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2615&dable=30.52.3

 

박근혜가 빚어놓은 위기에 관한 좋은 설명입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3607

 

이남주: "조기 대선이 답이다"

 

"거국내각"이나 "개헌"에 현혹될 때가 아니라는 내 의견과 같군요. "조기 대선"이 난국 수습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는 데 나도 동의합니다.

 

Posted by 문천

 

2014년을 보내며 마음속에 불복종운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불복종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마하트마 간디(1869-1948). 간디는 1915년 인도로 돌아오기 전 남아프리카에서 지낼 때 사티야그라하 운동을 시작했고 귀국 후 이 운동을 더욱 발전시켜 인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간디는 사티야그라하를 제창하는 강연에서 퍼시 셸리(1792-1822)의 시 한 편을 즐겨 낭송했다. “가면을 쓴 무정부”(Masque of Anarchy). 1819년 맨체스터에서 수만 명의 시위군중을 기병대가 덮친 피털루사건에 대한 격분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셸리 사후 10년이 지난 1832년에야 출판되었는데, 셸리가 출판사에 작품을 보낸 1819년에 바로 출판되지 못한 사정을 레이 헌트는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 불꽃같은 수사 속에 담겨있는 성실성과 따뜻한 마음을 일반대중이 충분한 분별력을 갖고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출판사는) 판단했다.”

 

참으로 격정적인 수사다. 나처럼 문학에 소양이 없는 사람도 마음의 격동을 느끼게 한다. 한 대목을 옮겨놓는다.

 

침착하고 결연하게 우리는 서있다.

정적에 싸인 울창한 숲처럼.

팔짱을 낀 우리의 차분한 눈길,

어느 싸움에서도 질 수 없는 우리의 무기.

Stand ye calm and resolute,

Like a forest close and mute,

With folded arms and looks which are

Weapons of unvanquished war.

 

권력이 감히 병정들을 풀어,

이 숲속을 휘젓고 다니게 한다면,

후려치고, 찌르고, 베고, 자르게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라, 마음대로 하라고 하라.

And if then the tyrants dare,

Let them ride among you there;

Slash, and stab, and maim and hew;

What they like, that let them do.

 

팔짱을 낀 우리의 차분한 눈길,

두려움 없이, 놀라움은 더더욱 없이,

저들의 격정이 제풀에 스러질 때까지,

저들의 칼질을 바라볼 뿐이다.

With folded arms and steady eyes,

And little fear, and less surprise,

Look upon them as they slay,

Till their rage has died away:

 

부끄러움을 느끼며 저들은 돌아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수치심으로 벌건 저들의 뺨 위에서

그 동안 흐른 피가 제 색을 드러내리라.

Then they will return with shame,

To the place from which they came,

And the blood thus shed will speak

In hot blushes on their cheek:

 

잠에서 깨어난 사자처럼,

일어나 우리의 용맹을 보여주자!

잠자는 동안 우리에게 씌워졌던 쇠사슬을

갈기 위의 물방울처럼 털어버리자!

우리는 크고, 저들은 작다!

Rise, like lions after slumber

In unvanquishable number!

Shake your chains to earth like dew

Which in sleep had fallen on you:

Ye are manythey are few!

 

셸리가 여기서 보여준 비폭력 저항정신을 크게 증폭시킨 인물로 간디와 함께 꼽히는 것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월든>으로 널리 알려진 소로가 1849년에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쓴 것은 미국 정부의 노예제 유지와 멕시코 침략정책이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셸리, 소로, 간디, 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인권이었다. 인권사상이 힘을 키운 19세기 상황이 저항정신의 배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비폭력을 내세운 배경은 근대국가의 법치원리에 있었다. 인권과 법치, 근대정신의 두 개 중요한 축 위에서 권력자에 대한 항의자의 도덕적 우위를 추구한 것이 비폭력 저항이었다.

간디가 사티야그라하란 말을 만든 것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진리를 뜻하는 ‘Satya’모심, 받듦을 뜻하는 ‘Agraha’를 합친 것이다. 간디는 이 운동의 정신이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진리는 사랑을 낳는 것이며, 진리와 사랑을 지키고 받드는 의지는 더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편적 인권사상은 18세기 후반 계몽주의시대에 싹을 틔웠다. 그러나 정말 보편적인 성격을 실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세기 중엽의 미국사회는 흑인노예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20세기 초의 인도인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보편적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진항공의 땅콩공주가 직원들을 대등한 인간으로 인식하는가? 아랍지역을 폭격하는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아랍인의 목숨과 미국인의 목숨을 똑같은 가치로 인정하는가? 세월호 유족을 일삼아 조롱하던 사람들을 특위 위원으로 추천한 새누리당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정략적 득실보다 중시하는가?

