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7. 12:56
 

회복을 크게 바랄 계제는 아니라도 용태가 좋아지니 지내기도 편해 보이고 생각도 임의로우신 것 같아서 마음에 좋다. 팔도 거의 굳어지시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제 꽤 잘 움직이신다. 너무 잘 움직이셔서 코에 꽂은 피딩 튜브를 두 번이나 잡아 빼시는 바람에, 일 저지른 오른 팔 손목이 얼굴까지 가지 못하고 아래쪽에서만 놀도록 묶어놓고, 누가 살펴드릴 수 있을 때만 풀어 드리는 것이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이다.

워낙 자유를 좋아하고 억압을 싫어하는 분이시라 이렇게 행동이 제약된 상태를 견뎌내시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로웠다. 그런데 몇 달째 몸도 못 일으키고 누워만 계시는 데 답답증을 보이지 않으시는 것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거동 못하게 되신 지는 반 년 가량 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iv 주사를 꽂아놓으면 성가셔 하셔서 무의식중에라도 잡아 뽑으시기 때문에 발이나 다리에만 놓도록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오랫만에 정신이 많이 드시면서는 갑갑한 기색을 거의 안 보이신다. 지금 상황을 하나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오늘은 미국의 큰형에게서 온 전화를 꽤 자상하게 받으시더라고 김 여사가 신이 나서 설명해 준다. 세 분 간병인 가운데 성격이 씩씩하면서도 침착한 김 여사가 팀장 격이다. 형이 김 여사 핸드폰으로 전화를 치면 어머니께 쫓아가 바꿔 드린다. 전에는 쥐고 귀에 대어 드려야 했지만, 요새는 어머니가 손에 쥐고 받으시는데도 곁에 붙어 서서 대답 잘 하시라고 응원도 해 드리고, 내가 나중에 가면 녹화 중계도 해준다. 김 여사 형편이 안 될 때는 박 여사 번호를 치도록 알려놓았다. 체수가 작은 박 여사는 성품이 자상하고 장난기가 좀 있어 보인다. 막내인 작은 김 여사는 무슨 일이 있다던가 1주일째 보이지 않는데, 대신하고 있는 거구의 여사님도 벌써 어머니를 많이 아껴드리는 기색이다. 나이는 모두 50 전후 같은데, 중국 동포들은 요즘 한국인에 비해 나이 들어 보이는 경우가 많으니 조금 적을 수도 있겠다.

김 여사가 형의 전화 얘기 끝에 "작은 아드님한테도 얘기 좀 하세요." 하니까 "내가 얘기를..." 하고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여러 마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그 뒤론 내가 있는 동안 다시 말씀이 없으셨다. 대신 많이 웃으셨다. 반응이 꽤 활달하신 것을 보고 내가 이런저런 예전 일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니 대목대목에서 웃음을 지으시는 것이 거의 다 알아듣는 기색이시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 걱정해 주시는 몇 분께 전화를 드렸다. 사람도 잘 못 알아보시는데 찾아와 봐야 마음만 아플 것을, 부담감을 드리기만 할 것 같아 용태를 알리는 전화도 하기가 힘들었었다. 지금 상태 같으시면 찾아오는 분들도 편하게 뵐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작은형에게 전화했다. 네 달 전 병원 옮겨드릴 때 전화로 의논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끝내 잡히지 않았고, 녹음을 몇 번씩 해놓아도 여태 연락 한 번 없었다. 그 후로는 나도 다시 전화하려 애쓰지 않고 지냈다. 마음이 삐지기도 하고, 본인이 무슨 사정이 있다면 괜히 덧드릴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해서였다. 그런데 저만큼 정신 돌리신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보니, 진짜 이 사람 웬 일인가 걱정도 들어 오랫만에 전화를 돌리게 되었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리고 또 꽝인가 생각하는데 전화를 받는다. 목소리도 멀쩡하다. 근황을 알리니 며칠 후에 와 뵙겠다고 한다. 목요일 어떻겠냐 하기에 그 날은 내가 다른 데 일이 있어서 그 날 오면 어머니가 "닭 대신 꿩" 왔다고 좋아하시겠다고 했더니 "닭 대신 꿩?" 하고 한 차례 천진스럽게 웃고는 꿩이랑 닭이랑 함께 보시도록 금요일에 오겠다고 한다.

