몇 숟갈 남았어요?" 하니까 "다섯," 대답이 즉각 나오신다. 그런데 여섯 숟갈 드시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눈을 묘하게 뜨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이제 절반 먹었네." 하신다. 어이 없는 내색을 감추고 "네, 많이 드셨네요." 하고 더 드리니 정확하게 세 숟갈 더 드신 다음 정색을 하고, "야, 조금만 더 먹자." 하셔서 "네, 그러세요, 어머니. 세 숟갈 더 드시죠." 하니까 고개를 마구 끄덕이시고, 맛있게 세 숟갈을 더 드신 다음 선선히 물러나신다.

오늘 같은 날은 매우 평화로운 상황이었다. 어제는 뭔가 심기가 좀 삐딱하신 편이었는데, 절반 넘게 남은 병을 꼭 바닥내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잡수셨는지, 종당에는 주먹까지 휘두르시고 (주먹을 들먹이시면 편리한 위치에 머리통을 갖다대야 한다. 그래야 팔 운동이 되시니까.) 주 여사가 쫓아와서야 겨우 진압을 해드릴 수 있었다.

심기가 삐딱하신 것은 그저께, 내가 서울에 일이 있어 못 가고 아내만 갔던 날부터였다. 아내에게 얘기 들으니, 다른 일 하고 있는 여사님들을 당신한테 와달라고 안달하시고, 목청도 꽤 높이시더라고 했다. 아내에게 말씀하시는 데도 장난기를 넘어선 심술기가 느껴졌다고 하고, 여사님들은 어머니께 꼬집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심술까지 회복되신다면 정말 대단한 회복이시다. 작년 가을 자유로병원에 계실 때는 간병인 학대범으로 온 병원에 소문이 나실 정도였다. 안 여사란 이가 몹시 당했다. 겨울 되면서 기력이 떨어지시고, 또 모시는 재주가 좋은 김 여사로 바뀌면서 그 증세가 사라졌는데, 이제 기력이 그만큼 좋아지셨나, 대견스럽다. 지금 여사님들과 관계가 워낙 좋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않는다. 꼬집으셨다는 게 내 머리통 때리시는 정도겠지.

어제는 심술 회복 소식을 들은 터라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비위 맞춰 드리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살펴 보니, 분명히 삐딱하시다. 장난처럼 호통을 치시는데, 조금만 삐끗하면 역정으로 바뀔 소지가 느껴진다. 결국 난감한 장면을 맞고야 말았다. 진지 드실 때부터 똥이 마렵다고, 일으켜 앉혀 달라고 거듭거듭 조르시는데, 1년 가까이 누워서 볼 일 잘 보시던 분이 웬 유난을 떠시나? 종이까지 달라고 하신다. 겨우 식사를 마치신 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요구가 그치지 않으셔서 체면불고하고 다른 일 하고 있는 주 여사를 불러 임무를 넘겨드렸다. 대변까지 받아드려야 효자 되는 거라면 난 효자 못하겠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바람 좀 쐬다가 내려와 보니 아직 볼 일을 못 보셨다고 한다. 무척 불안한 기색이시다. 곁에 앉아 있는데, 불쑥 나를 보고 "야, 너무 아프다!" 하신다. 깜짝 놀라 (오랫만에 들은 말씀이다.) "어디가 아프세요, 어머니?" 하니까 "이게 걸렸어. 양쪽 사이에." 하고 얼굴을 찌푸리신다. 내가 더 있어 봐야 도움도 안 되겠고, 차라리 내가 없어야 여사님들이 제대로 도와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전 일하러 갈래요, 어머니, 재주껏 누세요." 하고 일어나려 하니까 "어디 가니?" "집에요, 어머니." 하니까 오늘따라 별나게 "갔다가 금방 와야 한다." 하신다. "네, 금방 다녀올께요, 어머니." 하고는 병원을 나올 수 없어 아래층에 가 설 후에 한 번 이야기하기로 하고 있던 김 (간호)과장에게 갔다. 몸은 많이 회복되셨어도 정신이 불안정하시니 가급적이면 중환자실에 계속 계시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올라와 보니 그 사이에 볼 일은 보셨다.

기력이 없으실 적에는 얼마 모시고 있으면 노곤해 하셔서 쉬시는 것을 보고 나올 수 있었고, 기력을 되찾은 뒤로는 대체로 내가 일하러 가야 한다는 사정을 이해하시는 듯, 어떤 날은 떠나는 내게 "넌 가서 일해라, 난 여기서 놀께." 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어제는 내가 떠나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시는 기색이셔서 좀 길게 모시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차현실 선생이 오셨다. 이만큼 회복되신 것을 보고 반가워 눈물까지 글썽일 듯하다. 그래서 차 선생께 어머니를 양보하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최근 이틀 간의 불안정하시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일어설 때도 아무 동요 없으셨고, 이마에 뽀뽀를 신청하니 "쬐끔만 하거라." 하고 선선히 내놓으신다. 아마 의식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일시적인 불안정이 나타나신 것 아닌가 싶다. 용변은 앉아서 보는 일이란 강박까지 되찾으셨으니, 어느 수준까지 회복되실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식욕이 정말 왕성하시다. 그저께부터 "배고프다"란 말을 입에 달고 지내시고, 한 번은 진지 갖다드리는 여사님에게 "다들 많이 먹으면서 왜 나만 이렇게 쪼끔 주냐?"고 투정까지 하셨단다. 그래서 오늘 점심부터는 미음을 죽으로 바꿨는데, 정말 '식은 죽 먹기'로 가볍게 비우신다. 그리고는 식판 치우려는 것을 못 치우게 하고 "뭐 더 없냐?" 하신다. 두유를 드리니 한 팩 다 드시고야 만족스러운 기색. 그리고도 소화제(과일 간 것)도 드실 만큼 드신다. 식생활 대책을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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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