소로의 <시민불복종>이 처음 출판될 때의 제목은 <문민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었다. 민주주의가 지혜와 정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한계를 의식한 것이었다. 선거의 투표만으로는 인간의 도덕성을 충분히 실현할 수 없다고 그는 보았다.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복종하는 것은 죄악이며 불복종을 통해 고통을 겪는 것이 도덕적 인간의 의무라고 그는 주장했다. “부당한 이유로 누구든 감옥에 보내는 정부 아래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바로 감옥이라고 하는가 하면 투표는 종이쪽지 하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가 미국정부의 정의롭지 못함을 지적하며 불복종을 제창했지만 당시 정부가 아주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인 만큼 꽤 괜찮은 편의 정부라 하더라도 개선의 여지가 있기 마련이고, 그 개선을 위해 노력을 다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었다.

비폭력 저항의 대전제는 저항 대상인 체제의 궁극적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개선할 점이 있는데 게을리 한다거나 운영을 잘못하는 지엽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저항에 나서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타도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념적 정면대립을 피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전략적 이득을 취하기 쉽다. 체제 측에서도 소수의 맹목적 대결주의자 외에는 저항운동의 도덕성 앞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고, 파국을 피하기 위해 타협적 태도를 취하기도 쉽다. 상대방을 분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편을 단결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간디도 타협주의’, 또는 투항주의라는 국민의회 동료들의 정치적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간디는 초인적인 실천력으로 이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민족주의자의 손에 목숨을 빼앗기고 만다. 폭력의 피해자가 복수심을 뛰어넘어 도덕적 자세를 추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15년의 대한민국에서 비폭력 저항운동이 가능할까? 민심이 집권세력을 등진 상태로는 어떤 저항이든 저항이 없을 수 없고, 그럴 바에야 저항운동이 비폭력으로 진행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헌재 결정에 불복은 불가능이라고 하는 헌법재판소장의 발언을 보면 바라기 어려운 소망 같다. 51 49의 득표로 정권을 잡은 쪽의 의지가 헌법재판소에서는 8 1로 나타나는 것이 무슨 이치인가? 내가 쥔 권리를 절대화하고 타협과 양보를 거부한다는 심리상태를 읽을 수 있다. 도덕성도 3권 분립 원리도 이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파국을 두려워할 것 같지도 않다.

십여 년 전 뉴욕의 시민불복종운동을 보며 쓴 글 하나가 있다. 비폭력 저항이 제도 밖의 제도로서 사회 모순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우리 사회에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저런 식의 항의를 한다면 경범죄가 아니라 보안법으로 다스릴 것 같다. 그러니까 RO모임 같은데 한줌이나마 사람들이 모이는 거겠지.

 

고통분담의 마음

 

요즘 뉴욕에선 전임 시장, 현역 하원의원, 시의원들을 비롯해서 명사들이 줄줄이 연행되고 있다. 정태수 리스트도 이종기 리스트도 아니다. 난폭한 경찰을 싸고도는 시장과 경찰청장에 항의하는 불복종운동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2월초 서아프리카에서 이민 온지 얼마 안된 청년 하나가 경찰에 사살당한 사건이다. 행상 일을 하는 디알로란 이름의 이 청년은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가 간식을 사러 나가는 길에 아파트 현관에서 경관 4명의 총탄세례를 받았다. 말이 서툰 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흉기도 안 가진 시민에게 4명의 경관이 총알을 41발이나 쏟아 부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뉴욕시민은 경악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몇 년 전의 LA폭동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 주일이 지나도록 줄리아니 시장과 새피어 경찰청장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기는커녕 경찰의 사기저하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줄리아니 시장은 문제의 지적을 오히려 정치적 공격이라고 비난함으로써 비판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기까지 했다.

참다못한 딘킨스 전임 시장 등 뉴욕 정치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지난 주 시민불복종운동을 시작했다. 경찰청 앞에 모여서는 정문의 출입을 가로막아 체포를 강요하는 것이다. 경찰은 법규와 복무지침에 따라 이들의 손에 수갑을 채우지 않을 수 없다.

주말까지 간간이 이어지던 연행자의 행렬이 이번 주 들어 부쩍 늘어났다. 월요일 아침 이 문제를 다루는 시의회 특위에 새피어 청장이 다른 일 때문에 참석 못한다고 했다가 결국 참석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요일 오스카상 수상식에 다녀온 것이었다. 분통이 터진 시의원들이 오후부터 대거 경찰청 앞에 몰려들어 불복종운동에 참여했다.

60년대 민권운동 이후 흑인의 처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문제가 많다. 역차별정책(Affirmative Action)의 혜택은 엘리트층에게만 돌아가고 하층민에게는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의 불심검문이 유색인종에만 쏠리기 때문에 음주운전(driving while drunk)’보다 흑면운전(driving while black)’ 이 단속대상 아니냐는 가시 돋친 농담까지 있다.

