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7. 22:00
1984년 초의 첫 해외여행에서 대만과 교토를 둘러보고 돌아온 후 그 해 여름부터의 연구 여행을 교토에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가 보기 전부터 대충 결정하고 있던 것이었다. 교토의 인문과학연구소처럼 과학사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 대만에는 없었으니까. 8월부터 11월까지 백여 일을 교토에서 지냈는데, 주로 다닌 곳은 인문과학연구소와 교토대 중앙도서관, 그리고 교토와 오사카 중간에 있는 민족학박물관에 이따금 찾아가곤 했다.
계명대학에서 박물관장 김종철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며 고고학에 꽤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오사카 만박공원에 만들어진 민족학박물관은 고고학-인류학 분야의 첨단 시설로 재미있는 사업이 많았기 때문에 취미삼아 바짝 살펴보게 되었다. 일요일에 다른 일이 없으면 산보도 즐길 겸 민족학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에서 전철역까지 꽤 멀었다. 빠른 걸음으로 30분가량. 나는 중학생 때 이래 빨리 걷는 데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박물관에서 기차역으로 걸어가는데 백인 여자 하나가 나랑 비슷한 속도로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 중에 딱 한 사람이 보조가 맞으니까 금세 신경이 쓰였다. 체격이 늘씬한 젊은 여잔데, 책까지 잔뜩 들고도 시속 6킬로미터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중간쯤 왔을 때 말을 걸었다. "Mind if I keep apace?" 했더니 말 걸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Not at all. You already are." 하는 것이었다. 들고 있는 책을 가리키며 좀 나눠 들어줄까 했더니 서슴없이 "Thanks, you are an angel."
교토대학 부근의 전철역에서 헤어질 때까지, 초면에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약 3대 1 빙율로 내가 주로 들었다. 산타바바라대학 인류학과에서 학위논문 준비 중인 매릴린은 1년간 필드워크를 위해 일본에 온 지 3개월째라는데, 한참 재잘대다가 민망한 듯이 자기 말 많은 것을 양해해 달라고 한다. 일본 와서 이렇게 편안하게 수다떠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당신처럼 예쁘고 쾌활한 서양 여성은 일본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민일 텐데? 했더니 그건 다르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겉으로 말하는 것과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처음에 무심코 대하다가 난처한 일을 많이 겪다 보니 마음놓고 편안히 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좋게 생각되는 면을 좋게 얘기한 것 뿐인데 술 한 잔 들어간 뒤에 하도 이상한 태도가 나오기에 웬 일인가 했더니 자기에게 아주 특별한 호감을 가진 줄로 착각하고 있더라는 등.
그런 면에서야 내가 참 편안한 상대 맞다. 30대 중반의 나이 치고는 자신에 대한 환상을 나만큼 적게 가진 사람도 많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그 날부터 시작해서 틈틈이 만날 때마다 벼라별 시시콜콜한 얘기를 다 들었고, 그중에 아직까지 기억되는 것도 적지 않다. 서양생활을 안해 본 내게는 미국 만화에서 본 내용과 매릴린의 생활 이야기 사이의 미묘한 차이가 무척 재미있었다. 아무튼 매릴린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훨씬 재미있고 편안한 민족이라는 인상을 그 날로 가지게 되었는데, 그 환상이 언제 어떤 식으로 깨졌을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1주일에 대개 한 번씩 보며 지냈다. 매릴린 하숙집에 내가 들르는 일이 많았고, 야마시나의 기숙사로 매릴린이 한 번인가 두 번 찾아오기도 했다. 언젠가 적은, 교토신문사의 바둑대회에도 응원하러 와줬다. 바둑이란 게임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좋은 구경을 시켜줬다고 내게 오히려 감사해 하고.
추석땐가? 학교와 박물관이 모두 여러 날 쉴 때 함께 시고쿠 여행을 했다. 3박4일로. 혈기왕성한 청춘남녀가 단둘이 며칠씩 여행을 하는데, 내가 그렇게 담백한 기분으로 여행에 임할 수 있을 줄 나 자신 몰랐다. 나는 그런 경험이(흑심 없는 남녀 동행의 경험) 없었지만, 집착이 없는 성격이라서 매릴린이 모범을 보이면 잘 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이 다니다가 매릴린이 갑자기 흑심을 드러냈다면 속절없이 당했겠지만, 매릴린은 그러지 않았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미닫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잔 민박집에서 일어나 미닫이를 열었을 때, 매릴린이 달콤한 미소를 띤 얼굴로 조금만 더 누워있겠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잠깐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참 후 아침을 먹다가 매릴린이 하루 더 다니고 이튿날 돌아가고 싶다고 할 때가 더 난처했다. 편안한 자세를 하루 더 유지할 수 있을지 불현듯 걱정스러워진 것이다. 나는 그 날 교토로 돌아왔고 매릴린은 이튿날 돌아왔다. 그리고 몇 주일 후 내가 교토를 떠날 때까지 우리의 주례 수다파티는 계속되었다.
몇 달 후 영국에 가서 첫 서양생활에 쉽게 적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기가 물 만난 듯한 데는 매릴린과의 교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서양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에게 쉽게 호감을 살 수 있었다. 동양학 전공이라서 동양에서 얼마간의 생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인데, 동양인과 편하게 대하는 경험을 다들 아쉬워하고 있어서 나처럼 대범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무척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womanizer'로 과학사학회에서 호가 나서, 국제 행사에서 여자 손님 응대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가 맡게 되었다. 나중에 바르샤바 구경 시켜줄 안나도 그런 자리에서 친구가 된 사람이었다.
저장하려다 보니 미리 써둔 제목에 눈이 가면서 매릴린의 말 하나가 생각난다. 한 번 매릴린의 군살 하나 없이 늘씬한 몸매를 칭찬하며 특별히 집중해서 하는 운동이 있냐고 했더니 서슴없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Weightlifting!"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내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And horseriding." 나는 그 대답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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