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접속할 때 이상한 제목의 기사들이 보이기에 통합진보당 관계 기사를 좀 검색해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2년 전 <김기협의 페리스코프>를 낼 때 추천사를 여섯 분에게 부탁해서 여섯 분 모두에게 받았다. 정세현, 홍세화, 이정우 세 분은 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지인들이고, 유시민 박인규 두 분은 십 년 전후 알고 지낸 사이다. 2006년부터 알고 지내게 된 이정희가 제일 교분이 짧은 분이다. 아무튼 이 여섯 분의 추천사를 모아 놓으니까 편집자 한 사람이 탄성을 발했다. "야권연대가 여기서 이뤄졌다!"
책 팔리는 데 도움 된다 해서 아무한테나 추천사를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 의견을 내가 존중할 만한 분들에게 받고 싶었다. 이정희도 그런 분의 하나였다. 여섯 분 중 가장 단시간에 내 검증을 거친 분이다.
류연산, 유연식, 최병모... 내가 매우 존중하는 세 분이 이정희를 만날 계기를 만들어줬다. 유연식이 발행한 류연산의 책에 박정희에 대한 명예훼손이 들어있다고 박근령에게 고소-고발당했을 때, 출판을 권했던 내가 최병모에게 자문을 청했고, 최병모가 변호를 맡아주면서 같은 법무법인(덕수)에 있던 이정희를 공동변호인으로 끌어들였다. 대법원 확정을 받을 때까지, 실제 일은 최병모보다 이정희가 주로 맡아주었다.
대법원 판결이 2008년 말 아니면 2009년 초에 나왔다. 자축하는 저녁 모임이 있었는데, 이정희가 국회에 들어가 있을 때여서 여의도에서 모였다. 그 때 시병일기에 이렇게 썼다.
"공교로운 날이었다. 점심을 이정희 선생님께 얻어먹은 것이 모처럼의 일이었는데, 저녁때는 민노당 이정희 의원과 약속이 있었다. 이 의원 부부, 중앙일보사 함께 있던 북한 전문가 유영구 선생, 그리고 박정희 명예훼손 문제로 이 의원의 변호를 받았던 유연식 사장이 함께였다. 옆에 앉은 이 의원에게 점심을 어느 분이 사주셨나 얘기한 다음 '잘하면 이름 같은 두 분에게 점심과 저녁을 얻어먹는 기록을 오늘 세울 수 있겠다.'고 했더니 박장대소하며 '그 기록을 꼭 세워드리겠습니다.' 다짐했다." (<아흔 개의 봄> 2009년 2월 9일자)
얼굴 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몇 달 후 <프레시안>에서 <10년 후에는>이란 가제의 작업을 기획하면서 그에게 연락했다. 앞으로 10년간 한국이 겪을 중요한 변화가 어떤 것일지를 그 변화에 공헌할 개연성이 큰 사람들에게 듣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내가 개인적으로 확실히 아는 사람들부터 시작할 생각으로 4번 타자까지 뽑아놓은 것이 홍세화, 박원순, 유시민, 이정희였다. 그 안에서 타순은 진행에 따라 조정하기로 하고.
이정희에게 메일로 뜻을 알리니 오케이 사인이 돌아와, 본격적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참에 노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너무 열이 받쳐 돌아가신 분 한 푸는 일에 한 2년은 매달려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은 실행하지 않은 <역사 속의 참여정부> 구상에 반년간 매달려 지내는 바람에 계획 중이던 <망국의 역사>는 진행이 늦어졌고 <10년 후에는>은 때를 놓쳐버렸다.
그 후로는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추천사 부탁 외에는 별 접점 없이 지내면서 그가 민노당 대표를 맡는 등 하는 일을 소문으로 들으며 탐탁치 않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언행이 더러 세간에 물의를 일으킬 때도 나는 그의 입장을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에게 '실드' 쳐주는 글을 <프레시안>에 올리기도 했다. 북한 '3대 세습' 논란 때, 그리고 관악을 사퇴 때.
이정희에게 기대어 정치활동에 나설 생각까지 근래에 하고 있었다. 총선 과정에서 정책 담론이 부진한 것을 보며 대선 과정에서는 더 활발해질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 자신 남북관계와 외교 분야의 통합진보당 정책 작성에 참여할 생각을 한 것이다. 유시민과는 개인적 교분이 너무 깊어서 그런 공적 활동을 함께 하기가 오히려 조심스럽고, 교분은 깊지 않지만 신뢰감이 그 못지않게 든든한 이정희를 통해 끼어드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총선 끝나고 바로 메일을 보내려다가 뭔가 찜찜해서 차일피일 미루던 중에 '광란의 17시간'을 보기에 이르렀다. 세상에! 그 동안 내가 그에 대해 갖고 있던 의견과 관계없이, 세상에 저런 인간이 있을 수 있나! 정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까지 사람을 잘못 볼 수 있었나? 사람들 틈에 끼어 일하러 나설 엄두가 도로 사라짐은 물론, 틀어박혀 앉아 글쓰기까지 겁이 난다. 근년 글쓰기에 자신감을 나름대로 키운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치 따지기보다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안정된 덕분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그 정반대의 이미지로 지키면서 신뢰를 줄 수 있었을까? 이정희 한 사람을 마음에서 떠나보낼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이 잘못된 게 없는지 바짝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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