이민의 나라 미국에게 인종문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원죄(原罪)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뉴욕의 불복종운동처럼 고통을 나눌 줄 아는 마음들이 있기에 그 사회가 그런 대로 버텨나가는 것이 아닐까싶다. (1999. 3. )

 

Posted by 문천

 

어제 글에서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개헌이 응급수술이 아니라고 보는 의견을 말했다. 30년 동안 운영해 온 헌정체제의 문제점을 차분히 검토해서 더 바람직한 체제를 빚어내는 과제로 보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헌정 위기로 보는 것은 옳다. 이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응급조치는 필요하다. 단 그 응급조치는 개헌 자체가 아니라 개헌이라는 큰 수술의 준비를 위해 건강을 확보하는 조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거국내각얘기에서 보는 것처럼 권력구조 문제에 관심이 집중된다. “누가권력을 운용하느냐 하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누가 맡느냐에 따라 권력의 운용 방향이 크게 좌우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만 관심을 쏟다가는 현직 대통령과 여러 정당 사이의 힘겨루기와 눈치보기 속에 지금의 위기 상황이 요구하는 국가적 과제가 소홀히 되기 쉽다. 국가를 어느 정도 정상상태로 되돌려놓는 데 필요한 과제들을 시급히 파악해야 한다. 과제가 파악되면 누가 그 과제를 맡아야 할지도 갈피가 잡힐 것이다.

 

국무총리의 큰 역할이 필요할 것을 모두들 내다본다. 대통령 직이 유고가 되었으니 행정부 수반으로서 총리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싸한 이름들이(더러는 그럴싸하지 않은 이름들도) 들먹여지기 시작한다. 이 이름의 주인들이 눈치만 보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난국 극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총리를 맡는다면어떤 일들을 꼭 해야겠다는 의견을 내놓아 국가의 당면 과제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켜 주기 바란다는 말이다.

 

나서주는 이가 없으니 내가 시범을 보이겠다. “내가 총리를 맡는다면어떤 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밝히겠다.

 

바둑 초보자의 솜씨가 늘기 위해서는 큰 곳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만 지키면 아마추어 고수까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진짜 고수가 되려면 급한 곳을 알아봐야 한다. 대통령의 광치(狂治)’가 영향을 끼치지 않은 부문이 없다시피 하지만, 그중에서 문제가 급한 곳을 먼저 찾고 이어서 큰 곳을 찾아야겠다.

 

가장 급한 문제는 남북관계다. 박근혜는 북한이 곧 망한다는 확신을 갖고 남북관계에 임해 왔다. 20년 전에 유행하던 북한붕괴론에 지금까지 집착한다는 것은 그의 정신질환 증세 중 가장 분명한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에서 사드 배치, 북한 주민 이탈 권유까지, 제 정신 가진 사람의 행동으로 볼 수 없는 짓으로 일관해 오지 않았는가.

 

어떤 일보다 이 문제가 급한 것은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등 여러 관계국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 관련된 박근혜의 소행 중에는 제대로 결정된 대한민국 정책이 아닌 것이 많으니까 우리 정부가 정신 차려 정책을 정비하는 동안 기다려달라고 국제사회에 부탁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에게 지난 몇 해 동안의 맹목적 적대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줄 필요가 크다. 북핵문제의 심화를 남한 정부가 부채질해 온 것은 민족사회에 대한 죄악일 뿐 아니라 인류사회에도 큰 폐를 끼친 것이다.

 

그보다 덜 급하지만 크기는 훨씬 더 큰 과제가 증세(增稅)’. 박근혜의 광치만이 아니라 앞서 이명박의 우치(愚治)’를 조장한 것이 내야 할 세금 줄이고 싶어 하는 자들의 욕심이다. 어찌 보면 눈에 보이는 정치계의 잘못은 그림자일 뿐이고 대한민국 고질병의 실체가 이 욕심이다. 이번에 드러난 두 개 재단의 문제를 보더라도, ‘삥 뜯기의 전형이 아닌가. 몇 백억 삥을 뜯기 위해 해마다 수십조 국가 세입을 포기하는 조세정책이 여러 해 계속되었으니 국민의 복리와 안전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서도 국고는 계속 쫄아들을 수밖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그런 걸 왜 일부러 만들어 줘야 하나? 기초 인프라 제공이라면 국가가 해줘야 하겠지만 왜 세금을 깎아줘야 하나? 세금 깎아줘서 기업하는 사람에게 좋은 조건 만들어주면 기업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금을 더 내고 국가의 서비스를 덜 받게 된다. 소수 집단에게 특혜를 줘야 삥 뜯기가 원활하겠지만 한도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적어도 OECD 평균 수준까지는 법인세 등 세율을 높이는 것을 국정의 최대 목표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공권력의 순화(馴化). 사법부 쪽에도 살필 문제가 있지만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은 검찰과 경찰이다. 검찰과 경찰의 일원적 전국조직은 파시스트국가의 확실한 조건이다. 이명박의 우치와 박근혜의 광치가 지금 드러나고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데 검찰과 경찰의 파시스트조직 성격이 큰 몫을 했다. 두 조직이 공권력 행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집권세력의 범죄행각이 이 수준에 이를 수 없었다. 두 조직을 지역 별로 분할해서 정치권력의 행동대 노릇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현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임명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깜냥도 안 되는 위인들을 편의상 앉혀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들통이 크게 나다 보니 박근혜도 진짜 험한 꼴 보지 않으려면 민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판국이다. 민심이 정부에게 어떤 과제를 요구하는지 분명히 보여주고, 그 과제에 적합한 인물에게 자리를 맡기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위 세 가지 과제만 확실히 내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지지할 것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