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6. 08:51

어제 친구 세 분이 다녀가셨다. 어머니보다 한 살 아래의 이정희 선생님. 같은 과 동료로 계시던 김호순 선생님. 그리고 건국대 국문과에서 퇴직한 강인숙 선생님은 같은 과 계시던 이어녕 선생님의 부인이시다.

세 분이 전번에 다녀가신 것이 11월 초순이나 중순이었던 것 같다. 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 11월 하순이었는데, 다녀가신 기록이 앞에 없다. 회복 추세가 시작되신 것이 11월 중순이었으니까 여러 달째 기력도 없고 정신도 혼미하시던 모습을 보고들 가신 것이다.

그때도 운전을 맡아준 강 선생님의 조카며느님이 이번에도 세 분을 모셔왔다. 전번에는 어머니를 보신 다음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가셨는데, 이번에는 미리 먹고 들어가서 느긋하게 보자고들 하셔, 킨텍스 모퉁이에서 마중해 전에 어머니도 모시고 가끔 가던 굴밥집에 갔다.

미리 연락할 때부터 이 선생님이 그 점심은 당신이 산다고 장담하셨는데, 그럴 만한 사유가 있는지 평소 같으면 계산을 그분에게 절대 넘기지 않는 두 분 선생님이 양해들을 해주신다. 나중에 병원에서도 이 선생님이 어머니께 용돈 쓰라고 금 일 봉을 주셨다. 두 사람 조직도 못해 자손이 없으신 분인데, 친척이나 후배 중에 도와드린 분이 있었는지. 아무튼 굴파전 하나 곁들여 매생이 국밥으로 한 식사는 모두들 대만족이셨다.

기사분이 차에 남아있을 바에야 병원 현관 앞에 내려드린 뒤 주차장에 들어가게 하면 될 것을, 이 선생님이 가게에 들러 뭘 사가지고 들어가야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약 200 미터를 걸어야 했다. 이 선생님이 그 연세에 쌩쌩하신 분이지만 걷기는 힘들어 하신다. 가게 들를 일은 두 분 선생님이 말렸지만,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데 꽤 시간이 걸렸고, 내가 강 선생님을 먼저 올려보냈다.

김 선생님과 함께 이 선생님을 모시고 방에 들어서니 어머님과 강 선생님은 벌써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강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여사님들이 내게 어떤 관계냐고 묻기에 선생님 남자친구의 아내라고 했지." 이어녕 선생님이 이대 국문과 들어갈 때 어머니가 학과장이었고, 계시는 동안 어머니가 무척 아끼셨기 때문에 가까운 분들이 어머니의 '보이프렌드'라고 놀리는데, 강 선생님까지 한 몫 거드시는 것이다.

이 선생님이 곁에 앉자 어머니가 반가운 표정을 띠신다. "나 알겠소?" "그럼 알구말구." "내 이름이 뭐요?" "이-정-희!" 나까지 놀랄 정도다. 상태가 좋으실 때는 그만큼 사람을 알아보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정확하게 인식하실 것을 꼭 바랄 수는 없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세 분 선생님들, 모두 놀라 마지않는다. 석 달 전 와서 보신 모습과 너무 다른 것이다.

이 선생님이 반대편에 앉아 있는 김 선생님을 가리키며 "저 사람도 알아보겠네." 하니까 고개를 돌려 보시곤 "오! 호호!" 탄성을 올리신다. 40여 년 전부터 자매간처럼 가까운 동료로 지내 온 김 선생님을 오랫만에 보시면서는 말씀보다 이런 괴성이 제격이시다. 함께 산에 다니며 빚어온 가닥이다.

강 선생님은 부군께서 보낸 것이라며 한과세트를 가져오셨고, 김 선생님은 머핀 두 봉지와 과일을 가져오셨다. 좋아하시던 한과를 과연 드실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길쭉한 강정 하나 끄트머리를 끊어 입에 넣어드리니 우물우물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신다. 강정 하나를 다 드신 다음 이번엔 머핀을 조금 잘라드리니 이것도 끄덕끄덕. 선생님들이 모두 기뻐하시는 거야 그렇다치고, 이 선생님은 어머니가 더 못 드시겠다고 백기를 드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는 듯이 자꾸 권하신다. 옆에서 눈치를 드려도 하도 막무가내셔서, 결국엔 무례할 정도로 제지를 해야 했다. 무례는 김 선생님께도 저질렀다. 어머니 흥을 돋워 드리느라고 목소리를 자꾸 높이시는데, 워낙 볼륨이 좋은 분이셔서 도저히 방치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다른 할머니들 쉬시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소리지르세요."

입원해 계신 19개월 동안 세 분 선생님은 대여섯 차례 와 보셨지만, 이번 방문처럼 기뻐하시는 것은 처음이다. 3개월 전에 사람도 잘 못 알아보시고 팔조차 못 움직이시는 것을 보며 이렇게 담소를 다시 나눌 일은 아마 모두 포기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도 칭찬이 빗발칠 수밖에. 독신으로 지내신 김 선생님, 약간 오버까지 하신다. "아들이 여럿이니 하나쯤 걸리기도 하잖수. 나처럼 자손 없는 사람은 부럽기가 한량없네." 속으로는 '선생님도 쓰러지시기만 하세요. 제가 모실께요. 연습은 아주 잘 해놨어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참는다. 김 선생님은 독신이라도 친정이 워낙 든든하셔서 자식 못지않은 조카들이 즐비한 분이니 어떤 농담이라도 드리겠지만, 실향민 출신으로 친척도 적은 이 선생님 앞에선 조심스럽다.

