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도피처를 찾은 못난 어린이

 

어린이날이 다가오니 어린 시절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무엇보다 골목의 또래들 놀이에 잘 끼지 못하던 생각이 난다. 운동신경이 유별나게 무뎌서 잘 붙여주지 않았고, 선수가 모자라 어쩔 수 없이 끼워줄 때도 ‘깍두기’ 노릇으로 우리 편 미움을 너무 많이 받을까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물론 열등감이 심했다. 책읽기에 몰두했던 데도 지금 돌아보면 그 열등감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뜻이 있었다. 본격적 책읽기로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백과사전이었으니까. 여섯 권으로 된 학원사 판 <세계대백과사전>으로 기억한다. “세계에서 제일 긴 강 열 개가 뭐 뭔지 알아?”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 열 개가 어디 어딘지 알아?” 식으로 내 자존감의 빈약한 도피처를 마련했던 것이다.

 

나이 환갑을 넘기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니 내 살아온 방식이 어렸을 때 또래들 놀이에 잘 어울리지 못하던 데서 결정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사람 많은 데를 피하고 혼자 틀어박혀 일하기 좋아하는 습성이다.

 

과학자가 되려는 어릴 적부터의 꿈을 접고 물리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교수의 길을 걸은 것도 그 습성 때문이다. 그런데 그 습성이 너무 지독해서 교수직마저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일하기 시작한 것이 나이 마흔 때의 일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좀 심했다. 한국에서 대학교수만큼 간섭 없이 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직업이 어디 있나? 사회성 부족이 병적 수준이 아닌가, 두고두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소의 행복감

 

혼자 일하려니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동료들, 제자들과의 대화도 (전에는 귀찮았지만) 막상 전혀 없이 지내려니 아쉬울 때가 많았고, 도서관 이용도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고정 수입이 없어지니 검소한 생계나마 유지하기 위해 돈벌이에 신경 쓰기가 힘들었다.

 

제일 아쉬운 것이 ‘성취감’이었다. 교수로 그냥 있었다면 연구업적 꾸준히 내면서 내 전공분야의 ‘권위자’로 자리를 굳혀 나갔을 텐데, 혼자 내 좋아하는 공부만 하면서 지내려니 그 공부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확인할 ‘좌표계’가 없었다. 칼럼 쓰기와 번역은 생계를 위한 날품팔이의 의미를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을 이루리라는 목표도 전망도 없는 채로 십여 년간 마음 끌리는 대로 공부를 쌓다 보니 이런 책 하나는 쓰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써낸 것이 4년 전에 나온 <밖에서 본 한국사>. 전공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넓게 공부하는 내 방식이 빚어낸 첫 결실이었다.

 

그 책이 나름의 가치를 드러내자 내 공부 방식을 활용할 일거리가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마다 두어 권씩 빵빵한 책을 써내면서 매우 생산력 높은 저술가가 되었다. 지금도 3년에 걸친 <해방일기> 작업을 절반 넘긴 상태에서 요 다음에는 어떤 작업을 할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주체하기 힘들 지경이다. 번역으로 소일도 하고 생계도 때우던 5년 전과 격세지감이 든다.

 

근년에 나는 매우 행복하다. 불난 집 구경하며 아빠 거지가 아들 거지에게 “우린 참 행복하지 않냐, 불날 집이 없으니.” 하는 짝일지 모르지만, 적게 벌면서도 돈 걱정 별로 않는다. 내 존재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다른 길 찾을 거야.

 

<해방일기> 작업에 조언을 얻기 위해 얼마 전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는 후배 하나를 찾아갔다. 학계에 대해서나 학교에 대해서나 역할을 잘 맡고 있는 친구다. 그런데 내 작업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내게 부럽다는 말을 한다. “형님 하는 것처럼 창의적인 작업이 진짜 학문의 본령 아닙니까?”

 

듣고 보니 그렇다. 적어도 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그렇다. 나는 학문의 ‘문(問)’ 자를 중시한다. 학문을 ‘문제 풀기(problem-solving)’로 여기는 것은 일종의 서비스업에 불과한 것이고 ‘문제 찾기(problem-raising)’가 진정한 학문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내 업적을 평가하고 보상해주는 시스템 밖에서 활동해 온 덕분에 오늘날 내 일에서 이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을 나도 따라 걸었다면 그 동안 보낸 세월은 더 편했을 것이고, 그 대신 남들이 잘 못하는 일을 내 식으로 할 수 있다는 지금의 만족감은 없었을 것이다. 공짜는 없나보다.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 부러워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자치기, 팽이 돌리기, 딱지치기, 하다못해 뜀박질에서 싸움까지. 종목마다 서열이 있었다. 그 서열의 아래쪽에도 끼지 못해 혼자 딴 짓 하고 놀던 버릇이 지금까지 계속된 것인가?

 

앎의 길을 구분해서 ‘저절로 아는 것(生而知之)’과 ‘배워서 아는 것(學而知之)’, ‘겪어서 아는 것(苦而知之)’을 이야기한다. 창의적인 삶의 길을 저절로 알거나 배워서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 같은 보통사람들은 희생할 것 희생하며 겪어야 익히게 되는 길이다. 그런대로 보람은 느끼지만, 체질 안 맞는 이들에겐 권할 길이 못 된다.

 

 

'사는 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희 생각  (36) 2012.05.06
양구 생각  (4) 2012.05.05
[연변말] "귀신 듣게 떡 소리 한다."  (0) 2012.04.22
드디어! 대한민국 검찰 신세를 지다.  (11) 2012.04.07
[연변말] "검은 개 도투 수한다"  (2) 2012.01.01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