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5. 14:05

금년 들어 최병모 선생을 많이 보게 됐다. 최 선생과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제주에 함께 살면서였다. 최 선생이 굳이 제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었던 까닭은 아직도 잘 모르는데, 내가 학교 그만두고 제주에 은거하려 하니 서중석 선생이 거기 좋은 친구 있다고 소개해 줬다. 5년간 정중한 관계로 지내다가 피차 제주를 떠난 후로는 뜸해졌다. 그 후 변호사 도움이 필요할 때면 그를 찾았지만 그럴 일이 많지 않았다. 작년까지는 5년에 한 번 보기도 하고 10년에 한 번 보기도 하면서 서로 잊지만 않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 4월, 마당에 꽃이 좋으니 한 잔 하러 오라 청하기에 부부 함께 흐뭇한 대접을 받고 온 뒤로 보는 일이 잦아져 지난 두 달 동안 본 것이 그 전의 20년간보다 많다. 그가 내 글을 읽으며 내 생각에 관심이 많아지고 이런저런 일을 함께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든 데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기 마련, 근년 그가 꽂혀 있는 선거제도 문제에 나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 선생이 준 팸플릿 하나가 있다. "몰랐어? 문제는 선거제도야." 목차는 이렇다.

 

Q&A 1. 행복해지려면 뭣이 중헌디?

Q1. 선거제도가 왜 중요할까?

Q2. 정말 선거제도가 행복에 영향을 끼칠까?

Q3. 그렇다면 현행 선거제도는 무엇이 문제일까?

Q4.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높지 않은 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일까?

Q5. 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 핵심이라면 1등만 당선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Q&A 2. 선거제도가 바뀌면 정치판이 달라지고 정치판이 바뀌면 '나의 삶'이 달라진다.

Q1.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Q2.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좋은 점이 뭘까?

Q3. 유권자가 투표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Q4. 좋긴 한데 과연 대한민국에서 가능할까?

Q&A 3. 아직도 의혹이 남아 있는 질문들 "이놈의 정치판 믿을 수가 있어야지."

Q1. 비례대표 의원 '밀실 공천', '돈 공천' 어떻게 막지?

Q2. 지금도 꼴 보기싫은 국회의원, 더 늘리자는 소리인가?

Q3.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 아니야?

 

<비례민주주의연대>란 곳에서 만들었다니 이 팸플릿 내용을 포함해서 그 단체의 주장을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을 것 같다. www.myvote.or.kr

 

이 팸플릿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대목들이 있는 것은 내 평소의 공부가 (민주주의 정치이념을 포함하는) 근대체제의 비판적 검토에 치중하는 위에, 최근 <차이나모델>의 번역작업에서 선거민주주의체제의 한계와 민주점에 생각을 모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나는 선거제도의 개혁을 바라고,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이 팸플릿 내용과 다르게 볼 여지가 많다고 생각하고,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심화될 때는 혼란을 일으킬 것이 걱정된다. 그렇게 보이는 점을 틈틈이 적어보겠다.

 

 

첫 질문의 대답에 "스웨덴의 복지, 덴마크의 행복이 부럽다면 선거제도에 개혁을!" 하는 제목 아래 덴마크, 스위스, 핀란드, 뉴질랜드 등 삶의 질 상위권 국가들이 덜 부패했고 민주주의 지수가 높으며 정치가 잘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삶의 질과 정치의 특성 사이에 연관성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팸플릿이 풍기는 것처럼 그 사이를 확고한 인과관계로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두 번째 질문의 대답에서 비례대표제 선거는 압도적 다수당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연립정부가 구성된다고 한 다음, "협상과정에서 각 정당들이 서로의 좋은 정책을 받아들이게 되고, 타협을 통해 '좋은 정책'을 실현하는 정치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연립정부가 현실에서도 좋지 않은 특성을 보이는 일이 꽤 있고, 그런 특성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권의 연립이 덜 필요한 선거제도를 택하는 나라도 적지 않게 있는 것 같다.

 

우리 정치계에 현존하는 인적자원을 갖고 연립정부를 세운다고 하면 잘 될까? 나는 아주 어렵다고 본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국회 과반수의 연립정부를 세울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춘 사이다. 그런데도 연립은커녕 원만한 '협조'도 이뤄지기 어려운 까닭이 즐비하지 않은가. 행여 연립정부를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정치의 개선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방면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충분한 노력을 통해 기반조건이 개선된다면 꼭 연립정부가 아니라도 썩 만족스러운 정치가 가능하게 될 것 같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28위인데 왜 국민행복도는 58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질문에도 다시 생각할 점이 있다. 소득도, 선거제도도 국민행복도를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 중 일부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마비시키는 개인주의에 제일 큰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개인주의 원리에 따라 개인의 주권을 부각시키는 선거민주주의체제의 어두운 면을 크게 본다. 선거제도의 개혁이 행복도 증진의 충분조건인 것처럼, 연립정부가 꼭 바람직한 정치 형태인 것처럼 지나친 무게를 두는 길은 삼천포로 빠질 위험이 크다고 나는 본다.

 

'떠오른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거제도 (3)  (1) 2017.07.05
선거제도 (2)  (0) 2017.06.28
마음 편한 선거  (0) 2017.05.07
길 못 찾는 보수주의  (3) 2017.01.09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2) 2016.12.15
Posted by 문천
2017. 6. 16. 14:35

If the water is clear, I will wash my hat-lace.

If it is not, I can still wash my feet in it.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I read in this poem the conflict between ideas and reality. This conflict, maybe, is an eternal question in our lives. To this ancient question Qu Yuan answers that, when he comes upon clean water, he would wash his hat-lace, which needs to be kept tidy before anything else about him. And if the water is not so clean, he would wash his feet. In this way he rejects both uncompromising aloofness and undiscriminating compromise.

 

Qu thus proposed to avoid reflexive responses and to respond to given situations in flexible ways. Perhaps he was in support of the popular line of politics. I remember those elderly activists in the prison who said that you must think in the leftist way and act in the rightist way.

 

The leftist is like a man who wants to brush the dust off his hat and clothes before taking them on after a bath.(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He keeps to principles in an uncompromising way. On the other hand the rightist would wash his hat-lace in clean water and wash his feet in dirty water. He adapts himself to given conditions. How shall we deal with the conflict between our ideas and the given reality, it truly is an eternal question.

 

(Shenzi)

 

'For Foreign Ey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structure of hatred  (0) 2017.07.28
true knowledge  (0) 2017.07.03
A big table in the yard  (0) 2017.06.16
待人春風 持己秋霜  (0) 2017.05.19
for ultimate victory  (0) 2017.04.21
Posted by 문천

 

"With the gate wide open, seated around a big table in the yard, eating together from a huge iron cauldron..." A scene that can be seen no more. No more huge cauldrons. No more furnaces to hold the cauldrons. And sorriest of all, no more big tables in the yard.

 

The rice cauldron is the basis of life to be restored. Peace begins at eating together. The meaning of peace lies in sharing the rice fairly.

 

(Shenzi)

'For Foreign Ey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true knowledge  (0) 2017.07.03
ideas and reality  (0) 2017.06.16
待人春風 持己秋霜  (0) 2017.05.19
for ultimate victory  (0) 2017.04.21
spring sunshine  (0) 2017.04.09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