세 분이 흐뭇한 마음을 안고 떠나신 후 조금 더 곁을 지켜드렸다. 꽤 길게 흥분상태를 지내신 만큼 약간 노곤한 기색을 보이시지만 크게 힘들어 하지 않으신다. 이 정도면 불원간 일반병실로 옮기셔도 지내시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이제 틀니를 넣어드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저녁때 갔다. 휴가 갔던 장 여사가 돌아와 있는데,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던 채 여사도 그대로 있다. 둘러보니 주 여사가 안 보인다. 그래서 장 여사에게 잘 다녀오셨어요? 인사한 다음, 이번에는 주 여사가 휴가 가셨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뜻밖에도 "휴가가 아니라...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주 여사는 지난 11월 중순, 어머니 회복이 시작될 무렵 여기 왔으니 세 달 있은 셈이다. 그런데 그 전부터 오래 있던 김 여사와 박 여사가 연말에 떠난 다음 새로 온 강 여사와 장 여사를 이끌고 8층 중환자실을 꾸려 왔다. 그 사이에 더러 적은 일도 있지만, 일하는 자세가 대단히 훌륭한 분이다. 자기 몫을 해 내는 정도를 넘어서서, 방을 꾸려가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새로 합류한 분들이 쉽게 적응하도록 배려하는 태도가 매우 훌륭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떠나다니. 그 동안 열심히 일해 온 자세가 오래도록 일할 기반을 닦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뜻밖이다.

어머니가 회복되시기 전 상태부터 쭉 살펴왔기 때문에 어머니가 필요로 하시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던 주 여사가 없어져 매우 아쉽다. 그래도 이제 한 달 남짓 된 강 여사와 장 여사가 일에 꽤 익숙해져 있고, 어머니도 상당히 든든한 상태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집에 돌아와 형에게 메일로 감사 전화 하라고 일렀다. 어머니 전화를 주 여사 전화로 해 왔기 때문에 번호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 전화를 위해서는 장 여사 번호를 보내줬다.

어머니 상태는 오늘도 썩 좋으시다. 죽을 조금 남기셨지만, 요 전날처럼 잡수실 기운이 없어서 남기신 것이 아니라 태연히 앉아서 "먹을 만큼 먹었다." 하는 표적으로 손을 휘휘 저으신다. 강정을 하나 꺼내 둘로 잘라 한 쪽을 드리니 우물우물 끄덕끄덕 맛있게 드셨지만, 또 한 쪽을 드리려 하니 "그건 네가 먹어라." 하신다. 과일즙을 꺼내며 "소화제는 드셔야죠?" 하니까 "안 먹어도 된다." "조금만 드세요, 어머니." 하니까 고개를 까딱까딱. 한 숟갈 입에 들어가시자 표정이 약간 바뀌며 "더 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리 많이 드시지 않고 이내 만족하신다.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숫자에 대한 집착. 들어갈 때 염주알을 세고 계셨던 듯, 한 곳을 꼭 쥔 채 "잊어버렸어." 하신다. 그리고는 내게 "몇이야, 몇?" 다그치신다. 내가 점쟁인 줄 아시나? 대충 보고 어림짐작으로 "서른여덟입니다, 어머니." 했더니 못 미더워하시며 또 묻고 또 묻고 하시다가 급기야는 내게 들이대며 세어보라고 하신다. 얼른 세어보니 37 아니면 38 같아 "서른여덟 맞아요, 어머니." 했더니 또 다시 세어보라신다. 찬찬히 세어보니 37이다. 그래서 "이제 보니 서른일곱이네요, 어머니." 했더니 "그것 봐." 하고 종주먹을 들이대신다. 내가 세어보는 동안에 "거기다 넷을 더하면..." 하는 식으로 종잡을 수 없는 숫자 얘기를 중얼거리신다. 15분 가량 염주를 놓고 싱갱이를 벌이시다가 "에잇, 집어쳐!" 하고 관심을 거두신다.

"식전에 금강경 좀 읽을까요, 어머니?" 하니까 "그거 좋지." "제가 소리내 읽을까요, 어머니?" 하니까 이번에도 "그거 좋지." 꺼내서 읽다 보니 어머니와 내가 한 장씩 번갈아 읽어서 다 끝낼 때 식사가 들어왔다. 내가 치우며 "금강경도 식후경!" 하니까 흥겨운 표정으로 "그래, 금강경도 식후경!" 따라 하신다.

지금까지 여사님들과 협조, 의논할 일은 주 여사가 앞장서 줬는데, 이제는 세 분과 고르게 '소통'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내일부터는 읽을 것을 가져가서 병실에 좀 길게 머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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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