형제간에 흉보는 얘기를 이런 자리에서 하는 것이 온당치 않겠지만, 나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지 기탄 없이 할 생각이다. 다만 오늘은 시간도 늦고 글도 길어졌으니, 닭인지 꿩인지 흉보는 얘기는 금요일 얼굴 본 뒤에 하겠다. 근데 나는 우리 어머니가 나 같은 착실한 효자보다 날건달 같은 둘째 아들을 그렇게 고와 하시는 까닭을 영 모르겠다.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 12. 6  (0) 2009.12.07
08. 12. 3  (0) 2009.12.07
08. 11. 30  (0) 2009.12.07
08. 11. 28  (0) 2009.12.07
08. 11. 26  (0) 2009.12.07
Posted by 문천
2009. 12. 7. 12:53
 

어제 낮에 대덕화 보살님이 다녀간 이야기를 간병인 여사님들께 들었다. 이름을 남기지 않았어도 몇 마디 들으니 그분이 틀림없다.

어머니와 인연이 참 공교로운 보살님이다. 작년 6월 하순 설현 거사가 기사 노릇을 해 주어 암자로 찾아뵐 때 같이 계신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태안사 떠나신 뒤에 그 절에 다니다가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늦게 절 살림에 드셨지만, <불광>에 싣던 수필을 좋아하는 이도 많고 청화 큰스님과 서로 받들고 아끼시던 인연을 흠모하는 이들도 많아서 외진 데 계셔도 찾아오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본 두 분 보살님, 대덕화 님과 그 올케 되는 성진행 보살님은 잠깐 봐도 어머니 대하는 태도가 은근하고도 편안해서 각별히 고맙게 느껴졌다.

서울로 돌아온 이튿날 오후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공주 어느 병원에 모셔놓았는데 큰 병원으로 곧 옮겨 모셔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몇 차례 통화로 상황을 파악해 보니 당장 위급하신 것은 아니지만 병원 신세는 크게 져야 할 형편인지라, 일산 백병원으로 모셔오기로 했다.

절 살림을 오래 계속하시기 힘들겠다 생각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던 차였다. 암자에서 큰절까지 포행도 힘들 만큼 기력이 떨어지신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그보다도 기억력 감퇴가 큰 문제가 되어 있었다. 그 날 일산으로 모셔오도록 결정을 내린 데는 절 생활 끝내실 계기일 것 같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백병원에서 며칠간 검사를 받으신 후 보아두었던 파주의 요양병원에 모셔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순조롭게 접어들었으니, 그 날 쓰러지신 일에는 다행스러운 면도 있었던 셈이다.

백병원에 모신 이튿날 대덕화 보살님이 찾아왔다. 쓰러지실 당시 상황도 설명해 주었다. 두 분 보살님이 공주 시내로 모시고 나와 점심 대접을 한 후 걸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벌러덩 쓰러져서 머리에서 피가 날 만큼 바닥에 짓찧으셨다는 것이다. 퇴행성 치매가 이미 한참 진행되고 있었으니 언제 어디서라도 깜빡 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곁에 있던 분들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검사 결과를 설명해 드려도 좀체 편안치 못한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다가, 몇 달 지나 요양병원에서 새로운 생활이 안정되시는 것을 보고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17개월 동안 성진행 보살님도 몇 번 와 뵈었지만, 대덕화 님은 한 달에 한두 번씩 꾸준히 뵈러 왔다. 쓰러지실 당시 모시고 있던 책임감이라면 남매간이 같을 텐데, 대덕화 님은 특별히 애틋한 정을 키우게 된 것 같다. 딸 하나 있는 것이 딸 노릇 못하는데, 대덕화 님이 정말 딸 노릇 해드리는 셈이다. 튜브 피딩을 시작한 반 년 전까지, 어머니의 마지막 음식 호강은 그 분 덕분이었다. 공이 드는 음식을 어쩌면 그렇게 알뜰하게 마련해 오는지, 번번이 놀랄 뿐이었다.

한 번 병원에서 만났을 때, 대덕화 님이 친정어머님과 시어머님 병 수발하던 이야기를 하며 자기는 노인 모시는 이력이 있나보다며, 또 한 분 어머님 모시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정말 예쁜 마음이다. 모습도 50대는커녕 40대로도 보이지 않는 미인이지만, 그 밑에 깔린 마음은 사춘기도 겪어보지 않은 아이처럼 밝고 따뜻하기만 하다. 그 분과의 인연은 어머니 말년의 큰 복이시다.

대개는 내가 없을 때 다녀가기 때문에 다녀간 이야기만 곁의 여사님들께 듣는데, 몇 주일 전 한 번은 어머니를 뵙고 싶어 하는 스님이 나도 보고 싶어 하신다는 연락을 해 와서 시간을 정해 만났다. 기력이 영 안 좋으실 때였는데, 그래도 알아보시는 기색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어제 왔을 때는 정신이 훨씬 더 맑으신 것을 보았을 테니, 얼마나 기뻐했을까 생각하며 나도 마음이 흐뭇하다. 고맙습니다, 대덕화 보살님.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 12. 6  (0) 2009.12.07
08. 12. 3  (0) 2009.12.07
08. 12. 1  (0) 2009.12.07
08. 11. 28  (0) 2009.12.07
08. 11. 26  (0) 2009.12.07
Posted by 문천
2009. 12. 7. 12:52
 

어제는 일이 많은 데다 먼 곳에 다녀올 일도 있어 아내 혼자 어머니를 뵙고 왔다. 밤에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뵙고 온 얘기를 꺼내면서부터 싱글벙글이다. 며느리를 알아보시더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며느리를 못 알아보신다. 몇 달 전 기운과 정신이 푹 떨어지시기 전에도 아내가 "어머님,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하면 능청스럽게 "알~지" 대답하시는데, 누군지 똑바로 말씀해 달라고 조르면 "제~자" 하시곤 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나이 있는 여성 방문객은 으레 제자려니 하시는가 보다. (30년 가까이 이대 국문과에 재직하셨고, 이제 정년퇴직 하신 지 20년이 넘었다.) 그러고 나올 때마다 아내는 "저는 알아보시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뭐하러 오겠어요? 이제 안 올래요." 짐짓 앙탈이다. 그러다가 모처럼 알아봐 주셨다고 저렇게 좋아한다.

작년 초여름 쓰러지시기 전에도 벌써 몇 해째 기억력 감퇴가 심하셨다. 그중에도 며느리 못 알아보시는 일이 두드러졌다. 3년 전인가? 계시는 절에 찾아갈 때, 점심시간에 겨우 대어 갈 형편이라, 미리 전화 드려 큰절(갑사) 입구의 단골 식당(수정식당)으로 내려와 계시도록 청했다. 조금 여유를 두고 도착해 보니 안 와 계셔서, 암자(대자암)로 전화해 보니 우리랑 약속은 까맣게 잊으시고 이제 공양하러 가실 참이란다.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리고 그 날은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모시러 올라갔다. 모시고 내려와 식당 가까이 왔을 때 산책하며 기다리던 아내와 마주쳐 차 밖에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 후 아내는 식당으로 걸어 돌아가고 나는 차를 주차장으로 몰고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물으신다. "저 아주머니 인상이 참 좋구나. 너 아는 분이냐?" 기가 막히지만 대답할 수밖에. "네, 좀 아는 분이예요."

셋째 아들(나)을 알아보기는 잘 알아보신다. 거의 인사불성으로 정신이 몽롱하실 때도 간병인이 "이 분 누구세요?" 하면 응대를 못하시다가 "아드님이예요?" 하면 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이 되어 끄덕끄덕하신다. 그런데 알아는 보시면서도 크게 반가운 기색은 아니시다. 어려서부터 형제들 중에 고지식한 편이었던 내가 영 재미없는 녀석으로 도장찍혀 버린 것일까?

쓰러지실 때까지도 기회만 있으면 내 어릴 적 일이라고 싫증도 안 내고 되풀이하시던 얘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가 말 배우는 것이 늦어 걱정을 좀 했는데, 어느 날 혼자 웅얼웅얼하고 있어서 가만 들으니 구구단을 외우고 있더라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학적인 머리만 있고 언어적인 머리는 없는, 되게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믿어 오신 증거 같다. 또 하나,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선생님 세 분이 함께 오시는 데 마주치자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세 차례 꾸벅거리더라고. 가정방문 오신 선생님께 들었다며 내 머리가 허얘질 때까지 그 얘기를 입에 달고 지내신 것은 내 고지식함을 사랑하신 뜻도 물론 있겠지만, 융통성 없는 녀석이라고 딱해 하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다.

융통성 없는 성미 때문에 어머니를 필요 이상 걱정 끼치고 괴롭혀 드린 일이 많다. 이 글을 쓰면서 미국의 형에게도 메일에 담아 보냈더니 답장에 이렇게 썼다. "I think the history between you and Mother is playing out nicely now.  Bless you two." (형 쓰는 메일 서비스에는 한글 서포트가 안 되나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그 분이 힘 있으실 때는 제일 악착스럽게 대들던 내가 힘 떨어지신 뒤로는 이렇게 착실하게 당번을 서게 되다니. 역시 나는 고지식한 놈인가보다. 생긴 대로 놀아야지.


 

'어머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 12. 6  (0) 2009.12.07
08. 12. 3  (0) 2009.12.07
08. 12. 1  (0) 2009.12.07
08. 11. 30  (0) 2009.12.07
08. 11. 26  (0) 2009.12.07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